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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5년 기념 특별 만남] 하태경·정용진·염경엽·이성민 원숭이띠 4人4色 메시지 

“55세, 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해 살아남아라”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청년 위해 정치 인생 바치겠다”는 하태경 의원, ‘신세계 유니버스’ 진두지휘하는 정용진 부회장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 야구 공부한 염경엽 감독, “배우로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 이성민

월간중앙은 창간 55년을 맞아 동갑내기 1968년 생 명사들을 수소문했다. 만 55세, 은퇴를 준비할 나이지만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경륜을 펼치며 불꽃을 태우는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여러 인사들 중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 배우 이성민 씨를 취재할 수 있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1968년 3월 29일생으로, 부산 해운대구갑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3선(19대, 20대, 21대) 중진이다. 하 의원은 “더 많은 사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시대와 호흡하는 언론이 되길 바란다”는 창간 기념 축하 메시지와 함께 ‘이념 세대 55세 정치인이 바라본 자식 세대 이야기-청년은 탈이념 세대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보내왔다. 다음은 하 의원의 글 전문이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 “지난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 앞에서 무효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더 많은 사회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시대와 호흡하는 언론이 되길 바란다”는 월간중앙 창간 55년 기념 축하 메시지를 보내왔다. / 사진:김상선 기자
“청년 현상을 진단하는 과정에서 ‘탈이념’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이 시대 청년은 보수나 진보로 나누기 어려운 최초 세대라서 어떠한 정의로도 그들을 분류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기존 정치 문법이 더는 먹혀들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는 분석 포기의 의미로 사용됐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현장에선 정반대로 이해했다. 많은 선거에서 정책 입안자와 선거 공학자는 ‘청년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고 무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청년 관심사와 동떨어진 주제를 정책으로 발표했다가 역풍을 맞고 철회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청년은 무조건 진보’라는 선거판 필승 공식에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정말 기성세대가 이념 세대고, 청년세대는 탈이념 세대일까? 기성세대는 ‘민주’ 대 ‘국가’로 싸웠다. 민주당은 노동·환경·인권으로, 보수당은 안보·경제·산업으로 맞섰다. 뭐 하나 피부에 확 와 닿는 것 없는 거대담론 간 투쟁이다. 마치 하나의 선 위에서 비슷한 무기를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중세시대 ‘마상시합’이 떠오른다. 이러한 이념 갈등의 평행적 구도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달하면서 훨씬 다층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세분화·전문화했다. 청년들은 디씨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젠더·게임·아이돌 등의 문제에 분노한다. 그 과정에서 부당 이득이나 노예 계약 등 사회적 문제를 발견한 뒤 역으로 정치적 세력으로 변모한다.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보텀업(bottom-up) 방식 이념 갈등이다.

게임이 그렇다. 리그오브레전드 프로 게이머 카나비 선수가 노예 계약을 맺고 중국에 팔려 갈 위기에 놓이자 많은 청년 게이머들이 자기 일처럼 분노했다. 증거를 수집하고 제보하고 여론전을 펼쳤다. 회사는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듀스 X 101’ 투표 조작 문제도 마찬가지다. 시청자 투표로 데뷔시킬 수 있는 시스템에서 조작 비리를 확인하자 결집했고 투쟁했다. 스스로 돈을 모아 변호사를 부르고 정치인을 끌어들였다. 최루탄이나 화염병 없이도 거대 자본을 굴복시킬 방법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은 아주 이념적이고 정치적이었다.

나는 이런 현상이 80년대 민주화 운동과 어떻게 다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청년들이 불의에 대해 더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고 이해하게 됐다. 청년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더욱 광범위한 이념적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성세대는 이러한 측면을 모르면서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오해한다. ‘탈이념’이라는 게으른 분석을 내놓은 이유일지 모른다. 지난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 앞에서 무효가 된다. 언젠가 나는 내정치 인생을 청년을 위해 바치겠다고 약속한 적 있다. 불로초를 먹고 회춘하겠다는 황당한 소리가 아니다. 생물처럼 계속 변하면서 닥쳐오는 예측 불가한 시대와 끊임없이 소통해 살아남겠다는 개인적 다짐에 가깝다. 언론도 그래야 한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 “고객의 시간을 모조리 빼앗겠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고객과 상품, 현장을 강조하며 신세계를 유통업계 리딩 기업으로 성장시킨 오너다. / 사진:신세계그룹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1968년 9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나 경복고, 미국 브라운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12월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한 뒤 2009년 12월 ㈜신세계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2011년 5월 신세계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정 부회장의 경영 목표는 고객이 신세계의 생태계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신세계 유니버스’ 구축이다. 고객이 ‘먹고 자고 보고 사고 즐길 때’ 다른 선택지를 떠올리는 대신 신세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원한다. 모든 것을 불편함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신세계 세상(유니버스)’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정 부회장은 고객이 원하는 모든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고, 고객이 요구하기 전 선제적으로 답을 제안하는 ‘신세계 에코 시스템(생태계)’을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 따르면 ‘대한민국 유통 역사’로 불리는 신세계는 지난 수십 년간 고객에게 새로운 쇼핑 경험을 선사해왔다. 이 땅에 “신세계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신세계 패밀리’를 늘려왔다. 복합쇼핑몰·야구단·리조트·드라마 등 보고 즐기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고객을 ‘신세계 유니버스’ 안에 락-인하고 있다.

정 부회장은 신세계를 유통업계 리딩 기업으로 성장시킨 오너다. 그는 자리에 앉아 있기보다 현장을 자주 찾는다. 지난 3월 8일, 그는 오전부터 편의점 이마트24 상품 전시회 ‘딜리셔스 페스티벌’ 현장에 있었다. 이날부터 사흘간 서울 양재 aT센터에서 열린 행사는 올해 이마트24 사업 전략과 상품 트렌드, 매장 운영 노하우를 경영주와 공감하는 자리였다. 정 부회장은 처음 상품 전시회를 연 이마트24 임직원을 격려하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고객과 상품이 있는 현장에 해법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마트24는 전신인 ‘위드미’를 신세계그룹이 인수한 지 9년 만인 지난해 매출 2조원 돌파와 함께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정 부회장은 오후에는 스타벅스 ‘더북한산점’을 방문했다. 2020년 이후 올해까지 총 세 차례나 신년사에서 ‘고객에 대한 광적 집중’을 언급해온 그는 스타벅스에서도 고객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정답은 언제나 고객과 현장에 있다”며 “고객이 뭘 필요로 하는지 면밀히 살펴 사업방향을 잡아 달라”고 주문했다.

정 부회장은 ‘오프라인 유통 리딩 기업’을 넘어 ‘온라인 시장에서도 리딩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도 지녔다. 2015년부터 디지털 기업으로 전환을 준비한 그는 2019년 그룹 온라인 통합법인 SSG닷컴을 출범했다. 2021년에는 패션 전문 쇼핑몰 W컨셉과 국내 1위 오픈 마켓 플랫폼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했다. 정 부회장은 “미래 유통은 온라인 강자만 살아남는다”며 온라인 유통 1위라는 목표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 | “현실에 만족하면 미래가 없다”


▎염경엽 LG 트윈스 신임 감독은 “나처럼 현실에 만족했다간 미래가 없다”고 선수들에게 늘 강조한다. / 사진:LG 트윈스
염경엽 LG 트윈스 신임 감독은 1968년 3월 1일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광주 야구 명문인 서석초, 충장중,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고려대 법대 졸업 직후 태평양 돌핀스에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했다. 3남 1녀 중 막내였던 염 감독은 어려서부터 부모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법조계에서 일한 부친 덕에 가정형편도 넉넉한 편이었다. 부모는 다른 자식과 달리 막내만큼은 운동으로 성공하길 바랐다. 도무지 지는 걸 싫어하던 막둥이였다. 딱지·구슬치기 대장은 물론 타고난 ‘깡다구’와 운동신경으로 ‘골목짱’이던 아이였다. 염 감독은 “중요한 대목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야구 명문 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며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아도 됐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다.

프로팀에 입단한 뒤에도 승승장구했다. 1991년 태평양 돌핀스에서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그해 개막전에 곧바로 투입됐다. 당시 한국 프로야구 인기는 지금 이상이었다. 염 감독은 “총각 때 인천 숙소 앞에 가면 중·고등학생 팬이 진을 치고 앉아 있었다”며 “거기에 취해 훈련하는 대신 또 놀기 바빴다”고 했다. ‘막내바라기’이던 부친은 행여 아들이 고생할까봐 아파트까지 따로 얻어줬던 터였다. 탁월한 수비 덕에 4년간 주전 유격수로 뛰었다.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실력만 믿고 노력을 게을리한 탓에 후배에게 주전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돌핀스가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었고, 1998년 처음 우승을 차지했다. 염 감독이 백업 선수로 뛰던 때였다. 우승 기념 선수 가족 초청 행사에서 탈이 났다. VIP 테이블에 자리한 주전 선수 가족들과 달리 그의 아내와 외동딸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엄청난 상처였다. 자존심이 상해 그날 밤 잠을 못 잤다고 한다. 은퇴 이후 삶을 준비하게 된 계기였다. 캐나다 이민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불발됐다. 할 줄 아는 게 야구뿐이었다. 어떻게든 야구로 승부를 봐야 했다. 이후 야구를 다르게 봤다고 한다. 한국 프로야구 출범 이후 진행됐던 모든 경기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축적했다. 하루에 3시간씩 자면서 공부했다.

2000년 은퇴 뒤 2001년 현대 유니콘스 운영팀에서 일할 수 있었다. 운영팀장 대행을 맡았다. 지금처럼 프런트 업무가 세분화하지 못한 시절이었다. 운영팀장은 물론 육성팀장, 스카우트 팀장, 기획팀장 역할까지 했다. 그렇게 6년을 일했다. 성과를 인정받아 2007년 현대 유니콘스 1군 내야 수비 코치로 지도자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이후 넥센 히어로즈 1군 작전·주루 코치 등을 거쳐 2013년 히어로즈 감독에 정식 취임했다. 믿을 건 ‘방망이’뿐인 가난한 팀이었다. 투수력이 문제였다. 그럼에도 2014 시즌 기어이 준우승을 차지했다. 팬들이 제갈량처럼 빼어난 지략가라며 그를 ‘염갈량(염경엽+제갈량)’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염 감독은 “감독으로 성공한 모습을 20여 년 전 작고하신 아버지께 보여드리지 못해 한이 된다”고 했다. 철부지 막내의 뒤늦은 ‘사부곡(思父曲)’이다. 그는 “나처럼 현실에 만족했다간 미래가 없다”고 선수들에게 늘 강조한다. LG 트윈스 감독으로서 첫 시즌인 올해 목표는 물론 우승이다.

이성민 배우 | “삶의 길 위에서 만난 모든 분께 감사”


▎배우 이성민은 3월 개봉한 영화 ‘대외비’로 침체된 영화 산업은 물론 극장들이 다시 활기를 찾길 바랐다. / 사진:호두앤유엔터테인먼트
이성민 배우는 1968년 10월 15일 경북 봉화군에서 태어났다. 20세 때부터 연기 인생 한 길만 걸어왔다. 연극으로 시작해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늘 본업에 충실했고, 차근차근 이름을 알리고자 했다. 돌아보면 한우물만 팠던 게 참 다행이었다. 한국이 영화·드라마 등 장르 불문 콘텐트 강국으로 도약한 덕분에 본인도 스타덤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겸손한 소회를 밝혔다.

이 배우는 “여러 갈래 길 중 한 길을 선택한 것뿐이고, 운 좋게도 그 과정에서 만난 수많은 인연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신 만큼 삶의 길 위에서 만난 모든 분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역을 맡아 제대로 스타덤에 올랐다. 드라마로는 ‘미생’ 이후 또 한번 큰 사랑을 받았다. 미생 때는 많은 이가 그를 극 중 역할이던 ‘오과장’이나 ‘오차장’으로 불렀단다. 이제는 ‘회장님’이 그를 둘러싼 팬들의 애칭이다. 특히 중장년 시청자의 관심이 각별하단다. 30년 이상 연기에만 몰두해 결실을 맺은 이 배우의 비결이 궁금했다. 이른바 ‘연기 철학’을 알고 싶었다.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는 “무책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특별한 철학이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어질 뻔한 질문마저 꿰뚫은 듯 “왜 배우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 역시 아직 없다”고 강조했다. 배우는 누군가를 투영하거나 특정 캐릭터를 연기하는 직업인 만큼 그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이라는 답변이었다. 수십 년 한길만 걸어온 내공이 느껴졌다.

이 배우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영화 제작 산업을 비롯해 극장산업마저 위축된 데 대해 안타까워했다. 3월 개봉한 영화 ‘대외비’로 침체된 산업은 물론 극장들이 다시 활기를 찾길 바랐다. 추후 개봉할 영화 ‘핸섬 가이즈’에서 선보인 새로운 캐릭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만간 촬영을 시작하는 드라마 ‘운수 오진 날’도 무사히 제작이 마무리됐으면 했다. 드라마·영화 제작 등에 관련된 모든 이의 건강과 각 가정의 평화를 기원하기도 했다. 이 배우는 창간 55년을 맞은 월간중앙에 대한 덕담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월간중앙이 대한민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과 함께하는 최고의 월간지로 계속 사랑받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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