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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전광우 前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연금개혁 솔루션 

“캐나다 본받고 싶으면 시스템과 투자방식 다 뜯어고쳐라” 

김영준·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연기금 장기 수익률 높이려면 전문가 위주로 인적 개편하고 운용본부 서울에 둬야
보험료율 정상화하면 MZ세대가 수혜 볼 것… 尹 정부 개혁 방향 옳지만 속도가 관건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정치 논리를 따지지 않고 오직 수익률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연기금 시스템을 윤석열 정부에 주문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연기금)의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 윤석열 대통령의 이 발언은 2022년 연기금의 투자 수익률(-8.22%)이 역대 최저로 확인된 이후 나왔다. 손실액 79조6000억원은 연기금이 출범한 1999년 이후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 중에서도 연금개혁은 최고 난도의 과제로 꼽힌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노동개혁, 상대적으로 윤곽이 덜 드러난 교육 개혁에 비해 연금 개혁은 세대·진영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다.

저출산·고령화 심화 탓에 이대로 가면 2055년 국민연금은 고갈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는 여야 합의로 민간자문위원회를 가동시켰지만, 진통만 거듭할 뿐 연금 개혁 초안조차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2023년 10월 연금 개혁에 관한 정부 안을 내놔야 하는 보건복지부도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속절없이 연금 개혁의 골든타임이 흘러가는 시국에 전광우(74)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을 만났다. 세계은행 금융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전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금융위원장(2008년)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2009~2013년)을 역임했다. 3월 9일 삼성동 무역센터에 자리한 세계경제연구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 이사장은 ‘시스템 개혁과 수익률 개선’이라는 투 트랙의 개혁을 국민연금의 활로로 제시했다. 그는 ‘서울대를 가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와 같은 원론적인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배격했다. 그 대신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며 윤 정부의 실행을 주문했다.

‘연기금에 정치를 묻히지 말라’


▎전북 전주시에 위치한 국민연금공단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수익률 측면에서 연기금의 진짜 문제는 작년 한 해의 손실 폭이 아니라 장기적 수익률이라고 생각한다. 5% 초반대의 수익률은 캐나다 등 다른 나라 연기금과 비교해 보면 결코 좋은 성적이라 봐줄 수 없다.

“금융투자의 경쟁력은 사람과 정보에서 나온다. 거버넌스(지배구조) 측면에서 비전문가들이 기금운용에 들어와 있는 현실은 투자의 걸림돌이다. 또한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라 할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 본부는 토론토에 있다. 일본 공적연기금(CIO) 본부는 도쿄에 있다. 인력 확보, 해외 플레이어들과의 네트워크에 도움이 되니까 대도시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국민연금공단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다음에 많은 인력이 이탈했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공공기관이 지방에 내려가는 것은 이해할 부분은 있지만, 국민연금은 2200만 명 넘는 가입자의 노후자금이다.”

결국 연기금이 투자를 ‘보수적’으로 운영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금 내부의 컴플라인 감사, 보건복지부의 감사, 감사원의 감사, 국회 국정감사까지 중복적 감사가 너무 많다. 간부급쯤 되면 1년에 절반은 감사 받으러 다니는 셈이다. 어느 세월에 투자에 집중할 수 있겠나? 이러면 ‘몸 안 다치는’ 투자를 하게 된다. 전문가적 양식에 따른 투자는 보상의 영역에서 책임지게 해야지 형사처벌까지 가게 해선 안 된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 전문위원으로 검사 출신인 한석훈 변호사가 임명됐다. 이 위원회는 연기금 운영과 관련된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해당한다. 윤 정부 역시 연기금의 거버넌스에 개입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한 변호사가) 검사로 20년을 일했고, 이 분야에서 상당한 경험(국민연금법 시행령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상근 전문위원의 자격에 관해 ‘금융·경제·자산운용·법률 또는 연금제도 분야의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하고 있거나 종사했던 사람’이라고 규정)을 축적했다고 이해할 순 있다. 하지만 검찰 출신이 금융투자 부문까지 맡는 것은 무리라는 국민적 판단도 있는 듯하다. 연기금 운용에 직간접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에 혹시라도 정치가 개입한다면 경계해야 할 일이다.”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도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맥락에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가령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적용이 국회의 이슈가 아니지 않은가? 스튜어드십 코드 이슈를 국회나 정부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 (정치가 다른 이유로 투자의 가치를 훼손하면) 연기금 운용 원칙에 배치될 수 있다.”

전주에 위치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서울로 돌아오는 것은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 개정에 동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데.

“‘내 돈을 가장 잘 운용하기 위해 (연기금 운용본부가) 어디에 있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국민적 여론으로 (민주당 방침을) 바꿀 수밖에 없다. 물론 (전주) 지역 사회의 반발이 있을 것이다. 기금본부를 서울로 다시 오게 하려면, 지방 발전에 도움이 될 ‘스와프’를 해줘야 할 것이다.”

최근 코스피의 하락에는 연기금의 비중 축소가 한몫한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이 관점을 뒤집어 보면, 지지율을 위해 정치가 연기금에 한국 주식 비율을 높이라고 강요할 개연성도 존재할 수 있다.

“언젠간 자산을 팔아서 국민에게 연금을 내드려야 할 때가 온다. 이를 미리 생각한다면, 적정 수준에서 한국 주식 비중을 줄이는 게 긴 안목에서 맞는다. 또 평균 수익률에서 미국 주식 등 해외 주식이 아웃퍼폼(특정 주식의 상승률이 시장 평균보다 더 클 것이라고 예측하기 때문에 해당 주식을 매입하라는 의견) 케이스가 많았다. 전문가가 최적 포트폴리오를 판단해야지, (정치가) 압박하면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

“연금 개혁하면 MZ세대가 수혜 본다”


▎2022년 12월 윤석열(앞줄 왼쪽) 대통령은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에 관한 주제로 청년 간담회를 가졌다. / 사진:대통령실
일시적 굴곡이 있지만, 주식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섭리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에서 연기금이 단기손실에 따른 여론 악화를 의식한 나머지, 채권 등 안전상품 비중을 높이는 비합리적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주식과 채권은 상호보완 관계다. 다만 지난해 같은 경우는 주식과 채권이 동시에 떨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왔다. 지난해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많이 깨진(-14.1%) 것은 주식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반면 CPPIB는 덜 떨어졌다. 주식과 채권 외 대체투자(부동산 투자, 인프라 투자 등)가 많았기 때문이다. CPPIB 포트폴리오의 거의 절반이 이쪽이다.”

연금 수익률을 1%만 올려도 기금 소진 시점을 5~8년까지 늦출 수 있다고 한다.

“CPPIB는 우리보다 기금 운용 사이즈(한국 약 950조원, 캐나다 약 700조원)가 작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금 운용 직원이 300명 정도인데, 캐나다는 2000명이 넘는다. 우리가 대략 1% 수익만 더 내도 10조원, 0.1%면 1조원, 0.01%라 해도 1000억원이다. 수익성을 개선하면 보험료를 안 올려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캐나다의 1997년 연금 개혁은 재정 건전성이 떨어져 있을 때, 보험료를 올리고 기금 운용 시스템을 바꿨다. 두 가지 개혁을 한꺼번에 한 것이야말로 CPPIB가 장기 평균 수익률 1등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배경이었다.”

현행 국민연금 시스템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보나?

“1998년 9%에서 계속 묶여 있다. 터무니없이 낮다. 현재 OECD 국가 평균이 18%다. 연금재정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을 정도로 내는 것보다 많이 받는 구조다. 게다가 평균수명이 2년마다 1년씩 늘고 있다. 받는 시기를 늦춘다든지, 소득대체율을 낮춘다든지, 보험료를 ‘정상화’하든지 현실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면 MZ세대 등 젊은 세대는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온라인상에서 이들은 연금보험료 납부에 대해 ‘국가 차원의 다단계 폰지 사기’라며 불신한다.

“소통과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보험료율을 높이면 실제 수혜자는 MZ세대가 된다. 연금개혁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지금 은퇴하는 세대들까진 받지만, 젊은 세대는 받지 못한다. (지금 연금 개혁을 방치하면) 미래 소득의 30% 이상을 연금으로 내야 할 수 있다. (연금 개혁은) MZ세대만이 아니라 중년세대, 60대까지도 더 내라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 세대를 위해 보태주는 것이다.”

하지만 MZ세대는 자신들의 가처분소득을 저당 잡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상황에서 보듯 개혁 중에서 연금 개혁이 가장 어렵다. 다음 선거를 생각하면 표 떨어질 일이다. 아무도 환영하지 않지만, 안 하면 상대적 피해는 젊은 세대에게 오기 때문에 정치적 소명의식이 필요하다. MZ세대 중에서 ‘내 노후는 내가 알아서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처분 소득을 일종의 강제저축 식으로 하지 않는 한, (미래를 대비한) 자발적 저축은 쉽지 않다. (개인에게 맡기는 것보다 연금제도가) 국가 시스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에 전 세계 주요국이 운영하는 것이다.”

보험료율 ‘정상화’부터 시작하자


▎전광우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구조 개혁이 아니라 모수 개혁에 집중해 국민연금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MZ세대와 정반대의 관점에서 기성세대는 현행 ‘소득대체율 40%’를 너무 적다고 여긴다. 이 정도 수준으론 노령빈곤화를 피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호소한다. 그래서 보험료율을 올리되 소득대체율도 50%로 올리자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다.

“국회 연금특위 민간위원회에서 보험료율을 15%로 올리는 컨센서스를 이뤘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보험료율 15%는 정부 안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보험료는 올리면서 받는 것(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으면 수용성이 적을 것이다. 그렇다고 ‘더 내고 더 받자’는 방안은 재정 건전성을 떨어뜨린다.”

국회에서는 연금 개혁 초안조차 만들어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모수 개혁을 위해 협의를 개시했는데 이제 구조 개혁을 하자는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형국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허송세월한 책임이 크다. 야당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집권했던 5년 동안 안 한 것을 새 정부가 들어서며 개혁한다고 하니 정치적 부담을 느낄 법하다. 국회에서 합의가 안 되니까 정부로 넘기려는 속셈이 뻔하다. 책임을 정부로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여당인 국민의힘이나 보건복지부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올해 10월에 결론을 내놓는 부담을 질 수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을 옹호하자는 뜻은 아니지만, 연금 개혁 타이밍이 썩 좋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과거 두 차례에 걸친 제도 개혁은 김대중·노무현 진보정부 때였다. (여대야소였던) 문 정부 때 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나. 현 정부는 여소야대 환경에서 글로벌 복합위기를 만나 (연금 개혁 추진이) 굉장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답답한 노릇이다.”

연금 개혁은 출산율 문제와 직결된다.

“국민연금공단 입장에서는 최악의 3종 세트를 만났다. 출산율, 경제성장률, 연기금 수익률 저하가 그것이다. 연금 고갈 시기를 2055년으로 잡아놨던데, 이 세 가지가 계속 악화하면 시한은 더 당겨질 것이다. 지금 연금 개혁을 하지 않으면 2055년 기금 고갈도 후하게 평가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장기추계에 출산율을 1로 잡아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출산율은 0.78이다. 지금 시점에 윤 정부가 유의미한 개혁의 단초를 만들어놔야 하는데, 모수 개혁·기금운용거버넌스·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의 서울 복귀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다.”

캐나다 연기금 벤치마킹하려면 제대로

일각에선 국민연금 외에도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건강보험, 기초연금 등을 다 다루는 패키지 개혁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에만 연 5조원 이상의 국가부채가 이미 발생하고 있다.

“큰 틀의 구조 개혁이 (명분상) 일리는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개혁도 안 되는데, 저마다 구조가 다르고 내는 사람도 다른 공무원·군인 연금을 같은 공적연금이라는 이유로 한꺼번에 섞기란 굉장히 어렵다. 당장 20년 이상 미뤄놓은 보험료율 정상화조차 안 하겠다면서 국회에서 구조 개혁의 틀을 논하자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소리다.”

연기금의 미래 부채는 250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의도적으로 부각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이를 공식적으로 통계에 잡으면 국가 신용도 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경우에 따라 ‘풋 노트(footnote, 각주나 주석)’에 적긴 해도 국가부채에는 넣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기록했다간 국민연금이 신용을 잃어버리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만 장수시대에 부채가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 있다는 인식은 하고 있어야 할 터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 개혁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기금운용위원회라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전문가로 바꿔야 한다. 정부나 노조 인사도 참여하는 식(현재 20명의 위원 중 2명만 전문가로 분류)인데, 이래선 제대로 그림을 그리기 어렵다. 최고 의사결정기구가 이렇게 구성돼 있으면 산하기관도 잘 안 된다. 캐나다의 연금 개혁도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위원회 하부기관 사람 몇 명 바꾸고, 전주에 놔둔 채 운용해선 큰 변화가 생길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 특히 젊은 세대에게 실상을 알리고 국가의 미래와 국익을 위해 왜 연금 개혁이 필요한지 공감대를 확산해 나가야 한다. 법 개정이라는 변화는 국민의 컨센서스가 결집해서 이뤄질 수 있다.”

- 글 김영준·이승훈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사진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304호 (2023.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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