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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이슈] 유일한표 ‘노블레스 오블리주’ 잇는 유한양행 

“1년 약값 1억원, 폐암 신약을 무상 제공”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조욱제 사장 “동정적 사회 환원 차원에서 결정”
“‘렉라자’ 보험 급여 등재 전까지 무제한 지원”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이 7월 10일 열린 ‘R&D 및 사회공헌 기자간담회’에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 무상 제공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유한양행
"유한양행은 ‘가장 좋은 상품(약)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게 도움을 주자’는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렉라자’는 회사의 노력과 투자뿐만 아니라 많은 분의 신뢰로 빚어진 산물입니다. 이에 유한양행은 렉라자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 부분을 회사의 기본 정신에 맞게 폐암 치료 사업에 지원하는 등 사회 환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우선 폐암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렉라자가 1차 치료 보험 급여 등재가 될 때까지 EAP, 즉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을 통해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입니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이 7월 1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R&D 및 사회공헌 기자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유한양행이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고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고(故) 유일한 창업자의 철학을 잇기 위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를 환자들에게 무상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동정적 사용 프로그램(Early Access Program·EAP)은 전문의약품 시판 허가 이후 보험 급여 등재 전까지 제약사가 환자들에게 한시적으로 약물을 공급하는 제도다. 유한양행의 이번 EAP는 의사의 처방이 가능해질 때까지 전문의약품을 무제한 무상 지원하는 국내 첫 사례다. 비급여 폐암 치료제의 1년 약값은 7000만~1억원 수준이다. 렉라자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제로 건강보험 급여 등재가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된다.

조 사장은 “렉라자의 적응증을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로 확대하는 과정에서 약물을 하루라도 빨리 처방받기 위해 국회나 보건복지부, 심지어 대통령실에 청원하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그분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빨리 덜어드리고자 EAP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렉라자 EAP는 의료기관별 생명윤리위원회(IRB)의 검토와 승인을 획득하고 담당 주치의의 엄밀한 평가와 대상 환자의 자발적 동의를 거쳐 운영한다. 임효영 유한양행 임상의학부문장(부사장)은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렉라자를 1차 치료제로 처방하길 원하는 전국 2·3차 의료기관이면 즉시 EAP에 참여할 수 있다”며 “의료기관 또는 환자 수에 전혀 제한이 없다”고 강조했다.

적응증 확대로 ‘글로벌 블록버스터’ 도약 채비


▎식약처는 2021년 1월 렉라자를 ‘국산 31호 신약’으로 허가했다. 식약처는 지난 6월 렉라자의 적응증 범위를 기존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에서 1차 치료제로 확대했다. / 사진:유한양행
렉라자는 3세대 돌연변이형 EGFR 억제 폐암 치료제로 꼽힌다. 많은 폐암 환자는 비소세포폐암을 앓는다. 이 중 30~40%는 EGFR 돌연변이 진단을 받는다. 문제는 1·2세대 표적 치료제를 투약한 환자 가운데 상당수가 약물에 내성이 생겨 점차 치료 효과가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렉라자는 이런 내성이 생긴 환자들에게 처방할 수 있는 의약품이다. 렉라자가 3세대 표적항암제로 불리는 이유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1년 1월 18일 렉라자를 ‘국산 31호 신약’으로 허가했다. 특정 유전자(EGFR T790M)에 변이가 발생한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로 신약 허가를 획득한 렉라자는 같은 해 7월 1일 건강보험 급여권에 진입하며 국내에 시판됐다.

유한양행은 이후 렉라자의 적응증 범위를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1차 치료로 확대하기 위해 글로벌 임상 3상 시험을 진행했다. 유한양행은 임상 3상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6월 30일 식약처에서 렉라자에 대한 국내 1차 치료제 적응증 확대 허가를 받았다. 기존 치료제를 투약해 내성이 생긴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2차 치료제는 물론 치료 경험이 없는 환자에게도 렉라자를 1차 투약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국산 항암 신약 중 1차 치료제로 허가를 받은 것은 렉라자가 처음이다.

렉라자는 ‘블록버스터 국산 항암 신약’이라는 기록도 썼다. 그간 국산 항암 신약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상업적 성과를 거둔 약물은 전무하다. 렉라자는 다르다. 유한양행에 따르면 렉라자는 기존 1·2세대 표적항암제 등 1차 치료 이후 사용할 수 있는 2차 치료제만으로도 지난해 이미 3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단일 품목의 연간 매출이 100억원을 넘으면 블록버스터 의약품으로 분류한다.

국내 EGFR 돌연변이 비소세포폐암 2차 치료제 시장은 1000억원대, 1차 치료제 시장은 3000억~60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증권가는 렉라자의 적응증이 1차 치료로 확대된 만큼 국내에서만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초대형 블록버스터’로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렉라자의 적응증이 확대되면서 해외 시장 진출도 한층 탄력을 받게 될 전망이다. 유한양행은 2018년 11월 미국 얀센바이오테크에 총액 1조4000억원 규모로 렉라자를 기술 수출했다.

얀센은 지난해 독일에서 열린 존슨앤드존슨 전략 결정 콘퍼런스 콜에서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아미반타맙(성분명 리브레반트)과 렉라자 병용요법을 오는 2025년 안에 연매출 50억 달러(약 7조원, 달러 환율 1400원 기준) 이상 달성할 5대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 중 하나로 선정한 바 있다.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는 연매출 1조원 이상의 제품을 블록버스터로 칭한다.

권해순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렉라자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시판 허가 승인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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