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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G 랜더스 연구 | 쓱 스토리(2)]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SSG 랜더스의 Wow 마케팅 

정용진의 도발과 신동빈의 응수, 프로야구 판이 바뀐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가성비 전략으로 랜더스필드 관중 1위로 탈바꿈, 악재 딛고 KBO 흥행 르네상스 주도
유통 라이벌 롯데도 ‘우승 프로젝트’ 가동… 놀라움 제공하는 ‘리테일먼트 시대’ 열려


▎SSG 랜더스의 홈구장인 랜더스필드는 2023시즌 개막 이후 2경기 연속 매진 기록을 세웠다. 랜더스는 2022시즌 KBO리그 관중 1위와 우승을 동시 달성했다. / 사진:SSG 랜더스
한국프로스포츠협회는 2022년 8월부터 11월까지 KBO리그 팬 785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성향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추출된 데이터에 의하면, SSG 랜더스의 홈구장인 인천 랜더스필드를 방문한 팬(1인 기준)의 전체 관람 비용(MD상품 구매비 제외)은 4만5542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KBO 평균(5만2400원)은 물론, 전체 10구단 중 가장 낮은 금액에 해당한다. 반면 랜더스필드 관람 만족도는 80.3%로 전체 1위였다. 유일하게 80%를 넘겼고, 전체 평균인 67.0%를 웃돌았다. 이밖에 기대대비 만족도에서도 랜더스는 1위(81.6%)를 기록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2019년 1월 신년사에서 “앞으로 유통시장은 초저가와 프리미엄의 두 형태만 남게 될 것”이라며 “초저가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중간’은 결국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맥락에서 SSG 랜더스는 CEO 정용진의 ‘지향’을 상징하는 도구(tool)처럼 기능한다. 후발주자인 랜더스는 ‘가성비’를 앞세워 팬 베이스를 확장하겠다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이마트의 초저가 전략을 야구장(2022년 랜더스필드 객단가는 10개 구장 중 최저가였다)에도 탑재했다. 싸면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를 담보했다.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조사에 의하면, 랜더스필드 방문 고객의 85.3%가 식음료의 다양성에, 84.4%가 화장실의 청결과 편의성에, 83.4%가 식음료의 맛과 위생에 만족을 표시했다.

처음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팬은 없다

그 결과 엘(LG)·롯(롯데)·기(KIA) 같은 전통의 인기구단이 아님에도, 서울 바깥이라는 입지의 한계 속에서도, 랜더스는 2022년 홈관중 1위(98만1546명)를 달성했다. 이를 두고 이종훈 랜더스 사업담당은 “한번 온 고객의 N차 방문에 주력했다”고 말했다. MZ세대가 중시하는 ‘가심비’에서도 랜더스는 유의미한 숫자를 찍었다. 랜더스 팬의 로열티(충성도)는 85.7%로 롯데 자이언츠에 0.01% 밀린 2위였다. 이탈위험 고객 비율(6.1%)은 10개 구단 중 가장 낮았다. 팬과 팀이 동일시되는 성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특히 20대 남성과 20~30대 여성층 유입 비율이 높았다.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려는 신세계의 ‘락인(lock-in) 전략’이 랜더스필드라는 현실에서 작동한 것이다.

2023년 4월 1일 KBO리그 개막전(KIA전)에서 랜더스필드는 만원관중(2만3000석)을 달성했다. 그 다음날에도 야구장은 가득 찼다. 신세계는 “개막 2연전 전석 매진은 인천 연고 프로야구단으로는 사상 처음”이라고 그룹 차원에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민경삼 랜더스 대표는 “올 시즌 우리의 최우선 목표는 (2년 연속 우승이 아니라) 100만 관중”이라고 단언했다. 이 팀에서 승리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다. 팬(잠재 고객)을 더 끌어 모으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

3년 연속 팀 페이롤 1위에 담긴 함의


SSG 랜더스 이전에 스포츠를 통해 경영자의 철학이 투영된 사례로, 정용진 부회장의 외삼촌인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지르기 경영’의 달인이었다. “목숨을 걸고” 베팅한 반도체 투자로 삼성전자를 글로벌 초우량 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스포츠 분야는 ‘초격차’와 인재경영에 편집광처럼 집착한 이 회장의 기질과 결이 맞았다. 야구의 삼성 라이온즈, 배구의 삼성화재 블루팡스, 축구의 수원삼성 블루윙즈, 농구의 서울삼성 썬더스 등은 돈에 거의 구애받지 않고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했다. 특히 삼성 라이온즈와 삼성화재 블루팡스는 2010년대 ‘왕조’를 이룩하며 이 회장의 ‘일등주의’를 구현했다. 삼성의 독주에 대항하기 위해 경쟁 그룹들도 머니게임에 참전하며 한국 프로스포츠의 규모는 급격히 팽창할 수 있었다. 스포츠 버전의 버블시대였다.

하지만 2014년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후 상황은 서서히 변했다. 이재용 회장 체제에서 스포츠를 대하는 삼성의 노선은 변경됐다. ‘실리주의’에 입각한 이재용 회장은 외형보다 효율성에 무게를 뒀다. 삼성이 궤도를 수정하자 스포츠 판 전체가 영향받았다. 여전히 특급 선수들의 몸값은 천장을 뚫었지만, 나머지는 외면 받는 양극화 장세가 심화했다.

KBO리그는 줄곧 최고 인기 스포츠였지만, 비관적 가이던스(실적 전망치)에 시달렸다. 2013년 ·2017년·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3연속 예선 탈락과 2021년 도쿄올림픽 노메달에서 드러났듯 국제 경쟁력은 퇴보를 거듭했다. 야구의 새로운 물결인 타자의 뜬공혁명, 투수의 구속 증가 트렌드에 역행하며 갈라파고스화(化) 됐다. 여기다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덮치며 오프라인 마케팅은 초토화됐다.

2022년 3월 취임한 허구연 KBO 총재는 반전을 모색했지만, 나름 공들여 준비한 WBC에서 대표팀은 호주·일본에 연패하며 ‘광탈’했다. KBO 차원에서 ‘야구를 못해서 죄송하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내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게다가 선수의 성범죄·도박 혐의, 단장의 배임 의혹, WBC 기간 중 대표선수의 음주 이슈까지 터졌다.

가뜩이나 긴 시간이 소비되는 야구는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짙었고, 유튜브·숏츠 등 뉴미디어와의 융합에 서툴렀다. “류현진(메이저리그 토론토 블루제이스)을 잇는 후계자도 안 보이니 미래가 암울하다”는 위기론이 야구인들 사이에서 배회했다. 한국야구의 ‘품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시점에 SSG 랜더스가 흑선(黑船)처럼 불쑥 출현했다. 내수기업인 신세계는 KBO리그의 퀄리티(경기력)가 아니라 상품성에 주목했다. “시장이 아니라 제품에 초점을 맞춘 혁신은 실패한다”는 경영학 구루 피터 드러커의 통찰을 따랐다.

코로나19가 위협해도, 국제대회에서 연전연패해도, 대한민국 최고 인기 스포츠라는 프로야구의 위상은 견고했다. 팬데믹 이후 멀티플렉스 극장은 OTT에 자리를 내주며 몰락했지만, 콘텐트로서의 야구는 건재했다. 욕하면서도 챙겨보는 일일 드라마처럼 생활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6월 4일 기준 KBO 관중은 280만 명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33% 증가했다. 스포츠케이블TV 시청률은 회복 추세에 있고, 뉴미디어 영역에서도 향후 개선될 여지가 존재한다.

2022년 11월 SSG 랜더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분위기를 타고, 이마트가 ‘쓱세일’ 이벤트를 성공시키자 인수 작업부터 관여한 그룹 인사는 이렇게 고백했다. “아무것도 보여준 것 없는 인수 초기에는 ‘왜 야구단을 샀느냐’는 물음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지금 우리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향한 답변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세계는 야구 경기라는 제품이 아니라 프로야구라는 시장에 투자를 결행했다. 필연적으로 진입한 순간부터 시장을 선도해야 했다. 2021년 랜더스의 연봉 상위 40인 총액은 112억5489만원(KBO 1위)이었다. 2022년 이 숫자는 248억7512만원으로 급상승했다. 팀 페이롤 2위인 삼성(127억6395만원)의 두 배, 최하위 한화(50억9546만원)의 5배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KBO리그는 2023시즌부터 샐러리캡을 도입한다. 공정 경쟁을 위해 선수단 연봉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KBO는 메이저리그의 사치세(luxury tax)를 차용해 샐러리캡 1회 초과 시 초과분의 50% 벌금, 2회 연속 초과 시 초과분의 100% 벌금과 이듬해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 3회 연속 초과 시 초과분의 150% 벌금과 이듬해 1라운드 지명권 9단계 하락 등의 제재를 예고했다. 하지만 창단 첫해 0.5경기 차로 가을야구를 놓친 뒤 직면한 스토브리그에서 랜더스는 규제에 위축되지 않았다. ‘현질’로 2022시즌 윈나우(win now)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했고, 현실로 관철했다.

“걔네는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


▎메이저리거 커리어를 접고 2022시즌에 맞춰 한국 복귀를 결정한 김광현(가운데)을 잡기 위해 SSG는 4년 151억원을 베팅했다. 이 밖에도 팀은 추신수(왼쪽)의 1년 27억 연봉, 최정(오른쪽)의 6년 총액 106억 몸값을 감당했다. / 사진:SSG 랜더스
통합우승 후 이마트는 “어떤 우승은 우승팀만 기뻐하지 않는다.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문구가 들어간 광고를 내보냈다. 2023년 신년사에서 정 부회장은 SSG 랜더스의 성공을 두 차례나 거론하며 “새로운 경험과 꿈을 고객들과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SSG 랜더스가 신세계그룹 내에서 영주권을 획득한 순간이었다.

2022년 12월 16일 롯데 자이언츠는 대표이사 교체를 단행했다. 이강훈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실 홍보팀장(전무)을 야구단 전면에 등판시킨 것이다. 롯데는 성적이 저조하면 곧잘 야구단 CEO를 갈아치웠다. 이 대표 임명도 ‘연례행사’처럼 받아들여져 언론의 별 주목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바깥에서 감지하지 못했을 뿐, 이는 롯데의 ‘거대한 전환’을 암시하는 시그널이었다.

이 대표는 극비리에 진행된 가칭 ‘롯데 자이언츠 우승 프로젝트’의 기획자다. 2022년 SSG 랜더스의 통합우승과 그 파급력을 목격한 롯데그룹 수뇌부는 철저한 보안 아래 반격 플랜을 설계했다. 그리고 신동빈 롯데 회장은 아예 이 전무를 야구단 대표로 내려 보내 실행까지 맡긴 것이다.

롯데는 2019년 팀 페이롤 1위였지만, 그해 꼴찌(48승93패3무)를 했다. 이후 메이저리그 시카고 커브스 스카우트 출신인 1982년생 성민규를 단장으로 파격 영입하며 소위 ‘프로세스’에 입각한 리빌딩을 꾀했지만 7위(2020년)→8위(2021년)→8위(2022년)에 그쳤다.

SSG와 롯데의 악연


▎2021년 10월 27일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오른쪽)는 랜더스필드 클럽하우스를 찾아 통산 400홈런을 달성한 최정에게 60돈 순금 메달을 선물했다. / 사진:SSG 랜더스
2023시즌을 준비하며 롯데는 성 단장과 재계약했지만, 이 대표를 투입하며 노선에 변경을 가했다. 팀 페이롤을 감축하며 장기적 육성을 중시한 성 단장의 과거 행보와 달리, 스토브리그에서 롯데는 2022년 11월 포수 유강남(4년 총액 80억원)과 내야수 노진혁(4년 총액 50억원), 2023년 1월 투수 한현희(3+1년 총액 40억원)까지 무려 3명의 외부 FA를 영입했다. 이에 앞서 2022년 10월 투수 박세웅과 5년 총액 90억짜리 잔류계약도 성사시켰다. 이를 위한 포석으로 롯데지주를 통해 야구단에 190억원 유상증자를 실행했다. ‘윈나우(win now)’ 모드로 전환해 SSG 랜더스를 저지하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SSG와 롯데의 ‘악연’은 랜더스 창단식이 열렸던 2021년 3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용진 구단주는 창단식을 마친 날 밤, SNS ‘클럽하우스’에 깜짝 등장했다. 그는 “본업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롯데를 보면서 ‘야구단을 꼭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게임에선 우리가 질 수 있겠지만, 마케팅에서만큼은 반드시 롯데를 이길 자신이 있다. 걔네(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며 롯데를 꼭 집어 겨냥했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인 4월 28일에는 ‘동빈이형가만 안도(안 둬)…’라는 대화방까지 개설했다. 4월 27일 자이언츠 구단주인 신 회장이 6년 만에 잠실구장에 뜨자 정 구단주가 바로 반응한 것이다. 그는 “내가 도발하자 롯데가 불쾌한 것 같은데 그렇게 불쾌할 때 더 좋은 정책이 나온다. 롯데를 계속 불쾌하게 만들어서 더 좋은 야구를 하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2021년 4월 4일 랜더스의 역사적 첫 개막경기 상대가 롯데였다.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부의 롯데온은 ‘쓰윽 이기고 ON’ 광고 문구를 공개하며 SSG를 자극했다. 롯데는 리그 최강의 선발투수로 꼽혔던 ‘닥터K’ 스트레일리를 투입했지만, SSG가 5-3으로 승리했다. 이날 경기를 직관한 정 구단주는 홈런을 터뜨린 최주환과 최정에게 ‘용진이형 상(이마트 한우 세트)’을 보내주며 치하했다.

2021시즌 랜더스는 6위(66승64패14무)였지만, 유독 롯데 상대로 초강세(10승5패1무)를 보였다. 꼴찌 팀 한화를 상대할 때보다도 승률(10승6패)이 높았다. 정 구단주는 랜더스 프런트 수뇌부에게 “(롯데는) 말 안 해도 아시죠?”라는 뼈있는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랜더스는 2022시즌에도 롯데 상대로 10승5패1무를 기록했다. 2023시즌 5월 19~21일 맞대결에서 랜더스가 2승1패 우세를 점하자 정 구단주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롯데는 롯데다’라는 중의적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랜더스가 탄생한 뒤, 롯데와의 협업 마케팅은 사실상 올 스톱 상태다. 과거 SK 시절 진행했던 ‘항구시리즈’ 이벤트도 중단됐다. 랜더스가 스타벅스를 야구단 마케팅 전면에 내세우자 롯데는 (이전까지 거의 부각한 적 없었던) 앤젤리너스 커피를 선수들 손에 들려줬다. 롯데의 대대적 전력 보강에 대해 민경삼 랜더스 대표는 “그래야 우리가 100만 관중을 갈 수 있다”며 오히려 반기고 있다. 전력평준화가 이뤄질수록 흥행에 호재라는 발상이다.

창단 직후 랜더스 마케팅팀은 내부 직원 열람용으로 만든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시돼 있다. “SSG 랜더스의 존재 이유는 사회 환원이 아니라 가치 창출에 있다.” 이는 2021년 2월 27일 정용진 구단주의 클럽하우스 발언과 맥락이 닿는다. 당시 그는 “삼성은 우승을 통해 얻어낼 게 없다. 그렇지만 나(신세계)는 어쨌든 있다. (…)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 야구를 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꽤 있다. 야구를 하기 싫어하는 전통적인 기업들과 좋은 이야기를 통해서 갈아탔으면 좋겠다”는 꽤 민감한 발언을 꺼냈다.

롯데가 잘할수록 야구판이 커진다


▎2022년 10월 8일 신동빈 롯데자이언츠 구단주(오른쪽)는 사직구장에서 거행된 이대호의 은퇴식에 참석했다.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가 야구단 마케팅 최전선에 나설수록 신 구단주의 야구장 방문 빈도도 올라가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실제 KBO리그보다 자생력이 강한 일본프로야구(NPB)는 소프트뱅크를 제외하면 중견기업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요미우리·주니치·요코하마는 미디어, 야쿠르트·니혼햄·지바롯데는 식품, 한신·세이부는 철도·유통, 오릭스는 금융·레저, 라쿠텐은 e커머스 그리고 히로시마는 마쓰다자동차를 대주주로 둔 시민구단이다.

KBO도 NPB나 대만프로야구(CPBL)처럼, 재계 서열이 아니라 야구 비즈니스로 더 큰 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기업이 참여할 때, 야구판 전체에 활력이 돌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랜더스가 ‘야구단의 쓸모’를 입증할수록 보수적인 야구계에서도 변화의 꿈틀거림이 포착되고 있다. 신세계처럼 유통업 기반 모회사를 두고 있는 롯데 자이언츠가 가장 먼저 반응한 셈이다.

2023년 5월 6일 롯데 자이언츠에 뜻밖의 기별이 도착했다. “선수단 여러분, 고맙습니다. 지금처럼 ‘하나의 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으로 후회 없이 던지고, 치고 또 달려주십시오. 끝까지 응원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발신인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편지와 함께 선수, 코치는 물론 트레이너와 통역, 훈련보조원까지 챙겼다. 총 3800만원에 달하는 헤어스타일링 기기와 헤드셋 선물을 보냈다. 당시 롯데가 15년만의 9연승을 달리며 2위로 치고 나가는 시점이었다.

2023년 6월 11일 시점까지 롯데의 부산 사직구장 관중 숫자는 38만4552명에 달한다. SSG 랜더스(39만4207명)와 경합 중이다. 초반 레이스에서 롯데가 SSG, LG와 3강 체제를 이루자 팬들이 반색한 것이다. 롯데의 티켓 파워는 부산을 넘어 전국구로 퍼지고 있다. 5월 20~21일 인천 랜더스필드, 5월 27~28일 서울 고척돔, 6월 3~4일 사직 KIA전, 6월 10일 대구 삼성전까지 주말 7경기에서 연속 완판을 기록했다. 7월 15일 사직구장에서 개최되는 올스타전 팬 투표에서도 롯데 선수들은 12개 포지션 중 10개 포지션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정용진 옆 ‘그녀’


▎가상인간 와이티의 시구는 신세계그룹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SNS 그리고 SSG 랜더스의 삼위일체에 의해 화제성이 증폭됐다. / 사진:연합뉴스
민경삼 대표는 “우리는 B2B가 아니라 B2C 마케팅을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야구단 운영의 중심에 공급자(감독이나 선수의 경기력)가 아니라 고객(팬)을 두는 발상이다. 이 지점에서 SSG 랜더스는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달성했지만, 다수의 안티(Anti) 팬을 양산했던 김성근 감독 시절의 SK 와이번스와 차별화된다.

과거 SK 와이번스와 현재 SSG 랜더스의 차이점에 대해 김재웅 랜더스 마케팅팀장은 이렇게 답했다. “랜더스 이전 프로야구단의 존재 이유는 이미지 제고와 사회 공헌이었다. 똑같은 지원을 해줘도 신세계는 ‘적자가 나면 모기업에서 메워줄 테니 고상하게 처신하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여기선 ‘어떻게 야구단이 모기업 매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늘 고민하라’는 묵시적 분위기를 체감한다.”

2022년 8월 10일, 랜더스필드를 방문한 팬들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시구를 목격했다. 시구자는 마운드에 있지 않았다. 초대형 전광판 ‘빅보드’에 가상인간 ‘와이티’가 나타났다. 둘로 분할된 화면 한쪽에서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은 와이티가 투구했다. 다른 한 편에서 포수가 볼을 잡는 모션이 구현됐다.

신세계그룹이 와이티를 기획한 시점은 2022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출시 당시 신세계는 와이티의 ‘본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와이티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숫자가 2만 명에 달했고 삼성전자·서울시 등에서 SNS 광고 모델로 발탁됐지만, 극소수를 제외하면 ‘신세계가 와이티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신세계는 와이티의 정체를 ‘커밍아웃’하는 무대로 8월의 야구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일회성 시구만으론 임팩트가 약하다고 봤다. 그들은 ‘스토리텔링’을 입혔다.

시구 이틀 전인 8월 8일, 다수의 언론이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의 인스타그램을 출처 삼아 기사를 양산했다. 사진 속 정 구단주는 미모의 여성으로부터 스니커즈를 받았다. 운동화에는 ‘NOJAM KILLER(노잼 킬러)’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정용진 옆 그녀’라는 자극적 제목의 기사들로 온라인이 도배됐다. 그렇게 빛의 속도로 와이티의 존재가 세상에 각인됐다. ‘와이티 프로젝트’를 담당한 신세계 실무자는 “8일 정 부회장 SNS를 통해 와이티를 띄웠고, 9일 그룹 차원에서 ‘가상인간 최초의 시구’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리고 10일 ‘가상인간이 어떻게 시구를 할 것인가’라는 궁금증을 풀어줬다. 와이티를 랜더스와 연결시켜서 세상의 관심을 3일 동안 끌어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와이티의 사례에서 드러난 것처럼, SSG 랜더스는 “스포츠(콘텐트)와 리테일의 결합”의 실험장이다. 전신인 SK 와이번스가 스포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를 지향했다면, SSG 랜더스는 리테일먼트(리테일+엔터테인먼트)를 추구한다.

리테일먼트를 추구하다

랜더스의 관점은 경영전략의 대가인 토머스 데이븐 포트 미국 뱁슨대 석좌교수가 설파한 ‘관심의 경제(attention economy)’와 맥이 닿는다. “정보과잉의 시대일수록 인간의 관심은 희소해지고, 모든 비즈니스는 관심을 붙잡기 위한 경쟁에 의해 작동된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최선의 미덕은 “가장 부족한 자원인 사람(잠재적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능력”이다.

랜더스는 태생부터 ‘이슈 메이커’였다. 누구도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KBO리그에 진입했고, 상상 이상의 인수액(1352억8000만원)을 질렀다. 그들의 ‘Wow 마케팅’은 연속성을 가질 때 의미가 있었다.

-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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