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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서울 메가시티’ 핵폭탄… 김동연 경기지사는 속으로 웃는다? 

지방분권 이슈 들고 총선 정국서 체급 높인다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공약 들고 전국 순회하며 단체장들 지지 얻어내
국토 균형발전론으로 논쟁 정면 돌파… 경기도 주민들 여론도 호의적


▎김동연 경기지사(왼쪽)와 강기정 광주시장이 11월 14일 오전 광주 양동시장 ‘하나분식’ 국밥집에서 조찬 회동을 하고 있다. 하나분식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 후보 신분으로 방문해 ‘노무현 국밥집’으로 불린다. / 사진:연합뉴스
인구 1360만 명. 우리나라 최대 광역단체인 경기도가 사분오열에 휩싸였다. 지역의 작은 이슈로 묻힐 뻔했던 김포시 서울 편입을 국민의힘 지도부가 총선용 이슈로 띄우면서다. 관심이 집중되자 서울과 맞닿은 경기 지역 곳곳에서 너도나도 ‘서울시로 가즈아’를 외치고 있다.

경기북부특별자치도(경기특자도) 설립을 강하게 추진해왔던 김동연 경기지사는 이런 상황이 착잡하다. 경기특자도는 올해 1월 지원조례를 제정한 이래 꽤 속도감 있게 절차가 진행됐다. 11월 10일에는 경기도의회가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주민투표 실시 및 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안’을 여야 합의로 채택했다.

남은 절차인 주민투표도 지난 9월 고기동 행정안전부 차관을 만나 정식으로 요청했다. 행안부가 주민투표에 부치기로 결정만 하면 늦어도 내년 2월 초까지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국회에는 경기특자도 설치 관련 법안 3개가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내년 총선 일정을 고려하면 늦어도 내년 5월 30일 전에는 통과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20대 국회처럼 이번에도 3개 법안이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일정이 빠듯한데 난데없이 튀어나온 김포 서울 편입과 메가시티 서울 논쟁이 김 지사로선 달가울 리 없다. 경기도 관계자는 “김포 서울 편입 논쟁이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경기특자도 설치 문제가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게 못내 불안하다”고 말했다.

경기특자도는 김 지사의 핵심 공약이다. 과거에도 경기 분도론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87년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13대 대선 공약으로 ‘경기분도론’을 내놓은 이래 30년 동안 주요 선거 때마다 나왔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2022년 김 지사가 이를 현실에 맞게 경기특별자치도 설립으로 다듬으면서 현재 광역단체 개편안 중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다.

경기도민 여론도 호의적이다. 경기도가 지난해부터 실시한 도정정책 공론조사에 참여한 도민의 87%가 경기특자도 설치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북부 도민은 91%가 찬성했고, 남부 도민도 83%가 공감했다. 도민은 특자도 설치 필요성에 대해 ▷성장 기회와 잠재력이 높아서 ▷경기남·북부는 생활·경제권이 달라 행정 효율성과 자율성을 높일 수 있어서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할 수 있어서 등을 꼽았다.

경기북부특자도 설치 도민 80% 찬성


▎11월 7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장기본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서울시 편입 관련 주민간담회에서 김병수 김포시장이 편입 계획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경기북부 주민들이 특자도 설치를 바라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중복규제에 따른 개발 소외 때문이다. 경기북부는 접경지라는 이유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성장거점에서 매번 제외됐다. 또 수도권이란 이유로 경기북부가 받는 규제는 군사규제·개발제한·상수원보호·팔당대책·수변구역 등 6가지에 달한다. 수십 년에 걸친 중첩규제 때문에 수도권으로 보기 어려울 만큼 지역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경기북부시·군의 재정자립도는 27.3%로 경기남부의 43.3%에 한참 못 미친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2442만원으로 전국 최하위 수준이고, 경기남부의 4022만원과 상당한 격차다. 4년제 대학은 4개뿐이고, 광·제조업 유형자산 규모는 18조원으로 전국 10위에 그쳤다. 경기남부는 166조원으로 전국 1위다. 같은 경기도민인데도 북부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날이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하지만 북부를 특별자치도로 분리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그동안 적용됐던 중첩 규제가 완화돼 개발을 도모할 수 있게 된다. 경기북부 인구는 361만 명으로 전국에서 세 번째로 큰 광역단체가 된다. 또 남북 협력의 중핵지대로서 경제특구와 남북교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고 DMZ, 접경지역 등 규제로 잘 보전된 환경과 생태자원이 성장의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 주한미군 반환공여지와 미활용 군용지 등 가용 토지 자원도 훌륭한 성장의 자산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지역 주도형 균형발전 정책인 ‘기회발전특구’, ‘평화경제특구’ 정책 취지와 경기북부가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0월 27일 제5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의결해 확정한 기회발전특구 추진방안에 따르면, 기회발전특구로 지정되면 소득세와 법인세를 최대 5년간 100% 감면하고 공장 신·증설과 창업 등에서 세제 지원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지난 6월 17년 만에 국회를 통과한 평화경제특구법도 경기도의 낙후된 접경지역 발전의 마중물로 기대를 받고 있다. 평화경제특구법에 특별자치도의 행정 자율권이 더해지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경기도는 기대하고 있다.

주민투표 좌우할 행안부는 ‘미적미적’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11월 6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국민의힘이 김포 편입과 메가시티 서울에 당력을 쏟으면서 경기특자도 정상 추진이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위원장에 5선의 조경태 의원을 임명했다. 당초 김포의 서울 편입만 다루는 태스크포스(TF) 구성이 거론됐지만, 당 지도부가 메가서울로 범위를 넓히는 차원에서 특위로 확대했다. 김포 외에 구리, 성남, 하남, 고양, 광명 등 서울 편입을 요구하는 다른 인접 도시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리겠다는 선언이다.

가뜩이나 주민투표 요구에 소극적이던 행안부가 여당의 눈치를 살피느라 더 비협조로 나올 게 뻔해서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11월 8일 보수 성향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이 서울 영등포구 공군호텔에서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김동연 지사께서 주민투표를 실시하자는 건의를 해오셨는데 주민투표를 하려면 500억원 이상의 큰돈이 듭니다. 경기남북도를 가르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인정됐을 때 주민투표를 실시해야지 초반부터 투표를 하고 나중에 검토해봤더니 합리적이지 않다고 했을 때는 500~600억원을 날리게 되는 겁니다.”

당장 돌아가는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메가시티로 논쟁이 확대되는 게 김 지사에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그동안 체급에 비해 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이 부족한 게 약점으로 꼽혀 왔던 김 지사는 전국적 이슈의 한쪽을 자신이 주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최근 김 지사가 메가서울 반대 목소리를 내며 활동 반경을 전국으로 넓히는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11월 14일 김 지사는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을 찾아 강기정 광주시장과 조찬 회동을 가졌다. 김 지사는 “김포시 편입은 지방죽이기, 정치적으로는 내년 선거를 앞둔 정치 속임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과 국토 균형 발전, 지방 분권 자치 측면에서 다른 광역단체장들과 대화를 나누며 힘을 모으려고 한다”면서 도움을 구했다. 강 시장은 “김포 서울 편입으로 시작된 이 지방 메가시티와 균형발전 문제를 어떻게 잘해나갈 것 인가에 대해 김 도지사께 지혜를 구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두 사람이 만난 양동시장 내 하나분식은 고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직전인 2002년 12월에 후보 신분으로 찾아가 국밥을 먹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김 지사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을 주창했던 노 전 대통령의 뜻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을 순회하면서 국토 균형발전론으로 논쟁을 정면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민주당 정책통)이란 해석이다.

균형발전 전국 이슈 선점, 김동연에 오히려 기회?


▎10월 19일 인천시 남동구 인천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인천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유정복 인천시장이 위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11월 6일 “실현 가능성 없는 정치쇼를 멈춰야 한다”며 국민의힘의 ‘김포 서울 편입’ 추진을 비판했다. / 사진:연합뉴스
16일에는 오세훈 서울시장, 유정복 인천시장을 만났다. 유정복 시장은 앞서 김포 서울 편입에 대해 “실현 가능성 없는 정치쇼를 멈춰야 한다”며 “실현 불가능한 얘기로 김포시민에게 기대감을 줬다가 실망만 초래하고, 김포를 제외한 전 지역에는 서울 확장에 대한 강력한 비호감만 커질 뿐”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내놨다. 다만 이날 세 사람은 김포 서울 편입에 관해 합의에 이르진 못했다. 김 지사는 회동 직후 입장을 내고 “김포의 서울 편입 주장은 20년 이상 견지해 온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이라며 “이 이슈는 ‘총선과 함께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도 김 지사에게 유리한 편이다. 리얼미터가 경기도 의뢰를 받아 지난 11월 2~5일 만 18세 이상 경기도민 3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2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김포 등 근접 중소도시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10명 중 6명 이상(66.3%)이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찬성한다’는 29.5%, ‘잘 모르겠다’는 4.2%에 불과했다. 편입 대상인 김포에서조차 반대 여론이 61.9%로 찬성(36.3%)을 크게 앞질렀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는 “여론조사가 정확하다면 현재 김포시 편입 주장은 목소리 큰 소수에 의해 시민 의견이 과잉대표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원외 전국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의 한 기획통은 “이재명 대표를 변방의 단체장(성남시장)에서 전국적 정치인으로 떠오르게 한 ‘3대 무상복지 충돌’이 김 지사에게 힌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는 2014년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하자 무상산후조리원·무상교복·청년배당의 3대 무상복지 정책을 추진하다 박근혜 정부와 마찰을 빚었다. 당시 남경필 경기지사는 성남시가 도와 협의하지 않았다며 관련 예산안 무효 확인과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해 성남시를 압박했다. 보건복지부도 성남시의회가 의결한 예산안 재의를 요구하며 무상정책에 제동을 걸었다. 이재명 시장은 이를 ‘중앙정부의 지방정부 탄압’으로 규정하고 정면으로 맞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한순간에 박근혜 정권에 맞선 투사 이미지를 얻어 대선 후보 반열에 올랐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 정책은 진보 진영의 오랜 정체성이 담긴 담론이다. 군부정권을 종식하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 이후 중단됐던 지방자치제를 부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방선거를 법제화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공공기관 이전으로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했다.

진보가 수도권 과밀화 억제로 균형발전을 도모한 것과 반대로 보수진영은 대개 수도권을 뭉쳐서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다. 김문수의 대수도론이나 현재 논쟁 중인 메가서울도 그런 맥락을 충실히 따른다. 이런 상황에서 김 지사가 정부 여당에 균형발전 수호로 대항하는 건 이전 진보 정권들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플러스 요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 역효과 날까 전전긍긍

반면 국민의힘은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논쟁 초반 이슈를 선점해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고 판단해 논쟁을 키운 국민의힘으로선 다소 난처한 상황이다. 당 내부에서조차 비수도권 중진들의 반대 의견이 쏟아지는 중이다. 메가서울이 경기도 일부 유권자의 마음을 얻을지는 모르나, 나머지 수도권과 지방에선 분명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최다선(5선)인 서병수 의원은 11월 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울은 이미 ‘슈퍼 울트라 메가시티’다. 1000만 서울 인구가 940만 명 수준으로 쪼그라든 게 문제인가”라며 “메가시티는 본래 수도권 일극 체제의 대한민국을 동남권, 호남권 등등의 다극 체제로 전환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높여보자는 취지에서 나온 개념이다. 서울을 더 ‘메가’하게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이라고 직격했다.

국민의힘 한 비례대표 의원실 관계자는 “당내에서는 자꾸 ‘김 지사의 경기북부특별자치도 공약이 김포 서울 편입 논쟁을 불러왔다’고 비판하는데, 이러한 책임 회피성 발언은 총선에 전혀 득이 되지 않는다”며 “김 지사가 언론에 계속 노출되게 무대를 마련해준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뉴시티 프로젝트 특별위원회는 ‘김포 서울 편입 특별법’ 등 관련 조치를 차근차근 밟아나간다는 방침이다. “김포 서울 편입 시 도농복합도시 농어촌특례 전형 입학이 불가능해진다”는 비판을 의식해 ‘농어촌특례 전형 폐지 유예’ 조항도 담는다.

하지만 이 역시 난센스일 뿐이란 지적이 많다. 경기도의 한 관계자 말이다. “서울의 자치구 하나를 위해 개별 특별법을 제정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고가 합당한 걸까? 돌려 말하면 특별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자인한 건 아닐까. 그야말로 혹세무민이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312호 (202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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