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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大기획 | 정밀분석] ‘시계 제로’ 새해 부동산 시장 전망 

짜장면 가격 올라도 집값은 못 오를 수 있다 

김원 중앙일보 부동산팀 기자
선(先)반영 시대에 냉·온탕 오가는 혼돈 반복, 거래 실종됐지만 대세 하락은 아닌 상황
금리 인하 시점과 총선 이후 정부 정책이 최대 변수… 전셋값 오르면 시장 자극할 수도


▎가구당 평균 자산이 내려가는 상황에서 서울 등 수도권 요지의 아파트값이 계속 불패로 남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사진:연합뉴스
'부동산은 심리전’이라고 한다. 부동산 시장 참여자들은 ‘시그널’에 반응한다. 그 신호는 정부의 정책이 될 수 있고, 경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전국에 몇십만 가구 규모의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나서면 시장 참여자들은 주택 공급 확대에 따라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 예상한다. 이런 분위기가 팽배해지면 당장 주택 거래가 줄 것이고, 신규 공급 예정지 인근 투자자들은 서둘러 발을 빼려 할 것이다. 공급 확대책이 일종의 가격 하락 시그널로 작용하게 된다. 통화 긴축을 위해 올렸던 금리를 인하하겠다고 시사하면 반대로 시장에선 향후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심리가 확산한다.

전현진 경남대학교 경제금융학과 박사팀이 2020년 발표한 ‘유동성과 주택가격의 기대심리가 실질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논문을 보면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가 부동산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실질 M2(광의통화) △실질 가계대출 △과거 주택가격 △(미래) 기대 주택가격 변수가 각각 1% 상승 혹은 증가했을 때 집값 변동을 분석했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기대 주택가격 변수였다. 이 변수가 1% 증가했을 때, 집값은 0.38%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물 쌓인 서울 아파트, 29주 만에 하락 전환

2023년은 부동산 시장에서 시장 참여자와 정책 당국의 치열한 ‘심리전’이 펼쳐졌다. 2022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이 크게 얼어붙자 윤석열 정부는 2023년 벽두부터 ‘1·3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규제지역·중도금 대출·분양가상한제·전매제한 등 문재인 정부에서 강화한 부동산 규제를 대거 완화했다. 부동산 시장이 크게 위축되자 정부가 나서 “집을 사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매수 심리가 회복하면서 가격을 크게 내린 저가 급매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정부가 1월 30일부터 특례보금자리론의 접수를 시작하면서 이런 흐름은 이어졌다. 특례보금자리론은 9억원 이하 주택이 대상이고 최대 5억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며, 연 4%대 고정금리로 최장 50년 만기 대출이 가능한 정책 모기지론이다. 특히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에서 제외되면서 그동안 소득과 보유자금 등이 적어 매수를 결정하기 어려웠던 실수요층을 중심으로 관심을 끌었다. 규제 완화와 함께 40조원에 달하는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집값 상승세는 가팔라졌다.

부동산 정보제공업체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3년 서울 아파트 최고가 거래 평균은 11억1599만원으로 비교 시점인 2021년 하반기(7~12월)나 2022년 상반기(1~6월) 12억6695만원의 88.1% 수준까지 회복했다. 경기와 인천의 아파트값 회복 수준은 같은 기간 대비 각각 82.3%와 82.1%로 나타났다. 특히 서울의 경우 용산구(96.7%), 강남구(95.5%), 서초구(93.4%) 등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의 가격 회복이 빨랐다.

서울 아파트값의 ‘바로미터(기준)’라는 잠실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다. 잠실동의 ‘대장주’인 잠실 엘스 전용면적 84㎡의 경우, 2021년 10월 27억원(14층)까지 거래됐다가 2022년 9월 처음으로 심리적 지지 가격인 20억원 밑으로 떨어졌고, 그해 10월에는 19억원(11층)까지 하락한 상태였다. 그러다 규제 완화와 유동자금의 부동산 유입 등 여파로 가격이 반등하면서 2023년 8월 이 아파트 전용 84㎡는 최고가 25억원(14층)에 거래됐다. ‘27억원→19억원→25억원.’ 불과 2년 새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파트값이 2021년 최고가의 턱밑까지 오르고, 고금리 상태가 길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했다. 특례보금자리론이 사실상 중단된 것도 이유다. 주택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수 심리가 약해지고, 수요자의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잠실의 한 공인중개사는 “추석 이후 집을 팔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사겠다는 손님이 뚝 끊겼다”며 “당분간 집값이 내려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확실히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2023년 12월 초 서울 아파트 매도 매물은 7만7000여 건으로 2023년 연초보다 50%가량 증가했다. 경기도 매물은 14만2000여 건 쌓여 연초보다 약 35% 증가했다. 2023년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313건으로 1월(1412건) 이후 9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규제 완화·특례보금자리론 지원 등으로 급매물이 팔리면서 4월(3191건)부터 거래량이 3000건을 넘어서고 8월(3858건)에는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과는 상반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3년 12월 첫째 주 서울 평균 매매가는 일주일 전 대비 0.01% 내리면서 5월 셋째 주 이후 29주 만에 하락 전환했다.

금리인하 기대감, 신생아특례대출 등이 변수


▎11월 30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시장은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 언제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 사진:공동취재단
다만 이런 흐름이 일시적인 조정이 될 것인지, ‘2차 대세 하락’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2024년 집값은 상승·하락 요인이 혼재돼 있는데, 금리와 정책이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며 “주택 거래량이 많지 않아 집값은 전체적으로 약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연구기관의 전망도 엇갈린다.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2024년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1% 상승, 전셋값은 2%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주택 매매가격은 2% 하락하는 반면 전셋값은 2%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장 큰 변수는 금리다. 2022년 3월(0.50%)부터 오르기 시작한 미국 기준금리는 해를 넘겨 지속하다 2023년 7월 이후 5.50%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들어 금리 인하 시기가 앞당겨질 것이란 시장의 기대가 확산하고는 있지만, 당장 큰 폭의 인하는 없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재 국내 5대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혼합형(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3.76~5.77%로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김성환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의 금리가 매매가격에 하방 압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2024년 상반기에는 주택 거래가 줄고, 가격이 약세를 보일 것이란 의견이 많다. 하지만 금리 인하 시기가 앞당겨질 경우, 주택 시장의 재반전 가능성도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2024년 주택 시장을 ‘전약후강’으로 전망했다. 박 교수는 “신년 2분기까지는 보합세를 보이다 금리 인하 시점이 드러날 3분기 이후에는 소폭 상승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신동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금리 인하 기대감이 커지고 4월 총선 후 정부의 부동산 수요 진작 정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면 주택가격 상승 폭이 다시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중 자금의 유동성도 주택 가격을 결정할 변수로 꼽힌다. 일단 정부는 연 1~2%대의 저금리로 이용할 수 있는 약 27조원 규모의 ‘신생아특례대출’과 20조~30조원 규모의 ‘청년주택드림대출’을 신년에 시행할 예정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청년주택드림대출’ 대상 예상 규모는 10만 가구다. 국토부 관계자는 “청년 전용 주택드림 청약통장 1년 이상 가입자에 한해 청약 당첨 시 지원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금리로 주택 구매 여력이 많이 감소하고 특례보금자리론도 제한됐지만, 2023년 초 발생했던 가격 하락의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며 “금리 고점 인식과 하락에 대한 기대, 신생아특례대출 등 유동성 공급이 가격에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금리시대 이자 못 내는 ‘영끌족’ 곡소리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인한 전셋값 상승이 매맷값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도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3년 1~10월 전국 주택 인허가 물량은 27만3918가구로 2022년 같은 기간보다 36.0% 줄었다. 2023년 10월까지 착공은 14만1595가구로 같은 기간 57.2% 줄었으며 분양은 14만2117가구로 같은 기간과 비교해 36.5% 감소했다. 이 기간 준공은 27만960가구로 전년도 같은 기간과 비교해 18.5% 줄었다. 인건비와 원자잿값이 치솟으면서 공사비 부담이 커진 데다 고금리에 따른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시장 경색으로 건설사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신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도 큰 폭으로 줄어든다. 새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하면 통상 30% 정도는 전·월세로 나오기 때문에 신규 입주 물량은 전·월세 시장 안정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4년 서울 아파트 입주는 1만921가구로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적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2024년 서울을 중심으로 한 아파트 전세 시장은 입주물량 감소로 지속적인 강세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합수 교수는 “전셋값 상승으로 인한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활발해지면 매물이 더 잠길 가능성이 높다”며 “전셋값 상승이 이어지면 하반기께 매매 시장으로 전환하려는 수요도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이 크게 내릴 것이란 전망도 있다. 교보증권의 최근 보고서는 “집값이 장기적으로 현재 가격보다 최대 30% 이상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해 큰 화제가 됐다. 교보증권은 신년 주택시장 역시 ‘5% 이상의 급격한 하락장세’로 전망했다. 역전세난 확산, 이자 부담 가중 등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특히 2019년 혼합형 금리로 대출을 받아 집을 매수한 차주의 금리가 변동되는 해이기 때문에 고금리 영향이 본격화하면 이자 상환 여력이 부족한 20~30대부터 신용 리스크가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백광제 교보증권 수석연구원은 “아직 금리의 자산가격 적용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현재 금리 상태의 장기 유지와 내재수익률·안전자산수익률의 역전 상태를 고려하면 이런 추가 하방 압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아파트 경매가 쏟아지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대출을 무리하게 받은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받은 사람)과 시세차익을 노린 갭투자자 물건이 대거 경매시장에 나온 것으로 풀이 된다. 경·공매 데이터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10월 전국 아파트 경매 건수는 2629건으로 2020년 11월(3593건) 이후 35개월 만에 가장 많았다.

- 김원 중앙일보 부동산팀 기자 kim.won@joongang.co.kr

202401호 (2023.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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