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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제철 맞은 전남 완도군 김 양식장의 새벽 

그물 타고 올라오는 ‘겨울철 효자’에 어부 얼굴엔 미소 한가득 

최기웅 기자
완도 청정 바다에서 가을에 키워 11월부터 4월까지 여섯 번 수확
수온 상승으로 채묘 시기 늦어져 올해 수확량 30%가량 감소 예상


▎모두가 잠든 새벽, 전라남도 완도군 군위면 앞바다는 제철 맞은 생김 수확으로 분주하다. 작업에 나선 이주노동자들이 김발을 끌어올려 생김을 채취하고 있다.
갈매기도 잠든 고요한 새벽, 김 수확에 나선 어선들의 항해등 불빛이 파도를 따라 일렁인다. 한겨울의 전남 완도군 군외면 당인리 밤바다는 별을 품어 반짝인다.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파도의 일렁임에 몸을 맡기니 비로소 이곳이 바다라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된다.

새벽 한 시, 선장 정장인(62)씨의 블루호가 물살을 내며 부두를 떠난다. 바쁠 때는 자정부터, 늦어도 새벽 3시에는 작업을 시작한다. 물때와 오전 위판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다. 수십 년 항해 경력 덕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깜깜한 밤에도 익숙하게 양식장을 찾아간다. “거짓말 보태서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수다. 두 번째 집인거여.” 선장의 말투에 자신감이 배어있다. 양식장까지 가는 동안 바다에는 그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부유식 김 양식장이다. 김 양식 방법은 크게 두 가진데, 땅에 기둥을 세워 기르는 지주식과 물 위에 띄워 기르는 부유식이 있다. 완도 부근 바다는 부유식 양식장으로 가득하다.

“도시 사람들은 그냥 냅두기만 하면 김이 알아서 자라는 줄 아는데, 뒤집어서 광합성 시키랴, 영양제 주랴, 할 일이 태산”이라고 정 선장은 말했다. 출항한 지 30여분 만에 양식장에 도착하니 먼저 온 이주노동자 자나카(33)와 샤샤(33)가 반갑게 인사한다. 스리랑카 출신인 둘은 한국어에 능숙한 데다 작업도 베테랑이다. “저 사람들 없으면 여기 아무것도 못혀”라며 정 선장이 미소를 짓는다.

자나카가 수확기에 시동을 걸고, 샤샤가 그물을 배 위에 올린다. 배가 이동하면서 그물이 올라오면 수확기가 생김을 턴다. 폭 2m, 길이 90m의 그물 한 줄을 걷는 데 10여분이 걸린다. 총 300여 줄을 채취해야 한다. 기계화로 작업이 간편해지긴 했지만, 한겨울 살을 에는 바람을 맞으며 김을 수확하는 일은 말도 못하게 고된 작업이다. 그래도 이곳 어부들은 그물에 다닥다닥 붙어 자란 생김을 보면 입꼬리부터 올라간다. “수확은 채묘할 때에 비하면 암것도 아녀.” 쌓여가는 생김을 보던 정 선장이 말했다. 김 양식 어업에서 가장 힘든 일은 김 씨앗을 심는 채묘 작업이다. 굴 껍데기에 김 씨앗을 입혀서 망에 넣고 해류에 쓸려가지 않도록 그물 전체에 비닐을 씌우는데, 여간 복잡하고 까다로운 게 아니다. 9월 중순에 채묘한 양식장에서 11월 초에 첫 수확을 했다. 김은 한 달 남짓 자라고, 가을부터 4월 말까지 최대 여섯 번 수확한다.

“채묘 시기가 가장 중요한데 더워져서 큰일이여.” 정 선장의 얼굴에 근심이 어린다. 채묘를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바다의 평균 수온이 19~21도를 유지해야 김이 빠르게 성장하지만, 갈수록 수온이 높아져 채묘 시기가 늦어지고 수확량도 크게 줄었다. 올해는 예년보다 30%가량 수확량이 줄어들 전망이다. “수확이 안되니께 사람도 많이 떠났수. 그나마 저 사람들(외국인 근로자) 없으면 여기 싹 다 망해부러.” 정 선장이 이내 울상이다. 실제로 완도군 군외면에는 300여명의 이주 근로자들이 김 양식장에서 일하고 있다.

아버지 뒤를 이어 이곳에서 35년 동안 김 양식을 하는 정 선장은 수협 어촌계장까지 맡아 어깨가 무겁다. “‘바다의 반도체’란 말도 다 옛말 됐당게. 기후위기가 해결돼야 옛날 모습을 되찾을겨.” 파도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배 위에서 한겨울에 비지땀 흘리며 일하다 보니 수평선 너머로 해가 솟아오른다. 아침 햇살이 감싼 어부들의 모습은 바다와 한 몸이나 다름없었다. 수확한 생김은 부둣가 위판장에서 경매를 통해 즉시 가공 업체에 판매된다.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는 가공업체에서 세척하고, 썰고, 말리고 조미하는 등의 공정을 더 거쳐야 한다. 밥상 위에서 우리 입맛을 돋우는 얇고 여린 김 한 장에 이토록 많은 이들의 땀과 사연이 담겨 있다.


▎가지런히 줄을 맞춘 김발들이 바다의 품에서 너울거리며 겨울 어촌의 진풍경을 만들었다.



▎위판시간인 오전 11시간이 되자, 생김을 가득 실은 어선들이 부둣가에 정박해 있다.



▎정장인 블루호 선장이 김양식장으로이동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김발을 뒤집어 김들의 광합성을 촉진 시키고 있다.



▎이주노동자(오른쪽)가 경매로 판매된 생김을 자루에 담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판매된 생김 자루를 크레인에 매달고 있다.
- 사진·글 최기웅 기자 choi.giung@joongang.co.kr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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