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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의 일본 직설(直説), 요설(妖説) 그리고 곡설(曲説) (7)] 요괴의 나라 일본 ‘갓파’ 전설을 찾아서 

상상 세계의 입구, 비일상·초현실의 출발점 ‘요괴 세계’ 

서양의 드라큘라나 좀비와 달리 인간과 공존하는 일종의 요정
21세기 요괴의 대명사 ‘포케몬’… 1000개 캐릭터로 세계적 유행


▎갓파는 지역마다 다른 모습으로 등장한다. 머리 위가 접시형에다 어린 아이를 좋아한다는 것이 수많은 갓파 캐릭터의 공통점이다.
산타클로스 존재 자체를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크리스마스이브 깊은 밤, 루돌프 사슴과 함께 달려온 멋쟁이 산타 할아버지가 양말 속에 선물을 줄 것이라고 믿으며 기다리는 어린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미국 기준이지만, 대략 7~8세 정도면 ‘산타 졸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어른 뺨치는 한국어린이라면 대략 6세 이전 ‘산타 꿈’을 접을지 모르겠다. 간혹 10세를 넘겨서도 양말 속 선물을 기다리는 어린이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내막을 들어보면 부모의 집요한 ‘산타 사랑’을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효심(孝心)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있다. 산타를 둘러싼 부모의 낭만을 믿는 척하는 고차원 동심(童心)이다. 양말 속 선물 출처가 산타가 아닌 부모라는 것쯤은 진작 알고 있다. 진짜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척하면서 부모 비위를 맞추는 격이다. 모바일이 배경이겠지만, 어린이가 언어와 문자에 눈을 뜨는 순간 ‘산타 끝’이다.

산타에 비견될 일본의 꿈과 낭만 ‘요괴’

‘산타 불신·부정’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산타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 자체가 별로 없다. 미국에서처럼 ‘호 호 호’라는 웃음과 함께 선물을 주는 산타에 대한 동경이나 기대 자체가 없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짜 선물에 대한 반감이 배경일 듯하다. 사실 일본만큼 선물에 집착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결코 ‘일방통행’ 선물이 없다는 부분이다. 저가 상품은 예외겠지만, 어느 정도 고가 선물이라면 자기도 반드시 되갚아야만 한다고 믿는 나라가 일본이다. 공짜는 없다. 5만원짜리 선물을 받을 경우 자기도 5만원 정도로 되갚아야만 한다. 받는 만큼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 갑작스런 고가 선물은 기피 대상이다. 일본인 집에 초대될 경우 가능하면 유명한 가게의 ‘온리 원’ 선물이 좋다. 그러나 비싼 것이 아닌, 부담이 안 가는 저가 선물이 기본이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대략 3000엔이 넘어가는 순간 부담을 갖게 된다. 그같은 배경 하에서 풀이할 수 있겠지만, 어린이들도 산타 공짜 선물에 무심해질 수밖에 없다.

산타를 안 믿고, 선물에도 무심한 어린이라고 하면 꿈과 낭만을 잃어버린 ‘삭막한 애늙은이’ 이미지로 연결될 듯하다. 사막에 가도 굵은 뿌리의 ‘장미(Adeniums)’를 만날 수 있다. 일본도 나름의 꿈과 낭만을 갖고 있다. 서방과 다른 것은 어릴 때만이 아니라 평생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실 산타에 준하는 일본 스타일 꿈과 낭만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판타지로 진화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요괴(妖怪)다. 서방 산타에 비견될 일본 특유의 꿈과 낭만이 바로 요괴다. 일본은 ‘요괴 천국’이다. 기존의 수많은 요괴는 물론, 업그레이드된 개량형 요괴를 거의 매일 새롭게 발명·발견·창조해가는 곳이 일본이다. 모바일 덕분에 일본발 요괴는 전 세계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다. 요괴의 일본어 발음인 ‘요카이(Yokai)’는 세계 어디에 가도 통용될 인류 공용어이기도 하다. 요괴는 일본에서 탄생·진화한 판타지 세계다. ‘일본에 전승된 민간 신앙의 하나로, 인간 이성을 넘어선 기묘한 현상, 또는 그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과 비일상적 존재.’ 일본 요괴학에서 규정한 요괴에 대한 정의다. 요괴는 죽은 귀신을 포함한 유령(幽霊)은 물론 인간이나 물건으로 둔갑한 ‘바케모노(化け物)’도 전부 포함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나 꽃과 같은 식물, 나아가 의자·자전거·삼각김밥 같은 무생물도 요괴 범주에 들어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삼라만상 모든 것이 요괴 대상이다.

일본 요괴를 대표하는 캐릭터 ‘갓파’


▎너구리는 번영과 발전을 상징한다. 인간을 놀라게 할 뿐 해치지 않는 공존의 요괴이기도 하다. / 사진:유민호
서방에서 언급되는 요괴 비슷한 것으로 드라큘라, 좀비, 늑대소년 같은 것이 떠오른다. 크게 보면 악령이자 괴물(Monster)에 해당되지만, 요괴와의 관계는 어떨까? 요괴 세계에 익숙하다면 곧바로 영역 밖으로 분류할 것이다. 이유는 인간의 대응 방법에 있다. 21세기 일본발 요괴는 살(殺)처분 대상이 아니다. 인간이 죽여야만 하는 악으로서의 요괴가 아니다. 서방의 드라큘라, 좀비, 늑대소년 같은 공포 영화 속 주인공은 다르다. 인간이 살기 위해 반드시 처분해야만 할, 죽여서 지구상에서 멸종시켜야만 하는 악의 존재들이다. 요괴도 서양 괴물처럼 뭔가 무섭고 기묘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발 요괴는 인간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공생, 나아가 협치하면서 살아갈 존재다. 인간과 서방의 악령·괴물은 제로섬(Zero Sum) 관계에 있다. 일본 요괴는 상생(相生) 존재란 점에서 다르다. 영어로 요괴는 요카이인 동시에 ‘Fairy’로 표기한다. 한글로 풀면 ‘요정(妖精)’이란 의미다. 요정은 인간과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숲속의 정령(精霊)이다. 몸이 작아 인간에게 치명적 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괴와 비슷하다.

포케몬은 21세기 요괴의 대명사다. 2023년 12월 초 기준으로, 무려 1008개의 다양한 캐릭터로 발전해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1996년, 적(赤)과 녹(緑) 두 개의 캐릭터에서 시작한 이래 17년 만에 글로벌 최대 요괴 요람으로 떠올랐다. 변화가 없는 한 매년 50여 개의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나가면서 전 세계 요괴의 간판으로 나설 것이다. 꼰대 세대가 보면 전부 비슷하게 비치는 장난감 캐릭터가 포케몬이다. 20대 이하는 다르다. 1000여 개 캐릭터의 이름은 물론 각자의 성격까지 꿰뚫으면서 포케몬 카드 수집에 전 재산을 바친다. 포케몬은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 어디에 가도 접할 수 있는 ‘오타쿠(オタク)’ 세계의 대명사다. 다른 캐릭터에 대한 서방의 관심도 대단하지만, 포케몬은 특별하게 추가될 매력 하나가 더 있다. 캐릭터 그 자체만이 아닌, 기묘하고도 비상식적인 ‘요괴 세계관’이 핵심이다. 포케몬을 안다는 것은 일본 요괴 세계를 이해한다는 의미다. 디즈니랜드를 비롯해 할리우드에서 쏟아내는 캐릭터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일본발 포케몬의 최대 매력이다. 머리로 풀 수 없는 호기심이야말로 최적의 비즈니스 무기인 셈이다.

일본 사람은 다 아는 아사쿠사 갓파 스토리

‘갓파(河童)’는 일본 요괴를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에도(江戸)시대 거리에서 팔던 목판화의 주된 소재 중 하나가 갓파다. 일본 열도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는 전국 지명도의 요괴로, 21세기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머리에 접시 같은 것이 붙어 있고,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을 가진 뱀, 거북이, 인간을 합성한 요괴다. 주로 흐르는 냇물에 살면서 가까이 오는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머리 위 접시 부분이 마를 경우 곧바로 죽는다고 한다. 이미 20여 년 전 기억이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어느 작가가 자신의 인생 전환점을 신문에 기고했다. ‘갓파를 직접 만나고 난 뒤부터 내 인생이 달라졌다.’ 당시 신문 속 작가 글의 제목이다. 갓파를 직접 목격해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과 함께 갓파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행동 패턴에 대한 증언도 담았다. 메타포(Metaphor)나 상상 속 글로 알고 읽었지만, 놀랍게도 진짜 갓파와 대면해 얘기를 나눴다는 ‘황당한 체험’이 글의 핵심이었다.

갓파의 제안으로 스모(相撲)를 함께 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스모는 요괴 갓파가 좋아하는 취미로, 한 번 시작하면 하루 종일 즐긴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가짜로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 자체도 무미건조할 것이라 경고하면서 집 주변 시냇물에 가 직접 갓파를 만나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수많은 요괴 중 갓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작가의 글을 대한 뒤부터다. 갓파를 직접 봤다는 증거·증언이 열도 곳곳에서 거의 매년 나타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와 기사를 대하면서 남녀노소 구별 없이 ‘갓파=일본 신앙’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믿으면 나타나고, 확신하면 기적도 가능하다. 존재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 일본인만이 볼 수 있는 신비한 존재가 갓파일지도 모른다.

아사쿠사(浅草) 사찰은 일본 방문 관광객의 필수코스다. 주변에 갓파가 살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10여 년 전이다. 갓파 조형물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사쿠사 갓파 스토리는 일본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전설이다. 아사쿠사 사찰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이 스토리텔링 무대다. 19세기 초 아사쿠사 주변에 수로를 만들 당시 난공사로 인해 공사가 장기간 중단되던 때 얘기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날씨도 엉망이었지만, 어느 날 아침 한순간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밤새 수십 갓파가 나타나 인간 몰래 완공했다는 미담이다. 이후 아사쿠사 주변은 갓파를 기리는 사찰과 함께 관련 기념물로 채워진다. 200여 년 전 시작된 갓파와의 인연이 어떤 식으로 남아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갓파 전설 탐사에 나섰다. 갓파를 기리는 곳은 아사쿠사 근처, 소겐지(曹源寺)라는 작은 사찰로, 갓파 신자라면 반드시 들르는 성지다. 최근에는 해외에서의 요괴 붐으로 인해 외국 관광객도 몰려드는 명소로 변했다. 일명 ‘갓파지(河童寺)’로 불리기도 하지만, 밖에서 보면 요괴가 놀 만한 공간이란 생각이 안 든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달라진다. 조용하기도 하지만, 물기에 젖은 축축한 느낌의 공기가 표류한다. 곳곳에 크고 작은 갓파 조형물이 들어서 있고, 요괴를 기리는 사람의 마음도 새겨져 있다. 보통 절은 불교 성인만 모실 뿐 요괴와 같은 존재는 대상 밖이다. 신사(神社)가 아닌 절에서 모신다는 것은 갓파에 대한 감사의 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싱싱한 오이는 갓파 사찰 풍경 중 하나다. 갓파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막 수확한 오이다.

아사쿠사 주변은 갓파만이 아닌 또 다른 요괴 명소로도 유명하다. 요괴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너구리다. 여우와 더불어 인간으로 둔갑하길 좋아하는 이른바 ‘바케모노(化け物)’ 요괴의 대명사다. 으슥한 밤에 인간으로 변한 뒤 크고 작은 소동을 불러일으키는 장난꾸러기 요괴다. 불룩한 배에다가 느린 걸음 때문이겠지만, 여우 요괴보다 인간에게 더 친근하게 와 닿는다. 아사쿠사에는 갓파와 더불어 너구리 형상의 조형물이나 그림이 즐비하다. ‘너구리 거리(たぬき通り)’란 이름의 상점가도 있다. 19세기 말 너구리끼리 싸우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서로가 반성하면서 싸우지 않고 조용히 지낼 것을 맹세하면서 너구리끼리는 물론 인간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지역 주민들은 너구리들의 선의(善意)를 기리면서 너구리 거리라는 지명을 만들었다. 너구리 조형물도 곳곳에 세운다. 너구리는 일본어로 ‘다누키(たぬき)’로 발음한다.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다(他)’와 ‘누키(抜き)’로 결합할 경우 ‘다른 어떤 곳보다도 탁월한’이란 의미로 통하게 된다. 장사꾼이 본다면 다른 가게보다 물건이 좋고, 돈도 잘 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어디에서든 상점·식당 문 바로 옆에 자리한 다누키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한 마리가 아닌, 자식과 부부 3~4마리가 함께 들어서 있는 경우도 많다. 아사쿠사는 21세기는 물론 에도 시대 이래 300여 년 동안 번영한 곳이다. 일본 최대 규모 사찰인 동시에 최밀집 상점거리가 아사쿠사다. 사찰 방문객이 밀려들면서 상점·식당도 폭증한 것이다. ‘상점=너구리’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150여 년 전 너구리가 약속한 평화가 21세기 아사쿠사 번영의 또 다른 배경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요괴관 변화의 원점은 ‘요시무네 개혁’


▎인도에서 만난 힌두교 신. 인도 불교와 힌두교는 일본 요괴의 원조에 해당된다. 종교를 통한 인도의 발상력이 6세기 이후 바다와 육지를 통해 섬나라 일본에 전해졌다. / 사진:유민호
일본 요괴 세계의 특징이지만, 인간들의 요괴 사랑은 끔찍하다. 음식은 물론 집이나 옷 같은 것도 만들어 요괴 보호, 심지어 숭배까지 나선다. 그러나 일본 역사를 보면 인간과 요괴의 공생은 18세기 초 막부정권인 도쿠가와 요시무네(徳川吉宗)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200여 년 정도 역사에 그친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요괴는 공생이 아닌, 서양의 드라큘라·좀비·늑대소년처럼 악(悪)으로서의 살처분 대상에 불과했다. 전쟁·전염·기아·죽음과 같은 인간 비극의 가장 큰 원인이 요괴에 있다는 것이 17세기까지의 상식이었다. 어떻게 해서 요시무네 때부터 요괴관(観)이 바뀌게 된 것일까? 당대 치러진 서양식 개혁이 배경에 있다. 일본은 17세기 초부터 유럽 문명·문화에 눈을 뜬다. 1609년 나가사키(長崎) 항구를 네덜란드에 오픈한 이래 서양 과학 기술의 가치와 의미를 알게 된다. 요시무네는 그 같은 배경 하에서 서양 학문을 대거 도입한다. 이른바 ‘요시무네 개혁’이다. 과학 기술 수입과 재정 개혁이 핵심이지만, 특히 해부학·식물학에 관심을 갖고 열도 전체를 일신(一新)한다. 조선이 독점하던 산삼을 네덜란드 식물학을 이용해 일본에서 자체 생산하게 된 것도 요시무네 개혁 이후다. 아시아 근대화는 탈(脱)중국 세계관에서 시작됐다. 중국 중심의 우물 안 세계가 아닌, 유럽·미국을 시야에 둔 지구 차원의 문명·문화다. 그런 시각에서 볼 때 일본 근대화의 원점은 19세기 중엽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이 아닌 17세기 초 네덜란드 개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을 통해 근대화에 떠밀려 들어간 조선보다도 무려 267년 앞서 서양 문명·문화에 주목한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요괴를 공생과 협치 대상으로 해석


▎여우는 일본 요괴의 정상에 서 있다. 인간을 괴롭히기도 하지만, 쌀이나 보리 같은 곡식을 중시하는 신의 메신저 역할도 한다. / 사진:유민호
요시무네 개혁은 일본인의 요괴관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과학 기술에 기초한 요시무네 개혁을 통해 전쟁·전염병·기아·죽음의 원인이 요괴와 무관하다는 것을 일본인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요괴=악’이 아니라는 합리적 사고가 일본에 정착된다. 대신 나타난 현상은 요괴를 애완동물처럼 귀엽고 착한 존재로 대하는 자세다. 요괴를 살처분이 아닌 공생과 협치의 대상으로 해석한다. 때마침 17세기 중엽 목판화를 통한 요괴 관련 책이나 화보가 일본 전역에 등장한다. 당시 목판으로 찍어낸 책은 국수 두 그릇 값 정도면 구입할 수 있었다.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목판 요괴 잡지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21세기 모바일 유튜브 효과 같은 것이 17세기 일본에 불어닥친 셈이다. 이후 요괴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 기인(奇人)’ 이미지로 정착된다. 요괴가 착해지면서 인간의 요괴에 대한 애정도 증폭된다. 원래 갓파는 인간을 물에 끌어들여 죽이는 불길하고도 무서운 존재였다. 아사쿠사 주변에서 보듯 18세기 이후 갓파는 인간을 돕고 인간도 갓파를 추모하는 협력 체제로 변해간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하던 2020년 5월 희한한 모습의 요괴 하나를 전염병 퇴치 상징물로 앞세운다. 당시 한국에도 알려졌지만, 반인반어(半人半魚)에다가 조류 입으로 무장한 요괴 ‘아마비에(アマビエ)’다. 전염병이나 자연 재해를 예견하는 요괴로, 가까이 두거나 부적으로 만들 경우 비극을 미리 막을 수 있다는 소문이 일면서 일본 전역에 퍼졌다. 요괴는 비일상적·초현실적 세계의 상징이다. 중국발 팬데믹 자체가 비일상적이지만, 200여 년 전 탄생한 요괴가 21세기 팬데믹 시대에 부활한 것이다.

요괴를 전염병 퇴치 상징물로 앞세우기도

일본인의 공포와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아마비에의 역할이자 기능이다. 필자와 같은 장년 세대에 해당될 사안이지만, 요괴라고 하면 도깨비나 꼬리가 9개 달린 여우부터 생각난다. 둘 다 식민지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요괴다. 조선은 요괴 무풍지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요괴 불법지대였다. 요괴가 많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불만, 나아가 황당무계한 괴담이 많다는 의미다. 주자학 양반의 나라 조선은 그 같은 불만과 괴담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득권에 도전할 요사스러운 존재로, 얘기 자체를 불온시하면서 박멸 대상으로 여겼다. 필자가 어릴 때 매달리던 라디오 방송 ‘전설따라 삼천리’ 속 수많은 요괴도 식민지 당시 일본에서 역수입된 것일 뿐이다. 원래 한반도는 요괴 무풍지대가 아니었다. 6세기 불교가 밀려들면서 지옥화(画)가 확산된다. 불교 덕분에 인도에서 탄생한 수많은 요괴도 한반도에 출현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시아 요괴의 공통분모지만, 기원이나 원점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불교와 만나게 된다. 불교 조각이나 탱화(幀畫)가 있었기에, 시각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세계가 요괴로까지 발전될 수 있었다.

팬데믹 당시 일본 내 아마비에 열기를 보면서 ‘부적이나 믿는 무지몽매한 일본’이라고 비난한 한국인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보면 500년 주자학 소중화 세계관에 충실한 생각으로 비친다. 양반의 나라 조선은 서방 문명·문화만이 아닌, 인도발 불교와 요괴 세계와도 담을 쌓은 채 살아간 명실상부한 ‘쇄국’ 그 자체였다. 부적이나 요괴는 인간 이성과 현실 세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최후의 해결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셈이다. 미신으로 볼 수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남에게는 냉정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세계관. 바로 ‘내로남불 탈레반 주자학’의 세계다. 덕분에 한반도에는 요괴가 전부 사라지고, 도깨비나 꼬리 9개 여우 같은 역수입 요괴만 넘실댄다. 최근에는 포케몬은 물론 요괴로 들끓는 캐릭터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도 한반도 전역에 넘실댄다.

장년으로 갈수록 한층 더 실감하지만, 세상은 입·머리·이성만이 아닌, 신비·비상식·초현실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산타 선물을 기다릴 나이도 아니고, 갓파를 만나러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어릴 때 귀를 쫑긋 세운 채 몰두한 얘기지만, ‘여우 결혼식’은 해가 떴는데도 비가 내리는 날에 이뤄진다고 한다. 언젠가 꼬리 9개 달린, 적어도 화장을 한 예쁜 여우 신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요괴스런 희망과 꿈’에 젖어본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비일상의 시작이 바로 요괴 세계에 넘실댄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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