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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에 비견될 일본의 꿈과 낭만 ‘요괴’‘산타 불신·부정’은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믿고 안 믿고를 떠나 산타에 대한 어린이들의 관심 자체가 별로 없다. 미국에서처럼 ‘호 호 호’라는 웃음과 함께 선물을 주는 산타에 대한 동경이나 기대 자체가 없다. 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짜 선물에 대한 반감이 배경일 듯하다. 사실 일본만큼 선물에 집착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한국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결코 ‘일방통행’ 선물이 없다는 부분이다. 저가 상품은 예외겠지만, 어느 정도 고가 선물이라면 자기도 반드시 되갚아야만 한다고 믿는 나라가 일본이다. 공짜는 없다. 5만원짜리 선물을 받을 경우 자기도 5만원 정도로 되갚아야만 한다. 받는 만큼 ‘반드시’ 갚아야만 한다. 갑작스런 고가 선물은 기피 대상이다. 일본인 집에 초대될 경우 가능하면 유명한 가게의 ‘온리 원’ 선물이 좋다. 그러나 비싼 것이 아닌, 부담이 안 가는 저가 선물이 기본이다. 개인적 판단이지만, 대략 3000엔이 넘어가는 순간 부담을 갖게 된다. 그같은 배경 하에서 풀이할 수 있겠지만, 어린이들도 산타 공짜 선물에 무심해질 수밖에 없다.산타를 안 믿고, 선물에도 무심한 어린이라고 하면 꿈과 낭만을 잃어버린 ‘삭막한 애늙은이’ 이미지로 연결될 듯하다. 사막에 가도 굵은 뿌리의 ‘장미(Adeniums)’를 만날 수 있다. 일본도 나름의 꿈과 낭만을 갖고 있다. 서방과 다른 것은 어릴 때만이 아니라 평생을 간직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실 산타에 준하는 일본 스타일 꿈과 낭만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판타지로 진화하고 있다. 주인공은 바로 요괴(妖怪)다. 서방 산타에 비견될 일본 특유의 꿈과 낭만이 바로 요괴다. 일본은 ‘요괴 천국’이다. 기존의 수많은 요괴는 물론, 업그레이드된 개량형 요괴를 거의 매일 새롭게 발명·발견·창조해가는 곳이 일본이다. 모바일 덕분에 일본발 요괴는 전 세계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다. 요괴의 일본어 발음인 ‘요카이(Yokai)’는 세계 어디에 가도 통용될 인류 공용어이기도 하다. 요괴는 일본에서 탄생·진화한 판타지 세계다. ‘일본에 전승된 민간 신앙의 하나로, 인간 이성을 넘어선 기묘한 현상, 또는 그 같은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불가사의한 힘과 비일상적 존재.’ 일본 요괴학에서 규정한 요괴에 대한 정의다. 요괴는 죽은 귀신을 포함한 유령(幽霊)은 물론 인간이나 물건으로 둔갑한 ‘바케모노(化け物)’도 전부 포함한다. 동물뿐만 아니라 나무나 꽃과 같은 식물, 나아가 의자·자전거·삼각김밥 같은 무생물도 요괴 범주에 들어간다. 좀 심하게 말하면 삼라만상 모든 것이 요괴 대상이다.
일본 요괴를 대표하는 캐릭터 ‘갓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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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은 다 아는 아사쿠사 갓파 스토리‘갓파(河童)’는 일본 요괴를 대표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에도(江戸)시대 거리에서 팔던 목판화의 주된 소재 중 하나가 갓파다. 일본 열도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는 전국 지명도의 요괴로, 21세기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머리에 접시 같은 것이 붙어 있고, 거북이처럼 단단한 등을 가진 뱀, 거북이, 인간을 합성한 요괴다. 주로 흐르는 냇물에 살면서 가까이 오는 사람을 놀라게 하지만, 머리 위 접시 부분이 마를 경우 곧바로 죽는다고 한다. 이미 20여 년 전 기억이지만, 일본을 대표하는 어느 작가가 자신의 인생 전환점을 신문에 기고했다. ‘갓파를 직접 만나고 난 뒤부터 내 인생이 달라졌다.’ 당시 신문 속 작가 글의 제목이다. 갓파를 직접 목격해 대화를 나눴다는 내용과 함께 갓파의 모습과 목소리 그리고 행동 패턴에 대한 증언도 담았다. 메타포(Metaphor)나 상상 속 글로 알고 읽었지만, 놀랍게도 진짜 갓파와 대면해 얘기를 나눴다는 ‘황당한 체험’이 글의 핵심이었다.갓파의 제안으로 스모(相撲)를 함께 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스모는 요괴 갓파가 좋아하는 취미로, 한 번 시작하면 하루 종일 즐긴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의 글을 가짜로 생각하는 사람은 인생 자체도 무미건조할 것이라 경고하면서 집 주변 시냇물에 가 직접 갓파를 만나라는 권유도 잊지 않았다. 수많은 요괴 중 갓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작가의 글을 대한 뒤부터다. 갓파를 직접 봤다는 증거·증언이 열도 곳곳에서 거의 매년 나타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와 기사를 대하면서 남녀노소 구별 없이 ‘갓파=일본 신앙’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믿으면 나타나고, 확신하면 기적도 가능하다. 존재 여부를 의심하지 않는 일본인만이 볼 수 있는 신비한 존재가 갓파일지도 모른다.아사쿠사(浅草) 사찰은 일본 방문 관광객의 필수코스다. 주변에 갓파가 살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10여 년 전이다. 갓파 조형물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아사쿠사 갓파 스토리는 일본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전설이다. 아사쿠사 사찰에서 서쪽으로 600m 정도 떨어진 곳이 스토리텔링 무대다. 19세기 초 아사쿠사 주변에 수로를 만들 당시 난공사로 인해 공사가 장기간 중단되던 때 얘기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날씨도 엉망이었지만, 어느 날 아침 한순간 공사가 끝났다고 한다. 밤새 수십 갓파가 나타나 인간 몰래 완공했다는 미담이다. 이후 아사쿠사 주변은 갓파를 기리는 사찰과 함께 관련 기념물로 채워진다. 200여 년 전 시작된 갓파와의 인연이 어떤 식으로 남아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고 갓파 전설 탐사에 나섰다. 갓파를 기리는 곳은 아사쿠사 근처, 소겐지(曹源寺)라는 작은 사찰로, 갓파 신자라면 반드시 들르는 성지다. 최근에는 해외에서의 요괴 붐으로 인해 외국 관광객도 몰려드는 명소로 변했다. 일명 ‘갓파지(河童寺)’로 불리기도 하지만, 밖에서 보면 요괴가 놀 만한 공간이란 생각이 안 든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달라진다. 조용하기도 하지만, 물기에 젖은 축축한 느낌의 공기가 표류한다. 곳곳에 크고 작은 갓파 조형물이 들어서 있고, 요괴를 기리는 사람의 마음도 새겨져 있다. 보통 절은 불교 성인만 모실 뿐 요괴와 같은 존재는 대상 밖이다. 신사(神社)가 아닌 절에서 모신다는 것은 갓파에 대한 감사의 정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싱싱한 오이는 갓파 사찰 풍경 중 하나다. 갓파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막 수확한 오이다.아사쿠사 주변은 갓파만이 아닌 또 다른 요괴 명소로도 유명하다. 요괴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너구리다. 여우와 더불어 인간으로 둔갑하길 좋아하는 이른바 ‘바케모노(化け物)’ 요괴의 대명사다. 으슥한 밤에 인간으로 변한 뒤 크고 작은 소동을 불러일으키는 장난꾸러기 요괴다. 불룩한 배에다가 느린 걸음 때문이겠지만, 여우 요괴보다 인간에게 더 친근하게 와 닿는다. 아사쿠사에는 갓파와 더불어 너구리 형상의 조형물이나 그림이 즐비하다. ‘너구리 거리(たぬき通り)’란 이름의 상점가도 있다. 19세기 말 너구리끼리 싸우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서로가 반성하면서 싸우지 않고 조용히 지낼 것을 맹세하면서 너구리끼리는 물론 인간과의 관계도 좋아졌다. 지역 주민들은 너구리들의 선의(善意)를 기리면서 너구리 거리라는 지명을 만들었다. 너구리 조형물도 곳곳에 세운다. 너구리는 일본어로 ‘다누키(たぬき)’로 발음한다. 같은 발음이지만, 다른 의미를 가진 ‘다(他)’와 ‘누키(抜き)’로 결합할 경우 ‘다른 어떤 곳보다도 탁월한’이란 의미로 통하게 된다. 장사꾼이 본다면 다른 가게보다 물건이 좋고, 돈도 잘 번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어디에서든 상점·식당 문 바로 옆에 자리한 다누키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한 마리가 아닌, 자식과 부부 3~4마리가 함께 들어서 있는 경우도 많다. 아사쿠사는 21세기는 물론 에도 시대 이래 300여 년 동안 번영한 곳이다. 일본 최대 규모 사찰인 동시에 최밀집 상점거리가 아사쿠사다. 사찰 방문객이 밀려들면서 상점·식당도 폭증한 것이다. ‘상점=너구리’인 이유이기도 하지만, 150여 년 전 너구리가 약속한 평화가 21세기 아사쿠사 번영의 또 다른 배경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요괴관 변화의 원점은 ‘요시무네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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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를 공생과 협치 대상으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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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괴를 전염병 퇴치 상징물로 앞세우기도일본인의 공포와 불안을 잠재우는 것이 아마비에의 역할이자 기능이다. 필자와 같은 장년 세대에 해당될 사안이지만, 요괴라고 하면 도깨비나 꼬리가 9개 달린 여우부터 생각난다. 둘 다 식민지 당시 일본에서 들어온 요괴다. 조선은 요괴 무풍지대,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요괴 불법지대였다. 요괴가 많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불만, 나아가 황당무계한 괴담이 많다는 의미다. 주자학 양반의 나라 조선은 그 같은 불만과 괴담을 허용하지 않았다. 기득권에 도전할 요사스러운 존재로, 얘기 자체를 불온시하면서 박멸 대상으로 여겼다. 필자가 어릴 때 매달리던 라디오 방송 ‘전설따라 삼천리’ 속 수많은 요괴도 식민지 당시 일본에서 역수입된 것일 뿐이다. 원래 한반도는 요괴 무풍지대가 아니었다. 6세기 불교가 밀려들면서 지옥화(画)가 확산된다. 불교 덕분에 인도에서 탄생한 수많은 요괴도 한반도에 출현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시아 요괴의 공통분모지만, 기원이나 원점으로 들어가면 ‘반드시’ 불교와 만나게 된다. 불교 조각이나 탱화(幀畫)가 있었기에, 시각적 차원에서의 새로운 세계가 요괴로까지 발전될 수 있었다.
팬데믹 당시 일본 내 아마비에 열기를 보면서 ‘부적이나 믿는 무지몽매한 일본’이라고 비난한 한국인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보면 500년 주자학 소중화 세계관에 충실한 생각으로 비친다. 양반의 나라 조선은 서방 문명·문화만이 아닌, 인도발 불교와 요괴 세계와도 담을 쌓은 채 살아간 명실상부한 ‘쇄국’ 그 자체였다. 부적이나 요괴는 인간 이성과 현실 세계만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나타나는 최후의 해결 수단으로 볼 수 있다. 도저히 풀 수 없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셈이다. 미신으로 볼 수 있지만,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럽다. 남에게는 냉정하고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세계관. 바로 ‘내로남불 탈레반 주자학’의 세계다. 덕분에 한반도에는 요괴가 전부 사라지고, 도깨비나 꼬리 9개 여우 같은 역수입 요괴만 넘실댄다. 최근에는 포케몬은 물론 요괴로 들끓는 캐릭터 만화나 애니메이션 영화도 한반도 전역에 넘실댄다.장년으로 갈수록 한층 더 실감하지만, 세상은 입·머리·이성만이 아닌, 신비·비상식·초현실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산타 선물을 기다릴 나이도 아니고, 갓파를 만나러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기도 어렵다. 어릴 때 귀를 쫑긋 세운 채 몰두한 얘기지만, ‘여우 결혼식’은 해가 떴는데도 비가 내리는 날에 이뤄진다고 한다. 언젠가 꼬리 9개 달린, 적어도 화장을 한 예쁜 여우 신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란 ‘요괴스런 희망과 꿈’에 젖어본다.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 비일상의 시작이 바로 요괴 세계에 넘실댄다.
※ 유민호 - 미국 워싱턴에 있는 에너지·IT 컨설팅 회사 ‘퍼시픽21’의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방송(SBS) 기자로 일하다가 1994년 일본 마쓰시타정경숙 15기로 입숙해 5년 과정을 마치는 동안 125개 나라를 순회했다. 조지워싱턴대학 E-Politics 프로젝트 디렉터, 일본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을 지냈다.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국 소프트파워] [미슐랭을 탐하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