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포토포엠] 봄의 무반주를 듣다 

 

박완호

▎울산 십리대숲. 겨울 찬바람 견디고 봄 맞아 기지개 켜는 대나무. / 사진:박종근 비주얼실장
가도 가도 끝없는 대숲 십리 길, 빼곡한
근육질의 그리움이 푸르른 공명을 끌어당긴다.
두드릴수록 파래지는 나무의
텅 빈 마디는 누구의 속내인가. 겨울의
언 행간을 가로질러 온 사람이
땅속 뿌리를 건드리는 봄의 무반주를 듣는다.
더 두드려다오,
풋내 서린 대나무의 숨결이
차가운 허공을 흔들어 깨울 때까지, 슬픔의
뼈대를 짚으며 솟구치는 새들의
날갯죽지가 투명하게 젖어 들 때까지.
대나무 마디마다 깃드는 소리, 창백한
공중에 새파랗고 질긴 힘줄을 풀어놓는
무반주의 음악들. 봄은
첫 마디부터 이미 절정이다.


※ 박완호 - 1965년 충북 진천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누군가 나를 검은 토마토라고 불렀다], [기억을 만난 적 있나요], [너무 많은 당신], [물의 낯에 지문을 새기다], [아내의 문신], [염소의 허기가 세상을 흔든다], [내 안의 흔들림] 등. 김춘수시문학상, 경희문학상, 한유성문학상 수상. [서쪽] 동인.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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