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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OM UP]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천연기념물 황조롱이를 구하라… 야생동물 구조·치료·재활에 ‘24시간이 모자라’ 

최영재 기자
지난해만 약 2500건 야생동물 구조… 번식기인 여름에는 한 달 평균 300건
충남권 전역을 책임져야 하지만 인력은 수의사 3명과 재활관리사 6명이 전부


▎창문에 부딪혀 구조된 황조롱이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X-선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마우지가 다쳤는지 비닐하우스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어서 와서 데려가라”는 고함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나와 센터를 가득 메웠다. 출동에 앞서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신고자에게 영상통화 연결을 요청해 보지만, 고령의 신고자는 영상통화를 할 줄 모른다. 응급 상황일지도 모르기에 출동을 서두른다. 하지만 퇴근 시간, 꽉 막힌 도로는 속수무책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가 있는 예산에서 신고자의 위치인 천안시 동남구까지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도착한 비닐하우스엔 오리 한 마리가 활보 중이다. 고기와 털을 얻기 위해 농장에서 키우는 머스코비오리다. 가축이다. 가축은 야생동물에 질병을 옮길 수도 있는 데다 사유재산이라 구조 대상이 아니다. 이기민 재활관리사는 “허탈하지만 다친 야생동물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며 서둘러 발길을 되돌렸다.

충남 예산에 위치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충남권 전역을 관할한다. 지난해 이곳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만 약 2500건의 구조를 진행했다. 번식기인 여름에는 한 달 평균 300건으로 늘어난다. 길 잃은 야생 오리 새끼, 교통사고로 가족을 잃은 새끼 수달, 창문에 부딪힌 황조롱이 등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야생동물들이 이곳을 거쳐 간다. 지난달에는 서산에서 농약에 중독된 독수리 67여 마리가 입원해 센터에 비상이 걸렸다. 밀렵을 목적으로 뿌려 놓은 농약 발린 볍씨를 먹고 죽은 오리 사체를 독수리들이 먹어 2차 중독을 일으킨 것이다. 집중 치료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쉬던 독수리들이 다음날 해가 뜨기 무섭게 싸늘한 주검이 됐다. 비록 동물이지만 채 감기지 못한 하얀 눈동자와 마주하는 심정은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농약에 희생된 독수리만 지난 3년 동안 600여 마리에 달한다.

야생동물은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인수공통질병에 감염될 수 있다. 조류인플루엔자가 대표적인 사례다. 개선충도 마찬가지다. 센터에는 개선충에 감염돼 털이 없는 너구리 10마리가 있다. 흔히 ‘옴벌레’로 불리며 동물 모낭에 기생하는 개선충은 사람에게 옮으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온몸이 가렵다. 김리현 재활관리사는 “감염성이 높은 질병을 치료할 때는 위생 장갑을 끼지만 야생성으로 저항이 심한 동물을 제압·치료하다 보면 아무리 조심해도 무용지물”이라며, “최대한 야생동물이 더이상 다치지 않고, 빠르고 정확하게 치료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옮더라도 그냥 제가 일주일 고생하면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충남권 전역을 책임지는 센터에 구조 요원은 수의사 3명과 재활관리사 6명이 전부다. 주말과 명절 연휴에도 운영되는 센터 특성상 하루 휴가도 쉽지 않다. 이번 서산 독수리 구조 건처럼 많은 수의 야생동물이 한꺼번에 들어오면 센터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된다. 취재를 위해 기자가 찾은 날도 교통사고를 당한 수리부엉이가 구조돼 센터로 실려 왔다. 피를 많이 흘리는 등 심하게 다쳤지만, 여전히 야생성이 강해 치료하는 수의사의 손에서 벗어나려 연신 날개를 퍼덕였다.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달라붙어야 했다. 어렵사리 촬영한 엑스레이 결과는 참담했다. 날개 관절뼈가 모두 조각나 완치가 되더라도 더는 날 수 없다는 진단이 나왔다. 수의사의 결정은 안락사. 센터의 제한된 인력과 공간, 예산으로 더 많은 야생동물 구조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치료와 재활을 마친 야생동물은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낸다. 이날도 완치한 고라니와 독수리를 방생하기 위해 이기민 재활관리사가 차에 올랐다. 최대한 민가와 멀리 떨어져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이기민 재활관리사는 “구조된 곳에 그대로 방생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민가와 가까운 곳일 경우 주민들과 마찰을 피해 구조된 곳 근처의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눈길과 빙판길을 헤치고 한참을 걸어 어렵게 도착한 곳에서 이기민 재활관리사가 이동장의 문을 열었다. 그 안에서 한참을 망설이던 고라니가 이내 숲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고라니에게 섭섭할 만도 하건만 “건강해져 돌아가서 다행”이라며 담담하게 발길을 옮기는 이기민 재활관리사의 뒤로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숲은 한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치료를 마친 고라니가 숲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이기민 재활관리사가 기록 중이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국가 철새연구센터와 공동으로 독수리의 생존 추적과 연구를 위해 날개 꼬리표를 부착하고 있다.



▎교통사고로 날개 관절뼈가 모두 부서진 수리부엉이의 엑스레이 사진.



▎방생을 마친 파란색 날개 꼬리표를 단 독수리가 무리 사이로 보인다.



▎신고를 받고 꼬박 한 시간 넘게 달려 어렵게 도착한 비닐하우스에 머스코비오리 한 마리가 활보 중이다.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는 야생동물은 간단한 치료라도 마취가 필수다. 수의사가 고라니의 다친 다리에 연고를 발라주고 있다.
- 사진·글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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