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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의 핫피플 & 아트(21)] ‘모란꽃 화가’라고 불리는 동양화가 김근중 

“내 안에 겹겹이 쌓인 세상의 이야기를 화폭에 담고 싶다” 

수묵화 일색이던 1980년대 후반 서양화풍 접목한 동양화로 주목
팝아트적 기법 적용하고 변화무쌍한 모란 연작 등 독창성 돋보여


▎각종 물감과 그림 도구들로 발 디딜 틈 없는 작업실은 화가 김근중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세상의 이야기가 그림으로 재탄생하는 모태(母胎)다. 그의 작품 세계는 동·서양화의 관념적 경계를 초월한다. / 사진:조정화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타고나거나 살아오면서 형성된 내 안의 타자(他者), 즉 카르마의 이야기이다. 마음에 겹겹이 쌓여 있는 수많은 카르마들은 사실 이 세상의 모든 이야기인데, 미술사를 따라가는 작업보다 미술사를 넘어서는 작업을 하고 싶다.” 동양화가 김근중의 말이다.

그는 1977년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1980년대 후반부터 동양화와 서양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끊임없는 회화적 실험으로 혼합된 화풍을 구사하거나,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오가고 있다. 재료적 측면에서도 유채와 아크릴을 사용해 한때 동양화의 정체성 논란의 중심에 있기도 했다. 특히 1986년 대만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중국미술사전공) 졸업 이후 왕성하게 활동하던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까지 [89서울현대한국화전](서울시립미술관, 1989)을 비롯하여 [젊은 시각-내일에의 제한전](예술의 전당, 1990), [한국현대회화전](호암갤러리, 1991) 등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동양화의 정체성 논란을 야기했으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동양 정신’은 곧 ‘자유정신’이라는 확신을 갖고 흔들림 없이 정진했다.

1980년대는 국내 동양화 분야에서 수묵화 운동이 일어났던 시기다. 김근중의 초기 작업 [풍경](1987) 수묵화 역시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다가 1989년[오시화순(五時化順)] 연작에서 추상성이 가미된 이색적인 채색화를 선보였다. 이후 [벽화] 연작에서 돌가루와 자연재료를 사용한 추상 형상의 채색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미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0년 첫 개인전에서 벽화의 예술정신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김근중현대벽화전](금호미술관)은 당시 큰 호평을 받았다.

동양의 고대 벽화 재해석한 작품으로 두각


▎동양화를 전공한 김근중은 서양화적 요소인 원색과 유채, 아크릴 물감을 사용해 동양화의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타인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기 나름의 현대적 해석으로 동양화를 계승·발전시키고 있다고 자부한다. 2015년 작 [꽃, 이전. 花, 以前. Before- Flower](162x260cm) / 사진:김근중
[자연존재(Natural Being)]와 [원본자연도(原本自然圖)] 연작은 대만 유학 기간 고궁박물관의 작품과 고구려 고분벽화, 둔황석굴 등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고유한 회화 방식으로 본질적·물성적 특성을 드러낸다. 당시에 벽화 영역을 새롭게 끌어와 포스트모던 미학 개념을 함축시킨 독자적인 작품 세계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으며,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근중의 그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작품이 [모란] 연작이다. 단순미에서 복잡미로 파격 변신한 올오버 페인팅으로 화면 전체에 꽉 들어찬 모란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모란꽃과 함께 만화에 등장하는 말풍선이 그려지거나[꽃세상(原本自然圖)], 의미가 모호한 알파벳, 또는 영어 단어로 ‘테마’에 방점을 찍는가 하면, 심지어 ‘로봇 태권V’[[꽃세상(原本自然圖)]]가 모란과의 상관관계를 가시화하며 전면에 등장하는 등 다양한 변주를 펼쳐낸다. ‘부귀영화’를 의미하는 꽃말 때문일까, 아니면 동·서양의 복합적이고 팝적인 새로운 미감과 집요한 감각의 놀라움 때문일까. 전시마다 반응이 좋은 까닭에 ‘꽃의 화가’로도 불린다.

김근중은 이러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인정받아 1990년 동아미술상, 1993년 토탈미술상, 2022년 안평안견창작미술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호암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1980년 후반부터 시작된 사실화, 추상화, 단색화로 이어진 작업은 2000년대 초부터 또다시 사실, 추상, 단색 작업을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 내면에 있는 욕망(사실화)과 감정(추상화) 그리고 정신(단색화)의 마음 상태(존재)를 상징과 환유로 드러낸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자유정신’에 기반해 동양화를 현대화로 계승·발전시켜 나아가는 중이다.

본격적인 화업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나?

“1986년 대만 문화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이후를 (화업의) 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 유학 이후 동양 정신을 현대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수묵 풍경의 추상적 작업에 천착했다.”

화가의 ‘창작 태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었나?

“대학원 논문을 쓰면서 동양화 작가로서 과연 무엇을 주제로 그림을 그릴까 고민하게 되면서 ‘동양 정신’이란 무엇일까 그 의미를 깊이 사유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양(한국) 정신이란 바로 ‘자유정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나의 예술의 길에 ‘창작 태도’를 결정하게 될 만큼 많은 영향을 주었다.”

수묵화 일색이던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계승·발전


▎김근중의 작품은 사실, 추상, 단색화의 변화 흐름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반복적인 변화를 통해 그는 존재(Natural Being)라는 본질을 작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길을 치열하게 모색한다. 2023년 작 [Natural Being(新夢遊桃源圖)] (116.9x91) / 사진:김근중
동양화를 전공했지만 동양화 같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알려졌다.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나의 체질 내에 이미 한국적인 것이 녹아 있다. 내가 그리거나, 만들거나, 조형화하면 한국적인 것이 고스란히 계승·발전된 것이라고 자각하고 작업을 해왔다. 내 그림이 ‘서양화적이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야말로 진정으로 계승을 바르게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국 레지던시 갔을 때 작품 프레젠테이션을 했더니 다들 너무나 동양적이라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우물 밖의 넓은 시각으로 봤을 때, 동양적이라고 인정받으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동양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앞서 밝혔듯이 ‘동양 정신’은 곧 ‘자유정신’이다.”

초기 작품은 수묵 풍경으로 시작해 점차 상징적이고 추상적인 형상으로 많이 변화했다.

“군대 제대 후 일랑(一浪) 이종상 선생님이 밖에 나가서 스케치를 하라고 강조하셨다. 그래서 광화문이나 명동도 가고, 외곽으로 나가 산과 들 풍경을 스케치하는 등 사실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다. 먹으로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사실적인 것이 갖는 한계가 있었다. 이후 몇 년간 수묵을 사용해 풍경을 추상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수묵화가 체질에 맞지 않아 현대적인 재료를 사용한 작업을 하고 싶어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여러 실험을 거치면서 벽화가 체질과 성향에 맞아 점차 전통벽화의 현대적 해석에 몰두하게 되었다.”

‘벽화’ 연작은 대만 유학시절에 본 고궁박물관 작품과 고구려 고분벽화, 둔황석굴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가장 중점을 둔 요소는?

“돌가루와 자연재료를 사용했는데, 재료에서 나오는 물성 느낌을 제일 중요시했다. 앞으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할 때도 돌가루나 자연재료에서 나오는 물성 느낌이 장점이 되고 그게 나를 어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본다. 1990년 초 실제로 벽화를 대면하면서 장대한 스케일, 화려한 컬러와 예술정신에 감동을 받았다. 훼손된 곳을 짚과 진흙으로 보수하거나 그림이 떨어져 나가 희미한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는 벽면에 매료됐다. 화려한 수식이 사라진 빈 공간이 오히려 더 깊은 말을 하는 듯한 느낌에 영향을 받아 나의 그림에서 형상을 지속적으로 지우고 사라지게 만들었다.”

단색의 무미건조함 탈피하려 모란 그리기 시작


▎모란꽃을 즐겨 그려 ‘꽃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김근중의 모란 연작은 강렬한 모란꽃과 함께 로봇 태권V 등 캔버스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변주로 경쾌함과 이채로움을 준다. 2020년 작 [Natural Being(꽃세상. 原本自然圖)] / 사진:김근중
‘꽃의 화가’, 특히 ‘모란꽃 화가’로 불린다. 모란을 처음 그리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단색계열 작품의 무미건조함과 콘셉트가 반복되는 것에서 오는 지루함, 생기가 사라진 그림을 지속한다는 것이 나를 억압하고 답답하게 했다. 그래서 화면에 가득 찬 올오버 페인팅을 하고 싶어 소스를 찾아다녔다. 어느 날 전시 중인 민화 전에서 12폭 모란 병풍을 보는 순간 영감을 받아 모란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사실 모란과의 인연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다. 대학 1학년 때 덕수궁 모란밭에 나가 그린 첫 작품이 모란 채색화였다. 또 대만 유학 시절 고궁박물원에서 본 오대시대 모란 그림의 뛰어난 작품성이 추억의 갈피처럼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모란 연작은 사실적인 작품과 추상 작품, 단순화된 미니멀 작품까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사실적 모란이 백화가 만발하는 봄과 여름이라면, 추상 작품은 무르익어가며 기운이 해체되어가는 가을을, 미니멀 작품은 만물 회귀의 겨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작품들은 비록 모양은 다르지만, 주제와 내면은 동일하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五蘊), 즉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 중 ‘색수상’에서 비롯되었다. 색(色)은 욕망, 수(受)는 감성 또는 감정, 상(想)은 생각이나 이념을 나타낸다. 세 가지 의식들이 자연스레 작품의 형상을 다르게 만들었다.”

대만 유학 시절 각별했던 은사와 찍은 사진 기억에 남아


▎김근중은 1980년대 대만 유학 시절 자신을 각별히 아끼고 지도해준 나쯔랑(오른쪽) 교수와 찍은 사진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으로 꼽았다. / 사진:김근중
지금까지의 화력을 돌아보면 1986년 시작된 사실, 추상, 단색화 작업이 2004년부터 또다시 사실, 추상, 단색화로 반복되고 있다.

“대상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통해 구현한 꽃 연작이나 추상 표현 작업, 그리고 단색화는 조형 어법만 다르지 실은 하나다. 삼라만상, 즉 존재에 대한 상징이고 환유이며 누구나 내면에 상존하고 있는 욕망(사실화), 감정(추상 표현), 정신(단색화)의 마음 상태를 드러낸 것일 뿐이다. 마음은 그 한계나 명확한 구분이 애매하다. 이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변모하는 동안 존재(Natural Being)라는 본질을 작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길을 치열하게 모색해왔다. 작품의 주제나 콘셉트 또는 조형 언어와 사용 매체 등은 궁극적으로 그것을 통해 에고에 걸려 있는 업을 풀어 안심(安心), 즉 자연(自然)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이 있다면?

“대만 유학 시절(1983~1986년) 은사님인 나쯔랑 교수님과 찍은 사진이다. 세계적인 옥기(옥으로 만든 그릇) 전문가이자 대륙의 문물을 모두 대만 고궁박물관으로 가져오신 책임자였다. 그 당시는 유학 초창기라 한국 학생이 두 명밖에 없었는데, 특히 관심을 갖고 나를 지도해 주셨다. 나쯔랑 교수님 댁에서 차를 마시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청동기시대 옥벽 등에 대해 수업을 듣거나 고궁박물관에서 수업을 들었는데, 유학 시절을 생각하면 그분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학자로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분이셨지만, 그보다는 제자들을 친자식처럼 아껴주신 점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 JOA(조정화) -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순수사진으로 석사 학위를, 조형예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몇 차례 개인전을 열고, 광주비엔날레 등 다수 국내외 그룹전에 참여했다. 단국대, 상명대 등에서 20여 년간 강의하면서 [포토닷], [디지털카메라매거진], [미술세계], [월간중앙] 등에 예술 관련 연재와 기고 글을 써오고 있다. 저서로는 [그래서 특별한 사진 읽기](2020년)가 있다.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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