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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개관 30주년 전쟁기념관에서 만난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평화와 통일은 시대정신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전쟁기념관은 미래 세대 지도자가 갖춰야 할 평화와 통일의 의지 채우는 공간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은 외교안보 위협 요소… 섬세하고 균형잡힌 외교 필요


▎전쟁기념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이 월간중앙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전쟁기념관 입구에 들어 서면 마주하게 되는 평화의 광장, 그 양쪽 분수연못에 BTS가 있다. 글로벌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과 이름이 같은 징검다리 ‘브리지 오브팀스피릿(Bridge of team spirit)’이다. 공교롭게도 BTS 멤버 7명 전원이 군생활을 하고 있는 2024년 5월, 전쟁기념관에 징검다리 BTS가 놓이게 된 것이 우연일까? 유쾌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명 센스는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의 아이디어다. 실제 BTS 소속사로부터 ‘명의 도용 의혹’으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이런 화제성 덕에 전쟁기념관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야말로 백회장이 원하던 바였다. 국가 공공기관이면서도 전쟁기념사업회라는 이름 때문인지 소규모 시민단체 등으로 오해를 받는 일이 생기다 보니, 홍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 작년 4월 회장 취임 후 딱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전쟁기념사업회를 알리고 전쟁기념관과 어린이박물관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홍보 전략부터, 내부 콘텐트 재정비, 공공외교 기능 강화 등에 힘써왔고, 이제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는 중이다.

백승주 회장은 연구원 출신이다. 1990년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사회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제40대 국방부 차관, 제20대 국회의원, 국민대 정치대학원 석좌교수,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위원,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안보분과위원회 상임자문위원 등을 거치며 자신만의 학술적·정치적 영역을 다져왔다. 2023년 4월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으며 정계를 떠난 지 1년째. 마침 올해 전쟁기념사업회의 대표 기관 중 하나인 전쟁기념관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맡은 지 1년이 됐다.

“일을 만들어서 하는 사람이다 보니, 교육 프로그램 신설부터 우리 회를 알리는 홍보까지 이것 저것 많은 것을 시도했고 효과도 봤다. 23년간 국방연구원으로 있었던 관변학자적 경험과 국방부 차관 시절의 경험, 치열한 선거 경선의 경험 등이 많은 도움이 됐다. 특히 종합행정을 하는 자리였던 국방부 차관시절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분주하게 살았던 인생의 경험들이 기관장을 하면서 적절한 쓰임새를 찾아 마무리되는 느낌이다.”

“전쟁기념관, 미래 지도자의 씨앗이 자라는 공간”


▎미 국방장관 로이드 오스틴이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헌화하는 모습을 백승주 회장이 바라보고 있다. / 사진:전쟁기념관
전쟁기념사업회에선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달라.

“전쟁기념사업회는 유니크하고 독보적인 국가기관이라 할 수 있다. 기능은 크게 네 가지인데 첫째, 전쟁기념관 운영. 둘째, 미래 시대를 이끌 어린이를 위한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 운영. 셋째, 교육 프로그램과 아카데미 운영. 마지막으로 공공외교 기능이다.”

공공외교 기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하는가?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부터 외국의 VIP들이 공식 일정으로 항상 들렀다 가는 곳이 바로 여기 전쟁기념관이다. 이곳엔 이 땅에서 일어난 최대 비극인 6·25 한국전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 양 옆으로 놓인 회랑 공간이 있다. 참전국의 장관, 총리, 상원의원, 주지사, 하원의원 등이 모두 그곳에 들러 추모의 시간을 갖고 돌아간다. 공공외교가 중요한 이유는 그 나라와의 방산협력과 현황, 지도자들의 의중과 태도 등을 살필 수 있어서다. 공식석상에 비해 덜 딱딱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한국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어 외교적으로 큰 도움이 될 때가 많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전쟁기념관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어떤 의미가 있나?

“이곳은 옛날 육군본부 자리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나온 그 지하 벙커가 있던 곳으로 약 3만7000평 규모다. 훨씬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청나라군이 주둔했던 곳이고, 지금은 미군이 자리하고 있다. 주로 외국의 군대가 주둔했던 역사적인 곳이다. 전쟁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수행하는 것이다. 때문에 전쟁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국가란 무엇인지,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전쟁에서 졌을 때는 어떻게 되는지 등을 알게 된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레 국가의 리더가 되는 공부를 하는 것이다. 특히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을 통해 미래의 우리나라를 이끌 지도자의 씨앗이 뿌려진다고 생각하면 의미가 아주 크다.”

현재 또는 가까운 미래에 최우선 추진 사업이 있다면?

“전쟁기념관, 또는 전쟁기념사업회만이 할 수 있는 사업들을 발굴해서 하는 것이다. 전쟁의 교훈을 바탕으로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통일의 길을 만들어간다는 취지의 교육 프로그램 ‘W아카데미’를 강화하려고 한다. 전쟁, 안보, 평화를 주제로 하는 강연회 ‘용산특강’도 이어갈 예정이다. 특정 방송사와 업무협약을 맺고 중계하는 것도 구상하고 있다. ‘나지포럼(나라를 지키는 포럼)’ 같은 학술 프로그램도 최근 1회를 시작했으니 지속할 거고, 창의적인 주제로 상설전시도 하나 더 만들 예정이다. 아카이브 사업도 구상 중이다. 해외에서 한국전쟁이나 한국을 연구하는 현지 학자들을 해외자문위원으로 위촉해 활용하는 플랫폼 작업이다. 그들만 한 전문가가 어디 있겠나? 우리가 단 며칠간의 해외 출장으로 현지 관공서나 교수들로부터 관련 자료를 찾으려면 굉장히 어렵고 성과도 기대에 못 미친다. 그럴 때 그들에게 임무와 명예를 주고 그들의 전문 지식과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거다.”

“기념관 방문 후 국가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게 목표”


▎전쟁기념관 외관의 야경. / 사진:전쟁기념관
정기 강연회 ‘용산특강’ 강사들 이력이 화려하더라.

“특강 이름을 정할 때도 ‘용산시대 용산특강’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강연자들의 명성이 필요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 정승조 합동참모의장과 같은 분들이 직접 강단에 서면서 큰 도움을 줬다. 그분들의 전문 지식과 경험, 살아온 이야기들을 녹여서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고 반응도 좋았다. 지금은 젊은 층에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전쟁기념관과 어린이박물관을 합치면 연간 약 286만 명이 방문하는데, 이분들이 이곳에 왔다가 나갈 때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야 우리의 존재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나. 모든 교육 프로그램의 목적은 하나, 이곳을 방문하고 난 후 국가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지정학적인 특성이 외교안보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한반도는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접전지인 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충돌하면서 이념적으로 가장 예민한 지역이 됐다. 유럽에서 일어난 일이 한반도 분단이라는 큰 결과를 불러왔고, 지금은 또 러-우 전쟁으로 북한이 러시아와 긴밀해지면서 결국 통일의 여건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외교는 균형이라지만, 그것도 힘이 센 나라에나 해당하는 정의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외교적으로 항상 어려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6개월 후면 미국 대선이다. 결과에 따라 대응 시나리오를 예측해본다면?

“지난달 ‘글로벌 전쟁 상황 평가와 안보정세 전망’을 주제로 나지포럼을 열었다.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차관, 오성대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장, 박휘락 국민대 특임교수,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등 안보, 외교, 군사 분야 전문가와 석학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들었다. 거기서 특히 와 닿았던 내용이 있었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대해 우리가 호들갑스럽게 시나리오별로 분석해가며 대응하기보다 우리 스탠스를 정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안보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한·미동맹을 어떻게 관리할 계획이고 그 대가를 어떻게 치를 것인가? 또 한·미 동맹이 흔들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우리의 스탠스를 정하는 게 중요하지, 어느 나라의 정치적 상황이나 국내 정치의 흐름에 따라서 우리나라 안보가 흔들리면 안 된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는 그것대로 대비책을 마련해 두되, 우리의 방향성을 설정하고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래 우리 외교안보에 가장 큰 위협 요소가 무엇이라 보는가?

“북한이 핵무기를 믿고 국지도발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러-우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하면서 북한이 내부적으로 버틸 수 있는 힘을 갖춘 상황이 됐다. 한반도의 운명에 불리한 요소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우리가 외교를 더욱 섬세하게 잘해야 된다.”

한반도의 외교안보와 평화통일에 관심 가져야


▎에콰도르 국방장관 히안카를로 로프레도(가운데) 방문 시 전사자비가 놓인 회랑을 함께 걷고 있는 백승주 회장의 모습. / 사진:전쟁기념관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외교 문제 하나를 꼽는다면?

“현재로선 오커스(AUKUS) 문제로 좀 골치 아프지 않나. 미국·영국·호주 동맹인 오커스가 일본에 이어 한국의 참여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인데, 우리는 일본처럼 선뜻 응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남북통일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을 배척하게 되면 중국의 영향을 받는 북한과도 멀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통일의 걸림돌이 된다. 우리는 남북관계 관리 문제, 또 한반도 미래를 생각해야 하기에 미국이나 일본하고 전혀 다른 외교적 입장이다. 국제 정세를 무시할 수도 없으니 이럴 때마다 우리 외교가 간단치 않다. 다만 과거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측면에서의 섬세하고 촘촘한 외교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들은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다른 세대에 비해 실용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통일 문제는 세대나 여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통일에 대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헌법에 분명하게 적시된 ‘명령’이다. 한반도의 지도자는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지로 그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통일은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통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보나?

“희망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현재 북한에도 시장경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일명 ‘장마당’이다. 먹고사는 문제이기 때문에 장마당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주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한다. 그럴수록 노동당의 권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결정적 순간에 장마당이 노동당을 밀어내면서 통일이 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의 평화 유지를 위해 가장 우선해야 하는 일이 있다면?

“평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평화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 평화가 어떨 때 깨졌느냐 이런 부분을 봐야 하는데, 결국 힘이다. 국방력, 군사력이다. 섬세한 외교력도 절실히 필요하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인드’인 것 같다. 우리 사회가 점점 군(軍)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깝다. 우리는 분단국가이면서 휴전국가다. 이 땅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있다는 뜻이다. 50년 이상 평화가 유지되다 보니 전쟁 가능성에 대해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군과 군사시설을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부터 조성돼야 할 것이다.”

- 글 박세나 월간중앙 기자 park.sena@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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