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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문기자 박정호가 만난 세상] 페이스북에서 독자에게 뛰쳐나온 ‘활자중독자’ 김미옥 

“가난도 공황장애도 책으로 극복, 나는 독서선동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온라인 공간서 팬덤 일으킨 출판계 인플루언서, 독서 편력기 두 권 펴내
“책은 고단했던 내 젊음의 비상구… 뭐든 읽었다면 일단 한 줄부터 써라”


▎페이스북 서평가로 이름을 널리 알린 김미옥 씨. 북 콘서트 기획 등 오프라인 활동도 왕성하다.
여기 선동가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선동의 대상이 좀 특이하다. 바로 책이다. 지난 4월 15일 페이스북에 올린 그의 글을 보자. “책이 나옵니다. 에세이와 독후감이지만 결론은 ‘독서선동서’입니다”라고 적었다. 최근 기자와 마주 앉은 그는 “독서 부흥운동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칭 타칭 ‘활자중독자’인 김미옥(66) 씨다. 그만큼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김씨가 페이스북에서 예고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파란북)와 [미오기傳](이유출판)이다. 앞 책이 ‘활자만이 내 인생’이었던 그의 독후감 모음집이라면, 뒤 책은 ‘활자 없인 못 살아’로 버텨온 그의 좌충우돌 독서 성장기다.

사실 김씨는 출판계의 ‘듣보잡’이었다. 2019년 소셜미디어(SNS)에 한두 편 올리기 시작한 글이 주목을 끌더니 지금은 온라인 독서공간을 움직이는 인플루언서(파워맨)로 자리 잡았다. 소리 소문 없이 죽어가던 책이 그가 소개하며 새 생명을 얻은 경우도 많다.

김씨의 독서 편력은 파란만장, 오색찬란, 우여곡절 자체다. 아버지의 부도로 무너진 집안에서 원하지 않던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 각종 구박을 받으며 성장하고, 그럼에도 갖은 눈총과 멸시 속에서도 오직 책 하나만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절대 놓지 않았던 그였다. 사실 김씨의 반짝이는 오늘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의 나머지 90%는 어둡고 고단했다.

김씨는 두 책의 첫머리에 이렇게 썼다. “위태로운 청춘을 무사히 건네게 해준 것이 독서였다면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글쓰기였다. 글쓰기는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다.”([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때마다 나는 과거를 불러 화해했다. 쓰다 보니 웃게 되었고 웃다 보니 유쾌해졌다.”([미오기傳])

김씨의 고백처럼 그는 인터뷰 내내 유쾌했다, 또 긍정적이었다. 다소 부풀리면 ‘명랑소녀’를 닮았다. 온갖 역경을 거친 뒤에 찾은 여유랄까, 질문에 대한 답변에도 거침이 없었다.

페이스북 글쓰기 5년 만에 팬덤이 생겼다.

“읽고 쓰는 게 좋았다. 책과 글은 혼자 하는 행위인데 SNS에서 공개한 결과는 놀라웠다. 그래도 마음은 늘 처음 그대로다. 나는 혼자고, 읽고 쓰는 일은 결국 혼자일 수밖에 없다.”

연평균 800권을 읽고, 책 구입비도 800만원이라는데?

“정독할 책은 주로 오전에. 속독할 책은 오후에 읽는다. 장르 불문 남독형이다. 책 사는 데 더 많이 지출한 해도 있다. 출판사나 작가들이 신간을 보내주기도 하지만, 내가 구매하는 책이 더 많다. 나도 기호가 있다.”

‘읽는 인간’과 ‘쓰는 인간’ 쌍둥이


▎김미옥 씨의 신간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와 [미오기傳] 표지. 오른쪽은 그의 일상을 그린 최희정 씨의 일러스트레이션.
“읽고 싶은 책만 살 수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썼다. 이제 성공했나?

“기본적인 생존 문제도 해결되지 않던 시절의 표현이다. 빌리거나 서서 읽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책을 읽을 때보다 책을 다 읽고 덮을 때 성공했다는 중의적 느낌이다.”

‘읽는 인간’에서 ‘쓰는 인간’으로 달라졌나?

“예전에도 늘 글을 썼다. 지금과 다른 건 그때는 내 글을 다 삭제했다. 노트는 파기했고 온라인에 쓴 글은 지웠다. 자기검열이었다. 누구나 자기 글에 수치심이 있지 않은가? 그래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을 지독하게 혐오하면서 그래도 살아야 하는 인간처럼…. 읽기와 쓰기는 내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쌍둥이다.”

‘활자중독자’ 표현이 재미있다. ‘스타 서평가’ ‘소셜 권력자’란 세평은 어떤가.

“활자중독자는 예전부터 듣던 별명인데 마음에 든다. ‘스타 서평가’ ‘소셜 권력자’는 내 의도와 관계가 없는 호칭이다. 거품이 잔뜩 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터넷이 있든 없든 나는 변하지 않는다.”

자기 이름을 단 책은 처음이다. 그것도 두 권이다. 이제 제대로 평가받는 순간이다.

“솔직히 부담스럽다. 심경이 복잡하다. 어떤 글이든 결국 자신의 인생이 묻어날 수밖에 없다. 온라인의 글은 삭제하면 감쪽같이 사라지지만 종이책은 생명을 가진 유기체가 된다. 괜한 짓을 한 건 아닌지…. 책은 운명이 있으니 알아서 잘 살 것이다.”

문학을 전공하거나 특별히 글쓰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초등학생 때부터 책을 끼고 살았다. 책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 맞다. 누구의 지도를 받은 적도 없는 천둥벌거숭이였다. 혹평하면 더 잘 쓰려 노력할 것이고 호평하면 출판사가 손해 보지 않겠구나 위안할 것이다.”

서평과 개인사가 어울린 ‘공감의 글’


▎김미옥 씨에게 글쓰기를 권유한 고 김서령(왼쪽) 작가와 그의 글을 알아본 문학평론가 염무웅 교수. 오른쪽은 김씨가 인생의 책으로 꼽은 [죽음의 수용소]를 쓴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면서 비판도 많이 받았을 것 같다.

“글을 잘 쓰니 못 쓰니 좀 시끄러웠다. 왜 작가들이 독자의 글을 평가하는지 어리둥절했다. 황당하게도 작가가 독자를 공격하니 이해할 수 없었다. 더 이상한 건 내 글로 작가들끼리 서로 편이 갈라져서 다퉜다. 그때 문단에도 권력이 있다는 걸, 작가들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돈을 받고 서평을 쓴다고 모함하는 작가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코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내 글은 서평의 형식을 파괴한 독후감이다. 글은 차치하고 공격하는 대상이 형식이라 좀 놀랐다. 가장 진보적인 직업군이 작가인 줄 알았는데 보수를 넘어 수구로 보였다.”

그렇다. 김씨의 글은 학자나 교수, 평론가들의 서평과 사뭇 다르다. 그가 읽은 책에 대한 감상과 함께 본인이 살아온 얘기를 맛깔나게 버무려 ‘사람의 향기’가 묻어난다. 이른바 공감의 영역이 넓고 깊다. 예컨대 시인 박미산은 “나도 책을 읽는 사람이지만 내 전공만을 읽는다. 김미옥은 전공과 무관하게 종횡무진이다. 그러면서 적확하게 읽어낸다. 불가사의하다”고 했고, 김민환 고려대 명예교수(소설가)는 “김미옥은 온라인 서평계의 여신(Queen)과 같다. 독서의 폭이 넓고, 글도 잘난 체하지 않는다. 흡입력이 크다”고 추켜세웠다.

일반적인 북리뷰와 색깔이 다르다.

“내 독후감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서평의 형식을 취하지 않는 이유다. 서평은 책을 사고 싶은 구매욕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론이나 해설을 닮은 서평에 현학적인 용어가 난무하는데 누가 그 책을 사고 싶겠는가? 내 글에 일상이 들어가는 건 일종의 무장해제다. 글이 뻣뻣하고 독야청청하면 독자들은 뒷걸음친다. 저의 서평은 독서 선동이다.”

독서 선동, 과격하다. 어떤 의미인가?

“아픈 기억의 통각점을 녹여서 글을 썼는데, 이래도 안 읽을 생각이냐는 반어적 표현이다(웃음). ‘곰국’에도 비유했다. 술래잡기하듯 아픈 기억을 찾아냈고, 과거를 푹 고아 우려낸 글이라는 뜻에서다.”

북튜버, 북인플루언서가 출판 마케팅의 주요 통로가 됐다.

“출판의 상업성을 부정할 순 없지만 출판 논리가 문학 논리를 지배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내돈내산’으로 쓴 독후감이 필요하다. 마케팅이 아무리 뛰어나도 입소문은 무시할 수 없다. 요즘 독자들은 예전의 독자들이 아니다. 세대별 취향이 다르고 안목도 대단하다. 아무리 포장해도 귀신같이 알아낸다.”

작은 출판사의 무명작가에 주목


▎조선시대 궁중화원 이택균의 ‘책가도(冊架圖) 병풍’. 조선시대 문치(文治)의 전통을 보여준다.
무명작가나 중소 출판사 책이 많이 보인다. 책을 소개하는 기준이나 원칙이라면?

“유명작가의 책은 너도나도 글을 올리고 소개한다. 내 기준은 알려지지 않았거나 덜 알려진 작가다. 다른 말로 ‘작은 출판사, 무명작가, 그러나 좋은 작품’이다. 출판시장의 자본주의가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출판사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을(乙)의 반란’쯤으로 이해해달라.”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추세다. 지난해 국민독서실태조사에서 성인 중 1년에 한 권이라고 읽은 사람이 43%에 그쳤다.

“어느 시대에나 책을 안 읽는다는 불평이 있었다. 디지털 세대인 젊은 층은 더 심각한 것 같다. 그러나 책의 물성도 독서의 한 부분이다. 책은 인류가 생긴 이래 가장 고전적이면서 유용한 지식의 전달체계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문명이 파괴돼도 책은 살아남을 것이다.”

반면 글쓰기 책에 대한 수요는 늘고 있다. 역설이다. “읽었다면 한 줄이라도 써라, 모든 글쓰기는 그렇게 시작한다”고 권했다.

“누구나 자신의 생을 기록하고 싶은 충동이 있다. ‘쓰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서’ 쓰는 작가가 아니어도 어느 정도의 글은 쓸 수 있다. 무식할 정도로 매일 쓰고 또 쓰는 것이다. 중세의 사형집행인이 50년간 기록한 일기에 관해 쓴 [뉘른베르크의 사형집행인]이란 책도 있다. 문체는 상관없다. 일단 자신을 진솔하게 글에 실어라. 쓰다 보면 글이 글다워지기 시작한다.”

김씨는 또순이다. 오뚝이다. 나아가 억척어멈이다. 초등 6학년, 열세 살 때부터 제과공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입주 과외를 하며 중고등 과정을 마쳤고, 학원 강사를 하며 대학을 다녔다. 공무원(국토부·서울시) 생활 30년에 결혼해서도 집안 살림을 이끌었다. 작은 금형공장을 운영했던 선친의 영향 때문인지 웬만한 공구도 능숙하게 다룬다. “비록 문과생(행정학 전공)이지만 뼛속까지 공순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가난하게 컸지만 그늘이 안 보인다.

“평범해지는 게 꿈이었다. 가난은 감추려 해도 드러나게 마련이다. 놀림을 당하기 십상이다. 페이스북을 보고 내가 부유하게 성장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약점을 잡히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힘겨웠던 60년 시간을 이번에 낱낱이 드러냈는데?

“나이가 드니까 뻔뻔해진 것 같다. 어려서부터 저를 환경과 분리해 객관화하는 게 습관이 됐다. 어릴 적 부모님이 죽자사자 싸울 때도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저건 음악이다, 음악이다’ 하며 최면을 걸었다.”

초등 6학년 때 담임선생님 얘기가 각별하다.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공장 다니느라 학교에 갈 수 없을 때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수양딸 삼겠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막내딸이 돈을 벌어야 한다면서 거절했다. 슬펐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도감을 느꼈다. 초등 4학년 땐 문예반장을 하면서 학급문고에 있는 모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한국단편문학선’도 있었다. 이후 손에서 책을 놓은 적이 없었다.”

김서령 작가의 권유로 본격 글쓰기


▎김미옥 씨에게 서평은 그를 키워준 세상에 보답하는 밥 한 그릇과 같다.
페이스북에 글을 쓰게 된 동기는?

“2018년 타계한 김서령 작가가 오래전부터 글을 쓰라고 권하셨다. 2000년대 초반부터 철학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알고 지냈는데, 그가 투병 중이란 소식을 듣고 낯선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그녀에게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다. 그전에도 공부 모임 홈페이지에 글을 발표했는데, 거의 다 지워버린 상태였다.”

아무래도 문학 관련 글이 다수다. 시나 소설 등 창작엔 뜻이 없나?

“문학평론가 염무웅(영남대 명예교수) 선생님이 내 글에 서사성이 있다며 소설을 써보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언젠가 쓰고 싶다.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거운 얘기를 강요하고 싶지 않다. 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작품을 꿈꾼다.”

공황장애를 20년이나 앓았다고 했다.

“가사와 직장, 육아 등이 겹치며 몸에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 한때는 삶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철이나 터널에 들어가면 숨을 쉬지 못할 정도였다. 다행히 읽거나 쓰면 주변 상황을 완전히 잊을 수 있었다. 몰입의 힘이랄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공황장애에서 벗어났다.”

가난·차별·학대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따뜻한 눈길이 도드라진다.

“대학 시절 사흘을 굶은 적이 있었다. 그때 술집에 나가던 옆방 언니가 김치찌개에 밥 한 그릇을 놓고 간 적이 있다. 평생 그토록 맛있는 밥은 없었다. 그 밥 한 공기가 나를 살렸다. 내가 세상에 돌려줄 수 있는 것은 그런 밥 한 공기가 아닐까. 무명작가들의 북토크를 50여 차례 열어온 것도 그런 보은의 차원에서다.”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원고를 불태워라”는 시인 백석의 유언도 소개했다. 만약 무덤까지 가지고 갈 책 하나를 고른다면?

“굳이 태우라고 하지 않아도 내 글은 자동 소멸할 것이다. 내가 뭐 대단한 작가도 아니니까…. 무덤에 가져간다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다. 아우슈비츠 소용소에서 살아난 정신의학자 빅터 프랭클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사람들을 주목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박스기사] 여성을 읽다… ‘58년생 김미옥’의 추천서 세 권


‘58년생 김미옥’은 ‘82년생 김지영’보다 한 세대쯤 선배다. 여성을 옥죄는 한국 사회의 각종 차별을 앞서 겪었다. 아니 더 심하게 앓았다. 김씨가 이 시대 여성, 나아가 남성에게 보내는 추천서 세 권이다.

1. 인권의 발명(린 헌트 지음, 교유서가): 역사학자인 헌트 교수는 인권이 18세기에 발명되었다고 말한다. 노예해방운동이나 프랑스혁명의 기원을 정치적 사건이 아닌 대중소설에서 찾았다. 문학이 인간의 공감 능력을 키우고 인권을 발명하게 만들었다는 관점이다.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다른 것‘에 대한 방어기제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었다. 낯선 것에 대한 혐오와 배척은 일례로 빈민, 소수자와 약자, 다문화가족, 외국인노동자 등에게도 나타난다. 문학이 타인의 공감을 불러 인권 혁명에 이르게 했다는 논리가 신선하다. 공감은 가장 확실한 연대의 원천이다.


2.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옌스 안데르센 지음, 창비):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로 미혼모, 소수자, 사회 활동가로 살았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일대기다. 아이를 뺏기지 않으려는 10대 미혼모의 싸움이 억압과 불의의 사회적 폭력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여성과 약자에 대한 권리 투쟁으로 스웨덴의 정치 체제마저 변화시킨다.

체제에 순응하며 살던 인간은 언제 의식화되는가? 표면에 비친 승자의 이야기 너머 평생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던 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에 의미를 둔다.


3. 회상(나데쥬다 만델슈탐 지음, 한길사): 지은이는 러시아 국민시인 오시프 만델슈탐의 아내다. 스탈린에게 ‘인민의 적’으로 찍힌 남편이 고문으로 사망하자 남편의 원고를 끊임없이 필사하고 암기했다. [회상]은 부조리한 시대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증언한 투쟁의 기록이다.

아내는 잊힌 남편의 시를 필사본으로 러시아 대중이 읽게 했고 작품 원고를 미국 프린스턴대학에 기증했으며, 남편의 생애와 창작에 관한 두 편의 회고록을 집필했다. 죽은 남편을 살려낸 아내도 흥미롭지만, 그녀의 의식이 단순한 조력자나 유명 작가의 배후가 아니라는 데 있다. 무대 뒤의 희미했던 후광이 앞으로 펼쳐지는 인생의 묘미라니!

- 글 박정호 월간중앙 기획위원 park.jungho@joong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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