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Home>월간중앙>사람과 사람

[법조 뉴리더] 리걸테크 개발한 ‘서화담’ 이세원 변호사 

“재판 행정 절차 자동화로 변호사 고유 업무 집중 가능”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리우 프로그램’, 사람에 의존하던 송무 과정을 자동화
사건 판례 찾아주는 리서치 리걸테크도 개발됐으면…


▎이세원 변호사 (법률사무소 서화담)은 송무 과정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 ‘LIU’(리우)를 개발했다. 그는 “변호사의 업무는 철저하게 아날로그로 가되, 행정절차는 디지털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청역 번화가 대로변에 있는 ‘법률사무소 서화담’을 찾았다. 얼마 전 서화담 이세원 변호사(48·연수원 37기)가 ‘리걸테크’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한 게 발단이었다. 법조계는 그 어느 업계보다도 보수적인 곳이다. 그 흔한 버스 광고조차도 금지돼 있다. 전자소송이 온라인화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재판과 관련한 송무 절차는 달라진 게 없다. 그를 만나면 흥미로운 얘기를 들을 수 있겠다는 직감이 왔다.

그가 개발한 리걸테크는 송무 과정을 자동화하는 ‘리우’(LIU)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법조계는 법원의 재판 일정과 조사 기일, 서류 제출 목록 등의 과정을 일일이 전담 직원의 손을 거쳐 처리해왔다. 반복적이면서도 상당한 집중을 요구하는 업무다. 찰나의 실수나 오류가 로펌이나 의뢰인에게 커다란 손해를 안기기 때문이다. 모 변호사가 학교폭력 피해 사건의 법원 일정을 누락해 재판에 불출석하면서 패소한 사례는 그래서 더욱 화제가 됐다. 이 변호사는 “행정 절차에는 필연적으로 ‘휴먼 오류’가 발생한다. 이러한 부분을 완전히 없애는 동시에 변호사 본연의 업무에 더 집중하기 위해 리우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라고 밝혔다.

일반적인 변호사 사무실과 분위기가 다르네요. 카페나 스타트업 사무실 같은데요?

“의뢰인은 통상 변호사 사무실에 올 때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위축돼 있습니다. 그래서 의뢰인이 충분히 자신의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했죠.”

그러고 보니 변호사실에 이름표도 없네요.

“그것도 그렇고, 저희는 변호사실에 명패도 두지 않습니다. 그런 사소한 인테리어가 위압적인 분위기와 맞물려서 의뢰인을 주눅 들게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의뢰인 친화적 분위기의 법률사무소


▎법률사무소 서화담 내부.
너무 격이 없으면 의뢰인에게 휘둘릴 수 있다고 보는 변호사들도 있습니다.

“변호사는 의뢰인을 위해 일해야 하는 입장인데, 저희가 위압감을 준다면 의뢰인이 본인에게 약점이 되는 내용이나 껄끄러운 부분에는 침묵할 수 있어요. 나중에 재판 가서 불리할 수 있죠. 그러니 의뢰인과의 맨투맨 관계에서 저희가 좀 더 변호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기업 분쟁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제가 삼성 법무팀에서 사내 변호사를 했습니다. 개업할 때 가장 잘한 분야를 그대로 이어가는 게 아무래도 낫겠다고 판단했죠. 예전에 쌓은 경험치가 현재 업무에 반영이 안 되면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직전까지 제가 잘해왔던 일을 계속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리고 통계적인 이유도 있습니다. 법원에서 발간하는 사법연감을 보면 매년 새로 발생하는 사건이 100만 건인데, 그 가운데 소송 대리가 붙는 건은 5만 건에 불과합니다. 결과적으로 4만 명의 변호사가 5만 건을 수임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인 겁니다. 레드오션이죠. 이런 점을 고려해서 법조계도 기업 법무 쪽으로 변호사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인데, 제 경력과 잘 맞아떨어진 셈이지요.”

업계 실상은 어떠한가요?

“기업 분쟁 사건을 다루는 대형 로펌이 내놓는 의견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면책 조항’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의뢰인이 제공한 자료의 불안정성이나 한계, 또한 기업 내 여러 사안을 고려해서 로펌이 의견은 주겠지만 기업이 겪는 법적 사건에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면책 조항이 거의 부동 문자처럼 들어가 있고 실제로 기업 분쟁에서 결론을 확실하게 내려주는 곳은 별로 없습니다. 대체로 의견만 제시할 뿐 의사결정은 기업 측에 떠넘기는 식이 많죠.”

그렇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큰돈 들여가며 로펌에 의뢰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기업 측에선 로펌의 의견을 받더라도 자신들의 이슈를 해결할 수(手)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재차 변호사에게 연락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데 의뢰인 입장에선 너무 별로지요. 또 애매한 내용의 의견서를 윗선에 보고해야 하는 실무자도 고역일 수밖에 없고요. 큰돈 들였는데 고작 이 정도 내용을 가지고 왔느냐는 질타를 받게 되니까요.“

그러면 기업 측에서는 로펌을 선택한 실무자에게 책임을 지우겠네요?

“그것도 일종의 역량으로 보는 거죠. 그러다 보니 저희는 기업 업무를 할 때 저희가 기업의 법무팀이라는 생각으로 업무에 임합니다. 기업 내 이슈의 실무자나 담당자보다도 더 많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자 노력하고, 기업 측에서 원하는 결론이 있는지를 물어봐서 법률적으로 가능한지를 확실하게 판단해줍니다. 기업 측에서 원하면 회의자리에 배석하기도 하고요. 왜냐면 저희 의견서를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의했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으니까요.”

변호사 입장에서는 소위 말해 ‘가성비’가 좀 떨어지는 거 아닌지요?

“단기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아니죠. 저희에게 의뢰를 맡긴 기업 측과 신뢰관계가 쌓이면 그 후에도 저희를 찾게 되니까요. 기업 분쟁 건이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송무 과정 자동화 프로그램 ‘리우’(LIU)


▎‘리우’(LIU)를 소개하는 책자 중 일부. / 사진:법률사무소 서화담
이 변호사를 잘 아는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 그가 모임에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 뭐 하고 사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변호사 업무에 집중하랴, 프로그램 개발에 신경 쓰랴, 정신이 없었다”며 웃어 보였다. 그가 개발한 프로그램은 송무과정을 자동화하는 ‘리우’(LIU)다.

‘리우’(LIU)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의뢰인과 법원 간 의사소통(송무 과정)을 자동화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동안 법조계는 법원의 재판 일정이며 제출할 자료, 조사 기일 등을 사실상 ‘수기’로 처리해 왔습니다. 중간에서 사람 써가며 온갖 사건의 법원 서류를 의뢰인에게 전달해온 것이지요. 이런 업무의 특징은 난도가 높지 않고 반복적이지만 절대 실수나 문제가 발생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냉정하게 보자면 노력을 기울이는 것에 비해 성과는 없는 업무이지요. 그래서 이런 일체의 과정을 간소하게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개발했습니다.”

최근 모 변호사가 학교폭력 피해 사건을 수임하고도 재판 일정을 놓쳐서 패소한 어처구니없는 사례가 있었죠.

“문제가 터졌을 때 반대급부로 오는 피해가 너무도 큽니다. 비단 변호사뿐만 아니라 사건을 맡긴 의뢰인 입장에서도 특히 그렇죠. 결국 송무 과정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것이냐, 특히 대형 로펌이 아니라 소규모의 법률사무소는 인력에 따른 지출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요. 송무 전담 직원까지 둬야 하니까요. 사건이 많아지면 직원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늘어나게 되고 그러면 필연적으로 ‘휴먼에러’가 발생하거든요. 그래서 의뢰인을 좀 더 전문적으로 지원하면서 서면 작성 등 변호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방향을 좇다 보니 AI에서 답을 찾게 된 거지요.“

이 변호사는 실제로 리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기자에게 보여줬다. 법원에서 사건 관련 알림이 법률사무소로 전달되면 곧바로 의뢰인에게 메일로 전달되는 시스템이었다. 의뢰인이 반드시 파악해야 할 내용은 붉은색으로 체크박스까지 기입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래도 AI가 하는 일이다 보니 시스템상 결함에 대한 우려나 걱정도 있을 듯한데요.

“개발이 끝난 시점에 실전 투입을 해야 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저희 사무실에서 베타테스트를 해봤습니다. 이미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을 갖고서 이 프로그램이 제대로 구동되는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사건을 수임 중인 몇 군데 기업 측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돌려봤어요. 그리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기업 측은 송무 직원을 썼던 때와 프로그램을 구동한 때의 차이를 못 느끼더라고요.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메일이 빨리 온다는 거였죠.”

그럼 성공적인 것 아닌가요?

“그렇죠. 제가 원하던 피드백이었어요.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람을 쓸 때의 퀄리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얘기였으니까요. 거기다가 업무 속도까지 빨라졌으니 더할 나위 없었죠.”

“변호사와 디지털은 상호보완적 관계”


▎법률사무소 서화담은 고객 친화적인 분위기 조성을 위해 차분한 느낌으로 인테리어됐다. 사진은 서화담의 변호사들. (왼쪽부터) 문은정, 이예지, 이세원, 김희원 변호사.
그럼에도 법조계나 의뢰인 입장에선 AI를 쓰는데 심리적인 장벽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의뢰인들은 오히려 반기는 편이죠. 재판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한데 로펌에서 연락이 안 와 도리어 문의 전화를 하는 경우가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로펌 측은 장벽이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인력비용이 절감되는 문제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모로펌 측과 미팅을 가졌는데 대표 변호사, 전산실장, 총무팀장 이렇게 나왔더라고요. 그때 총무팀장이 반대했어요. 기계보다는 사람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결국엔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얘기예요?

“요즘 학교에 가보면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철저하게 아날로그로 가더라도 교무실에서의 행정절차는 디지털화로 진행되잖아요? 10여 년 전과 확연히 달라졌죠. 법조계도 그래야 합니다.”

프로그램은 현재 상용화 단계인가요?

“지난해 2월에 제작을 끝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1년 동안 안정화 기간을 거쳤고. 지난 4월부터 외부에 배포할 수 있는 상황이 됐죠.”

송무 과정 외에도 AI가 법조계에 개입할 분야가 있을까요?

“의뢰인의 사건을 해석하고 법률적인 판단에 따라 재판부를 설득하는 일은 결코 기계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건과 관련된 판례를 찾아주는 리서치 기능으로서의 리걸테크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송무 과정처럼 리서치에 소요되는 시간도 적지 않거든요.”

- 글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 사진 최영재 기자 choi.yeongjae@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