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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 나무 (20) 화순 학포당 은행나무… 실패한 개혁 자취 깃든 老巨樹 

개혁정치 꿈꾸던 양팽손의 서재 지켜 

외부기고자 글·사진=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개혁의 꿈으로 일생을 바친 선비들의 꿈이 살아 있는 화순 학포당 은행나무. 은행나무 줄기에 오롯이 남은 세월의 자취. 은행나무가 우뚝 선 화순 학포당의 원경. 그들은 오동나무 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 새겼다. 얼마 뒤 꿀을 찾아 모여든 벌레들이 그 꿀이 묻은 잎을 갉아먹었다. 이 글씨를 놓고 그들은 “주(走)와 초(肖)를 합하면 조(趙)가 된다”며 “장차 조씨가 왕이 될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임금에게 고했다. 바로 조씨 성을 가진 사람 가운데 가장 위험한 인물, 정암 조광조(趙光祖·1482~1519)를 엄중히 벌해야 한다는 조광조 반대파들의 모함이었다.



자신도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올랐던 중종(中宗)은 조광조와 뜻을 같이하는 이들의 벼슬을 빼앗고 귀양 보냈다. 이어 중종은 조광조에게 유배 한 달 만에 사약을 내렸다.워낙 매서웠던 피바람은 사람들이 조광조의 시신을 거두는 일에도 선뜻 나서지 못하게 했다. 그때 조광조보다 여섯살 아래였던 학포 양팽손(梁彭孫·1488~1545)은 아무도 몰래 조광조의 시신을 거둬 인근에 은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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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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