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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치면 싸게 산다 

중고쇼핑몰 방문자 급증 … 물물교환 사이트 두 달 만에 회원 1만 명 돌파
공동구매·물물교환·중고장터 인기 

박은경 객원기자·siren52@hanmail.net
알뜰한 주부들은 돌잔치도 공동구매한다. 포털사이트 게시판엔 물물교환 제안이 부쩍 늘었다. 물물교환 전문 사이트도 생겨났다. 물품뿐 아니라 지식과 경험도 맞교환하도록 마련된 인터넷 장터 완두콩닷컴은 개설 2개월 만에 1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불황이 빚어낸 새로운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북스리브로 서울 을지점의 헌책방 코너. 북스리브로는 올해 초 을지점, 분당점 등 4개 매장에 헌책방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최악의 세계경제 불황이라는 요즘 사람들은 단돈 100원도 쓰기 겁내며 지갑을 꽁꽁 닫고 있다. 하지만 주머니가 얇고 마음이 허할수록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이 많은 게 사람들 심리다. 돈 쓰기는 무섭지만 꼭 필요한 물건을 안 살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한 사람들이 최근 공동구매, 물물교환, 중고장터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경품으로 받은 닌텐도 위와 MP3플레이어를 중고장터에서 팔려고 합니다. 중고장터에서 물건을 팔 때 몇 개까지 팔 수 있나요? 이용해보고 괜찮으면 안 쓰는 물건도 팔려고요.”(와리동동)

“채소, 과일 같은 거 드르륵 가는 도깨비방망이 있으신 분, 물물교환을 원합니다. 새 것을 살 수도 있지만 기왕이면 제가 안 쓰는 물건하고 교환하고 싶습니다.”(권예분)

“한복 공동구매로 만족도가 높아 팬이 됐답니다. 폐백음식은 공동구매 안 하나요? 아는 곳 있으면 가르쳐주세요.”(해야로비)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 오픈마켓을 비롯한 각종 쇼핑몰 게시판에는 “자전거, 책상, 전기밥솥 팝니다” “숯 공구(공동구매)해요” “가전제품을 중고로 구입하고 싶은데 중고제품 잘 사는 법, 구입 시 주의점 좀 알려주세요” 같은 글들이 차고 넘친다.
웹사이트 분석·조사 전문기관 랭키닷컴에 따르면 최근 중고쇼핑몰 방문자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전년 동월 대비 올 2월 중고가구쇼핑몰의 방문자 수는 15% 증가했다. 이 외에 중고가전쇼핑몰 346%, 중고차쇼핑몰 은 12% 늘었다. 다음카페에서 ‘물물교환’으로 검색하자 관련 카페 수가 총 452건에 달했고 공동구매 관련 카페 수는 6981건, 벼룩시장 5511건, 중고장터 카페 수는 843건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벼룩시장은 3월에만 31개가 새로 개설됐다.

공동구매 땐 60%까지 저렴

지난해 11월 중고장터를 개편해 편리성과 안전성을 강화하고 거래 수수료율을 대폭 낮춘 옥션 전략기획팀 임정환 과장은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안전하면서도 저렴한 온라인 중고거래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옥션 중고장터의 지난해 12월 거래액은 전년 동월 대비 600%나 증가했다.

도서음반 660%, 취미수집이 430% 늘어났고 휴대전화 380%, 생활가전 325%, 컴퓨터·노트북PC 300%, 식품 364%, 여성의류 328%, 분유·기저귀 324% 등으로 급증 현상을 보였다. 한편 최근까지 약 두 달간 골프용품 중고장터 방문자 수를 집계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50% 증가했고 매출액은 200% 이상 뛴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서점도 헌책방 코너를 속속 오픈하고 있다. 인터파크도서는 최근 헌책방 코너를 개설해 어린이·유아용 전집, 소설 등 도서를 50% 이상 할인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초 중고책에 대한 소비자 간 직거래와 중개 거래 사이트를 처음 연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지난해 10월부터 거래량이 크게 늘었다.

중고장터 이용자만 증가한 것이 아니다. 최저 10%에서 최고 60%까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G마켓 공동구매 코너는 이용자 수와 매출에서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조나빈 대리는 “불황기라 조금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구입하려는 알뜰족이 늘었다”고 했다. GS마켓은 지난해 초 ‘주말마트’ 코너를 선보였다.

다양한 생필품을 평균 20~30% 정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는데 최근 소비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회원 6만7000여 명을 거느린 다음카페 맘스공구(MOMS09)는 최근 돌잔치 공동구매를 진행 중이다.

운영자 최은경(33)씨에 따르면 회원의 95%가 주부다. 최씨는 “요즘 아이 돌잔치를 전문 업체에 맡겨 이벤트 형식으로 여는 게 유행인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며 “그래서 회원들 요청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아이 돌잔치를 치러야 하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돌잔치 공동구매를 진행하게 됐다”고 했다.

유아용품, 생활용품, 건강식품, 의류 등을 주 아이템으로 취급하는 맘스공구에서 공동구매를 하면 인터넷 최저가와 비교해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60%까지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이런 공구 원해요’ 코너에 글을 올려 공동구매를 신청할 수도 있고 회원들끼리 중고제품을 사고파는 벼룩시장 코너도 이용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요즘 경제도 뒤숭숭하고 생활비 지출은 늘고 월급은 뻔하고 참 답답하네요. 가전이며 뭐 하나 새로 장만하려니 엄두도 안 나고. 그래서 말인데요, 실생활에 사용하는 가전 및 잡동사니를 물물교환하는 곳은 없을까요?”(벌꿀스).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물물교환이 가능한 사이트나 카페를 문의하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대형서점도 헌책방 코너 신설

자신의 블로그에서 물물교환 제의를 한 석창우(54) 화백은 최근 원하던 노트북과 자신의 그림을 교환하기로 하고 택배를 기다리고 있다. 석씨는 “150만원 정도 되는 작품을 교환하려고 내놓았는데 노트북 사양이 좋아 제시한 작품 가격보다 비쌀지도 모른다”며 “그러면 좀 더 큰 작품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물품·지식·경험 맞교환 사이트로 지난 1월 문을 연 완두콩닷컴(www. wandoocong.com)은 사이트를 개설한 지 불과 2개월 만에 1만여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김재광 대표는 ‘생산자와 수요자, 판매자가 따로 있지만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앞으로는 이 구분이 무의미해질 것’이라는 앨빈 토플러의 글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려 사이트를 만들었다.

공동구매나 물물교환, 중고장터가 온라인에서만 활발하게 이용되는 게 아니다. 온라인 공동구매를 벤치마킹해 소비자를 끄는 유통업체가 최근 늘고 있다. GS리테일(GS마트, GS수퍼마켓)은 최근 ‘뭉치면 대박! 공동구매’ 행사를 진행해 한우 꼬리·사골 등 일곱 가지 제품을 35~55% 할인 판매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2월까지 GS수퍼마켓 3개 점포에서 공동구매를 시범적으로 진행한 결과 큰 호응을 얻어 최근 전국적으로 행사를 확대했다. 중고장터도 오프라인으로 확산 중이다. 북스리브로는 올해 초부터 을지점, 분당점 등 오프라인 4개 지점에 헌책방 코너를 따로 만들었다. 을지점 헌책방 코너 담당 박성민씨에 따르면 신설 초기보다 현재 이용객이 40% 증가했다.

박씨는 “서점 위치상 주 고객층이 직장인들인데 주로 경제나 경영서, 소설이 많이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일단 헌책방에 들러 책을 보고 사려는 게 없으면 새 책 코너에 가서 사는 사람들이 많고 필요한 헌책을 구해달라고 전화로 예약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킴스무역은 의류업체나 폐업가게 등에서 나오는 일명 ‘땡처리’ 재고의류와 수입 구제의류를 파는 창고형 매장으로 정가의 10%에 제품을 판매한다. 직원에 따르면 평일 하루 평균 이용객은 70~80명,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200~300명이 몰려온다. 러시아에서는 1990년대 유행했던 물물교환이 최근 다시 등장하고 있다고 한다.

경기침체로 물건이 잘 팔리지 않아 돈을 구할 수 없게 된 기업들이 궁여지책으로 물물교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국내외를 불문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뭉쳐야 산다”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983호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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