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이단아 프라다의 ‘경희궁 Dream’ 

“명품과 예술의 하나 됨을 꿈꾼다…서울의 역동성과 어우러질 것”
4월 개관 앞둔 복합문화공간 ‘프라다 트랜스포머’를 가다 

윤정호 예일대 박사과정
세계 최초의 움직이는 복합문화공간이 서울에서 곧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프라다와 네덜란드가 낳은 명장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의 프라다 트랜스포머가 개장을 앞두고 있기 때문. 공식 공개에 앞서 이코노미스트가 그 현장을 단독 취재했다.

1. 동·서양의 소통으로 주목받고 있는 프라다의 트랜스포머는 움직이는 문화공간으로 경희궁의 고전미와 함께 빛을 더한다. 경찰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건축물의 모습.
2. 4면체로 이루어져 회전하는 건축물인 프라다 트랜스포머는 행사 성격에 따라 직사각형, 십자형, 육각형 등으로 변형되는 것이 특징이다. 측면에서 바라본 막바지 공사현장.

환상의 콤비. 프라다와 쿨하스의 파트너십을 가리키는 말이다. 프라다는 파격을 멈추지 않는 패션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가죽 일색이던 명품 가방 시장에 포코노 나일론을 소재로 한 가방을 만들어 소개했다. 화려함을 강조하던 여성복 시장에 정제된 아름다움을 뽐내는 디자인을 선보여 단숨에 세계 최고 브랜드 반열에 올라섰다.

쿨하스도 혁신의 기수다. 시애틀 중앙도서관과 중국 국영방송인 CCTV 사옥 등 절제된 선을 사용하면서도 건축에 대한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국내에서는 삼성 리움미술관 설계로 이름을 올렸다. 2000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프리츠커(Pritzker)상을 받았다.

콤비의 첫 작품은 뉴욕 소호(Soho)에 위치한 프라다 스토어였다. 2001년 12월 구겐하임 (Guggenheim) 미술관 분관 자리에 들어선 스토어는 패션 매장에 대한 통념을 뒤집었다. 지브라우드(Zebrawood)로 만들어진 물결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은 설치미술 작품을 연상케 한다. 마치 미술관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다.

고객들은 다른 매장에서는 할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구두 전시대 역할을 하기도 하는 계단형 관람석에서 예술공연을 즐길 수 있는 것. 게다가 카메라가 달린 LCD 스크린, 프리바라이트(Priva-Lite) 특수 유리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피팅룸에서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어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두 번째 작품은 LA 베벌리힐스에 자리잡았다. 유리 지붕으로 덮인 로스앤젤레스 프라다 스토어의 가장 큰 특징은 정문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 문은 폐점 후와 악천후 시에만 나타난다. 평상시에는 에어커튼이 문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실내 공기의 온도와 습도, 흐름을 조절한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쇼핑과 각종 예술활동을 감상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쿨하스가 자신의 한 저서에서 “기존의 쇼핑 공간은 쓰레기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던 것에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 움직이는 문화공간
쿨하스 고집으로 경희궁을 부지로 선택



복합예술문화 공간 ‘프라다 트랜스포머’ 건설공사가 4월 25일 첫 번째 프로그램 ‘웨이스트 다운(Waist Down)-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의 스커트’전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내부 공사현장.
4월 25일에 있을 첫 행사 준비를 위해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트랜스포머는 샤넬 모바일 아트(Chanel Mobile Art)와 비교되곤 한다.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모바일 아트도 명품 브랜드와 유명 건축가 만남의 결실이었다. 명품 브랜드 샤넬과 쿨하스의 건축사무소인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 소속이었던 건축가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손을 잡고 만든 작품이다.

트랜스포머와 마찬가지로 모바일 아트 역시 예술공간을 지향한다. 프랑스의 다니엘 뷰렌 (Daniel Buren), 일본의 노부요시 아라키, 우리나라의 이불 등 세계적인 미술가 20여 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하지만 두 건축물은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장소가 다르다. 모바일 아트는 홍콩, 도쿄, 뉴욕 등 전 세계 7개 도시를 돌아가며 설치되도록 기획되었다.

이와 달리 트랜스포머는 서울 경희궁에만 건설된다. 왜 하필 서울일까? 상업적인 논리만으로는 프라다가 서울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연간 5600억원 정도다. 일본은 물론이고 홍콩에도 훨씬 못 미치고 성장 잠재력 역시 중국에 한참 떨어진다.

비즈니스적인 이유에서라면 프라다는 도쿄나 상하이 또는 베이징에 트랜스포머를 지었어야 했다. 그러나 선택은 달랐다. 건축 현장에서 만난 OMA 건축가인 알렉산더 레이처트(Alexander Reichert)의 설명에 따르면 모두의 예측을 엎어버리기를 즐겨 하는 프라다 특유의 도발 정신이 발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1·2. 미국 뉴욕 소재 프라다 에피센터 내부의 다채로운 모습.

경희궁이 부지가 된 데는 쿨하스의 고집이 한몫했다. 당초 서울시는 올림픽공원과 서울숲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쿨하스는 경희궁을 선호했다. 변두리보다는 도심을 원했기 때문이다. 정부 기관과 대학, 문화시설 그리고 동대문 같은 패션상가가 인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보다 중요하게는 고궁과의 소통을 꾀하고자 했다.

경희궁은 조선왕조의 3대 궁으로 꼽힐 만큼 큰 궁궐이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동안 쇠락의 길을 걸었다. 철저히 파괴됐다. 쿨하스는 잊혀진 조선의 정궁을 전 세계에 소개하려 했다. 21세기에 만들어진 초현대식 건축물이 16세기에 세워진 건축물의 고전미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둘째, 구조가 다르다. 하디드 특유의 현란한 곡선미를 뽐내는, 샤넬의 퀼팅 백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는 모바일 아트와 달리 트랜스포머는 미니멀리즘을 지향한다. 직접 살펴본 바에 따르면 공연장 역할을 하게 될 파빌리온 내부에서는 어떤 배선도 찾을 수 없었다. 파빌리온과 다리로 연결되는 폴리카보나이트로 벽과 천장을 두른 서비스 블록의 구조는 더욱 단순했다.

배선 매립은 기본이고 수출입용 컨테이너의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다. 덕분에 사무실, 창고 등이 들어설 블록은 주변환경을 압도하지 않는다. 경희궁 담장과 서울 역사박물관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스카이라인에 녹아 들어간다. 그뿐만 아니다. 트랜스포머는 변환이 가능하다. IPE 강철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파빌리온은 육각형, 십자형, 사각형, 원형 등 각기 다른 4개의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면은 이벤트에 따라 벽 또는 바닥으로 사용될 수 있다.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300t짜리 크레인 4대가 프레임에 있는 고리에 쇠줄을 걸어 약 3시간을 작업하면 파빌리온은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다. 색다른 시도를 한 것은 건축공학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서울이라는, 보는 시각과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이는,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상이한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정체성을 하나의 건축물 안에 담기 위해서였다.

2. 다채로운 문화행사
패션쇼·영화·설치미술 등 순차적으로 선보여


미국 뉴욕 소재 프라다 에피센터.
파빌리온의 파격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 리움미술관을 건축하면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소재인 블랙 콘크리트를 사용한 바 있는 쿨하스는 파빌리온 외벽에도 특이한 소재를 썼다. 네덜란드의 코쿤(Cocoon)사가 제작한, 자동차나 소형 선박 등을 보호하는 데 사용되곤 하는 플라스틱 재질의 반투명 필름을 사용했다.

용제에 녹인 플라스틱을 스프레이로 뿌려 만들어지는 필름의 용도는 두 가지다. 우선 실용적인 목적이 있다. 악천후로부터 건축물 내부를 보호한다. 아울러 상징적인 의미도 갖는다. 판이하게 다른 모양의 4개의 면이 상징하는 이질적인 문화와 가치관이 하나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트랜스포머는 겉모습 꾸미기에만 치중하는 건물과는 거리가 멀다.

쿨하스가 이반 레오니도프(Ivan Leonidov)와 함께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로 꼽은 바 있고, 르 코르뷔제(Le Corbusier), 월터 크로피우스(Walter Gropius)와 아울러 현대 건축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루드비흐 미스 반 데 로에(Ludwig Mies van der Rohe)의 건축철학을 구현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트랜스포머는 반 데 로에의 건축물처럼 참신한 ‘형태(Form)’ 못지않게 빼어난 ‘기능(Function)’을 갖추고 있다.

파빌리온은 최소 360명, 최대 600명을 수용하는 다목적 예술공간의 역할을 수행한다. 파빌리온에서 열릴 첫 예술행사는 4월 25일 시작될 스커트 전시회다. ‘인 모션(In Motion)’이란 주제로 열릴 첫 전시회에는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가 1980년대 말에 있었던 프라다 최초의 패션쇼에서 선보였던 작품부터 최신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커트가 선보인다.

성·욕망 등 스커트가 갖고 있는, 그러나 종종 잊혀지곤 하는 다양한 의미를 재조명한다. 앞서 2004년 11월 도쿄 아오야마에서 열린 같은 개념의 첫 전시회는 상하이, 뉴욕에서 연이어 열리면서 뜨거운 반응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이 전시회에는 우리나라 7개 대학과 1개 디자인스쿨 학생들도 참여할 예정이다. 동양과 서양, 거장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미적 감각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1·2. 미국 LA 소재 프라다 에피센터 내부. 3. 프라다 에피센터.

6월 26일부터는 파빌리온이 영화관으로 변신한다. 2007년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Alejandro Gonzalez Inarritu) 감독과 뉴욕타임스의 영화평론가로 활약했던 엘비스 미첼(Elvis Mitchell)이 선정한 영화들을 상영한다. 이 감독의 대표작은 ‘바벨 (Babel)’로 각기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 다른 시점에 행한 서로의 행동에 의해 구속 받는 모습을 그려냈다.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의 표현처럼 ‘비동시대(非同時代)의 동시대(同時代)성’을 특징으로 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을 조명했다. 영화제는 바벨의 연장선상에서 기획됐다. 다양한 장르와 국가 그리고 시대를 아우르는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7월 30일부터는 프라다 재단이 주최하고 구겐하임 미술관의 수석 큐레이터인 제르마노 첼란트(Germano Celant)가 감독한 ‘비욘드 컨트롤(Beyond Control)’이라는 설치미술 전시회가 열린다. 1993년에 설립된 재단은 “예술을 후원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직접 예술을 하는 것”을 목표로 각종 예술활동에 참여해 오고 있다.

프라다는 컬렉션이 열릴 때마다 현대미술 작품을 전시해 왔다. 지금 밀라노 근교에서는 양조장을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곧 오페라계에도 명함을 내밀 예정이다. 프라다가 무대의상을 디자인하고 헤르조그 & 드 메롱(Herzog & de Meuron)이 무대 디자인을 맡은 오페라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3. 트랜스포머가 가져다준 기회
한국의 건축&디자인 수준 높이는 계기


예술의 성찬(盛饌)이 될 트랜스포머. 하지만 모두가 쿨하스와 프라다 콤비의 프로젝트를 반겼던 것은 아니었다. 프로젝트는 많은 논란을 빚었다. 일부 시민단체는 경희궁 부지를 프라다에 대여하는 것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 유구한 역사의 문화유적이 영리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는 이유였다.

시공 과정에서 고궁이 훼손됐다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골조공사 과정에서 잔디가 상처를 입었고 용접 작업 도중 주변에 불꽃이 튀었다는 것이었다. 서울시와 프라다 측은 시공 과정에 신중을 기하겠다고 다짐했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비판이다. 문화유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데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남대문의 비극이 재연되는 것은 결코 방치돼선 안 된다. 하지만 완벽한 보호와 방재 대책이 구비된다면 과거와 현재 사이에 내려진 장막을 걷어 올리는 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문화재 사랑이 될 수 있다. 트랜스포머가 자리잡은 자리는 과거에도 각종 문화행사에 사용된 바 있다. 문공부는 패션쇼를 경희궁 내에서 개최했었다.

세계적인 건축, 패션 그리고 디자인 전문지인 월페이퍼 (Wallpaper)는 특별취재팀을 파견했다. 트랜스포머를 표지 사진으로 소개했다. 경희궁과 서울을 전 세계에 알렸다. 아울러 쿨하스 같은 대가의 건축 작업은 귀중한 배움의 기회를 준다. 레이처트는 연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건축 강연회를 열어 큰 호응을 이끌어냈다.

건설현장에는 사진기를 손에 든 많은 건축, 디자인 전공 학생과 업체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시공사인 은민S&D의 조병호 부사장은 격무에도 불구하고 들뜬 표정이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최첨단 건축 디자인 기법과 시공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즐거워했다. 언젠가는 우리의 손으로 트랜스포머보다 뛰어난 건축물을 만드는 날이 올 것이라며 상기된 모습을 보였다.

세계 최초로 움직이는 예술공간을 구현하려는 프라다와 쿨하스의 노력이 경희궁에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대한민국의 건축과 디자인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전통과 하이테크 공존하는 서울의 역동성에 빠졌다”
인터뷰 트랜스포머 홍보부사장 토마소 갈리
미국 뉴욕 소재 프라다 에피센터 내부.
트랜스포머 프로젝트의 홍보를 전담하고 있는 토마소 갈리(Tomaso Galli) 부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PR 전문가일 뿐 아니라 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영학을 가르쳤던 학자이기도 하다. 프로젝트를 위해 서울을 찾은 갈리 부사장을 숙소에서 만났다.

>> 창업연도는 1913년이지만 전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마케팅을 한 시점을 기준으로 하자면 프라다는 구찌, 샤넬, 루이뷔통과 비교할 때 후발주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프라다는 세계 최고의 패션 브랜드 반열에 올랐습니다. 비결이 궁금합니다.
“두 가지 다른 가치를 동시에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먼저 ‘프라다 엑설런스(Prada Excellence)’라고 부르는 장인정신을 추구했습니다. 프라다는 강박관념이라고 표현할 만큼 품질에 대한 엄격하고 까다로운 기준을 고집합니다. 동시에 혁신을 추구했습니다. 변화를 선도해 왔습니다. 방수 나일론을 소재로 한 가방은 30여 년 전 프라다가 가장 먼저 개발한 것입니다. 휴대전화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가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든다고 할 때만 하더라도 다른 브랜드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패션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휴대전화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프라다는 한발 앞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기업임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 프라다의 놀라운 성장에는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도 한몫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때 프라다는 무서운 기세로 패션 브랜드들을 사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1990년대 말 전 세계적인 경제 활황이 이어지면서 프라다는 가파른 성장을 했습니다. 여성복, 남성복 시장 등에 성공적으로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 전략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를 기점으로 시장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명품 브랜드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프라다의 경영진은 과감한 결정을 했습니다. 헬무트 랑(Helmut Lang)과 질 샌더(Jil Sander) 같은 브랜드들을 매각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남보다 한발 앞서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프라다의 창업정신에 충실한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 온라인 쇼핑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프라다도 루이뷔통, 던힐 등 다른 명품 업계들과 같이 온라인 스토어를 오픈한 바 있습니다. 과연 현명한 결정이었나요?
“저희도 걱정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프라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온라인 시장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프라다 웹사이트를 통해 인터넷 주문을 하더라도 오프라인 프라다 매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판매하는 제품을 엄선하고 포장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왔습니다. 일반적인 온라인 쇼핑과 차별화를 추구하는 중입니다.”

>> 현재 진행되는 경제 위기로 인해 명품 브랜드가 타격을 입을 우려는 없습니까?
“물론 유명 브랜드라도 경제위기를 비켜갈 순 없습니다. 프라다의 경우 지난해 미국 시장과 이탈리아 시장의 매출액이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한국 시장은 프라다 사상 최고의 매출액을 올렸던 2007년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구체적인 통계는 기다려봐야 하겠습니다만 올해도 성과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환율이 큰 몫을 했다고 봅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에서 프라다 상품을 대량 구매했습니다. 환율에 대한 부담 때문에 외국에서 쇼핑하던 한국 고객들이 발길을 국내 매장으로 돌렸습니다.”

>> 짝퉁이라고 불리는 모조품 문제에 대한 견해가 궁금합니다.
“어떤 모조품이냐에 따라 대응책도 다릅니다. 저희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조악한 모조품의 경우 큰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한눈에도 짝퉁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조품 중에는 진품과 쉽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들은 겉모양은 진품과 비슷할지 모르지만 바느질이나 금속 액세서리의 내구성 등이 크게 떨어집니다.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실밥이 뜯어지거나 액세서리 색이 바래게 됩니다. 소비자들에게 프라다에 대한 나쁜 이미지를 심어놓습니다. 저희는 이러한 모조품들을 발본색원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지금 프라다는 거액을 들여 트랜스포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많은 도시가 프로젝트를 유치하려고 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서울을 선정하신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서울은 현대와 과거, 전통과 하이테크가 공존하는 역동적인 도시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 프라다의 기업 이미지에 부합합니다. 아울러 한국 기업과의 협력 경험도 한몫했습니다. 프라다는 LG전자, 현대자동차와 함께 제품 개발을 한 바 있습니다. 그때마다 저희는 까다로운 요구를 했습니다. 프라다폰의 경우 디자인은 물론이고 매장 디스플레이와 마케팅에도 저희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 달라고 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그러한 요구들을 모두 들어주었습니다. 덕분에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한국 기업은 물론이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 트랜스포머를 한마디로 정의해 주실 수 있습니까? 패션 용어를 빌리자면 트랜스포머는 고급맞춤복, 즉 오트쿠튀르(Haute Culture)일까요, 아니면 프레타포르테(Pret a Porter), 즉 기성복일까요?
“(웃음) 아주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굳이 고르라면 저는 오트쿠튀르라고 봅니다. 물론 오시고자 하는 모든 분께 문호를 개방한다는 측면에서는 프레타포르테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포머 건물과 건물 내에서 진행될 행사들에는 패션 디자이너가 오트쿠튀르를 제작할 때 들이는 노력과 고뇌가 녹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창조물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창의력이 숨어 있다고 믿습니다. 트랜스포머를 찾는 서울 시민 여러분도 이에 동감하시리라 확신합니다.”

>> 프라다 디자이너가 되는 것을 꿈꾸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
“무엇보다 성실해야 합니다. 패션 디자이너는 겉으로는 화려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 작업을 해야 합니다. 단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성실하지 않으면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아울러 프라다 정신을 계승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프라다는 현상에 안주하는 인물보다는 날카로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를 기다립니다. 혁신의 문화를 이어갈 수 있고 성실한 인물이라면 언제나 환영입니다.”


984호 (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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