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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한반도 최대 흉물로 전락하나? 

“실용에 밀렸던 군부의 반발 본격화… 폐쇄 위한 명분쌓기 관측 대두”
남북경협의 상징이 흔들린다 

이영종 중앙일보 정치부문 차장·yjlee@joongang.co.kr
개성공단이 흔들리고 있다. 남북관계 악화의 여파로 존폐문제가 거론되던 상황에서 북한 군부가 주도하는 강경세력이 최근 근로자 임금과 공단임대료 인상 등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남북경협의 옥동자’로 불리던 개성공단이 자칫 한반도 최대의 흉물이 된 대북 경수로발전소(함경남도 신포) 사업의 뒤를 따라야 할 운명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의 불은 결국 꺼질 것인가? 공단 입주기업과 남북한 평화적 협력을 기대하는 국민의 염원은 한결같이 이 불이 더 길게 켜져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장면 #1. 2008년 12월 17일 개성공단 관리위원회 강당. 평양에서 내려와 공단을 시찰한 후 남측 공단입주 기업 대표와의 면담을 위해 국방위원회(위원장 김정일) 김영철 정책국장이 들어섰다.

장내를 둘러보던 그는 갑자기 “우리 사회부문은 다 나가라우”라고 소리쳤다. 김 국장의 한마디에 북측 관리위 인사와 대남경협 관계자들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부리나케 퇴장했다.

공단운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북측 민간부문 관계자들에게 내비친 것이다. 면담장에는 남측 인사와 북한 국방위원회 관계자들만 남았다. 군부의 기세에 눌린 북측 관계자들은 회의가 끝난 후 관리위 남측 인사와 진출기업인들에게 논의내용을 귀동냥해야 했다.

북한이 특구로 선포한 개성공업지구에 대한 군부의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고 남측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장면 #2. 2004년 2월 4일 서울에서 열린 13차 남북장관급회담 첫 전체회의. 북한 측 단장인 김영성 내각 책임참사는 기조연설에서 “개성공업지구를 내오겠다(짓겠다)고 한 지 4년이 지났는데 이 시간 현재 건설현장에 벽돌 한 차, 시멘트 한 톤 들어온 것조차 없다”고 남한 측을 비난했다.

“지난 1년간 개성공업지구에 7000명이 다녀갔지만 투자진전이 없었다”며 노무현 정부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남한 측 수석대표인 정세현 당시 통일부 장관은 그날 밤 열린 수석대표 단독접촉 때 김영성 단장을 한참 동안 상대하지 않았다. 당황해하던 김 단장이 꼬리를 내리며 누그러진 태도로 나왔다.

대북 쌀지원 보따리를 챙겨가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정 장관은 “우리가 당신들 돕기 위해 욕 먹어가며 한나라당에 가서 설득하고 했는데 이게 뭐냐. 이제 당신이 국회 가서 직접 얘기하라”고 따졌다.

김영성은 얼마 가지 않아 경질됐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 군부의 강경입장을 전달해야 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입지를 위해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게 보위부의 감시망에 포착됐기 때문이란 뒷말이 흘러나왔다.

MB정부 출범하자 트집 잡기 시작

개성 하늘에 언제 걷힐지 모를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지난 4월 21일 남한 측과의 개성 접촉에서 북한은 “남측 기업은 개성공업지구에서 한 해 수억 달러를 벌어들이는데 우리 노동자들은 3000만 달러밖에 못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또 2014년부터 토지사용료를 내기로 한 기존 합의를 뒤엎고 내년부터 달라고 요구했다.

2004년 6월 30일 시범단지 준공식이 이뤄진 후 5년 가까이 만에 공단운영에 대한 노골적인 거부감을 행동에 옮긴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2월 이명박(MB) 정부의 출범과 때맞춰 시작됐다. MB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면화하던 북한 당국은 3월 24일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측 당국자의 전원철수를 요구했다.

이어 6월 24일에는 남북을 오가는 인력과 물자의 통행시간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7월 북한 근로자가 3만 명을 돌파하는 등 개성공단 사업이 한창 탄력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제동을 걸어버린 셈이다. 7월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 총격에 의해 사망하는 사건이 불거져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11월 입주기업의 누적생산액이 5억 달러를 돌파하기 시작한 상황이 됐지만 북한은 군사분계선(MDL) 통행을 극도로 차단하는 ‘12·1 조치’를 취했다. 올 3월 들어 세 차례나 추가로 출입 차단조치를 취하던 북한은 3월 30일 현대아산 직원 유모씨를 ‘북측 여성 노동자를 타락시켰다’는 이유를 들어 억류하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북한의 이 같은 강경조치에는 북한 군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게 우리 정보당국의 분석이다. 개성사업을 담당하는 북한의 특구개발총국이 표면에 나서고 있지만 배후에 군부세력이 있는 형국이란 얘기다.

특구개발총국 등 북측 관계자들은 남측 인사들에게 “우리도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평양에서 내려온 군부가 다 장악해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억류 직원에 대한 조사의 경우도 군부가 전담하고 있어 대남경협 등 다른 파트의 북측 관계자들은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 군부의 반감은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북한의 아태평화위원회가 ‘공업지구 개발 합의서’를 채택하면서부터 싹텄다고 볼 수 있다.

그해 6월 남북 정상회담의 여파를 타고 화해협력의 분위기가 밀어닥치면서 북한 군부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정상회담장뿐 아니라 이후 남측 특사의 방북 때마다 북한군 작전국장 이명수는 상황판을 들고 개성공단 건설과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을 위한 군부의 지원현황을 브리핑해야 했다.

북한군 제2군단 6사단은 핵심전력 중 하나지만 개성공단 공사에 주둔지를 내줘야 했다. 6사단은 유사 시 서울 침공을 위한 대남 기습공격을 담당해야 하고 한·미 연합전력의 평양 진격을 막아야 하는 부대다. 개성에서 평양까지는 170km 떨어져 있어 차로 두 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북한 요구에 응하더라도…

공단건설이 윤곽을 드러내던 2004년 12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은 “개성공단의 위치는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려면 주공격로에 있고 군대의 집결지인데 북한은 개성공단을 위해 군사시설을 철폐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은 “휴전선이 10km 정도 북상한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모두 다 북한 군부 입장에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언사였다. 군부의 굴욕은 1998년 11월 시작된 금강산 관광 준비과정에서도 있었다. 금강산 사업이 추진되자 북한 군부는 극렬하게 반대했다. 잠수함 기지 등이 있는 장전항 부두에 관광선이 들어오고 곳곳에 벙커와 군부대가 있는 금강산을 남한 관광객들이 누비게 된다는 점에서다.

그렇지만 김용순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대남) 담당비서는 김정일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관광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현대가 약속한 9억4200만 달러의 막대한 관광대사를 챙길 수 있다”는 설득에 김 위원장은 김용순의 손을 들어줬다. 그해 6월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판문점 소떼방북 때도 군부는 대남·경협라인에 KO패를 당했다.

“어떻게 지켜낸 전연(군사분계선 일대를 의미)인데 남조선 영감탱이가 소떼로 짓밟고 지나가게 하느냐”는 군부의 반발이 거셌다. 그렇지만 김용순이 이끄는 아태평화위 측의 실리챙기기 논리에 군부는 고배를 마셔야 했다. 절치부심하던 군부가 MB정부 들어 꼬인 남북관계의 틈을 타 개성사업 등 지난 10여 년간 이뤄진 대남경협사업의 재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우리 정부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개성공단 사업이 순항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체적이다. 북한이 요구한 대로 임금을 올려주고 토지사용료를 내더라도 이전처럼 공단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북한의 요구가 개성공단 폐쇄를 위한 명분쌓기용일 것이란 관측이 나올 정도로 상황은 좋지 않다. 북한 군부는 김일성 사망 이듬해인 1995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선군(先軍)정치의 뒷심을 받아 절대적 입지를 구축했다. 공단의 명줄을 잡고 흔드는 군부 강경파의 행보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개성공단 현황
쪾 2008년 말 기준
월 최저임금 55달러
(중국 100~200달러, 한국 788달러)
- 평일 연장작업은 시간당 노임의 50%,
휴일은 100%
평당 분양가 14만9000원
(중국 12만원, 한국 40만7500원)
근로자 수 3만8900명
쪾 2004~2008년
총 지급임금 5108만 달러
생산액 5억2484만 달러
수출액 9620만 달러


985호 (200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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