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을 심사할 때 적당히 조정하는 일은 결코 없다. 대패질이 아니라 뼈도 안 남을 정도로 도끼로 쳐내듯 무자비하게 삭감 조정하는 게 원칙이다.…눈을 딱 감고 무자비하게 삭감하는 냉혈한들이 모인 곳이 예산국(지금의 예산실)이다.’(강경식,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가 일했던 1960~70년대와 지금의 ‘예산쟁이’는 다를 것이다. 제도도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건 예산 관료가 천생 ‘노맨(No Man)’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산 일을 오래 한 강경식 전 부총리는 지금도 누가 말을 하면 “아니야” 하는 말부터 한다고 핀잔을 듣는다. 반면 정치인들은 ‘예스맨(Yes Man)’이다. 표를 얻기 위해 투표권자의 요구에 “예스”를 연발한다. 일본의 어느 국회의원이 말했듯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며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니 포퓰리즘 정책이 나오기 쉽다. 오죽하면 소련의 흐루쇼프가 “정치인은 강도 없는데 다리를 놓아준다고 공약을 한다”고 말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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