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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서 뭇매 맞은 MB 자원외교] 자원부국 된다던 MOU (양해각서), 정권 말 용두사미 되나 

대통령 순방 중 체결된 MOU 9건 중 성사 ‘0’…“자원개발 특성상 시간 필요” 주장도 

김태윤·박성민 이코노미스트 기자 pin21@joongnag.co.kr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자원외교’는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의 타개책으로 여겨졌다. 새 정부의 첫 총리는 아예 자원외교팀장 역할을 했고, 대통령과 그의 특사들도 자원 부국을 찾아 비행기를 탔다. 자원 확보를 최우선에 두는 외교는 성공하는 듯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리만 요란했지 알맹이가 없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끝은 미미했다.

그 와중에 자원개발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문다. 흔들리는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태와 정국을 달구는 ‘3대 자원 스캔들’의 쟁점을 취재했다. 전문가들에겐 자원외교 성공의 길을 물었다.


2008년 초 이명박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자원외교형 총리’라는 국무총리 모델을 제시했다. 중국의 에너지·자원외교를 진두지휘하는 윈자바오 총리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재경부 장관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한승수 유엔기후변화 특사가 총리에 지명됐다. 이 당선인은 “자원외교를 수행할 적임자”라고 했다. 한 총리는 취임사에서 “자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세계를 누비면서 자원외교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석 달 만에 그는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중앙아시아 4개국 자원외교에 나섰다. 이 대통령 본인도 해외 순방 때마다 자원외교를 강조했다. 박근혜, 정몽준, 이상득, 이재오 의원 등도 자원외교 특사로 나섰다. 자원외교는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국정 어젠다였다. 대통령과 총리와 특사는 귀국할 때마다 석유, 가스, 철광석, 동광, 우라늄, 리튬 등을 한아름 안고 돌아왔다. 아니, 한아름 생길 것이라는 약속(MOU·양해각서) 증서를 들고 왔다. 자원외교의 성과라고 했다.

광물 관련 MOU 26건 중 5건만 계약

그랬던 ‘MB 자원외교’가 요즘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9월 19일부터 20일간 열린 국정감사에서 난타를 당했다. 담당 상임위원회인 지식경제위원회뿐 아니라 법제사법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외교통상위원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도 여야 의원 구분 없이 정부를 질타했다. 의원들은 자원외교에 대해 ‘생색내기’ ‘사진찍기용’ ‘정권 홍보수단’ ‘혈세 낭비’ ‘실적에 집착한 부실 외교’라고 몰아붙였다. 족히 30여 명의 국회의원이 가세했다. 여기에 정권 실세와 정부 부처가 관련된 자원개발 특혜 의혹까지 일면서 진실공방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특히 자원개발 MOU가 도마에 올랐다. 대통령과 총리, 특사가 자원 보유국과 거창하게 MOU를 맺어놓고 성과는 없다는 게 요지였다.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가스공사가 막대한 투자비를 들이고도 투자금 회수조차 어려운 MOU를 남발했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민주당 노영민 의원은 “현 정부 들어 광물자원과 관련해 26건의 MOU가 체결됐지만 이 중 21건이 사업 종료됐고 계약에 이른 것은 5건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은 “정부가 대통령과 특사, 총리까지 나서 광물자원외교의 치적을 홍보하고 있지만 허풍만 난무하는 실속 없는 외교”라고 주장했다.


▎2009년 5월 카자흐스탄을 순방한 이명박 대통령이 나자르바예프 대통령과 다정하게 산책을 하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정부가 추진한 270건의 해외개발 사업 중 성공은 17건, 실패는 100건, 나머지는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 해외 순방 시 체결한 9건의 MOU 중 계약이 체결된 것은 단 한 건도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은 “현 정부 자원외교 관련 MOU 28건 중 계약이 체결된 것은 5건이고, 10건은 이미 사업이 종료됐다”며 “자원외교를 실적주의식으로 조급하게 진행해 빚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이학재 의원 역시 “해당 광구에 원유 확인도 안 된 상태에서 탐사권에 불과한 광권 계약만으로 마치 원유를 다 확보한 것처럼 홍보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정부의 자원외교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지경부 측은 “대통령, 총리, 특사의 자원외교를 통해 체결한 MOU 69건 중 사업성 미흡이나 이견 차이로 종료된 사업은 16건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지식경제부, 석유·광물자원·가스공사 등 피감기관 임직원은 국회의 공세에 억울해 했다. MOU의 본계약 체결 비율만 놓고 자원외교 전체를 매도했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광물자원공사의 한 팀장은 “자원외교 MOU라는 것은 한 국가와 대화의 창구가 열렸다는 걸 의미한다”며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에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실제 탐사가 시작되고 나서도 자원개발까지 성공률이 30%가 채 안 되는 게 자원개발사업의 특성인데, MOU 건수를 놓고 성공률을 따지는 것 자체가 억지스러운 면이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또 다른 광물자원공사 관계자는 “MOU를 맺음으로써 다른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다양한 교류의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며 “MOU 그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생사의 위협을 느끼며 자원개발을 위해 세계를 누비고 다녔는데 돌아오는 대가는 참혹하기만 하다”고 주장했다.

일부 전문가도 ‘실패’라는 꼬리표를 다는 건 성급하다고 말한다. 자원개발사업의 특성상 좀 더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인창 경북대 지질학과 교수는 국감에서 실패라고 낙인찍힌 쿠르드 원유개발 사업을 예로 들었다. 유 교수는 “석유 시추라는 것이 보통 탐사에 5년 이상, 최종 자원이 개발되기까지 또 5년 정도 걸리는 사업”이라며 “쿠르드 지역은 이제 1공에 대한 시추를 시작했을 뿐인데 실패라고 말하는 것은 자원개발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자원외교 전체 매도해선 곤란

유 교수는 “쿠르드 유전개발 투자비용 4400억원을 날리게 생겼다”는 일부 국회의원의 주장에 대해서도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쿠르드 지역은 기존에 석유 개발을 하지 않았던 지역이기 때문에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게 마련”이라며 “개발을 위해 건설한 기반시설들은 나중에 일부는 회수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광구 상황에 따라 광권을 팔거나 다른 기업의 투자를 받아 지분을 나눌 수도 있다. 현재 세계의 메이저 석유회사들 사이에서는 빈번하게 벌어지는 거래다.

대통령이나 특사가 파견되는 ‘VIP 순방 효과’에 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대상 국가나 협상 정도에 따라 득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광물자원공사의 한 관계자는 “광물자원공사나 석유공사같이 작은 기업이 해외에 나가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그나마 대통령이나 특사가 측면에서 지원해 주면 상대방에게 더 강한 신뢰를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는 해외자원개발의 ‘투톱’ 격이지만, 글로벌 메이저 기업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다. 세계 석유·가스 100대 기업 중 석유공사는 77위다. 광물자원 100대 기업에는 광물자원공사가 97위로 겨우 순위권에 들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정도 규모로는 자체적으로 협상 테이블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며 “이런 조건에서 시작하다 보니 처음 협상을 시작할 때 다소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맺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토로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민간 기업과 거래가 잘 진행되다가도 정부가 끼면 판이 깨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적에 급급한 정부의 조급증을 간파한 상대국이 더 많은 요구를 해온다는 것이다.

자원 확보에 사활을 건 중국을 대적하는 것도 부담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2009년 중국과 네 차례 석유와 광물자원 개발 입찰 경쟁에서 모두 패한 사례가 있다. 중국은 국영 석유회사인 CNPC(5위)를 포함해 50위권 안에만 3개의 석유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결국 중국을 포함한 다른 메이저 자원 회사의 손이 닿지 않는 틈새시장을 노려야 하는데, 이 경우 성공률이 낮고 초기 투자비용이 높아지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자원외교는 곧 안보외교

대다수 자원개발 전문가는 “자원외교 MOU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MOU를 맺기 전후 정부와 관련 공기업의 태도다. 현 정부가 자원외교에서 지나치게 홍보에 집착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지경부나 관련 공사 관계자들도 이 점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탐사가 시작되고 시추하기 전까지는 정확한 매장량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MOU 단계에서 광대한 양의 자원을 확보한 것처럼 발표해 왔다.

대통령이 추진한 사업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공기업이 상대국과 졸속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한나라당 이학재 의원은 “대통령이 추진한 쿠르드 사업은 공기업 입장에서 의무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미션이 될 수밖에 없다”며 “이 경우 제대로 된 사업성 검토가 이뤄지겠느냐”고 꼬집었다. 민주당 김재균 의원은 “자원외교 이벤트 차원에서 계약 성사에만 급급하다 보니 부실한 계약이 체결됐고 그것들이 지금에 와서 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광물자원공사와 석유공사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는 MOU를 맺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종료된 사업이 상당수 있다. 충분한 사전 조사 없이 MOU 먼저 맺고 보는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원외교는 ‘허풍쟁이’ 소리를 떨치기 어렵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MOU 그 이후다. 정부의 자원외교 MOU 실패 사례를 살펴보면 애초부터 타당성 없는 MOU가 많았지만, 본 계약으로 이어만 진다면 경제적·상업적 생산을 기대할 수 있는 곳도 많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해외 자원개발 경험과 정보 부족, 전문인력 부재, 경쟁국의 견제, 체결 의지 부족 등의 이유가 겹치면서 아쉽게 놓친 자원 개발 프로젝트가 적지 않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96%인 우리나라에 자원외교는 곧 안보외교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자원외교의 새 판을 짜라고 조언한다.

대통령이나 특사가 악수를 한다고 자원이 우리 손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안 이상, 새로운 자원외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되도록 빨리, 그리고 조용히.

1109호 (20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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