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전문가 3인의 제언 - 아시아 경제통합 한중일에 달렸다 

한국이 한중일 FTA 중재자 역할 해야…3국 힘 합치면 EU 수준 경제공동체 출현 

아시아의 중심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이다. 동북아 3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 10개국보다 6배 크고, 중앙아시아와는 비교가 안 된다. 국제경제 전문가들은 “아시아가 경제패권 쥐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지속가능한 성장과 세계경제 기여를 위해 동북아 3국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시아 시대에서 한·중·일 3국의 역할과 과제, 한중일 FTA 체결이 필요한 이유를 오정근 고려대 교수, 이종은 세종대 교수, 신봉길 한중일 협력사무국 사무총장 3인에게 들었다.

-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2050년 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경제통상 측면에서 아시아 시대가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십니까.

이종은 교수(이하 이종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제조기반이 살아 있습니다. 실체 없는 금융자산으로 이뤄진 측면이 있는 영미(英美)권 경제와는 차별화돼 있지요. 이것은 아시아 국가들이 실물경제성장을 통한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도록 했고 최근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습니다.

신봉길 사무총장(이하 신봉길): “‘2050년이 되면 아시아 국가가 미국을 능가하는 경제파워를 지닐 것’이라는 전망에 동의합니다. 중국·아세안 등 아시아 국가의 성장 잠재력은 대단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에 아시아만큼의 잠재력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선진국은 경제성장에 대한 관심과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아 국가들은 지금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큽니다.”

- 아시아 국가의 탄탄한 제조기반은 분명히 장점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는 제조업에 기반한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유럽경기가 침체하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한데요:

이종은: “아시아 국가는 환율이나 외환위기에 민감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 국가의 잠재력이 이런 이유로 훼손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아시아 국가 중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습니다. 여러 아시아 국가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바로 선다면 잠재력은 훨씬 커질 겁니다. 특히 아시아는 유럽처럼 동질적이지 않습니다. 국가의 정체성이나 특징이 다양하지요. 이 때문에 (유럽처럼) 통합이 어렵긴 하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창조성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다양성은 신(新)성장동력

오정근 교수(이하 오정근): “이종은 교수의 말에 동의합니다. 아세안 10개국의 예를 들어봅시다. 먼저 싱가포르·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는 성장에 성공했습니다. 미얀마·베트남·라오스는 체제전환국이죠. 브루나이처럼 자원이 많은 국가도 있습니다. 아시아에는 제조업 강국, 금융 강국, 자원 부국이 섞여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은 세계경제파워를 견인하는 새로운 힘이 될 겁니다.

물론 ‘미국·유럽경기 침체가 아시아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한국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에서 일곱번째로 50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했습니다. 그중 50%를 중국(25%)·아세안(14%)·일본(6%) 등 동아시아에서 올렸죠. 아시아 역내 수출을 통해 세계경기침체를 극복했다는 얘기입니다. 아시아 국가간 역내교역이 더욱 활성화하면 미국·유럽경기와 무관하게 성장일로를 걸을 겁니다.”

신봉길: “아시아의 성장은 한·중·일 동북아 3국이 이끌고 있습니다. 한·중·일 3국은 정치적·경제적 성장을 이루기도 했지만 독자적 문화콘텐트가 있습니다. 우리의 한류(韓流)·중국의 공자학원·일본의 초밥(스시)이 대표적이죠. 한·중·일 특유의 문화콘텐트는 세계를 이끄는 원동력입니다.”

세계 각국은 최근 문화콘텐트를 통해 국가브랜드를 확립하고 있다. 문화콘텐트는 경제성장의 새로운 에너지기도 하다. 한류·스시 모두 한국과 일본의 경제성장에 한몫을 톡톡히 했다. 중국은 ‘공자(孔子)학원’을 외교전술로 활용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에 대응해 세계공자평화상을 만든 것은 단적인 예다. 중국의 대표 문화콘텐트 ‘공자가 외교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최근 미국이 아시아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최근 자신들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일본을 끌여들였습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동아시아 정상회의(ESA)에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남중국해 문제에 개입하는 등 이전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정세 전문가들은 ‘미국의 외교·경제정책이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종은: “20세기부터 지금까지 미국은 경제정책은 유럽, 안보정책은 중동에 중점을 두어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아랍의 봄’이 도래하면서 중동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부담이 한결 줄어들었죠. 반대로 중국은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글로벌 경제 G2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아시아에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의 전략이 바뀐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원래 아시아 지역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미국의 정책 관심비중이 달라졌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오정근: “미국의 핵심 경제파트너는 그동안 유럽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유로존 경기침체가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유로존 회원국의 국가신용등급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될 정도죠. 미국은 유럽을 제1파트너로 삼아선 성장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역동적으로 성장하는 아시아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죠. 특히 세계 외환보유액의 절반 가량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와 손을 잡아야 미국을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승천하는 용의 꼬리를 잡아 세계 경제패권을 유지하겠다.’”

신봉길: “외교적 관점에서 미국의 변화는 두드러집니다. 부시 행정부 당시 콘돌라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동아시아정상회의(ESA)에 참여했죠. 아시아에 이전보다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 충분합니다.”

오정근: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는 또 다른 함의가 있습니다. 바로 견제입니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를 활용해 무역수지 적자를 메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아가 더욱 성장해 경제통합(통화통합)을 이룬다면 미국의 처지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유럽에는 유로화가 있습니다. 미국이 기축통화국이라는 지위를 유럽에서 활용할 수 없죠. 또한 미국의 주요 교역지역인 남미의 성장이 지지부진합니다. 미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성장엔진을 돌리려면 현재로선 아시아를 잡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시아마저 지역통화를 만든다면 미국의 기축통화 달러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미국은 적자를 메우기 위해 수출을 촉진하거나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변할 리 만무합니다. 아시아가 경제통합과 지역통화구축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합니다. 미국이 TPP에 일본을 초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을 내세워 아시아 통합을 견제하겠다는 포석이죠.”

- 미국의 아시아 전략이 변한 걸 보면 글로벌 경제의 파워가 아시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한데요. 지나치게 앞서 나간 견해일까요.

오정근: “아닙니다. 세계경제의 파워는 분명히 이동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쪽으로 말입니다.”

신봉길: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의 중심축이 미국에서 아시아로 변하는 시기입니다.”

TPP는 아시아 통합 막는 미국의 전략

미국이 아시아 공략에 지금처럼 힘을 쏟으면 중국의 입장이 곤란해진다. 중국은 아시아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대(對)아세안 자유무역, 대만과의 경제협력,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그런데 미국이 일본을 참여시킨 TPP로 아시아 무역질서를 주도하면 중국의 전략이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중국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모이는 까닭이다.

- 글로벌 경제의 G2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에서 한판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듯합니다.

오정근: “사실 중국은 다급한 상황이에요. 중국은 GDP 대비 투자비중이 42%나 됩니다. 한국은 약 10%죠. 문제는 GDP 대비 소비비중이 36%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다른 국가는 평균 65%에 이르죠. 이는 중국이 상당한 규모의 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정작 자국내 소비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중국이 경제성장을 계속하려면 수출을 늘릴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수출비중은 미국과 유럽이 가장 큽니다. 미국·유럽경기가 회복하지 않으면 중국의 수출은 증가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투자가 부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차이나 리스크입니다. 중국으로선 아시아 역내교역을 늘리는 게 능사인데, TPP로 무장한 미국이라는 복병이 출현했습니다. 중국은 이중고에 시달릴 수 있어요.”

신봉길: “아시아 경제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미·중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 질 겁니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을 FTA로 묶어 중국 경제권에 포함하고 싶을 겁니다. 그러나 간단한 일이 아니죠.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군사동맹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어서입니다. 중국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할 일입니다.”

이종은: “소련 붕괴 후 국가의 혼돈상황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중국입니다. 중국은 세계경제를 주름잡는 거대한 국가로 성장했지만 체제는 아직 불안정합니다. 자유?개방과 통제의 균형을 잡기 어려운 내부사정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순도 많아요. 겉으론 조화로운 사회를 표방하면서 뒤편에서는 티베트와 신장성을 억압하는 건 대표적 사례입니다. IT산업을 성장시키겠다면서 정보검열과 해적판을 허용하는 것, 강력한 중앙정부의 행정력으로 부정부패를 소탕해야 하는 동시에 지방분권화를 추진해야 하는 모순과 같은 맥락이죠. 중국이 이런 모순을 잠재우기 위해선 경제를 성장시켜야 합니다.

대외적으로 중국이 아시아 전략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내심 (미국의 전략과 자신이 가진 모순점 때문에) 긴장하고 있을 겁니다.”

- 중요한 것은 한국입니다. G2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오정근: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미국·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절묘한 외교적 선택을 했습니다. 한·미 FTA는 체결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가입하지 않은 건 정말 잘 한 일이라고 봅니다. 미·중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미·중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종은: “일본이 우리를 도와준 측면도 있습니다. TPP 참여를 선언한 일본은 한·중·일 FTA 체결에는 소극적입니다. 이런 상황은 한국에 긍정적입니다. 일본이 미·중의 균형을 잡아주기 때문이죠. 우리는 일본 덕에 외교적으로 미·중과 직접적으로 부딪칠 필요가 없어졌어요. 우리에게는 기회입니다.”

- 한·중·일 FTA가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은 최근 한·중 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는데요. 한·중·일 FTA 보다 한·중 또는 한·일 FTA가 더 효과적이지는 않을까요.

신봉길: “한·중 또는 한·일 FTA가 더 쉬울 겁니다. 하지만 한·중·일 FTA는 경제+안보+번영이라는 포괄적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양자 FTA를 하는 것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한·중·일 FTA의 효과가 더 클 겁니다.”

이종은: “아시아는 세계시장에의 수출 의존도가 평균 30%에 달합니다. 미국은 9% 밖에 안되죠. 한·중·일 3국은 수출을 늘려야 하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의 시장역할도 해야 합니다. 아시아 역내 수요를 한·중·일 3국을 중심으로 늘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한·중·일 FTA, 통화통합은 이런 실물경제의 바탕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거시경제의 실질적 수렴없이 통화통합이나 제도적 통합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오정근: “한·중·일 3국의 생산구조는 대개 이렇습니다. 한국(일본)이 중국(한국)에 공장을 설립해 자본재를 가져가면 중국이 최종재를 미국·유럽에 수출하는 수직적 분업체제죠. 언뜻 보면 효과적이지만 한계가 뚜렷합니다. 최종재를 수출하는 미국·유럽경기가 좋지 않으면 한·중·일 모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아시아에서 생산하는 최종재를 아시아에서 팔아야 할 때입니다. 아시아 역내시장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말인데, 이를 할 수 있는 나라가 한·중·일 3국이죠. 이런 이유로 한·중·일 FTA 체결은 중요합니다. 사실 동북아 3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큽니다. 한·중·일 3국의 GDP 비중이 세계 경제의 20%를 차지합니다. 세 나라가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습니다. 손을 잡지 않는 게 문제죠. 한·중·일 3국의 경제협력을 통해 동남아의 가난한 국가를 지원해야 아시아 시대가 빨라질 겁니다.”

이종은: “옳은 말씀입니다. 아시아가 경제패권을 쥐려면 한·중·일 3국은 물론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성장해야 합니다. 한·중·일 3국이 가난한 아시아 국가에 공적원조를 하거나 플랜트를 수출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히 체제전환국은 이런 도움이 절실하죠. 한·중·일 3국의 역할은 이전보다 훨씬 커졌습니다.”


실제로 한·중·일 FTA의 효과는 상당히 클 것으로 보인다. 한·중·일 FTA가 체결되면 인구 16억명, GDP 12조 달러의 경제통합체가 아시아에서 탄생한다. EU(GDP 약 16조 달러)·북미자유무역지대(NAFTA·GDP 약 14조 달러)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효과도 크다. 한중일 FTA로 20%에 불과한 한중일 3국의 역내교역비중이 NAFTA(39%)를 넘어설 전망이다. 더불어 서비스시장 개방에 따른 서비스산업 발전, 환경·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로의 협력 확대도 예상된다. 그러면 한중일 3국은 미국·유럽경기에 지금처럼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유럽의 무역의존도가 역내교역을 통해 낮아지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한·중·일 FTA는 아시아 경제통합의 수단으로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경제통합은 안보유지에도 효과적

- 한·중·일 FTA는 물론 아시아 경제통합론이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종은: “아시아의 시장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거래 안전성을 확보하고 외환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경제통합을 해야 합니다. 미국과 유럽에 수출만 하면 위기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이런 위기를 수차례 겪었습니다. 통화가치가 한껏 치솟았다가 자본유출 때문에 다시 떨어지는 악순환 말입니다. 이는 중산층의 문제와도 연관성이 깊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 경제성장과 사회통합의 핵심인 중산층이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정근: “아시아의 경제통합은 중요한 이슈입니다. 그러나 섣부른 통합은 위험합니다. 무역면에서 한·중·일 FTA를 먼저 체결하고, 금융면에서 협력을 해야 합니다. 통화통합은 마지막 단계입니다.”

이종은: “그렇습니다. 통화통합을 하기 전 채권시장이 먼저 발달해야 합니다. 아세안+3국 국제 채권시장 규모는 3%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83%에 달하죠. 이는 엄청난 불균형입니다.”

오정근: “맞습니다. 경제통합 전 여건을 조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한·중·일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회의, 실무자 회의를 통해서 거시정책을 조정해야 합니다. 어느 나라는 금리를 올리고, 어느 나라는 금리를 내리면 안 됩니다. 금리차 때문에 돈이 움직일 가능성이 큽니다. 또한 중국은 고정환율제에 가까운 경직된 환율제이고 한국과 일본은 자유로운 환율제입니다. 이를 서로 조정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채권시장도 키워야 합니다. 아시아 국가는 아시아 국가의 채권을 사지 않습니다. 사지 못해서가 아니라 살 채권이 없어서입니다. 중국이나 몽고의 채권을 누가 사겠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한·중·일 3국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중·일 3국의 5조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2000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만들었다고 칩시다. 이 펀드가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하면 아시아 국가채권의 안정성이 한층 높아질 겁니다. 그러면 외환보유액으로 유럽이나 미국에 투자했다가 손해 보는 일이 감소하고, 이를 통해 역내교류가 활성화할 겁니다. 앞서 말했듯 아시아 경제통합은 두 절차로 진행돼야 합니다. 첫째는 FTA, 둘째는 금융협력입니다. 이게 잘 되면 통화통합도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 하지만 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국가별 경제규모 차이가 큽니다. 한중일 3국의 GDP는 12조 달러에 달하지만 아세안 10국의 GDP는 2조 달러에 불과합니다. 중앙아시아를 이끌고 있는 5개국(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의 GDP는 2000억 달러를 조금 넘죠. 통합을 서둘렀다가 낭패를 볼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오정근: “유로존 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1999년 출범한 유로존의 목표는 유럽국가를 경제로 통합해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 경제 취약국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제 취약국의 재정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통합을 밀어붙였다가 지금의 부실사태가 초래됐죠. 만약 아시아 경제통합을 추진한다면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현재 한·중·일 3국과 경제통합을 할만한 국가는 대만·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정도입니다. 다른 나라들은 통합하기 어렵습니다. 한쪽에서는 거시정책 대화채널을 가동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를 어떻게 포함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논의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아시아 시대에 대비한 한국의 역할과 과제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종은: “각 분야 전문가의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정치권을 욕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깊이와 넓이를 모두 갖추면 정치권의 수준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전문가가 정책결정자보다 약간 더 아는 수준으로는 한국의 선진화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아울러 국가전략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계속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가든 개인이든 갈등이 초래되면 ‘입장’ 을 얘기하기 바쁩니다. 그러나 입장보다 더 중요한 것, 향후에도 모순되지 않으며 다른 입장들 사이의 공통분모를 끌어낼 수 있는 접점은 ‘보편적 가치’ 입니다. 한국이 아시아 시대를 주도하려면 아시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실천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신봉길: “아시아 경제통합을 단순히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안 됩니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감옥에서『동양평화론』을 집필했는데, 그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일본·청국·러시아가 패권을 다투는 중국 뤼순(旅順)에 한중일 3국의 ‘동양평화협의체’를 만들자고 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한중일 협력 사무국입니다. 뤼순에 공용화폐를 발행하자고도 했습니다. 한중일의 경제를 통합해 공동 번영과 평화를 꾀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중세 독일 철학자 엠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저서 『영구평화론』에서 “무역하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한중일 FTA를 비롯한 아시아 경제통합은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적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오정근: “중국은 많은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침체기입니다. 이와 반대로 한반도는 국운상승기에 접어들었다고 봅니다. 기다리면 안 됩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미국과 중국을 잘 이용한다면 한국은 세계 탑 국가로 성장해 아시아 시대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겁니다.”

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1122호 (2012.01.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