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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학원 떠난 자리에 입시 컨설팅 학원 성행 

학원생 줄자 10시 이후 불법 수업 늘어…글짓기·독서교실로 다각화 하기도 

박성민



8월 16일 오후 6시 지하철 분당선 한티역 주변. 수업이 끝난 대형학원 건물에서 학생들이 빠져 나온다. 학생들을 집으로 데려가기 위한25인승 버스 3대가 도로변에 나란히 서있다. 따로 배웅을 나온 승용차도 3~4대가 보인다. 거리가 붐빈다는 느낌이 채 들기도 전에 학생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했다. 그나마 25인승 버스를 다 채우지도 못했다.

과거 북적대던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 모습이 아니었다. 수십 대의 학원 버스가 이중 삼중으로 도로를 점령하고, 그만큼의 고급 외제 승용차가 학생들을 태우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학원 수업 하나가 끝나면 거리 전체가 들썩거렸어요.간식 먹으려는 아이들이 밀려와서 학원 수업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음식을 준비했죠. 지금은 학원 수업이 언제 끝났는지도 모를 정도로 아이들이 줄었네요.” 근처에서 분식집을 운영하는 주인 아주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임대료 떨어져도 거래 뜸해

도곡역과 대치역, 한티역으로 둘러싸인 대치동 학원가가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학원생 수는 줄고, 문을 닫는 학원들이 늘고 있어서다. 올해 들어서만 50곳 이상의 학원이 문을 닫았다. 건물 전체를 쓰던 학원들도 규모를 줄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붐벼야 할 학원가가 한산했다. 오후 2시에서 7시까지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학생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거리에서 이동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시간에 관계없이 비교적 일정했다.

건물 곳곳에 붙은 임대 플래카드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은마아파트 사거리에서 한티역까지, 메인 학원가 도로에서만 8개의 건물에서 임대 플래카드를 볼 수있었다. 대치동 근처의 한 부동산 대표는 “임대 플래카드가 안 붙은 건물에도 빈 사무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권리금이 없어지고 임대료가 싸졌다는데 다 의미 없는 이야기”라며 “어차피 여기서 학원을 차리려는 사람이 없는데 가격이 무슨 소용이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잘나가던 대치동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이다.보통 수능이 끝나고 나면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대치동으로 몰린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그런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과거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한 달 정도를 대치동에 머물면서 논술을 준비했다. 또 일부는 아예 근처 오피스텔이나 원룸에 방을 잡고 재수를 준비하기도 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아예 전학을 오는경우도 있다. 학생 혼자 상경해 자취를 하기도 하고, 부모님과 함께 올라오기도 했다. 수능이 끝나고 일주일 안이면 가득 들어차야 할 주변 오피스텔에는 지금까지도 빈방이 많이 남아있다. 길에서 만난 박세웅(개포고 1)군은 “해마다 학기 초면 지방에서 온 전학생이 꼭 있었는데 올해는 없었다”며 “학교나 학원에서 올해는 아직 지방 친구를 한 명도 못 봤다”고 말했다.

대치동 학원이 쇠퇴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정책이다. 수능이 비교적 쉬워지고, EBS 위주로 출제되면서 학원의 중요성이 많이 사라졌다. 밤 10시 이후로는 학원 영업을 금지하는 법이 생긴 것도 학원 수강생이 줄어드는 한 요인이다. 거기다 최근 경기 불황이 심해지면서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움직임도 뚜렷해지고 있다.폐업하는 학원이 늘고 있는 가운데,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올 수능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작은 이슈에도 크게 요동을 치는 교육시장의 특성상 깜짝 반전 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자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건물주들은 기존의 임대료를 고수하면서 건물을 비워두고 있는 경우가 꽤 있다”며 “3~4개월 뒤 성수기에는 어떻게든 임대를 하려는 학원이 있을 것이란 판단인데,쉽지 않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대치역 근처에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수능 이후에 수요가 몰릴 때 권리금이라도 조금 받고 학원을 처분하려고 적자를 보면서도 계속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생존에 안간힘을 쓰는 학원이 많다. 최근에 대치동에서 유행하는 학원은 ‘진학 컨설팅 전문학원’이다. 입학사정관제가 생기고, 수시의 비중이 늘어나는 등 급변하는 교육제도아래에서 맞춤형 전략을 세워주는 학원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자신의 성적·수상경력·봉사활동·해외연수경험·특기 등을 정리해 컨설팅을 맡기면 전문 컨설턴트가 그에 맞는 해법을 마련해 준다. 원하는 대학의 입시 전형에 맞춰 특정 과목이나 경험을 더 쌓도록 포트폴리오를 짜주는 학원이다. 컨설팅 비용이 보통 시간당 50만원을 넘는다. 사교육을 없애기 위해서 만든 제도가 너무 복잡해, 그 제도를 설명해주는 사교육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대치동에서 이런 컨설팅 학원은 20여개가 넘는다. 이 중 10여개가 최근에 새로 생겼다. 기존 학원은 그대로 운영하면서, 원장이나 실장 등 대치동에서 경력을 쌓은 강사가 컨설팅 업무를 병행하는 학원도 늘고 있다.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학원으로서는 새로운 수입이 생기는 셈이다. 또 일부 컨설팅 학원은 컨설팅 후, 부족한 교과목을 가르치는 보습학원이나 논술학원에 학생을 연결해주고 중간 소개비를 받는 경우도 있다.

과목수를 늘리거나 수강생 범위를 넓히는 방법으로 대응하기도한다. 영어만 전문으로 가르치던 학원에서 강의실을 쪼개, 스피킹이나 회화 강좌를 여는 식이다. 중등 교육 전문학원이 고등학생 수강생을 모집하거나, 초등학생 수강생을 모집하는 것도 비슷한 케이스다. 한티역 근처의 한 유명 논술학원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건물 3동에서 주로 논술을 가르쳤는데 매 수업마다 원생이 가득 찼던 학원이었다. 최근에는 건물 한 동을 개조해 초등학생 전문글짓기·독서교실로 꾸몄다. 줄어드는 수익을 만회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위한 수업을 연 것이다.

대치동의 학원 정보를 담은 책 『대치동 학원 설명서』의 저자이자,대치동에서 두 아이(중학생·고등학생)를 키우는 어머니인 정혜옥씨는 “지난해 대치동 일대의 학원을 취재하고 책을 출간한지 6개월도 안 돼서 모든 상황이 급변했다”며 “수많은 학원이 없어지고 화술, 독서, 스피치 등 새로운 종류의 학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간판을 내리고 조그만 교실에 5~6명의 학생을 모아, 밤 10시 이후에 과외 수업을 하는 학원도 있다”고 전했다.

컨설팅 비용 시간당 50만원 넘기도

오후 7시 대치역 근처에 30여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짝을 지어 거리에 나왔다. 한 학원에서 진행하는 입시 설명회를 듣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다. 인터뷰를 시도하자 학부모들이 저마다의 불만을 쏟아냈다. “입시 설명회를 들으면 뭔가 방법이 보여야 하는데 애들 교육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감이 안 와요. 차라리 예전에 학원 보낼 때가 더 마음이 편했던 것 같아요.” “입학사정관제나 수시비중이 커지면서 학교 선생님들 힘이 커졌어요. 학급 임원하고 추천서 잘 받으려면 이래 저래 학교 가서 얼굴도장 찍어야죠. 학원에 내든 학교에 내든 교육비로 나가는 돈은 똑 같은 것 같아요.” 드문드문 빈 대치동 학원가만큼이나 입시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마음도 어 수선하다.

1152호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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