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쓰레기’ 같은 CEO 되시라 

 

이상홍 KT파워텔 대표



CEO란 무엇인가. 환경에 적응하는 조직을 이끌고, 기대하는 성과를 창출하며, 회사를 보다 나은 단계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하는 회사의 대표라고 하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회사가 처한 경영 환경 또는 취급하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특성에 따라 CEO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의 종류에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농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 감독들의 경우는 선수를 훈련시키고 경기를 지휘하는 형태에 따라 덕장·지장·용장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어떤 캐릭터의 감독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정한 유형의 리더십이 모든 환경에 최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케이블TV에서 종영된 ‘응답하라! 1994’라는 복고풍의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열풍에 기대 연말에 ‘응답하라 2013!!’이란 이름으로 전 직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그중 한 직원이 보내준 회신 중에 ‘쓰레기 같은 CEO가 되십시오’라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쓰레기 같다’는 말은 욕설만 없다 뿐이지 상대방을 최고로 비하하는 말이다. ‘응답하라! 1994’에서 많은 여성들의 로망이었던 극중 김재준(정우 분)의 별명이 쓰‘ 레기’다.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상한 우유를 거침없이 마실 만큼 무신경하다. 쓰레기·옷가지 등이 널려 있어도 신경 쓰지 않는 지저분한 스타일이다.

그러나 극중 ‘쓰레기’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며 표 안 나게 후배들을 챙겨주는 인간적인 편안함을 가진 의대생이다. 또 다른 인물로 ‘칠봉이’가 있다. 메이저 리그에서 활약하는 야구선수로 훈훈한 외모에다 재력가다. 매너 있고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스타일의 멋진 남자이다. 극중 여주인공인 나정이가 쓰레기와 칠봉이 중 누구와 결혼하느냐는 드라마 최대의 관심사였다. 결국 그녀는 쓰레기를 택한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면서 회사마다 조직을 재정비하고 연례적인 승진 인사, 그리고 보직발령이 이어지고 있다. 승진이란 기회를 잡은 사람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지만 기회를 잃은 사람들에겐 아픔의 눈물이 돌아온다. 또 “밤새 안녕들 하셨습니까”라는 질문에 밝게 답하지 못하는 훨씬 많은 사람의 가슴 속에는 찬 겨울 바람같은 쓸쓸함이 가득하게 된다.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위해 ‘돌격 앞으로!’를 외치며 이끄는 CEO가 필요하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날씨 같은 공허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지쳐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을 위해 조용히 다가가 등을 두드려주거나, 말없이 안아주는 쓰레기 같은 CEO가 더 많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피우지 못한 아픔을 위로하고 다시 꽃을 피울 때까지, 또 다른 눈물과 땀을 기꺼이 흘릴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주는 ‘정우 같은 리더십’이 그리워지는 겨울이다.

1224호 (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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