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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agement |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 <로미오와 줄리엣>의 ‘ 비 이성적 과열’ 

속도 조절 불가능한 광기 … 증시에서는 혹독한 결과 맞기도 

박병률 경향신문 기자

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의 영원한 아이콘이다. 우 리는 흔히 열정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부른다. 이 작품은 영국이 낳은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으로 <햄릿>과 함께 당대 가장 많이 공연됐다. 희곡은 1597년 출간됐지만 초연은 그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사랑하는 연인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형식의 이야기들이 구전돼 왔다.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에서 떠돌던 이야기를 각색했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이야기들을 모아 희곡을 훨씬 정교하게 다듬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 며칠 간의 이야기다. 배경은 이탈리아 베로나. 두 원수 집안이 있다. 몬태규가문과 캐풀렛 가문이다. 로미오는 몬태규 가문, 줄리엣은 캐풀렛 가문이다. 베로나 의 영주가 막지만 이 두 유력 집안은 시시때때로 싸운다. 하인들까지도 원수다. 로미오는 캐풀렛 가문이 연 파티에 참석했다 줄리엣을 만난다. 그리고 둘은 한눈에 반한다. 파티가 끝난 뒤 로미오는 담을 뛰어 다시 캐풀렛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이 유명한 줄리엣의 발코니다. 두 사람은 다음날 로렌스 신부의 사제관을 찾아 비밀 결혼식을 갖는다.

하지만 운명이 꼬인다. 다음날 로미오는 길거리에서 양 가문 의 싸움에 휩쓸리고, 줄리엣의 사촌인 티볼트를 죽인다. 영주는 로미오에게 만토바로 추방령을 내린다. 슬픔에 빠진 케풀렛 은 딸 줄리엣에게 젊은 법관인 패리스 백작과 결혼을 명령한다. 절망에 빠진 줄리엣은 로렌스 신부에게 찾아가 묘책을 구한다. 신부의 묘책은 42시간 동안 죽는 약이다. 그 약을 먹고 죽은 것처럼 되면 가족들이 줄리엣을 가족묘지에 묻을 것이고, 그때 로미오와 함께 줄리엣을 구하겠다는 계획이다.



격정적인 사랑, 비극적 결말

줄리엣은 패리스 백작과의 결혼식날 약을 먹고 죽는다. 로렌스 신부는 로미오에게 사실을 담은 편지를 보내지만 전염병으로 인해 전달되지 못한다. 하인으로부터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로미오는 줄리엣의 무덤 앞에서 패리스 백작과 만난다. 백작과 대결을 벌이는 로미오. 로미오는 백작을 죽이지만 자신도 독약을 마시고 자살한다. 뒤늦게 깨어난 줄리엣도 로미오의 단도를 꺼내 자신의 심장을 찌른다.

베로나는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의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줄리엣의 집’이 있다. 연인들은 이곳을 찾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를 벽에 꽂아둔다고 한다. 줄리엣의 동상도 있는데,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도 있다.

작품에서 로미오의 나이는 언급이 돼 있지 않다. 줄리엣은 만 14세가 되기 2주 전, 그러니까 만 13세다. 로미오가 2~3살 가량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면 로미오는 16세 내외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처음 만나 사랑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일주일 정도다. 두 사람의 비밀결혼은 만난지 이틀 만이다. 참으로 지독하고 미친 사랑이다. 광기에 가깝다. 어른들의 눈에는 이런 사랑이 겁난다. 그래서 로렌스 신부는 경고한다. “극단적인 기쁨은 극단적인 끝을 맺는 법이야. 불과 화약이 만나면 절정에서 소멸하는 법이다. 꿀도 너무 달면 쉽게 질리고 입맛을 버리게 한단다. 그러니 사랑은 적당하게 하게. 그래야 오래가지. 너무 서두르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하네.” 이렇게 ‘속도조절’을 주문하지만 격정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의 귀에 들릴 리 없다.

불붙은 두 연인의 상태를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틀림없이 ‘비이성적 과열상태(irrational exuberance)’라고 경고했을 것이다. 1996년 미국 증시는 10거래일 연속 상승하는 등 주가가 크게 올랐다. 1990년 초 400선이던 나스닥 지수는 1200선까지 상승했다. 그 해 12월 그린스펀은 짧게 한마디 했다. “주식시장이 비이성적 과열에 빠졌다.” 이 한마디에 미국 증시는 20%나 폭락했다. 그린스펀의 발언에 따라 주식시장이 움직이면서 ‘그린스펀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비이성적 과열’은 증시 과열기에 관용구처럼 쓰인다.

비이성적 과열 상태는 투자자들이 투자 판단을 이성적으로 하기 힘든 상태다. 마구 뛰어오르는 증시에 기업 가치를 따져보기보다 ‘묻지마 투자’를 할 가능성이 크다. 급상승을 하던 시장은 버블이 되고, 어느 순간 한방에 터져버린다.

사랑의 광기도 비극으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두 사람의 콩깍지가 껴 ‘비이성적 과열’ 상태가 될 때는 결코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비이성적 과열 상태가 지속되면 두 사람이 감내할 수 있는 현실을 넘어버리고, 어느 순간 터져버릴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에서 줄리엣이 더 적극적이다. 줄리엣은 로미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맹세한다면 자신은 성도 버리겠다고 말한다. “로미오, 아버지의 이름을 버리고 당신의 이름을 거부하세요! 그렇게 못 하시겠다면, 다만 나를 사랑한다고 맹세해 주세요! 그러면 나는 캐풀렛이라는 성을 버리겠어요.”

발코니로 찾아온 로미오에게 ‘결혼’을 제안하는 것은 줄리엣이다. “당신의 사랑이 진정이라면, 나와 결혼을 생각하신다면….” 13세 소녀에게 찾아온 첫사랑을 그녀는 통제하지 못한 것이다.

어디까지가 ‘비이성적 과열’인가는 기준이 없다. 때문에 ‘비이성적 과열’의 상태를 놓고 경제학자들끼리 논쟁이 붙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 완화를 이듬해 1분기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자 주가가 크게 상승했다. 마켓워치는 ‘1996년의 비이성적 과열이 엿보인다’며 몇 가지 신호를 제시했다.

① S&P500 지수의 배당수익률이 24배로 1996년 당시와 같은 수준이며 ②주가수익률(PER)이 24배로 당시 28배와 흡사하고 ③ 매출 대비 주가가치가 1.4배로 1996년 고점 1.3배를 웃돌며 ④비관론자가 강세론을 펴는 움직임이 있고 ⑤기관 투자자들이 채권 비중을 축소하고 ⑥주식 및 채권을 기준으로 한 기업 가치가 연간 매출 대비 2.3배로 1996년의 1.7배를 웃돌며 ⑦단타 투기자들이 주식을 사들이는 것 등이 과열 신호라고 밝혔다.



비이성적 과열 잠재운 그린스펀 효과

한국 주식시장도 몇 차례 ‘비이성적 과열’을 경험했다. 가장 최근 사례가 2007년이다. 주가 2000을 넘자 너도나도 주식시장에 들어왔다. ‘인사이트 펀드’의 경우는 줄을 서서 가입했다. 그러나 으레 그렇듯 비이성적 과열 이후는 혹독한 냉각기가 찾아온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비이성적 과열은 두 사람과 패리스 백작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원수지간이던 몬태규가문과 캐풀렛 가문은 화해한다. 두 가문도 서로를 미워하는 ‘비이성적 과열’에 빠진 상태였다. 생떼 같은 두 아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잃고서야 과열은 끝난다.

1257호 (2014.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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