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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 기준금리 내린 한은, 다음 선택은 - ‘전인미답 1% 시대’ 올 듯 

금리 내려도 증시·외환시장 냉담 일본·EU 경기 악화되면 내년 추가 인하 가능 

조현숙 중앙일보 기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0월 1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서 열린 금통위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2.0%로 인하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본부 15층에 있는 회의 실. 기준금리가 결정되는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가 열리는 곳이다. 회의가 시작되는 10월 15일 오전 9시를 2분 정도 앞두고 6명 금융통화위원이 차례로 들어섰다. 굳은 얼굴을 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이어 걸어들어왔다. 분주하게 카메라를 찍는 취재진을 향해 이 총재는 잠시 미소지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굳은 표정으로 돌아가 회의를 주재했다. 1시간 여 뒤 발표가 났다.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0%로 하향 조정한다.”

2.0%. 한은이 금리를 통화정책 수단으로 쓰기 시작한 1999년 5월 이래 가장 낮은 수치다. 한은은 4년 만에 다시 2.0%란 ‘전시(戰時) 금리’를 선택했다. 과거엔 미국발 금융위기란 외풍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면 이번은 국내에 번지고 있는 저성장·저물가 징후를 겨냥한 선택이었다. 이 총재는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기준금리를 낮춘 근거로 세 가지를 들었다. “올해와 다음해 경제를 다시 전망해본 결과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하향 조정됐고, 물가 상승 압력도 예상보다 다소 약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리곤 “경제주체의 심리 개선이 미흡하다”는 이유를 덧붙였다.

이주열 “성장 모멘텀 충분치 않다”

이 총재의 어두운 표정엔 이유가 있었다. 이날 한은은 ‘2014~2015년 수정 경제전망’을 내놨다. 지난 7월에 이어 석 달만에 수치를 대폭 손질했다. 올해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3.8%에서 3.5%로 0.3%포인트 낮췄다. 기획재정부나 국제통화기금 (IMF)이 예상한 3.7%보다 아래일 뿐 아니라 국내외 경제예측기관을 통틀어 가장 암울한 전망이다.

“경기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이 총재가 바뀐 경제 전망 수치를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불과 석 달 전에 봤던 것에 비해 성장 모멘텀(추동력)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여전히 하방리스크(경기 저하 위험)가 있다”며 “경제 모멘텀을 살리려고 한다면 인하 시점은 지금이 맞다고 봤다”고 강조했다. 이날 7명 금통위원 가운데 이 총재를 포함해 6명이 금리 인하에 표를 던졌다. 우울한 경기 지표와 전망이 이들을 움직였다. 8월에 금리를 내린 명분이 세월호 사고로 인한 경제주체의 위축된 심리’였다면 이번 인하는 우울한 ‘지표’가 계기가 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21일 호주에서 이 총재를 만난 직후 “척하면 척” 발언을 했었다. 한은은 중립성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 총재는 자존심을 일단 접고 추가 인하 카드를 들었다. 대응 시기를 놓쳤다간 저성장·저물가 수렁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우려가 컸던 까닭이다. 이 총재는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이 경제성장률을 0.2%포인트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며 “그런 정책적 효과를 제외한다면 올해 성장률은 3.7%에 머물 수 있다”고 말했다. “성장 모멘텀이 충분하지 않다”는 게 그의 시각이다. 올해 쓸 수 있는 실탄은 다 쐈으니 공을 최 부총리에게 넘기겠단 의미로 풀이된다.

금리 인하는 통화의 양을 늘리고 돈이 도는 속도도 빠르게 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신호다. 중앙은행에서 기준금리를 낮추면 주식시장은 상승으로 화답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시장 반응은 달랐다. 한은은 역대 최저 금리란 선물을 안겼지만 주식·외환시장의 반응은 담담하다 못해 차가웠다. 금리 인하 결정이 내려진 15일 코스피는 오히려 3.34포인트(0.2%) 하락한 1925.91포인트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은 이날 약 1800억 원을 순매도했다. 17일에도 외국인 매도세가 이어지면 코스피 지수는 장중 19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17일 종가는 1900.66포인트였다. 달러당 원화도 큰 변동이 없었다. 금리가 내려가면 시중에 풀리는 원화가 많아질 것이란 기대에 환율은 올라가게(원화 약세) 마련이다. 그런데 기준금리 발표 날 원화가치는 오히려 소폭(1.4원) 오른 1063.1원을 기록했다. 시장은 한은을 외면했다.

이 와중에 미국과 유럽·일본이 각자도생하며 ‘환율전쟁’도 불사할 태세이다. 국제금융센터 김용준 부장의 얘기를 들어보자.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8개국)과 일본은 디플레이션(장기 저물가와 경기 침체) 위기에 직면해 있어 통화완화(돈 풀기) 정책에 나서고 있다. 저성장·저물가 우려가 번지고 있는 아시아·동유럽 신흥국에서도 이런 완화 정책에 새롭게 동참하고 있어 환율 갈등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이와 달리 미국은 경기 회복에 따라 내년 정책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는 만큼 미국 달러화 강세 기대는 상존해 있다”는 지적도 했다. 5년 전 금융위기 때 폈던 주요국 중앙은행의 ‘공동 작전’은 이제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한은으로선 통화정책을 운용하기 어려워졌다. 한은이 ‘심리’에 한 발(금리 인하), ‘지표’에 한 발 더 쐈다면 비상 실탄은 결국 ‘해외’를 향해 날릴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흘러나올 정도다.

이미 시장의 관심은 한은의 다음 선택으로 옮아가 있다. 시장 변동이 큰 연말엔 보통 중앙은행에서 정책금리를 만지는 일이 드물다. 올해는 2.0%로 쭉 가는 게 기정사실이다. 다음해 상황은 다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 양적 완화 버튼을 누른다면, 물가와 경제성장 여건이 더 나빠진다면, 한은으로서도 2.0% 금리를 고집하기 힘들다. 기준금리 1%대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국 경제가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금리 조정폭 ‘0.25%포인트’ 고집을 내려놓자는 주장이 나온다. 2% 이상 금리에서야 0.25%포인트가 ‘베이비 스텝(아기 걸음마처럼 작은 보폭의 금리 조정으로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의장 시절 주로 활용)’이지만 1%대 이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0.25%포인트라 해도 전체 금리의 4분의 1을 조정하는 ‘자이언트 스텝’ 격이다. 한은 금통위에서도 이 문제가 논의된 적이 있다.

0.25%p 조정폭 0.1~0.2%p로 바꿀 수도

지난 8월 14일 금통위에서 한 금통위원은 “0.25%포인트씩 인하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0.2%포인트 인하 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향후 불확실성에 대비해 금리 조정 여력이 필요하다”며 “다소 완화적인 현재의 금융 상황에서 추가적인 금리 인하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생각되며, 자본 유출입에 영향을 미치는 내외 금리차에 대해서도 고려가 필요 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은 관계자는 “0.25%포인트는 시장에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최소한의 금리 조정폭으로 전 세계적인 검증을 받은 수치며 당분간은 금리 조정폭을 0.25%포인트로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당장의 얘기는 아니지만 0%대 금리에선 0.25%포인트의 영향이 큰 만큼 0.1%포인트 또는 0.2%포인트 씩 조정하는 안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고, 선진 중앙은행에서도 그랬던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1258호 (201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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