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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석 기자의 ‘앵그리 2030’ ⑤ 두려운 결혼의 경제학 - 지금 나에겐 가족도 사치다 

경제적 부담에 결혼 포기 속출 지난해 초혼 연령 남자 32.2세, 여자 29.6세 

한국이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넘어 고령 사회가 목전입니다. 노인을 위한 사회적 준비와 배려도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미래 세대를 키우려는 노력도 필요합니다. 현실은 좀 다릅니다. 요즘 20~30대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습니다. 대학 입시라는 높은 벽을 넘으면 취업이라는 일생일대의 장애물이 놓여 있습니다. 꿈 같은 취업을 하고, 서른이 돼도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쥐꼬리 만한 월급에 집 한 채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살기에는 결혼·육아·승진 등 어깨의 짐이 너무 버겁습니다. 젊은이들이 미래를 설계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닙니다. 이들의 작은 목소리를 지면에 옮깁니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공간이 아닌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는 공간으로 이해되길 바랍니다.




사진:중앙포토, 전민규 기자
‘결혼, 그 이후 당신의 인생은 1페이지부터 다시 시작’.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정확한 문구는 아닐지 모르나 내용은 이랬습니다. A. 브론스키가 쓴 <결혼의 기원과 역사>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사람에게 결혼이란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입니다. 혼자 살던 인생에서 함께 사는 인생으로 전환하는 것이니 의미가 남다릅니다. 저도 결혼을 했습니다만 막상 결혼을 앞두면 조금 두렵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머나먼 동네로 시집가던 조선시대 처녀의 마음이나 내일 모레 결혼을 앞둔 21세기 총각의 마음이나 두렵긴 매한가지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달라질 엄청난 환경의 변화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막연한 공포감 같은 거겠죠. 하지만 어쩌면 이것은 아주 행복한 두려움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더 나으리란, 가족을 이루고 더 행복해 질 것이란 기대가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두려움’이라고 해두죠.

글자는 같은데 다른 두려움도 있습니다. 결혼이 진짜 겁나는 경우입니다. 결혼 상대가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두려움의 대상 은 바로 ‘돈’입니다. 결혼에 돈이 필요한 건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같이 살 집이 필요하고, 살림살이도 장만해야 합니다. 양가 집안에 선물도 건네고, 손님들 불러다 잔치도 해야겠죠. 그런데 이 돈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불어나면 결혼이 두려워질 만 합니다. 요즘 이런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포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 달 전 친한 동생 A와 나눈 대화가 아직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1억 때문에 결혼을 못한다면 너무 슬픈 일 아닌가요?”


“형, 제가 계산기를 두드려 봤어요. 제 연봉이 3500만 원이예요. 세금 빼면 실제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230만 원. 한 푼도 안 쓰고 모으는 게 가당하기나 해요? 진짜 많이 모아서 절반씩 모은다 쳐요. 서울에서 전세 아파트라도 얻으려면 2억 원은 있어야 된다면서요? 그럼 15년 걸리겠네요. 돈 1억~2억 원이 없어서 결혼을 못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 아닙니까?”

술 한 잔 걸친 28살 A는 제게 따지듯 토로했습니다. 제법 평이 좋은 대기업에 취업한 지 6개월, 소주 한 잔 대접한다기에 나간 자리였는데 이야기가 딴 데로 튀었습니다.

“그렇게 다 차려놓고 시작해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한 5000만원쯤 모이면 대출 받아 전셋집 마련하면 되지. 굳이 서울을 고집해야 할 이유도 없고. 두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마음을 맞추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닐까?”

말은 번듯하게 했는데 괜히 찜찜합니다. 마음이 전부가 아니란 걸 저도 알기 때문이죠. 아니나 다를까 반격이 들어옵니다.

“요즘 우리 나이에 새로 만나 결혼까지 하려면 이것저것 조건 다 따질 텐데 절반 넘게 대출인거 알면 이해할까요? 부모님께 손 벌릴 처지가 안 되는 저 같은 사람은 그냥 죄인 같아요. 괜히 원망스러울 때도 있어요. 우리 엄마, 아빠는 뭐했나. 돈이 없으면 잘 생기기라도 하든가. 전 결혼에 필요한 세 가지가 모두 없어요. 연봉·유산·외모. 이러니 4년 넘게 혼자죠. 전 아마 결혼 못할 거예요.”

상상 못했던 외모론까지 등장하자 설득을 목표로 삼았던 저는 서둘러 위로로 전략을 바꾼 뒤 술자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생각에 빠졌습니다. 과연 이게 A만의 특수한 상황일까요? 그가 말한 조건들을 하나씩 고민해 봤습니다. 외모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경제적 조건들은 충분히 따져볼 만합니다.

결혼이 합법적 부의 세습 기회로 둔갑

실제로 요즘 결혼 비용은 서른 살 젊은이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액수입니다. 작은 결혼식을 치르자는 한 언론사의 캠페인이 화제가 됐고, 가치소비 문화도 확산하고 있지만 결혼에 드는 목돈을 피하긴 여전히 어렵습니다. 사실 결혼식에서 몇 푼 아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 전 웨딩컨설팅 브랜드 듀오웨드가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와 공동으로 발표한 ‘결혼 비용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요즘 신혼부부는 결혼을 전후해 평균 2억 4996만 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최근 2년 이내 결혼한 1000명(남성 485명, 여성 51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니 표본도 적지 않습니다. 주택 마련 비용이 1억 8028만 원으로 가장 많았고, 예물(1670만원)·예식장(1594만원) 비용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신랑이 1억 5598만 원, 신부가 9398만 원을 지출했는데 ‘집은 남자가 책임진다’는 인식 탓에 남성의 경제적 부담이 더 큰 편입니다. 핵심은 부동산입니다. 나머지 비용은 아낀다 쳐도 전세금은 마음대로 못 줄입니다. 집주인이 달라는 대로 줘야지요. 그런데 나날이 치솟는 전세금은 얼마 전 평균 2억 원(수도권 주택 기준)을 넘어섰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초혼 연령은 남자가 32.2세, 여자가 29.6세입니다. 산술적으로 남녀 각각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직장 생활을 시작해야 이 돈을 모을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7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초혼 연령은 2012년에 비해 각각 0.1세, 0.2세 상승했습니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남자는 2.1세, 여자는 2.3세 늦어졌습니다. 취직은 갈수록 늦어지는데 결혼 자금을 모으려니 결혼을 늦추는 수밖에요.

결혼 후도 걱정입니다. 맞벌이로 해결된다면 조건을 덜 따질텐데 집 한 채라도 마련하려면, 내 아이 남 부럽지 않게 키우려면 사랑만으론 안 된다는 걸 잘 압니다. 자연히 배우자의 조건을 따지게 됩니다. 연봉은 얼마인지, 앞으로는 얼마를 더 벌 수 있는지 계산하는 거죠. 심지어 인간을 등급으로 나누고, 줄을 세우는 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순환은 계속됩니다. 혼기가 늦어질수록 조건은 더욱 중요해집니다. 집안까지 등장합니다. ‘결혼 전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아버지 직업을 먼저 물어보더라’는 씁쓸한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서른 살 전후에 2억 5000만 원의 결혼 비용을 모으는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 전투의 향방은 부모의 재력에서 결판 납니다. 정서적으로 독립했으나 경제적으로 여전히 부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요즘 세대의 나약한 단면입니다. 실제로 최근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부의 세습이 가장 명확하게 이뤄지는 기점이 됐습니다. 여유 있는 집안에선 증여세 부담을 덜 수 있는 합법적인 기회기도 하지요.

물론 ‘우리 때는 단칸방에서 시작해도 알뜰히 모아서 집 사고, 너희들 키웠다’는 아버지 세대의 일침도 일리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욕심부리지 말라는 훌륭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단칸방에서 출발하면 끝까지 단칸방’이라는 요즘 젊은 세대의 반박도 그저 변명만은 아닙니다. 두 자릿수는커녕 연 2~3% 경제 성장도 쉽지 않은 상황, 소득증가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 저금리에 재테크 창구마저 막힌 상황에서 자산 증식은 원금이 결정한다는 말도 틀린 게 아닙니다.

요즘 20~30대가 결혼을 앞두고 전세에 목을 매는 이유는 월세론 도저히 돈을 불려갈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판국에 빚을 앉고 출발하는 건 100m 달리기에서 5초쯤 후에 출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부모에게 3억 원을 물려 받은 사람과 1억 원의 대출을 안고 출발한 사람은 끝까지 부의 순위가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게 요즘 화제인 토마 피케티의 주장입니다.

부모가 도와줄 여건이 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럴 상황이 아닌데도 겨우 하나 남은 집까지 팔아가며 자식의 결혼 자금을 보태주는게 우리의 부모입니다. 정년 퇴직한지 5년이 넘었는데 아들 결혼시키겠다고 5000만 원의 빚을 낸 친구의 아버지도 봤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그걸 어떻게 갚으실 건가요? 당신의 노후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이미 결혼의 부담은 당사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부담이 가족에게 전가되고 있습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 칼럼에 이렇게 썼습니다.

“졸업 예정자와 취업 재수생을 합쳐 95만 명이 취업시장에 쏟아지는데, 10대 대기업에 뽑힐 사람은 2만 명 안팎. 청년 백수가 넘치고, 세습 자본이 투하될 수밖에. 100 대 1 경쟁을 뚫은 취업자도 살림집 마련에 지방은 7~8년, 서울은 두 배가 걸린다. 베이비부머인 필자도 그러했지만 그것도 잠시, 앞의 농부처럼 자식들에게 종자돈을 주고야 만다면 집을 조각 내고 다시 주변부로 리턴해야 한다. 연금이 있기에 재산을 몽땅 딸들에게 주고 궁핍하게 죽은 고리오 영감은 안 될 터지만 노후 불안은 따놓은 당상이다.”

‘결혼은 리스크?’ 사회 구성원이 머리 맞대야

요즘 젊은 세대를 일컬어 삼포세대라고 칭합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죠. 요즘엔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을 포함시켜 오포세대라 부르기도 하더군요. 이 용어가 한창 유행 하던 3~4년 전과 비교해 20~30대의 고단한 삶은 그리 나아진게 없습니다. 쏟아지는 고학력자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일자리, 끝이 안 보이는 취업 준비,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실질 임금상승률, 매주 고점을 경신하는 전세금 등 어딜 봐도 웃음지을 만한 뉴스가 안 보입니다. 장기적인 저성장 시대가 예고된 마당에 앞으로 더 나으리란 기대를 하기도 어려운 처지입니다.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는 이유가 ‘자기 자신’에 있다면 이는 응원을 보내야 할 일입니다. ‘내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을 포기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 ‘경험을 더 쌓아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싶다’ 등의 이유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합니다. 그러나 이유가 그런게 아니라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왜 결혼을 꺼리는 세상이 된 건지, 왜 젊은이들이 결혼을 두려워하게 됐는지, 왜 결혼을 더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삶의 ‘리스크’로 여기게 됐는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함께 풀어야 합니다.

어두운 미래에 결혼까지 포기하는 슬픈 서른 살. ‘가족도 내겐 사치’라는 젊은 세대의 절망이 ‘결혼은 당연한 것’이라는 전통적인 가족 형성의 공식마저 깨뜨리고 있습니다. 다음 번에는 ‘대한민국에서 둘째를 낳는다는 것’을 주제로 지혜를 모아볼까 합니다.

1259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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