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이공계 쏠림을 경계한다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

필자가 몇 년 전 겪은 일이다. 당시 필자의 회사는 중동에 합작 형태로 진출하기 위해 현지 국영 업체와 협의 중이었다. e메일로 협의를 진행하다가 몇 가지 이견만 남겨둔 상황에서 직접 만나 매듭 짓자는 연락이 왔다. 이에 필자를 비롯해 7명이 중동으로 떠났다.

도착해 보니 상대편 회사의 사장과 수석 부사장은 그리스인이었다. 이들과의 협상은 쉽지 않았다. 협상과 관련한 몇 가지 이견에 대해 전혀 양보를 해주지 않았고, 이들의 요구대로라면 전혀 실익이 없었다. 이틀 간의 열띤 협상에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들이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 협상을 마지막으로 귀국하기로 되어 있어 필자 일행은 반 체념 상태에서 저녁 초대에 응했다.

7성급 호텔의 레바논 식당으로 초대됐다. 식사를 시작하자 이들은 우리에게 여러 화두를 던지며 대화를 이끌어갔다. 그러던 중 그리스신화에 대한 얘기로 자연스럽게 흘렀다. 필자도 올림푸스 신들의 일화 등을 놓고 그와 주거니 받거니 하자 신이 난 듯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던 중 상대 회사 사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5분여 간 일장연설을 했다.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를 인용하며 두 회사 간의 협력을 이끌어내자는 내용이었다.

그의 연설이 끝나자 좌중은 우리 쪽을 바라봤다. 연설에 답 할 차례라는 것이다. 전혀 준비를 하지 않았던 우리는 순간 당황했다. 그렇게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있던 중 우리 일행 가운데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영국 시인 존 던(John Donne)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For whom the bell tolls)’를 읊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내가 슬퍼해야 될 만큼 모든 인류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시를 읊은 뒤 ‘우리 회사와 당신 회사는 이렇듯 운명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으니 좋은 결과를 내자’라는 요지로 마무리 지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은 마지막 협의 과정에서 상대편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다. 협상도 일사천리로 진행돼 오전 중에 타결됐다. 우리가 요구한 것도 대부분 관철됐다. 그들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의아해 하던 중 상대편 부사장이 이유를 귀띔해줬다. 전날 저녁 식사 후 사장 이하 임원진들이 따로 모여 우리 회사를 ‘지성과 문화 수준이 높은 회사’라고 평가하고 사업 파트너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전날 식사하면서 나누었던 대화와 존 던의 시 덕에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영문학과를 졸업한 우리 직원이 대학 시절 외웠던 시가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셈이다.

요즘 대부분의 어문학과 출신들이 취업 시장에서 ‘찬밥’ 신세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실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공학·경영학 등의 전공을 선호해서다. 영어 등의 언어 능력은 이제 비어문학과 출신도 대부분 갖춰 어문학과 출신이 상대적으로 큰 인기가 없다. 그러나 앞으로 회사의 발전은 창의력과 영감에 더 좌우될 것이다.

필자의 경험으로도 직급이 올라갈수록 어문학과 전공자의 업무 능력이 출중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한 마케팅 같은 분야에서 이들은 두각을 나타냈다. 요즘 같은 이공계 쏠림은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1272호 (201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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