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작은 변화가 쌓여 큰 혁신을 만든다 

 

정철 지멘스 PLM 소프트웨어 코리아 사장

▎정철 지멘스 PLM 소프트웨어 코리아 사장
저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 물 한 방울도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도종환 시인이 지은 ‘담쟁이’의 일부다. 산책 중에 줄기만 앙상하게 드러낸 메마른 담쟁이 넝쿨을 마주했다. 문득 시구가 떠올라 시집을 오랜만에 펼쳐봤다. 길가에 널린 담쟁이 넝쿨에서 시인은 희망을 본다. 같은 사물에서도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시인들, 생각의 물구나무를 세운 문학가들의 탁월함을 보며 잠시 혁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혁신 분야는 다양하다. 아프리카에 냉방 시설 없이도 시원한 건물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 생물학과 건축학의 만남이 작은 기적을 이뤄냈다. 1996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 지어진 건물 ‘이스트게이트’에는 에어컨이 없다. 건축가 믹 피어스는 흰개미가 한낮 기온이 38도까지 올랐다가 밤이면 5도로 뚝 떨어짐에도 개미탑의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점에 착안해 건축에 활용했다. 전공인 건축학에 생물학을 더해서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경영컨설턴트 프란스 요한슨은 자신의 저서 <메디치 효과>에서 르네상스를 꽃 피운 메디치 가문을 소개한다. 메디치 가문은 전문가를 우대했다. 가문의 후원을 받고자 다빈치·미켈란젤로 등 당대의 유명한 과학자·시인·철학자·화가·건축가들이 피렌체로 몰려왔다. 메디치 가문은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여러 전공 분야와 문화를 교류하면서 벽을 허물었고, 혁신적인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다.

2015년 청양(靑羊)띠 을미년 새해가 시작했다. 많은 기업이 혁신을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준비했다. 정부는 향후 3년을 국내 제조업 재도약의 골든타임으로 설정했다. 민관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제조혁신3.0’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내용이다. 2015년 국가 예산 중 창조경제 부문에 전년 대비 17.1%나 늘어난 8조 3000억 원을 배정했다.

선진국에서는 제조업 부흥을 위한 움직임이 거세다. 미국·일본·독일에선 제조업의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은 첨단 제조기술 전략을 진행 중이다. 일본은 ‘전략적 이노베이션 창조프로그램(SIP)’이라는 이름 아래 R&D 분야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독일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을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인더스트리 4.0은 제조업에 정보통신기술을 적용해 모든 생산기계·공정·물류·서비스를 통합 관리하는 새로운 산업생산 시스템이다. 제조 방식의 스마트화로 제조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사업영역 발굴과 신시장 창출이 주된 목표다. 국가 프로젝트로 출발했지만 기적인 민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

혁신에 정답은 없다. 방법도 제한이 없다. 시인이 그랬고 건축가가 그러했듯 크고 거창한 관념일 필요도 없다. 작은 부분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호기심 많은 어린 아이처럼 낯설게 보는 눈과 기존의 틀에 벗어나고자 하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1271호 (20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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