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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국제 유가] 헤지펀드 “오른다” vs 석유회사 “글쎄” 

재고 많지만 석유개발 예산 줄여 공급 줄 듯 … 사우디는 증산 공세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날개 없이 추락하던 국제 유가가 한 달 넘게 오르는 중이다. 글로벌 기준으로 쓰이는 브렌트유는 지난 3월 바닥 대비 20%, 1월 저점에 비해서는 40%가량 반등했다. 미국 WTI는 한 달여 사이에만 30% 넘게 상승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유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의 유가 하락은 원유 생산이 단기간 사이에 너무 많이 늘어난 결과였다. 미국의 셰일 오일 붐이 이끌어낸, 30년 만에 재연된 폭락세였다. 그런데 수요와 공급은 거꾸로 가격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최근의 유가 반등은 공급이 둔화된 결과다. 가격이 너무 많이 떨어져 수지 타산이 맞지 않게 된 미국의 원유 생산 시설들이 빠른 속도로 가동을 중단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원유 생산은 4월 셋째 주까지 2주 연속해서 감소했다. 2주 연속 줄어든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2주간 감소폭은 지난해 8월 말~9월 초 이후 가장 컸다. 그 다음주 생산이 다시 늘긴 했지만 증가폭은 미미했다.

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이 생산성 떨어지는 장비들을 대거 구조조정하고 있다. 시추장비 수가 꾸준히 감소한 끝에 미국의 생산량이 줄어드는 추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원유 생산 서비스 업체 베이커 휴즈에 따르면, 4월 넷째 주 현재 미국에서 가동 중인 원유시추장비 수는 지난해 10월 초순 절정기에 비해 56%나 감소했다. 시추장비 수는 20주 연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3월 중순 들어 절정에 달한 뒤 뚜렷한 둔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WTI 유가가 바닥을 찍고 반등하기 시작한 것과 때를 같이한다. 프랑스계 금융회사 소시에테 제네랄은 4월 23일자 보고서에서 올해 유가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 WTI 평균 유가는 53.62달러로 4.28달러 높였고, 브렌트는 59.54달러로 4.33달러 올려 잡았다. 유가 전망이 높여진 것은 이번 유가 하락기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불과 전주까지만 해도 유가 전망치를 낮춰 잡는 흐름이 이어졌었다.

감소하기 시작한 미국의 원유 생산


원유 시장의 반등은 달러화 추세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달러가 강할 때는 유가가 떨어진다. 달러 이외의 통화로 환산한 유가가 비싸지고 그래서 수요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달러가 정점을 찍고 내려서면서 유가가 반등하고 있다. 유가가 이중 바닥을 형성한 지난 1월 말과 3월 중순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달러 강세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정책대응 가능성을 경고했던 시점과 일치한다. 영국계 금융회사 스탠다드차터드의 수석 원자재 애널리스트 폴 호스넬은 최근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올 3분기에는 브렌트 유가가 80달러선 위로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유가가 마냥 오를 거라고 판단하기에는 장애물이 적지 않다. 유가 폭락세가 공급을 위축시켰던 것과 똑같은 이치로 유가 반등은 원유 생산을 다시 촉진할 수 있다. 현재 미국에는 언제든지 즉각 원유를 뽑아낼 수 있는 유휴 유정(fracklog)이 전국에 걸쳐 4731개로 불어나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지금은 단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채굴을 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50달러대 후반으로까지 올라선 WTI 유가가 65달러선에 도달하면 미국의 원유 공급량이 하루 평균 50만 배럴가량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이 물량은 리비아 전체의 산유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원유 생산 업체들은 최근 유가 반등에 맞춰 원유 선물 시장에서 대규모의 물량을 미리 팔아 놓고 있다. 유가의 반등 탄력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소다. 브렌트 선물 시장에서 원유 생산 기업들의 매도 헤지(hedge) 규모는 최근 5억 배럴을 넘어섰다. 관련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지난 2011년 초 이후 최대치다.

유가 반등의 폭과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 중에는 사우디아라비아도 있다. 유가의 빠른 회복은 사우디의 경쟁자인 미국 셰일 오일 업체들의 빠른 회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사우디는 원유 생산량을 사상 최대 수준인 하루 평균 1030만 배럴로 확대해 놓은 상태다. 원유시장에 대해 여전히 가장 비관적인 전망을 견지하고 있는 씨티그룹의 애널리스트 세스 클라인만은 “사우디가 미국의 경쟁자들을 압박하기 위해 생산량을 1100만 배럴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사우디가 저유가를 장기간 조장하면 미국 셰일오일의 생산 기반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공급능력이 구조적으로 약화되면 전 세계 원유 수급은 사우디가 원하는 균형을 되찾게 된다. 유가 폭락세가 전개되기 전까지 사우디는 배럴당 100달러 정도가 적정한 가격이라고 주장했었다.

사우디의 원유 증산 공세가 유가 급반등을 앞당길 수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도 있다. 원유 시장 분석 업체 피라(PIRA) 에너지그룹에 따르면, 사우디의 여유 공급능력은 이미 하루 평균 120만 배럴 수준으로 감소해 있다. 그런데 올 여름 성수기에 생산을 더 늘리게 되면 여유 공급능력은 70만 배럴밖에 남지 않는다. 세계 최대의 원유 생산 능력을 보유한 사우디가 여유 공급량을 이렇게까지 소진한 사례는 지난 2008년 여름의 유가 급등기 이후에는 없었다.

유가 반등에 돈을 거는 헤지펀드들이 급증하고 있는 반면, 원유 생산 기업들의 전망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월스트리트와 오일스트리트의 시각차가 뚜렷하다. 최근 미국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 BP의 최고 경영자(CEO) 밥 더들리는 “우리는 더 낮은 유가가 더 장기간(lower for longer) 유지될 걸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석유 업체 옥시덴털의 CEO 스티븐 체이즌은 “75달러까지 바라는 사람도 있지만, 그보다 낮은 가격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가 변동성 더욱 커질 수도

그래서 대형 에너지 기업들은 앞다퉈서 석유개발 투자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 그 돈으로 석유회사들은 주식가격 하락에 화가난 주주들을 달래는 배당금으로 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축소가 장기적으로는 유가를 크게 끌어 올리는 요인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석유 수요는 계속 늘어나게 마련인데, 공급 확대를 위한 개발은 뒷걸음을 치기 때문이다.

최근 속도가 뚜렷이 둔화되긴 했지만, 미국의 원유 재고 증가세는 계속되고 있다. 속도가 둔화된 점은 유가를 끌어 올리는 재료이지만, 재고가 계속 늘고 있는 점은 유가에 하락 압력을 가하는 요소다. 유가가 아래 위로 큰 변동성을 보일 것임을 시사한다. 당장은 미국의 원유 저장 능력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미국 최대의 원유 저장 지역인 오클라호마주 ‘쿠싱’ 지역의 원유 저장 능력이 1000만 배럴 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쌓아둘 곳이 없어지면 석유 업체들은 원유를 덤핑할 수밖에 없다. 씨티그룹이 아직도 WTI 유가 20달러 시나리오를 고수하는 이유다. 이런 폭락세를 다시 겪게 되면 미국 셰일오일 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그러면 유가는 다시 급격히 반등할 수 있다. 쿠싱 지역의 원유 재고는 4월 넷째주 들어 감소세로 반전했다. 이 소식에 유가는 급등했다. 원유 시장의 관심은 차츰 유가의 반등 여부보다는 반등폭으로 모아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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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5호 (2015.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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