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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대형마트 전성시대] ‘소비 위축, 시장 포화, 모바일 성장’의 삼중고 

3년 연속 매출 감소에 영업이익률도 급감 … 1인 가구 증가 등 구조적 변화에 뒤쳐지기도 

금융위기도 아랑곳없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대형마트가 부진의 늪에서 헤매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3년째 떨어지고 있다. 소비 침체와 시장 포화, 모바일 유통 시장의 성장 사이에 끼여 방향을 잃었다. 각종 규제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소비자마저 등을 돌리고 있으니 해답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대형마트의 대응은 그리 혁신적이지 않다. 예고된 외부 충격이었으나 대형마트 스스로 패착을 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저무는 대형마트의 전성시대를 짚었다.

▎승승장구하던 대형마트 3사가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원인이 구조적인 것이어서 개선이 쉽지 않다. / 사진:전민규 기자
#1. 3년 차 주부 김진혜(36)씨는 6개월 전부터 대형마트에 가지 않는다. 예전엔 장을 보러 매주 주말 대형마트를 찾았지만 언젠가부터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파트 상가에 있는 할인마트와 비교해 과일이나 채소 가격이 싸다는 생각이 안 들었고, 육류 또한 가격은 비싼데 딱히 품질이 뛰어나지 않았다. 더구나 꾸러미 단위로 구입하다 보니 다 먹지 못하고, 상하거나 유통기한이 지나는 일도 많았다. 포인트 적립이나 가끔 공짜로 나눠주는 할인쿠폰에 끌리기도 한다. 그러나 김씨는 “멤버십 포인트는 적립률이 너무 낮고, 할인 쿠폰 역시 막상 쓰려면 요건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진:전민규 기자
#2. 2년 전 경기도 한 점장으로 발령을 받은 A마트 임원은 요즘 고민이 많다. 매출 정체 때문이다. 방문 고객 숫자는 큰 차이가 없지만 1인당 구매력은 눈에 띄게 줄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자주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식료품과 생필품의 판매는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지만 의류나 가전 등은 판매 실적이 확실히 예전만 못하다. 경기 침체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는 확실히 아울렛이나 해외 직구 등 다른 판매 채널이 성장한 때문이란 생각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 중형급 할인마트가 2개나 생겼고, 올 연말에는 약 2㎞ 떨어진 지역에 경쟁 대형마트도 문을 연다.

2012년 기점으로 성장세 한풀 꺾여


승승장구하던 대형마트 3사에 빨간불이 켜졌다. 실적 부진이 고착화되고 향후 전망도 그리 밝지 않아서다. 지난해 우리나라 대형마트(매장면적 3000㎡ 이상, 면세점·아울렛 포함) 시장 규모는 46조6000억원(매출 기준)으로 2013년에 비해 3.4% 늘었다. 2013년 성장률(1.8%)보다는 약간 나아졌지만 이 통계가 최근 빠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면세점과 아울렛을 포함한 숫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2년 연속 정체 중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의 매출은 3년 연속 줄고 있다. 2012년 -3.3%, 2013년 -5.0%, 2014년 -3.4%(산업통상자원부)다.

업계 1위 이마트는 매출이 3년 연속 10조원 후반대를 오가고 있다. 영업이익은 2012년 7751억, 2013년 7592억, 2014년 6568억원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업계 2위 홈플러스 역시 3년 연속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내리막길(신규 점포 제외)을 걷고 있다. 롯데마트는 매출 8조원대가 위태롭다.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쇼핑의 할인점 부문 매출은 2012년 8조9546억원에서 지난해 8조209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영업이익 또한 2012년 2204억원에서 지난해 671억원으로 2년 만에 3분의 2 가량이 사라졌다.


올 들어서도 사정은 딱히 나아지지 않았다. 롯데마트의 실적이 가장 충격적이다. 롯데쇼핑의 할인점 부문 매출은 올 1분기 2조1540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7%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무려 65.1%나 줄어 150억원에 그쳤다. 가장 비중이 큰 국내 부문에서 영업이익이 반으로 줄어든 게 큰 영향을 미쳤다. 홈플러스 역시 매출이 0.9% 줄었다. 그나마 이마트가 4.1% 늘어난 매출을 발표했지만 영업이익은 1.6% 감소한 1609억원에 그쳤다. 사실상 3사 모두 답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1993년 이마트 창동점에서 출발한 대형마트는 식품과 생활용품, 가전제품 등을 저렴한 가격에 한번에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필수 쇼핑 공간으로 급부상했다. 특히 2000년대 초반부터 2012년까지는 대형마트의 호황기라 할 만큼 성장세가 가팔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도 피해갈 정도였으니 기세가 대단했다. 대형마트 3사가 매년 점포수를 20~30개씩 늘리던 양적 확장기였고, 소비 패턴이 바뀌면서 실적도 따라줬다. 롯데쇼핑의 경우 2002년 할인점 매출 비중이 10%에 머물렀지만 2011년 38.7%로 높아져 처음으로 백화점을 추월했다. 백화점에 필적하는 유통업의 양대축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의미다.


그러나 2012년 정점을 찍은 대형마트는 이후 본격적인 하락세에 접어들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대형마트 입장에서 호재는 거의 없고, 악재는 쌓여 있다. 일단 내수 침체에 따른 소비 위축이 가장 큰 위협 요소다. 우리나라 소비자심리지수(과거 평균을 100으로 보고, 100보다 높으면 경제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심리가 낙관적이고, 100보다 낮으면 비관적)는 2011년부터 3~4년 간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부터 회복세를 나타내기 시작했지만 세월호 사고 여파와 가계부채 증가 등으로 다시 100선을 반납할 위기다. 2011년 후반까지 76~78%를 오갔던 평균소비성향(가계가 처분 가능 소득 중 어느 정도를 실제로 소비했는지 보여주는 지표) 역시 2012년부터 하락을 시작해 지난해 72.9%로 떨어졌다. 올 1분기에도 72.3%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소비자가 쉽게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모바일 쇼핑 성장 ‘이제 시작’


이 와중에 멀게만 보였던 인구 구조와 가구 구성의 변화는 빠르게 현실로 다가왔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1~2인 가구의 증가다. 2010년 853만이던 1~2인 가구는 해마다 빠르게 늘어 올해 처음으로 1000만을 돌파할 전망이다. 반면 같은 기간 390만이던 4인 가구는 올해 352만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가구 구성상 1~2인 가구는 주변 편의점이나 수퍼마켓 등에서 필요한 물건을 자주 구매하는 식의 소비 패턴을 가진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대형 포장 중심인 마트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의미다.

대형마트 입장에서 1~2인 가구의 증가는 단순히 손님이 조금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다. 수익 구조를 통째로 바꿔야 할 지도 모를 엄청난 변화다. 1~2인 가구는 필연적으로 온라인·모바일 유통 시장과 결합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형마트는 기존 유통망을 위협하는 소셜커머스와 해외 직구, 늘어가는 편의점 사이에 끼인 처지다. 지난해 대형마트의 성장률이 후퇴하는 사이 온라인(모바일) 쇼핑과 같은 무점포 소매점 매출은 7%, 편의점은 8.7% 성장했다. 편의점은 어느 정도 고성장기가 끝났다고 볼 수 있지만 무점포 소매 시장은 아니다. TV 기반 홈쇼핑이나 PC 기반 온라인 쇼핑은 역성장이 이미 시작됐지만 모바일은 ‘이제 시작’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나라 모바일 쇼핑 시장은 2012년 1조8000억원에서 2013년 5조9000억원, 지난해 13조1000억원으로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 배경엔 소셜커머스가 있다. 쿠팡·티몬·위메프 등 선두권 3사의 매출 합계는 올해 5조원을 돌파한다. 이 중 60%가 모바일 쇼핑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고르기 편하고, 싸고, 배송까지 해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소셜커머스를 자주 이용한다는 최주아(32)씨는 “초기엔 소셜커머스에서 파는 제품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신뢰가 많이 쌓인 것 같다”며 “분유나 기저귀처럼 별 고민 없이 재구매하는 경우엔 대부분 소셜커머스를 이용하는데 가격도 대형마트에 비해 20%가량 저렴하다”고 말했다. 최근 최대 단점으로 지적됐던 불편한 결제 환경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어 모바일 쇼핑의 성장세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매년 50% 이상 성장하며 2조원에 육박하는 해외 직구 시장 또한 기존 유통망을 강하게 위협하는 중이다.

외부 충격에 대비하지 못하고 대형마트 스스로 패착을 뒀다는 지적도 있다. 소비 패턴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대형포장이나 묶음 판매를 고집하는 게 대표적이다. 최근 대형마트 3사는 간편식이나 소량 포장된 신선식품 등 ‘미니 상품’ 판매에 적극 나서고 있다. 된장찌개를 한번 끓일 수 있는 분량의 채소를 모은 상품이나 양파·당근 등을 모은 카레용 간편 채소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아직 이런 제품의 비중은 미미하다. 10년차 주부 소정혜(42)씨는 “대형마트의 할인 혜택은 주로 많이 사서 구매액을 늘리거나 묶음상품을 살 때 받을 수 있다”며 “예전엔 이런 전략이 통했지만 할인 조금 받겠다고 왕창 샀다가, 쓰지도 못하고 버린 경험이 축적되면서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누가 쥐꼬리 혜택 받으려고 대형 묶음상품 사나?

고객 관리에서도 허점을 보였다. 가장 대표적인 게 멤버십 포인트다. 없던 멤버십도 만들어야 할 판인데 최근 대형마트는 도리어 적립률을 줄이는 추세다. 이마트의 신세계 포인트 적립률은 0.1%다. 10만원어치 장을 봤다면 겨우 100원을 돌려주는 셈이다. 이마저도 유효 기간이 2년 밖에 안 된다. 기간 내에 쓰지 않으면 월 단위로 소멸된다. 김진혜씨는 “마트별로 제휴 카드를 쓰면 적립률을 높여준다고 광고하는데 몇백원 더 받겠다고 마트별로 카드를 따로 만들라는 얘기냐”며 “3000원짜리 양파 1망을 사서 다 못 먹고 하나만 버려도 그게 더 손해”라고 말했다.

이런 불만을 반영해 이마트는 최근 ‘이마트 신용카드’를 새로 내놨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등에서 사용할 때 구매금액의 1%를 적립해 주는 카드다. 신세계 계열사가 아닌 곳에서도 0.7%를 적립해주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만 연회비(1만원)를 받는다. 1년에 200만원을 써도 적립금은 2만원밖에 안 되는데 연회비를 빼면 1년에 고작 1만원이다. 새로운 고객을 유치할 만큼 확실한 유인책은 아니다. 롯데마트는 구매 금액에 따라 0.1~1%까지 차등 적립한다. 최대인 1% 적립 혜택을 받으려면 6개월에 300만원 이상을 써야 하니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홈플러스는 고정적으로 0.5% 적립 혜택을 주지만 얼마 전 온라인 쇼핑몰 적립률은 0.5%에서 0.1%로 낮췄다. 아무래도 온라인은 이윤이 적으니 적립도 덜 해주겠다는 의미다.

판매 전략이 중구난방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 대형마트 점원인 A씨는 “예를 들어 킹크랩은 비싼 가격 때문인지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안 팔릴 때가 많다”며 “마트라고 꼭 모든 걸 갖춰놓고 팔려고 할 게 아니라 소비 트렌드가 바뀌는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내 가전 매장도 비슷하다. 하이마트·전자랜드 등 가전 전문 판매점과 온라인 쇼핑몰 사이에서 길을 못 찾고 있다. 같은 제품이지만 온라인보다 20~30% 비싼 경우가 허다하고, 가전 전문 판매점에 비해선 전시 규모가 작고, 직원의 전문성 역시 떨어진다. 실제로 대형마트 내 가전 매장은 공간을 많이 차지함에도 특별한 할인행사가 없으면 늘 한산하다. 고객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백화점 수준의 푸드코트 가격’과 ‘청결하지 못한 쇼핑 카트’ 등 서비스 면에서 개선할 점도 많다. ‘대형마트의 혁신 역량이 떨어지는 게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드라마틱한 반전을 기대하긴 어려운 처지다. 시장이 이미 포화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형마트 숫자는 2012년 498점에서 2013년 511점, 2014년 528점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늘어나는 아울렛을 제외하고 지난해 새로 문을 연 대형마트는 딱 8곳뿐이다. 올해는 6곳에 그칠 전망이다. 여러 면에서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대형마트가 이 수렁을 헤어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규제 넘어 또 규제


▎최근 대형마트는 소비 침체와 시장 포화, 모바일 시장의 성장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뉴시스
대형마트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불만을 토로한다. 치고 나가야 할 시기에 규제로 발목을 잡혔다는 이유에서다. 한 대형마트 임원은 “유통업은 결국 매장 수를 늘려야 하는데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대형마트 신규 출점 제한 범위가 전통시장 반경 1km에서 2km 이내로 엄격해지는 등 규제가 너무 심하다”며 “마땅한 장소를 찾기도 쉽지 않지만 의무 휴업 등 지역 상생에 관한 요건도 너무 엄격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마트가 매장을 못 늘리는 건 규제 탓이기도 하지만 자체적인 계산 때문이기도 하다. 매장을 늘린다고 매출을 화끈하게 끌어올리거나 눈에 띄게 영업이익률을 개선하긴 어렵다는 판단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대형마트는 기본적으로 임대료나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인데 투자 대비 효과가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장기 전망을 고려할 때 사업을 확장할 단계는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1289호 (201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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