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교병필패 vs 마부작침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

프로야구가 출범한 해인 1982년 9월 14일 잠실야구장에서는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결승전이 열렸다. 당시 필자는 군대 내무반에서 손에 땀을 쥐고 이 경기를 지켜보았다. 한국팀은 7회까지 0대2로 지고 있어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지만 8회 들어 (사인을 잘못 읽은) 김재박 선수의 환상적인 기습번트로 동점을 만든 후 한대화 선수가 폴대를 맞는 큰 홈런을 쳐서 5대2로 드라마 같은 역전승부를 연출했다. 그날 밤은 점호도 면제되어 병사들끼리 밤늦게까지 한국팀의 우승을 즐거워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프리미어 12’라는 국제 야구대회의 한·일전에서 다시 한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세계 야구 랭킹 상위 12개 국가가 참여하는 새로운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첫 우승자가 되었다. 결승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미국을 쉽게 꺾었지만 사실 우승까지 오는 길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예선 첫 경기에서 만난 일본에게 완봉패를 당한데다 미국에게도 졌다. 가장 큰 고비는 4강전에서 다시 만난 일본과의 경기였다. 한국은 9회 3대0으로 뒤지던 상황을 뒤집어 역전에 성공했다.

이 경기를 마음 졸이며 지켜보던 중 머리 속에 사자성어 두 개가 떠올랐다. 바로 ‘교병필패(驕兵必敗)’와 ‘마부작침(磨斧作針)’이다. 일본의 패배는 교병필패가 딱 해당되는 말이다. 이 말은 교만한 병사(군대)는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다. 일본팀의 고쿠보 감독은 준결승이 치러지기도 전에 결승전의 선발투수를 예고하는 등 오만을 부렸다. 4강전에서 3대0으로 이기고 있던 상황에서 한국이 따라붙기 시작하자 경험이 부족한 어린 투수로 불을 끄려고도 했다. 선수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고 보인다. 선수 네 명은 예선기간 중 대만에서 현지의 걸 그룹과 밤새 술을 마시며 놀았다는 보도도 있었다. 한·일전의 패배는 한국을 얕보다가 일격을 당한 형국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승리는 ‘마부작침’, 즉 포기하지 않고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끈기로 이룬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경기 외적인 환경도 나빴다. 대회 중에 한국팀은 주최국인 일본의 텃세에 시달렸다. 자국팀에 유리하게 경기 일정을 앞당겨 한국선수들이 꼭두새벽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오게 한 것은 약과였다. 4강전에서 자국 심판을 배치하여 국제경기의 상식을 무시하는 등의 억지도 부렸다. 객관적인 전력도 열세였다. 에이스급 투수가 상당수 빠져 역대 최약체 팀으로까지 평가받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기업 CEO에게 이번 한·일전이 주는 시사점은 크다. 사업이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경쟁자를 얕보거나 미래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하는 기업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는 세계적으로 예가 많다. 직원보다는 최고경영자를 비롯한 경영진의 자만이 오판과 안이함으로 이어진 것이 일반적이다. ‘교병(兵)필패’라기보다는 ‘교장(將)필패’랄까. 또 사업이 안 된다고 쉽게 포기하면 안 된다. 시장에 대한 확신이 약하다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 백 번 맞으나 그렇지 않으면 ‘끝끝내 버티는’ 근성이 기업의 성공을 이끄는 원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테러나 금융위기처럼 구조적이 아닌 일시적인 문제로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경우는 더욱 그렇다. 교병필배와 마부작침의 교훈을 새기고 승리하는 CEO가 되길 바란다.

- 김경원 대성합동지주 사장

1314호 (201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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