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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탁 기자의 바이오 이노베이터 (3) | 최의열 바디텍메드 대표] 세계 시장 도전하는 혈액진단기 강소기업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영업이익의 30% R&D 투자...세계 95국에 제품 수출

성공은 실패를 두려워 않는 도전에서 비롯되게 마련이다. 한국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바이오산업이 주목받는다. 바이오 강국을 꿈꾸며 숱한 실패를 딛고 도전을 이어온 혁신기업과 CEO를 소개한다.


▎최의열 바디텍메드 대표. / 사진:김춘식 기자
바디텍메드는 지난 3월 미국의 체외진단 업체 이뮤노스틱스를 170억원에 인수했다. 최의열 바디텍메드 대표는 “미국 의료산업 분야에선 외국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다”며 “이번 인수로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교두보가 생겼다”고 말했다.

바디텍메드는 혈액으로 질병을 진단하는 체외진단기와 진단시약을 개발한다. 기존 대형 진단장비는 팔뚝 정맥혈로 혈액을 채취하고, 검사시간이 1시간에서 하루 정도 걸린다. 이에 비해 바디텍메드 제품은 10분이면 혈액 분석을 마칠 수 있다. 이 회사는 1998년 당시 한림대 교수였던 최 대표가 창업했다. 한림대 창업보육센터 1호 기업이다. 지금은 세계 95개국에 수출하며 매출 400억원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의 30%에 달하는 영업이익의 30%를 연구개발(R&D)에 쏟아 부으며 성공했다. 직원 300명 가운데 연구인력만 100명에 달한다. 복지도 탄탄하다. ‘강원도 구글’로 불릴 정도다. 주5일에 야근이 없다. 업무는 오전에 집중하고 오후가 되면 직원들이 슬슬 사라진다. 회사 절반이 체육시설이다. 이직률 1%엔 이유가 있었다. 기자가 춘천 바디텍메드를 찾았을 때, 본사 건물을 못찾고 어린이 집과 체육시설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정도다. 최 대표는 “실력있는 인재를 춘천에 데려와 일 시키려면 그만큼 잘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직원 복지도 최고…‘강원도 구글’로 불려


설립 19년차에 접어든 안정적인 기업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최 대표는 처음 10년이 어려웠다고 말한다. 경영이 어려워 문을 닫으려 했지만 투자자의 반대로 억지로 끌고 가야 했다. 사업이 힘들어 인수해줄 기업을 찾아 돌아다닌 적도 있다. “사업 접고 대학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벌인 일이 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사업에 매달렸습니다.” 생물학을 가르치던 대학 교수가 왜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냐고 묻자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생물학 공부할 제자들이 갈 곳이 없었다. 제약회사는 화학과를 선호했다. 생물학과는 유학이 아니면 취직 자체가 어려웠다. 미국 예일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의 지도교수가 창업하는 모습을 떠올렸다. 좋은 아이디어를 기술화한 다음 대기업에 회사를 매각했다. 어깨 너머로 지켜본 모습을 떠올린 그는 도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쉬웠습니다. 혈액 진단기 사업을 설명하자 학교도 벤처캐피털도 모두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습니다.”

KTB와 산은캐피털 등으로부터 20억원을 유치했다. 박 대표는 연구에 속도를 올리며 사업을 키웠다. 직원도 30명에 달했다. 4년 후 난관에 부딪쳤다. 자금이 바닥난 것이다. 최 대표는 다시 벤처캐피털을 찾았지만 이번엔 분위기가 달랐다. “처음에 너무 쉽게 자금을 유치해서 돈 걱정 안하고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다시 찾았을 때, 문전박대를 당하면서야 사업이 무엇인지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품을 개발했지만 팔 곳이 없었다. 유통망 확보가 너무 늦었다. 수년째 매출이 0원이었다. 2005년 그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직원 대부분이 그의 제자였다. 석·박사 과정을 지도한 제자들을 퇴직금도 못 준 채 내보냈다. 임금 체불로 그를 고소한 제자는 없었다. 그것이 그를 더 아프게 했다. 2006년엔 결국 8명만 남았다. 이들에게 임금도 제대로 못 챙겨 주며 회사를 운영했다. “제품 개발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팔지, 누가 살지, 자금은 어떻게 운영할지 생각 없이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망하는 게 당연했지요.”

투자사들은 회사 지분을 캠코에 넘겼다. 실의에 빠져있던 그에게 2007년 예상 못한 희소식이 날아왔다. 중국에서 100만 달러 수출 주문이 들어온 것이다. 최 대표는 독일에서 열리는 매디카에 꾸준히 참석해왔다. 중국 바이어는 2004년 처음 만났다. 바디텍메드의 혈액분석기에 관심을 보이며 100만 달러 수출 계약을 원했다. 현지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바이어였다. 자료와 계약 조건도 마음에 들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계약을 진행했다. 최 대표는 “중국에서 들려온 계약 소식을 믿을 수가 없었다”며 “우리 제품이 중국에서 팔릴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중국 병원에는 진단의학과 외에 다른 나라에 없는 ‘급진과’가 있다. 검사 결과를 1시간이면 받아 볼 수 있는 제도다. 빠른 대신 가격이 비싸다. 하지만 중국에선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리는 검사다. 빠른 검사 결과를 필요로 하는 급진과의 특성과 간편한 바디텍메드의 제품이 잘 맞았던 것이다. 당시 중국에선 인증 받기도 쉬웠다. 6개월 만에 제품을 등록했다. 지금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인증에만 3년이 걸린다. 중국 시장 덕에 바디텍메드 재무제표엔 10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잡혔다. 중국 시장은 매년 성장했다. 현지 기업도 많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은 선도 업체 프리미엄 덕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급진과’가 구세주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자 최 대표는 미국·중동·인도로 시장을 넓혀나갔다. R&D 투자도 늘리며 제품군을 다양화 했다. 지금 바디텍메드는 7종의 체외진단기기와 33종의 진단시약을 개발해 95 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피 한방울로 33가지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제품들이다. 검사 시간도 2분에서 최장 10분 내 외로 짧다. 진단기기 크기를 줄이며 가격도 낮췄다. 후발주자들을 견제하며 수출국을 늘리는 중이다. 최 대표는 “영업이익이 생기자 내보낸 친구들 퇴직금과 밀린 임금부터 해결해줬다”며 “지금은 ‘나는 교수가 아니라 기업인’이라고 매순간 다짐하며 조직을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이후 바디텍메드는 매년 평균 성장률 38%를 기록했다. 2015년 성적표도 탁월하다. 매출은 398억원인데 영업이익이 무려 129억원이다. 새로운 성장동력도 꾸준히 확보 중이다. 일본에 수출하기 시작한 최신형 진단기기 아피아스6(Afias 6)와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통과한 트리아스가 다음 주력 제품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가정용 진단기다. 현재 주고객은 병원이다. 디지털 헬스 기술이 빠르게 발전 중이다. 그는 5년이면 주요 국가에서 디지털 헬스 관련 규제가 완화되며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때를 대비해 더 작고 정확한 기기를 개발 중입니다. 혈액 진단 분야는 우리가 20년 가까운 노하우를 쌓아온 분야입니다. 기술력도 세계 어느 기업에 뒤지지 않습니다. 경쟁력 살려 계속 성장하는 기업 만들어 보겠습니다.”

1359호 (201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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