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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50년을 빛낸 제품들] VCR부터 드론까지 … 최첨단 기술 경연장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태블릿·스마트워치 등 새로운 콘셉트 제시 … 기술의 진보 세상에 알려

▎2001년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에서 ‘엑스박스’ 게임기로 콘솔게임을 즐기고 있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기술고문. MS는 같은 해 CES에서 엑스박스를 처음 공개하면서 콘솔게임 시장 진출을 본격화,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게임업계 판도를 바꿨다. / 사진:중앙포토
50년 역사에 빛나는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엔 역사만큼이나 반짝이는 수많은 제품이 선을 보여 소비자를 열광시켰다. CES가 세계 전자제품 제조 기술 발전에 기여해온 대표적 행사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1970년 네덜란드 업체 필립스는 CES에서 비디오카세트녹화기(VCR) ‘N1500’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VCR 열풍의 시작을 알렸다. 이때 이후로 VCR의 본격적인 대중화가 시작되면서 소비자들은 각 가정에서 영상과 소리를 한꺼번에 담아내 원하는 시간대로 돌려 재생할 수 있게 됐다.

당시 필립스가 선보인 VCR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최초 제품은 아니었지만(1956년 미국 업체 암펙스가 세계 최초 상업용 비디오녹화기를 개발), 실제 가정용으로 보급이 가능한 수준으로 부피와 무게를 줄이고 가격대를 낮췄다는 점에서 최초 제품 공개나 다름없는 파급효과를 가져왔다. 암펙스의 제품은 무게가 680kg에다 가격은 7만 달러나 됐다. 필립스가 70년 CES에서 선보인 VCR은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작은 크기에다 가격 또한 2000달러로 낮았다. 2년 후인 72년 필립스는 영국에서 이 제품을 출시했다.

필립스, 기존보다 작고 값싼 VCR 공개


▎필립스가 1970년 CES에서 선보인 VCR ‘N1500’은 70년대 비디오 홈 시스템(VHS) 전성기를 열었다. / 사진:더드럼닷컴 제공
필립스와 CES가 연 가정용 VCR의 시대는 일본 소니 등 글로벌 전자업체 간의 뜨거운 기술 경쟁 속에 CD(Compact Disc), 그리고 DVD(Digital Versatile Disc)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이어졌다. 앞서 VCR은 70년대 비디오 홈 시스템(VHS) 전성기를 열면서 가정에서 마음껏 영화를 시청하거나 녹화할 수 있게 했지만, 아날로그 방식 비디오테이프의 저화질과 짧은 수명은 소비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82년 생산이 시작된 CD를 거쳐 95년에 처음 표준이 발표된 DVD로 기술발전이 이어지면서 이런 아쉬움도 해결됐다.


▎82년 CES에서 공개된 ‘코모도어64’ 컴퓨터는 PC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알렸다. / 사진:tn.com.ar 제공
재밌는 것은 가정용 VCR의 시대에 종말을 고한 CD플레이어와 DVD플레이어 역시 CES를 통해 공식적인 ‘데뷔’를 했다는 사실이다. CES가 그만큼 최신 기술의 경연장으로 기능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소니는 기술 개발 끝에 76년 처음으로 오디오 방식의 CD를 시연했고 81년 독일에서 최초의 상업용 CD를 출시했다. 같은 해 CES에선 CD플레이어를 처음 선보였다. 이듬해인 82년 나온 최초의 상업용 CD플레이어 ‘CDP-101’의 등장을 알리는 첫 무대였던 셈이다. CD의 등장에도 보다 발전한 형태의 저장 매체와 이를 재생할 기기를 필요로 하던 소비자들과 전자업계는 96년 CES 때 등장한 DVD 플레이어로 고용량과 고화질에 대한 갈증을 풀게 된다. 2006년 CES에서는 일본의 도시바가 세계 최초로 고화질(HD) DVD플레이어 ‘HD-XA1’를 선보여 또 한 번 주목받았다.

CES는 ‘전자제품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PC와 TV의 역사에도 깊이 연관돼 있다. 82년 CES에서 공개된 ‘코모도어64’는 PC 시대의 본격적인 도래를 알린 기념비적 모델로 꼽힌다. 미국 업체 코모도어인터내셔널이 선보인 이 컴퓨터는 8비트에 64KB짜리 램(RAM), 1MHz짜리 칩을 장착했고 가격도 595달러로 기존에 나왔던 컴퓨터에 비해 훨씬 저렴해 CES를 찾은 관람객과 전자업계 관계자들을 경악시켰다. 코모도어64는 같은 해 출시돼 94년까지 전 세계에서 1700만대나 판매되면서 가장 많이 팔린 PC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TV 역사를 바꾼 HD TV의 등장


▎LG전자가 2013년 CES에서 전시한 세계 최초 3D 지원의 플렉서블OLED TV ‘EA9800.’ CES는 매년 TV 제조사들의 최신 기술 경연장으로 명성이 높다. / 사진:LG전자 제공
2010년 CES에선 태블릿이 공개돼 PC 시장의 격변을 예고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스티브 발머 최고경영자(CEO)는 이때 휴렛팩커드(HP)의 태블릿인 ‘슬레이트’를 공개하는 역할을 맡으면서 분위기를 띄웠다(그가 경쟁사인 미국 애플의 ‘아이패드’를 견제하기 위해 그랬다는 말도 나왔다). MS의 ‘윈도7’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슬레이트의 무게는 670g에 불과해 노트북을 대체할 차세대 PC로 주목받았다. 다만 발머의 기대와는 달리, 시장이 손을 들어준 쪽은 슬레이트가 아닌 아이패드였다. 그해 CES 직후 공개된 아이패드는 세계 소비자들의 호응 속에 오늘날까지 가장 인기 있는 태블릿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TV 역사에 한 획을 그은 HD TV도 98년 CES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종전의 아날로그 전송 방식 TV보다 고화질로 선명하게 방송을 시청할 수 있어 2003년 무렵부터는 기존 TV를 빠르게 대체해나갔다. 이후 지상파 디지털 방송뿐 아니라 위성 디지털 방송 시스템까지 발전하면서 방송 송출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CES는 HD TV에 이어 인터넷프로토콜(IP) TV(2005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2008년), 3차원(3D) TV(2009년), 스마트TV(2011년), 플렉서블OLED TV(2013년), 울트라HD TV(2014년) 같은 최신 기술이 잇따라 선을 보이는 장으로 활용됐다.


그 과정에서 세계 소비자들은 TV 시장의 주도권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오는 과정을 지켜봤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세계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나라는 소니를 앞세운 일본이었다. 2006년 3분기 삼성전자가 세계 TV 시장점유율 1위에 올라서면서 주도권을 뺏어왔지만, 소니가 2008년 세계 최초 상업용 OLED TV ‘XEL-1’을 CES에서 선보일 때만 해도 일본의 반격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소니는 패널의 대형화와 높은 생산단가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 사이 삼성전자·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은 무섭게 성장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일본 기업과의 격차를 한층 벌려나갔다. 삼성전자는 2008년 세계 최초 3D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를 상용화하는 등 ‘패스트 팔로워’에서 ‘퍼스트 무버’로 변신하면서 지금껏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LG전자도 앞선 디스플레이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게임 업계도 CES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제품을 선보였다. 85년 CES에서 선보인 일본 닌텐도의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NES)’은 콘솔게임(TV에 연결해 즐기는 비디오게임) 부활의 전기를 마련하고 전성기를 연 게임기로 평가된다. 이전까지 콘솔게임 시장은 82년 무렵 발생한 일명 ‘아타리 쇼크’로 급격히 침체한 상태였다. 아타리 쇼크는 미국 콘솔게임 시장에서 판매 경쟁의 과열 속에 질 낮은 게임 소프트웨어(SW)가 과잉 공급된 것으로, 소비자들은 이 때문에 콘솔게임을 불신하고 있었다. NES는 ‘슈퍼마리오 브러더스’ 등 명작 SW들로 무장해 이 같은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데 성공, 6000만 대 이상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기업들이 장악했던 글로벌 게임업계 판도를 바꾼 첫 무대 또한 CES였다. PC 사업을 중심으로 성장한 MS는 2000년대 들어 자체 개발한 게임기로 콘솔게임 시장에 진출하기로 결정했다. MS는 2001년 CES에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대항마가 될 ‘엑스박스’ 게임기를 선보이면서 포문을 열었다. 빌 게이츠 MS 기술고문은 당시 CES에서 직접 엑스박스를 공개하면서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와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대용량의 하드디스크를 탑재해 PC와 비슷한 사양을 갖췄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당시로서는 혁신적으로 유선 랜(LAN) 포트를 기본으로 갖춰 소비자들이 온라인에서 쉽게 게임 대결을 펼칠 수 있도록 해서 호평을 받았다. 엑스박스는 2005년 HD급 고화질을 구현한 후속작 ‘엑스박스360’이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적 히트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한편 세계 산업계에서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무인항공기 드론도 CES를 통해 민간 부문에서의 상업적인 발전 가능성이 활짝 열린 경우다. 프랑스 업체 패럿이 지금처럼 4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한 형태의 드론을 2010년 CES에서 처음 공개했기 때문이다. 당시 CES 현장을 둘러본 미국 디지털마케팅 업체 AKQA의 한 관계자는 “CES에서 드론 전용 부스가 마련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나란히 배치됐다”며 “비싼 장난감 정도로 여겨지던 드론이 지금에 와서는 산업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미국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세계 최초 상업적 드론 배송에 성공하며 드론의 활용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프로펠러 4개 장착한 드론도 CES서 첫선


▎2010년 CES에서 프랑스 업체 패럿이 공개한 드론. 지금처럼 4개의 프로펠러를 장착했다. / 사진:트러스트드리뷰스닷컴 제공
이 밖에 2012년 CES에서 공개된 스마트워치도 빼놓을 수 없다. 이때 소니가 선보인 스마트워치는 전화 통화와 e메일 송수신이 가능한 스마트폰 기능에다 15g의 무게, 1.3인치 OLED 디스플레이 장착으로 “스마트워치를 중심으로 한 웨어러블 기기 시장 팽창의 진정한 신호탄이 됐다”는 평을 얻었다. 물론 이 스마트워치가 화제를 모은 만큼 인기까지 끈 것은 아니다. 현재 세계 스마트워치 시장을 장악한 것은 애플(점유율 40%대)이다. CES의 역사는 제아무리 최신 기술, 최신 제품이라 해도 ‘보다 혁신적인 제품이나 기술’이 등장할 때 얼마든지 밀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1367호 (2017.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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