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헌법과 정관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참으로 길고도 처절한 6개월이었다. 광장은 둘로 나뉘었고, 격렬한 법적·사회적 공방 끝에 이 나라의 절대 권력은 또다시 쓸쓸한 뒷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만 했다. 대한민국이 이처럼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르고 얻어낸 교훈은 단 하나다. 나의 삶과 별 관계가 없는 것만 같았던 헌법, 공기와 같아서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그 법이 우리 사회 갈등의 최종 심판자라는 엄정한 사실이다.

국가의 기본을 이루는 것이 헌법이라면, 기업의 헌법은 정관(定款)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법인의 정관 제1조는 ‘이 회사는 OOOO 회사라 한다’는 정의로 기업의 유형과 본질을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정의와 같은 것이다. 또한, 우리 헌법의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기업의 정관 어디를 찾아보아도 헌법이 그리도 중요하게 강조하는 구성원의 주권 부분, ‘회사의 주권은 주주에게 있고, 모든 권한은 주주로부터 나온다’고 써놓은 곳은 보이지 않는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 생략한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회사의 주인은 주주가 아니라는 이야기인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대주주건, 소액주주건 모든 주주는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이익 창출만을 위해 활동한다.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끼어들 틈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기업의 본질적 특성이 영속성 유지와 수익 추구라고 경영학 교재에서 귀가 아프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떤가. 분식회계 처리, 부정부패의 만연, 경영자 개인의 사리사욕의 도구화 등에 따른 전횡과 부작용으로 인해 결국은 사회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올해 역시 3월의 넷째 주 금요일(24일)에 928개의 상장사가 동시에 총회를 연다. 기업들이 이렇게 주총을 한 날짜로 몰아서, 그것도 평일인 금요일에 여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안건 통과에 행여 방해가 될지 모르는 일반 주주들의 참여를 가급적이면 최소화시켜보자는 것이다. 평일이니 직장인 투자자는 참석이 어려울 것이고, 또 여러 곳에 투자한 주주들은 주총 참여 기업을 하나만 선택해야 하니 모든 회사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다. 또, 다음날이 주식시장이 열리지 않는 휴일이라 총회 후 생길 수 있는 부담감에서 다소 벗어날 수도 있다. 이런 ‘슈퍼 주총 데이’가 상징하는 것은 정권의 권력자가 국민을 무서워하듯, 경영자도 주주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올해도 나는 ‘슈퍼 주총 데이’를 준비한다. CEO 입장에서 주총이 즐거울 수는 없겠지만, 이왕 넘어야 하는 파도라면 기쁘게 부딪힐 생각이다. 우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회사의 실적도 대놓고 자랑하고 우리가 꿈꾸는 비전과 미래에 대한 설명도 차분하게 할 것이다. 기업의 헌법, 정관이 명시한 최고 의결 기구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 CEO에게 부여된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377호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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