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초박빙 프랑스 대선 승자는] 누가 결선에 오를지 아무도 모른다 

 

이규석 국제문제 칼럼니스트(동북아국제문제연구소장)
르펜 vs 마크롱 양강 구도 예상 깨고 초접전 4파전... 대선 결과 따라 대(對)EU·러시아 정책 급변 가능성

▎4월 23일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를 앞두고 한 유권자가 유모차를 끌고 선거 벽보로 도배가 된 건물벽 앞을 지나고 있다.
드디어 4월 23일 프랑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가 치러진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하는 후보가 없을 때는 2차 투표(1차 투표 1, 2위 후보에 의한 결선투표)가 5월 7일에 실시된다. 6월에는 프랑스 하원 의원선거가 있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 이어 치러지는 임기 5년의 하원 의회 선거에서도 대통령과 함께하는 정치세력이 과반수를 확보해야 프랑스 대통령은 정권운영을 수월히 해나갈 수가 있다. 과거 미테랑 대통령과 시라크 대통령 때도 보혁(保革) 공존의 정권이 발족, 대통령은 정권운영에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올 4~6월 프랑스 정치에 지각변동의 큰 폭풍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프랑스에서 여전히 큰 실권을 행사하고 있는 대통령 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회당 아몽, 경쟁에서 사실상 탈락

프랑스 대선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로 크게 흔들리고 있는 세계질서가 어떻게 정돈되어 갈 것이지 가늠할 수 있는 이벤트다. 과연 극우정당 후보인 마린 르펜이 승리하여 ‘자국우선주의’의 파도가 국제사회에서 더욱더 거세게 몰아치게 될 것인가, 아니면 반(反) 르펜 세력에 의해 그러한 움직임이 멈추게 될 것인가. 이번 프랑스 대선은 그 분수령이다. 세계가 이 싸움에 주목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프랑스라는 일국의 리더를 뽑는 선거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아직은 유동적인 국제사회의 조류와 패러다임이 어느 쪽으로 향하게 할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선거이기 때문이다.

4월 23일 프랑스 대선의 태풍의 눈은 지지를 확대하면서 대통령의 자리에 다다르고 있는 듯한 기세를 보이고 있는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후보 마린 르펜 당수다. ‘반(反)이민·반EU(유럽연합)’의 구호를 외쳐온 르펜이 정권을 잡는다면, 프랑스 사회는 종교나 민족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돌이킬 수 없는 ‘분단’의 상태에 빠져들 수가 있다. 또한 프랑스와 독일이 쌍두마차로서 EU를 이끌어온 현실을 직시해 볼 때, 르펜 당선은 유럽의 공존과 공영이라는 EU의 토대를 흔들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만약에 르펜이 당선된다면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때보다도 더 큰 쇼크가 유럽과 국제사회에서 일어날지도 모른다.

프랑스 대선에는 11명이 입후보했지만 르펜, 마크롱, 피용, 아몽, 멜랑숑 5명이 치열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국민전선의 후보로서 변호사 출신인 르펜과 중도파로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금융계 출신 엠마뉴엘 마크롱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지지율 1, 2위를 다투면서 ‘데드 히트’를 펼치고 있다. 피용도 선거 막판에 이 두 선두주자를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멜랑숑도 복병이다.

‘프랑스의 트럼프’로 불리는 르펜(48)은 EU로부터의 이탈을 묻는 국민투표 실시, 이민과 난민의 연간 수용 인수를 1만 명으로 제한, 프랑스 우선주의의 헌법 명기 등을 공약으로 내걸으며 지지를 확대, 4월 16일 현재 지지율 22.5%를 기록하며 당선 가시권내에 들어서고 있다. 투자은행에서 성공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연설의 명수’라는 칭호와 함께 ‘정계·금융계의 프린스’라는 최고의 별명을 얻고 있는 마크롱(39)은 르펜과 상반된 공약을 내걸었다. EU를 함께 떠받쳐온 독일과의 협력을 통해 EU를 발전시켜 나갈 것, 난민과 이민의 수용, 의원과 각료의 친족고용 금지, 법인세율 8% 인하 등을 공약으로 내걸며 4월 16일의 여론조사에서 23%를 기록, 비록 근소한 차이이긴 하나 다시 르펜을 앞질렀다. 남은 선거기간 르펜과의 숨 막히는 접전이 예상된다.

르펜과 마크롱이 수위를 다투고 있는 가운데, 중도우파로서 공화당 후보인 피용(63) 전 수상도 추격전을 벌이고 있다. 친 EU를 내걸며 공무원 50만 명 감축과 소비세 2% 증세(22%로 인상) 등을 공약으로 내건 피용은 한 때 아내의 부정급여 의혹으로 소추당해 지지율이 곤두박질쳤으나, 1차 선거일을 1주일 정도 앞 둔 시점에서 보수층의 뿌리 깊은 지지를 회복하며 지지율 19.5%를 기록, 막판 추격에 희망을 걸게 됐다.

중도좌파인 사회당 후보 아몽(49) 전 교육부 장관은 최저소득보장제도 창설과 산업로봇에 대한 과세, 대마(大麻)의 해금 등 혁신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4월 16일 현재 지지율 7.5%를 기록, 선거에 이길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역대정권을 맡아왔던 사회당 후보가 맥을 못 추는 이례적인 상황이 현재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1차 TV 토론 후 혼전 양상으로 바뀌어


그런데 여기서 급진좌파로 분류되는 멜랑숑(65) 후보가 갑자기 튀어나와 한 달 만에 지지율을 8% 포인트나 끌어올리며 지지자를 늘리고 있다. 좌파당의 멜랑숑은 ‘불복종의 시스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EU로부터의 이탈도 사양하지 않겠다는 ‘반EU’의 자세를 적극적으로 노출하며 젊은층을 중심으로 지지를 확대하고 있다. 멜랑숑 후보는 최저임금 인상과 원자력발전 완전 폐지 등 경제공약과,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되어 있는 현재의 제5공화국 제도를 제6공화국 제도로 이행하자는 공약을 내놓고 있다. 멜랑숑 후보의 4월 16일 현재의 지지율은 19.5%로 공화당 후보 피용의 지지율과 나란히 하고 있다. 르펜과 마크롱의 양강 대결로 예상됐던 프랑스 대선이 4강 구도로 전개되며 대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이 이렇게 혼전의 양상으로 바뀐 것은 이달 초 치러진 TV토론 후에 르펭과 마크롱의 위세가 조금 시들어진 틈을 타, 피용과 멜랑숑이 전통적인 자기 지지층을 되돌리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제는 1차 투표에서 과연 어느 후보가 1, 2위를 차지하여 결선투표에 나갈지가 최대 관심사다. 4월 초·중순의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유권자 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부동표의 행방이 선거의 결과를 좌우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미국 대선에서 ‘숨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프랑스 대선에서도 국민전선의 지지를 밝히지 않았지만 숨은 르펜 지지자들이 잠복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요컨대 뚜껑을 열어 봐야 최후 결과를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프랑스 대선의 가장 중요한 초점은 선거 결과에 따라 프랑스와 EU와의 관계가 유지·견지되느냐, 아니면 이완·이탈하느냐가 결정된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또한 프랑스로의 난민과 이민이 제한되느냐, 수용되느냐의 가부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제일주의를 전면에 내거는 등 트럼프 대통령을 방불케 하는 르펜과 난민·이민에 대한 관용과 국제협조를 내세우는 마크롱이 결선투표 진출을 엿보고 있는 가운데, 막판 보수의 표밭을 다시 일구는 데 성공한 피용, 전통적인 좌파 지식인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응원가로 듣고 있는 멜랑숑도 결선 진출을 노리고 있다. 과연 프랑스 국민이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U로부터의 이탈을 결정했던 영국의 국민투표와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미 대통령선거에 이어, 반글로벌리즘과 보호주의의 거센 바람이 프랑스 대선에도 불어 닥치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대선의 숨은 관전 포인트는


그런데 이번 프랑스 대선을 흥미롭게 하는 또 다른 숨겨진 쟁점(관전 포인트)이 있다. 그것은 우크라이나와 크림 반도를 놓고 러시아와 EU가 극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EU는 러시아 경제제재를 단행했고, 러시아는 그 대항조치로 EU농산물의 수입 금지를 결행한 일로부터 시작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러시아로의 농산물 수출 길이 막히자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며 프랑스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이에 대해 르펜 후보는 “EU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해야 하며 프랑스는 러시아와의 무역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對) 러시아 정책의 변경을 주장하고 있다. 르펜은 3월 24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첫 회담을 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의욕을 표시했다. 그러나 마크롱은 EU와의 결속이 중요하기 때문에 대선에 승리하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계속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마크롱은 3월 16일 베를린을 방문해 메르켈 수상과 회담하면서 프랑스와 독일이 주도해 EU의 결속을 다지고 EU 역내의 교류와 협력을 증진해 나가자는 데 뜻을 함께하며 기선을 잡기도 했다. 이렇게 프랑스의 ‘대 러시아 정책’이 이번 대선에서 숨은 쟁점으로 불붙어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숨은 관전 포인트는 장 루소, 빅토르 위고, 장 폴사르트르, 에밀 졸라 등을 원류로 하는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기대고 있는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약진에 대항해 힘을 모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최근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경화 현상을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보수계에 주도권을 빼앗겼고 정치에서는 ‘테크노크라트’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프랑스 좌파들이 설 곳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배경 탓인지 사회당의 아몽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5위로 밀려나며 사실상 경쟁에서 탈락했고, 좌파당의 멜랑숑 후보가 뒤늦게 치고 올라오고 있으나 피용과 르펜, 마크롱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17일 발표된 여론조사에서도 마크롱과 르펜이 각각 지지율 22%를 기록하며 선두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고, 피용 후보가 1.5%포인트 올라 21%, 멜랑숑 후보는 1.5%포인트 내려 18%의 지지율을 찍었다. 4인이 펼치는 초박빙 접전의 승자는 누가 될까.

1382호 (2017.05.0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