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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좋은 사진? 다른 사진을 찍어라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독창적인 시각·의미 담아야 … 소재도 ‘크고 대단한 뭔가’일 필요 없어

▎[사진1] 흑점폭발, 김시연, 2017
유행어에는 시대의 사회학이 녹아있습니다. 한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가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2009년 개그맨 박성광이 개그콘서트 ‘우리를 술 푸게 하는 세상’이라는 코너에서 했던 말입니다. 경찰서에 온 취객이 술주정을 합니다. 연예계의 가십거리나, 일상에서 흔히 있는 가벼운 소재로 시작해 회를 거듭하며 날카로운 세태 풍자로 이어집니다.

“장동건과 고소영이 사귄다고? 1등끼리만 사귀는 더러운 세상!”

“나라가 나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혀가 꼬부라진 취객의 술주정이 절규처럼 가슴에 박힙니다. 숨막히는 대학입시, 취업과 출세를 위한 무한 경쟁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외침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1등 제일주의에 젖어 있습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온갖 찬사를 보내지만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받은 선수는 죄인 아닌 죄인이 됩니다. 오죽하면 선수들 사이에 ‘동메달’은 ‘똥메달’이라는 자조적인 표현이 나왔을까요. 박성광이 말한 ‘1등’에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철학이 투영돼 있습니다. 1등의 영광 뒤에는 늘 열등한 주변부가 있습니다. ‘엄친아’에서 보듯이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천박한 위계를 만들어 냅니다.

1등주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사진2] Yellow Saturn, 김시연, 2017
오랫동안 누적돼온 1등 중심주의는 자기비하의 집단 무의식을 만듭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데 모든 가치를 부여합니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1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려 합니다. 오로지 1등을 하기 위해 목을 맵니다. 이런 삶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요?

사진에서도 1등 중심주의가 있습니다. 이른바 ‘공모전 사냥꾼’입니다. 사진 공모전 수상 경력을 훈장처럼 달고 다닙니다. 이들이 응모하는 사진전은 대개 예술성보다는 주최 측의 광고나 홍보 등 상업적 목적으로 시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최 측의 의도를 영악하게 파악하고 이를 위한 사진만을 찍습니다. 사진의 목적이 공모전 수상이라는 비뚤어진 사진관을 갖고 있습니다. 사진을 공부하는 이들이 공모전에 응모해 수상하는 것도 성취욕을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곤란합니다.

1등에의 집착은 또 다른 폐해를 만들어 냅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사랑할 줄 모릅니다. 늘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아요’ 수에 집착합니다. 사진은 뭔가 특별하고, 아름답고, 화려하고 모든 사람이 ‘엄지척’을 내세우는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운칠기삼’의 소재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마음에 드는 소재가 나타나지 않으면 쉬 지칩니다. 결국 카메라를 내려놓게 됩니다.

사진은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사진은 진솔한 삶의 기록이자, 살면서 겪는 희로애락의 느낌표입니다. 1등도 꼴등도 없습니다. 독창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1등이 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이 세상에 똑같은 생각과 똑같은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현대 사진은 좋고 나쁨이 아닌 다름이 중요합니다.

사진의 소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크고 대단한 뭔가’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진의 정신은 오히려 열등해 보이는 주변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소한 대상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이는 깨달음의 순간이자 브레송이 말한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50+재단에서 초보 사진가를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작품 발표회를 연적이 있습니다. 50대 이상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3개월 간 사진을 강의하고 작은 전시회를 여는 프로그램입니다. 수강생들은 “아직 걸음마도 못 뗐는데 무슨 전시회냐”고 당혹해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잘 찍고, 못 찍고보다 다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입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를 특별하게


▎[사진3] Orbit, 김시연, 2017
사진은 이날 작품 발표회에 출품한 김시연씨의 ‘Cosmos’ 시리즈입니다. 문래동 철물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절삭기로 잘라 놓은 파이프 단면에서 우주를 읽었습니다. 태양의 흑점이 폭발합니다[사진1]. 노란색 토성도 보입니다[사진2]. 원을 그리며 유영하는 태양계 행성의 궤적도 봤습니다 [사진3]

[현대 예술로서의 사진]의 저자 샬럿 코튼은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이 아닌 사물, 그중에서도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물건이 사진으로 인해 얼마나 특별해지는지 보여준다. 사진을 통해, 평범한 것은 일상적인 기능에서 벗어나 시각적인 의미와 상상의 가능성을 부여 받는다. 사진으로 찍지 않거나, 찍을 수 없는 주제 같은 것은 없다. 예술가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작품에서, 사진작가들은 우리의 상상력을 미묘하게 자극해, 시각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법으로 일상적인 물건들에 대해 숙고하게 한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1413호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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