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과 어두음 만들고 입체감 형성 … 시각적·심리적 영역에도 영향
▎[사진1] 한강,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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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공부는 데생부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선과 삼각형, 사각형, 원 등 기본적인 도형을 그리며 공간 감각을 익힙니다. 다음에 입체 도형을 그립니다. 그늘진 부분에 빗금을 치며 명암을 표현합니다. 빛을 이용해 입체감을 훈련합니다. 아그리파 흉상이나 비너스상 같은 석고상을 수없이 그립니다. 참 지루하고 힘든 과정입니다. 그러나 꼭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데생은 빛을 보는 눈을 키우는 훈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사진을 ‘빛사냥’이라고 말합니다. ‘사냥’이라는 수사에는 함축적인 뜻이 담겨있습니다. 사진에 필요한 빛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같은 대상이라도 빛의 방향과 밝기에 따라 모양이 서로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은 빛을 다루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계적인 사진이론서로 손꼽히는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에서는 빛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의 방향을 읽는 일입니다. 피사체에 내려 앉는 빛의 방향은 밝음과 어두움을 만들며 입체감에 관여합니다. 직사광선의 경우에는 그림자가 달라 붙습니다. 달라 붙는 그림자는 피사체를 입체적으로, 현실감 있게 보여줍니다. [사진1]은 한강 고수부지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는 장면입니다. 강한 오후 햇살이 농구 코트에 자전거 그림자를 만듭니다. 선명하게 새겨진 그림자는 입체감을 부각시킵니다. 허상이지만 실상같이 보입니다. 자전거 위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 같습니다. 서커스의 자전거 곡예를 떠올리게 합니다.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부터 느껴야
▎[사진2] 아파트,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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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피사체를 정면에서 고루 비춰주는 순광은 평면적이고 밋밋한 느낌을 준다고 이야기 합니다. 비스듬히 들어 오는 ‘사광(斜光)’은 입체감을 부각시킵니다. 옆에서 수평으로 들어오는 빛은 강렬한 명암의 대비를 만들어 냅니다. [사진2]는 남한산성에서 바라본 분당 아파트촌의 모습입니다. 이른 아침 맑은 햇살이 동쪽에서 낮게 들어와 아파트 측면을 비춥니다. 명암의 대비가 도드라지며 성냥갑을 쌓아 놓은 듯한 입체감이 느껴집니다.또 빛이 만드는 그늘은 정서적인 깊이감을 줍니다. 그늘진 곳은 밝은 곳과 대비되며 넉넉한 공간감을 더해 줍니다. 빛이 드는 부분을 부각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상대적입니다. 동전의 양면입니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강조되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강조됩니다. 피사체를 옆이나 뒤에서 감싸듯이 내려앉는 빛은 그 자체로 선을 만듭니다. 이를 ‘라인 라이트(line-light)’라고 합니다. 사진에서 가장 매력적인 빛 중의 하나입니다. 뒤에서 비스듬히 들어 오는 역사광은 피사체를 에워싸는 효과를 냅니다. 배경이 어두울 경우 라인 라이트 효과는 더 커집니다. 이 빛을 이용해 사람을 찍을 경우 머리와 어깨 선을 따라 빛으로 된 윤곽선이 생깁니다. 풍경사진의 경우 산의 능선이나 언덕의 윤곽선이 빛으로 그려집니다. 이 경우 라인 라이트는 그 자체로 사진을 구성하는 뼈대가 됩니다. 구도의 핵심은 선입니다. 빛이 사진의 중심선을 만들고, 시각동선의 역할도 합니다.
빛이 만든 선이 구도의 토대 되기도
▎[사진3] 새벽,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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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빛은 잘 이용하면 복잡한 대상에 통일감과 질서감을 줍니다. 비례와 균형에도 관여합니다. 그러나 빛이 시각적인 모양 내기에만 관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서광·후광이라는 말이 있듯이 빛은 정신적·심리적 영역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종교적으로 성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성인의 얼굴 뒤에 황금빛 광채가 나는 원형의 후광(halo)을 그려 넣는 것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빛은 또 긴장과 갈등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먹구름 틈 사이로 나오는 빛내림, 노을빛, 특정한 부분만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도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효과를 노리는 빛입니다. 사람이나 사물에 붙어있는 그림자도 그 길이에 따라 느낌이 달라집니다.[사진3]은 빛이 만든 선이 중심이 되는 작품입니다. 이른 아침 해가 떠오릅니다. 언덕 너머로 들어오는 빛이 사선을 그립니다. 선과 선이 만나는 꼭지점에 사람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라인 라이트가 보입니다. 빛이 만든 선이 구도의 토대를 이룹니다. 시각동선의 역할도 합니다. 두 개의 사선이 긴장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되며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