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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중의 사진, 그리고 거짓말] ‘낯설게 하기’의 미학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인식의 반전, 재인식의 즐거움…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다시 봐야

▎[사진1] Gray city, 2017
수수께끼는 어떤 사물에 대해 은유적으로 빗대어 말하고 이를 알아 맞히는 놀이입니다. 구전문학으로 분류되며 세계 공통으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유명한 ‘스핑크스와 외디푸스’의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네 발로 걷고, 다음에는 두 발로 걷고, 마지막으로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와 같은 것입니다. 답은 사람입니다.

어린 시절 삼삼오오 모여 수수께기 놀이를 많이 했습니다. 언어 유희적인 성격이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이를 즐깁니다. 너도 나도 생각나는 대로 한마디씩 툭툭 내뱉으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수수께끼의 정답은 거의 우리에게 익숙하고 친근하며 누구나 다 아는 것이 많습니다. ‘젊어서는 푸른 주머니에 은전이 들어있고, 늙어서는 붉은 주머니에 금전이 들어있는 것은?’ 답은 고추입니다. 수수께끼에는 답을 어렵게 만드는 이중의 장치가 있습니다. 고추를 주머니로, 씨앗을 은전과 금전으로 은유적인 표현을 해서 어렵게 만듭니다. 또 고추가 익어가는 것을 ‘젊어서… 늙어서’로 의인화해 오답을 유도합니다. 고추는 우리가 거의 매일 먹을 정도로 잘 알고, 익숙하지만 한참을 생각해야 답을 맞춥니다. 친근한 고추를 일부러 생소하게 표현해 고추를 생물학적으로 분해하고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쉬운 것을 어렵게 표현합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식의 반전효과를 노립니다. 수수께끼의 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전효과 노리는 수수께끼의 묘미


▎[사진2] 살신성인, 2015
수수께끼는 시적 비유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사물의 모양이나 움직임, 성격을 묘사할 때는 은유법·의인법·과장법 등 시의 수사법을 사용합니다. 낯설고 생소한 표현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낱낱이 분해하고,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처럼 사람을 ‘네 발로 걷고, 다음에는 두 발로 걷고, 마지막으로는 세 발로 걷는’ 동물처럼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수수께끼는 ‘낮설게 하기(Defamilarization)’의 대중 버전입니다. 인식의 반전, 재인식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형식주의자인 쉬클로프스키는 문학의 언어는 일상 언어와 달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상 언어는 상투적이고 규격화돼 있습니다. 쉽고 평범한 언어를 사용하면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인식할 때 습관적이고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학이나 예술은 수수께끼처럼 낯익은 것을 낯설게 표현합니다. 시를 어렵게 만드는 형식, 즉 음, 리듬, 각운, 비유적인 표현 역시 낯설게 하기의 방법입니다. 그렇게 하면 독자들은 그 의미를 곱씹게 되고, 더욱 극적으로 대상을 인식하게 됩니다. 쉬클로프스키는 문학언어는 ‘대상을 친숙하지 않게 만들고, 형태를 난해하게 만들고, 지각 과정을 더욱 곤란하고 길어지게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낯설게 하기는 우리 의식을 늘 깨어 있게 만듭니다. 시인 안명옥은 우리가 잘 아는 ‘맨홀’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맨홀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변형시키고, 뒤틉니다. 맨홀 뚜껑에 우리 삶이 투영돼 있습니다. ‘밑바닥에서 오래 명상한/ 저 딱딱한 달/길을 가다가 가끔씩/뚜껑을 확 열어젖히고 싶을 때가 있다/달의 내부에는/무수한 빛의 입자들이 출렁거리며/그림자를 만들고/은밀한 시간 위로/ 솟구치는 더운 숨결/단 하루라도 둥둥/허공에 떠올려 주고 싶어/가장 어두운 것들도 한번쯤은/ 치솟고 싶을 때가 있다.’

낯설게 하기는 문학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회화·사진 등 예술이 즐겨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는 사람·구름·바위·물고기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변형시키거나 잡종을 만듭니다. 보는 이를 긴장시키며 사람과 사 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합니다.

사진도 낯설게 하기 기법을 즐겨 씁니다. 만 레이는 여자 누드 뒷태를 보며 바이올린을 떠올립니다. 잘록한 허리에 f 홀을 그려 넣습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흔한 조개와 피망 등에서 섹스 코드를 읽어냅니다. 초현실주의 사진가 제리 율스만은 다중인화기법(몽타주)을 이용해 가공의 진실을 만듭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사진 버전입니다.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들어

김아타는 아크릴 박스에 사람을 기듯이 넣어 여기저기 펼쳐놓고 사진을 찍습니다. 현대를 사는 인간의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구본창은 다 쓰고 버린 비누를 모아 초상사진을 찍듯이 정성을 들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듭니다. 비누에 담긴 시간성과 물성을 보여주며 사진 앞에 오래 머물게 합니다. 전형적인 낯설게 하기 기법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무수하게 많은 것과 마주칩니다. 대부분 무심코 지나치거나 습관적으로, 기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카메라를 들고 뭔가를 찍으러 나서면 세상이 다르게 보입니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고, 다시 보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야 말로 사진의 시작입니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을 수수께끼처럼 낯설게 표현하는 테크닉이 사진을 더욱 사진답게 합니다.

※ 필자는 중앙일보 사진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아주특별한사진교실의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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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2호 (201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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