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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바쁜 뇌산업 육성] ICT 기업, 뇌 연구에 투자 늘려야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
뇌산업 규모 204조원 달해...미국·유럽·일본 등 뇌 연구 적극 지원

▎사진:© gettyimagesbank
세계적으로 해마다 약 1조4000억 달러(약 1500조원)가 뇌질환 비용으로 쓰이고 있다. 뇌·신경질환 환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알츠하이머의 경우 2020년까지 연평균 3.4%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뇌·신경계질환을 치료하고 예방하는 혁신적 기술과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전망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뇌질환에 따른 생산성 저하는 세계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빠른 시일 내에 대응해야 한다”며 “뇌의 건강은 단순히 연구와 공공보건의 문제만이 아니라 개발의 이슈”라고 강조했다.

수세기 동안의 노력으로 뇌에 대한 탐구는 이제 기초연구에서 벗어나 산업으로 진화하는 시점에 있다. 글로벌 의료기기 기업인 메드트로닉(Medtronic)이 개발한 뇌심부자극(DBS) 요법 치료기기인 ACTIVA PC, ACTIVA SC 신경자극기는 흉부 피부 아래에 이식해 뇌를 자극, 뇌의 근긴장이상 증상을 치료한다. 메드트로닉스, 사이버로닉스 등 기업은 뇌에 전극을 삽입해 뇌질환을 치료하는 뇌심부자극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15년 간 식물인간으로 지낸 환자에 뇌에 전극을 심어 자극을 주어 일부 기억을 되찾고 눈동자와 머리를 움직이는 일도 더 이상 환상이 아니다. 그동안 뇌에 관한 연구는 뇌를 이해하는 것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이를 응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산업 또는 의료적으로 이용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세상 바꿀 기업으로 신경기술 스타트업 꼽혀


시장분석 전문회사인 CB 인사이트에 따르면, 올해 세상을 바꿀 기업으로 신경기술(Neurotechnology) 분야의 스타트업을 꼽았다. 신경기술 분야 기업들은 뇌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치료해주는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뉴로스메디컬(Neuros Medical)이다. 이 기업은 고주파 자극을 말초 신경계의 감각신경에 전달해 만성 통증을 차단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뉴로스메디컬은 절단 통증(amputation pain), 수술후 통증, 편두통(migraine), 삼차신경통(trigeminal neuralgia) 등 다양한 조건의 만성통증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9년을 시작으로 미국 국방부, 보스턴 사이언티픽 코포레이션(Boston Scientific Corporation), US 벤처 파트너(US Venture Partners) 등으로부터 총 368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의료장비업체인 뉴로페이스(NeuroPace)는 RNS 시스템을 개발했다. RNS 시스템은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이식하는 반응형 신경자극기로, 뇌의 활동을 감지해 자동으로 전기 자극을 전달해 경련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의료기기다. 뉴로페이스는 2008년을 시작으로 존슨앤존슨 이노베이션(Johnson & Johnson Innovation), 벤처캐피털인 NEA(New Enterprise Associates), KPCB 등으로부터 지난해 7400만 달러 등 지금까지 총 1억646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았다.

앞서 소개한 회사들은 뇌에 대한 연구가 더 이상 기초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좋은 예다. 뇌 관련 산업의 시장(2014년 기준)은 크게 뇌질환 치료제, 치료장비, 뇌 연구장비, 뇌 건강관리제품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시장 규모는 약 204조원에 달한다. 뇌질환 치료제 시장은 통증, 우울증, 치매 치료제 등을 중심으로 약 170조원으로 시장 대부분(83%)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징 등 연구장비 시장, 뇌심부자극기, 척수자극기, 미주신경자극기 등 치료장비 시장, 집중력 향상 뇌자극기 등 일반인 대상 제품 시장 등이 그 다음 규모로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뇌 연구 장비 시장은 연 5%씩, 뇌질환치료 임상 장비와 일반인 대상 제품도 매년 각각 11.2%와 11.5%로 성장하고 있다. 뇌질환 진단과 뇌연구를 위한 뇌영상장치, 뇌기능 모니터링과 관련된 세계 시장 또한 성장 할 것으로 예측된다. 뇌 진단, 연구장비 시장은 뇌 이미징 장비와 전기생리학을 위한 장비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2014년 기준으로 24억 달러 규모에서 2020년까지 31억 달러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알츠하이머나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신경계 질환과 관련된 의약시장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추신경치료제의 신약 개발은 글로벌 신약개발의 평균 12%를 차지하고 있다.

와이브레인, 국내 최초 우울증 치료 의료기기 허가


▎뇌의 기능을 보여주고 향상시키며, 치료해주는 신경기술 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 사진:CB 인사이트
미국·유럽·일본·중국 등은 뇌연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1990년부터 관련 법안을 제정해 뇌연구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 이후 2013년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가 1억 달러를 들여 추진한 인간 뇌 세포·회로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3년 간 기획을 통해 10년 간 총 45억 달러(약 5조5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뇌의 기능 이해와 활용을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강점은 정부의 프로젝트와 민간의 투자가 고루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IBM의 닥터 왓슨, 구글의 딥마인드 등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통신기술(ICT) 강자들이 뇌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유럽연합(EU)도 2000년대 중반 이후 뇌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래 2013년 미국과 비슷한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를 추진하고 있다. 10년 간 총 10억 유로(약 1조4000억원)을 투입해 인간의 뇌 구현, 뇌질환 약물의 효과를 예측하는 플랫폼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도 1997년 뇌연구의 세기(Century of Brain)을 선언하고 이듬해에 뇌과학 종합연구소를 이화학연구소(RIKEN) 내에 설치해 신경회로망 분야를 중심으로 뇌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정신질환의 근원을 밝힐 목적으로 뇌과학 연구 프로젝트인 브레인/마인즈(Brain/MINDS) 프로젝트도 2014년부터 10년 계획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2016년부터 차이나 브레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5년 간 뇌과학 기반 지능기술 개발과 뇌질환 극복을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연계한 지능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인공지능 개발에 관심을 보이면서 인공지능 회사 500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제는 많은 나라가 뇌를 연구뿐만 아니라 산업으로 보기 시작했고 국가 차원의 역량을 결집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000억원 넘는 뇌 기업 10개 이상 육성


▎사진:© gettyimagesbank
이들 나라들이 뇌 연구에 뛰어드는 동안 한국도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도 1998년 뇌연구 촉진법을 제정하고 10년 단위로 뇌연구촉진 기본계획을 수립해 뇌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유럽 기업이 뇌 공학기기·치료제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 동안 한국은 파급효과가 큰 제품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지난 10년 간 뇌연구를 추진한 결과 지난해 기준 연 매출 1억원 이상 기업이 4곳에 불과했다.

물론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국내 뇌 과학 의료기기 벤처기업인 와이브레인(Ybrain)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우울증 치료 보조기기(MINDD)를 허가 받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유럽에서 유럽 의료기기 허가를 획득했다. 와이브레인은 신경과학 박사들과 구글 출신 한국 공학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기업이다. 이 회사는 2013년 창립 후 다수의 벤처캐피털로부터 총 162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 회사는 치매를 해결하기 위한 연구도 지속하고 있다.

뇌 분야에서 한국은 세계 최초 원천기술 확보가 미흡한 편이다. 유망 기술의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 대비 약 77% 정도다. 이에 한국도 한국뇌연구원 등 전문기관을 설립하고, 2008년에 비해 지난해 관련 예산을 3배로 확대하는 등 뇌 연구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늘려가고 있다. 2008년 뇌 연구 예산은 493억원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4배 가까이로 늘어난 약 1680억원이었다.

정부는 앞으로 인간 뇌에 대한 근원적 이해에 도전하기 위해 기초연구를 강화하고, 뇌지도 구축 관련 원천기술 개발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뇌 연구개발(R&D) 성과를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 적용해 차세대 인공지능(AI) 등을 개발하고, 뇌 연구 정보를 모은 ‘코리아 브레인 스테이션’을 구축해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2023년까지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는 뇌 연구 관련 기업 10개를 창출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아울러 국내 연구진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국제협력에도 노력하기로 했다.

뇌 관련 커뮤니티에 가보면 우리나라 뇌 연구 시장에 현실을 비추어볼 때 정부가 제시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문도 든다. 그러나 최근 ICT 기업들이 뇌산업을 포함한 헬스케어 시장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ICT 기술력과 뇌 과학 연구가 합쳐진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ICT 기업들이 뇌 연구기관이나 기업과 협업하고, 뇌 연구에 대한 투자를 늘린다면 우리나라의 뇌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생각한다.

1444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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