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호기심과 무관심 사이 

 

이상호 참좋은여행 대표

남들에 비해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호기심(好奇心). 글자 그대로 풀어보면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인데 필자의 마음이 딱 그렇다. 최신 휴대폰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써봐야 하고, 태블릿이건 스마트워치건 일단 구하고 나서 사용법을 배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호기심은 물건을 사서 궁금증을 해소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신기한 것을 좋아해서 낭패를 본 기억도 있다. 연전에 멕시코 출장을 갔을 때의 일이다. 무심코 ‘M’ 표시가 되어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기겁을 했다. 있어야 할 소변기는 보이지 않고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성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에스파냐어로 여성을 무헤레스(Mujeres)라고 부르는 걸 몰라서 생긴 일이다. “아임 쏘리!” 황급히 사과하고 후다닥 뛰어나왔다. 여기까지면 좋았을 것을, 해외 출장 중 멋진 풍경보다는 이런 문화 차이에서 오는 신기한 에피소드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호기심이 문제였다. 슬쩍 스마트폰을 꺼내 여자 화장실의 M자를 촬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지 경찰이 와서 스마트폰을 좀 보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도 그럴 것이 중년의 동양 사내가 여자 화장실에 무단으로 들어갔다 나온 직후 화장실을 촬영하는 상황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이런 호기심 때문에 사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주변 사람들이다. 자꾸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호기심이야 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특성’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지만 궁금증을 해소시켜 줘야 할 사람들에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항상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깐깐한 사장이라니,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존재일지 모른다.

‘호기심 천국’ 속에서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나름의 주관도 섰다. CEO의 호기심은 기업에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작용이 더 많다는 깨달음이다. 사장이 회사의 모든 것을 완벽히 알아야 할 필요는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하지만 사장이 ‘전혀 모르는 분야’가 한군데라도 있어서도 안 된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명확히 업무를 분장해 최대의 성과를 내도록 조직하는 일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금의 흐름과 품질관리, 시대의 트렌드와 회사를 도약시킬 새로운 아이템, 그리고 마케팅 전략에 이르기까지. CEO는 항상 이 질문들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소중한 파트너인 직원들과 함께 해법을 찾아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뭔가를 바꾸어 낸다는 것은 꽤 고통스러운 일이다. 만만치 않은 내부의 반대와 둔해져버린 조직의 무게, 말라버린 열정과 아이디어 앞에 서면 눈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끝없는 호기심과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다.

물론 호기심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지나친 참견이 되고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직원들은 견디기 힘든 스트레스를 받는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성공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질문하고 위임하라’고 이야기 했다. 나사를 조일 때 적당한 힘을 가해야지 계속 힘주어 돌리기만 해서는 망가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CEO가 그래서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덕목은 ‘무관심’이다. 귀찮고 어렵다는 핑계로 관심을 끊어버리는 나태한 무관심이 아닌, 아랫사람에게 권한의 상당 부분을 위임하고 한발짝 물러나서 지켜보며 자율성과 책임감을 높여주는 그런 애정 어린 무관심 말이다.

호기심과 무관심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 기업을 경영하는 세련된 스킬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영 이론이 그렇듯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호기심과 무관심 사이를 헤매고 있는 건지 모른다.

1483호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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