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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취객처럼 주가가 갈지자걸음 하는 이유 

 

정박효과와 ‘제우스와 뱀’... 주식 팔 때 매수가격을 머리에서 지워야

뱀은 항상 땅바닥에 바싹 붙어서 움직이기 때문에 수풀이나 나뭇잎에 가려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따라서 먹이를 잡거나 적을 피하기엔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뱀에게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땅바닥에 붙어서 기어다니다 보면 사람들의 발에 밟히기 일쑤였던 것이다. 어떤 날은 꼬리를 밟히고 어떤 날은 머리를 밟히기도 했다. 사람들에게 밟히기는 게 지긋지긋한 뱀은 제우스 신전으로 찾아갔다. “너는 왜 찾아왔느냐?” 제우스 신이 뱀에게 물었다. 그러자 뱀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자비로운 제우스 신이여! 부디 저의 호소를 들어주십시오. 저는 땅 위를 기어다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신께서 정하신 일이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꾸만 저의 몸을 밟고 지나다니는 것만은 막아주십시오.” 제우스 신이 너그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미 너에게 땅 위에서 기어다니도록 한 대신 훌륭한 선물을 주었다.” 그말을 들은 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날카로운 이빨을 주지 않았느냐? 네 등을 처음으로 밟는 사람을 힘껏 물어버리면, 두 번째 사람은 결코 너를 밟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사진:© gettyimagesbank
어떤 경기나 싸움에서 기선을 제압하면 쉽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 적이 공격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이를 공격 또는 행동을 해 주도적 위치에서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이 우화의 뱀도 자기를 밟으려는 사람의 발을 물어 죽게 만들면 그 뒤론 다른 사람들이 뱀은 위험하다고 인식해 뱀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게 된다. 기선 제압은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공격 방식이다. 그런데 뱀이라고 모두 독이 있는 건 아니다. 물뱀이나 구렁이, 누룩뱀처럼 독이 없는 뱀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뱀은 위험한 것이란 인식이 박혀 있어 독이 없는 뱀도 일단 겁부터 먹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처럼 어떤 대상에 대해 처음 형성된 인식이 기준점이 돼 그 후의 판단에 왜곡 또는 편파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처음 형성된 인식에 꽂히면 판단 흐려져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만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의 하나로 ‘정박효과’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정박효과는 ‘닻 내림 효과’ 또는 ‘앵커링(Anchoring)효과’라고도 한다. 앵커는 배가 항구에 정박할 때 내리는 ‘닻’이다. 닻의 기능이 그렇듯이, 닻은 안정을 가져다 주는 지주라는 뜻의 은유적 표현이다.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앵커링) 그 이상 움직이지 못하듯이, 인간의 사고도 처음에 제시된 하나의 이미지나 기억에 박혀 버려 나중에 어떤 판단을 할 때 그 영향을 받아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지 않거나 이를 부분적으로만 수정하는 특성을 말한다.

카너먼은 정박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실험을 했는데, 참가자들에게 1에서 100까지 적혀있는 룰렛을 돌려 나온 숫자가 유엔에 가입한 국가들 중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보다 많은지 적은지 추측해보라는 질문을 했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실제 아프리카 국가의 비율과 관계 없이 자신이 뽑은 숫자를 기준으로 해당 숫자에 가까운 숫자를 정답으로 제시했다. 이는 관련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룰렛을 통해 뽑은 숫자가 앵커(기준)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미시시피강이 2000km보다 길지 짧을지 질문을 받은 경우와, 800m를 기준으로 질문 받은 경우 사람들이 추측하는 강의 길이는 매우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실험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전화번호 뒷자리 세 자리를 적게 한 후 로마 멸망 시기를 추측하도록 했는데, 대부분이 자신의 전화번호와 유사한 숫자를 정답으로 제시했다. 이는 로마 멸망 시기가 언제인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전화번호가 기준점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박효과는 마케팅 영역에서 유용하게 활용된다. 명품 매장의 전면에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가방을 진열해 놓는 것이 대표적이다. 명품 회사는 해당 가방이 실제 구매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한다기보다 해당 금액이 기준점으로 작용해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다른 제품을 쇼핑객이 싸다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대형마트에서 할인가로 판매되는 제품들 역시 기존의 가격에 대한 정보가 기준점으로 작용해 소비자가 더 쉽게 구매할 수 있도록 심리적 안도감을 제공한다. 보통 협상에서 원하는 조건 또는 가격을 먼저 제시하는 것이 유리하다. 이는 제시된 조건이 기준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보다 다소 높은 조건을 제시해 상대방에게 기준점으로 인지되도록 한 후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기 위한 전략이다.

정박효과는 보통 무의식적으로 나타난다. 정박효과의 영향을 받지만 이를 인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해도 얼마나 손해인지 잘 모르고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돈과 관련한 문제일 경우 정박효과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동산 가격이 한참 오르던 시기가 되면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평생 집을 못 사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집을 사는 사람이 많다. 수년 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다 보니 정박효과가 발생해 부동산은 계속 오를 것이라는 불패신화가 생긴 것이다. 경제적 상식으로는 집값이 계속 올라 집을 못 사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수요가 줄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닻이 있는 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는 가정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개 집을 산 시점은 부동산 시장 사이클상 상승의 절정일 때가 많다. 오를 일보단 떨어질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집값이 떨어져도 언젠가는 매입가를 회복하리란 막연한 기대 속에 파는 시기를 놓치기도 한다. 급하게 돈 쓸 일이 생기면 집을 팔기보다는 비싼 이자를 물고 은행 대출을 받게 된다.

정박효과에 사로 잡힌 주식 투자자들

주식투자자도 정박효과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만약 10년 전에 최고가인 10만원을 주고 산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제 이 주식을 판다고 할 때 정박효과가 등장한다. 급락한 주가가 경영 악화 등의 악재 때문은 아닌지 알아보지 않고 10만원에 닻을 내리는 것이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가격은 터무니 없이 낮다. 주가가 회복을 하더라도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미 10만원에 닻을 내렸기 때문에 지금 가격이 너무 싸 보여 덜컥 매수 주문을 내고 만다. 그 결과는 회복 불가능한 주식을 움켜 잡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최고가에 닻을 내리는 정박효과는 과거의 수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다. 흔히 “과거 고점 대비 많이 싸졌네” 하고 특정 종목을 매수하고 싶다면 항상 정박효과를 의심해야 한다.

현재의 시장가격도 정박효과를 부른다. 주가가 오르고 있다면 미래도 그러리라고 판단한다. 현재의 시세가 미래의 가격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현재의 가격에 꽂힌 정박효과는 가격 변동을 이끄는 다른 여러 요소를 무시해 버리게 된다. 한마디로 주식을 오르니까 사고 내리니까 파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개인들이 보이는 매매행태다. 주가가 술 취한 사람처럼 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차갑게 식는 극단적 흐름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 어떻게 하면 정박효과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선 주식을 팔 때 매수가격을 머리에서 지우게끔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이라면 그 주식을 사겠는가 반문해 보고 그게 아니라면 과감히 처분하는 게 좋다. 그리고 처분한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해 보면 손해 보고 파는 쓰라림을 어느 정도 달랠 수 있다. 또 매수할 때 손절매 가격과 매도 목표가격을 정해 놓는다면 정박효과를 벗어나는 방법이다. 주식투자는 매수보다는 매도를 잘해야 성공할 수 있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1483호 (2019.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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