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세계가 음식 배달에 주목하는 이유] ‘라스트 마일’ 확보로 전자상거래 물류 요충지 

 

M&A로 덩치 키워 시장 확장… 모빌리티 연계, 커머스 발전 가능성 높아

▎그랩은 차량 호출 앱 서비스를 기반으로 현재 동남아 8개국, 300여 도시에 진출해 음식 배달과 택배 서비스 등 사업 영역을 다각화하고 있다. / 사진: 그랩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다른 나라에 비해 음식 배달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배달의민족이나 요기요 같은 배달 앱의 등장 이후 우리는 마치 남이 가져다주는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는 듯이 더 많이, 더 자주 배달 음식을 먹고 있다. 2019년 1~3분기 배달의민족 누적 주문 건수는 3억6500만 건에 이른다. 배달의민족 사용자는 한 달에 4번 정도 배달 음식을 주문한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5조원 가까운 가격표가 매겨진 이유다.

독일의 온라인 배달음식 서비스기업 딜리버리히어로(이하 DH)는 최근 우아한형제들의 지분 100%를 40억 달러(약 4조75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우아한형제들에 투자한 투자자들이 가진 87%의 지분은 지금 인수하고, 김봉진 창업자 등 우아한형제들 주요 경영진이 가진 나머지 13%의 지분은 4년에 걸쳐 DH 본사 지분과 교환하기로 했다. 또 우아한형제들 경영진은 DH와 각각 50%씩 지분을 가진 합작사 우아DH아시아를 설립한다. 김봉진 대표는 합작사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아시아 11개 국가의 DH 사업을 관장한다. 그는 자기 지분을 DH 지분과 맞바꾸면서 개인으로서는 DH 최대 주주가 되며, DH 본사의 글로벌 자문위원회 멤버가 된다.

40억 달러, 4조7500억원이라는 가격은 2014년 카카오가 포털 다음 인수에 쓴 3조1000억원보다 많고, 최근 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2조원의 2배가 넘는다. 홈플러스는 사모펀드 MBK에 7조원에 팔렸다. 물론 지분율에서 차이가 나지만 인수 규모만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단거리 물류에 유리한 배달 음식 사업자

배달의민족과 DH의 대형 합병은 단지 음식 배달이 활성화된 한국의 상황만 반영하는 게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펼쳐지는 음식 배달 전쟁의 한 장면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음식 배달은 더 큰 범위의 생활 물류 전쟁의 한 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북미나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배달 음식 사업이 흥하지 않았다. 피자를 배달 주문해 먹는 정도였다.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보급과 함께 온라인 음식 주문 서비스가 등장했지만 삶의 양식을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의 등장은 음식 문화 큰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그리고 배달 기사의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배달 음식 주문은 모바일 시대 삶의 양식의 하나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미국에서는 그럽허브, 도어대시, 포스트메이츠 등이 경쟁하는 가운데 우버도 ‘우버 이츠(Uber eats)’를 내놓고 시장 공략에 나섰다. 동남아시아도 전문 음식 배달 앱이 그랩과 라인 등 테크 대기업의 유사 서비스와 경쟁하며 시장을 키우고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의 테이크어웨이닷컴, 영국의 저스트잇과 딜리버루, 독일의 DH 등이 경쟁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텐센트와 알리바바를 각각 등에 업은 메이투안과 어러머가 거대 시장을 놓고 싸운다. 시장조사 기업 프로스트앤드설리번은 세계 온라인 배달 음식 시장이 2018년 820억 달러(약 95조5000억원)에서 2025년 2000억 달러(약 232조9600억원)로 커진다고 전망했다.

최근 몇 년 간 온라인 배달 음식 시장을 살펴보면 몇 가지 흐름이 보인다. 우선 각 지역에서 수많은 유사 기업들이 등장해 경쟁하다 결국 전략적 제휴와 인수합병으로 이어졌다. 또 가장 로컬한 사업이지만 해외 진출과 투자도 활발하다. 게다가 모빌리티 기업도 음식 배달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모빌리티와 연계된 커머스로의 발전 가능성이 주목된다. 음식 배달을 하는 오토바이 등으로 각 가정까지 이어지는 ‘라스트 마일’을 확보할 수 있고, 이는 기존 전자상거래 기업의 파이를 넘볼 전략적 요충지가 된다. 전자상거래는 생활 대부분의 영역을 담당할 수 있을 정도로 커졌지만 아직 신선식품 배송이나 급하게 필요한 생활용품 구매 등 일상의 가장 밀접한 부분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마켓컬리 등 새벽배송이 급성장하며 이 시장의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으나 아직 여기서 돈을 버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이 같은 단거리 물류는 배달 음식 사업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분야가 될 수 있다. 모빌리티나 유통기업이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올 때쯤, 이미 집집마다 배달을 다니며 동네를 훤히 아는 음식 배달 사업자들과 맞닥뜨릴지 모른다.

그럴 바에는 이 시장에 미리 발을 담그자는 것이 모빌리티 기업의 선택이다. 동남아 대표 차량 공유 서비스 그랩은 이제 전체 거래량의 절반 이상이 차량 호출이 아닌 음식 배달에서 나온다. 수익성도 음식 배달이 더 높다. 그랩은 2018년 이래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8개 국가, 300여 도시로 확장했다. 여기에 공유주방 사업을 펼치고, 식당 등 자영업자를 위한 모바일 결제와 금융 서비스까지 시작했다.

우버는 별도로 있던 차량 공유 앱과 우버 이츠 앱을 합쳐 앱을 열면 음식 주문과 차량 호출 중 하나를 택하도록 디자인을 바꿨다. 쿠팡이 최근 새로 벌인 사업 중엔 일반인이 원할 때 배송 일을 하는 ‘쿠팡 플렉스’와 음식 배달 ‘쿠팡 이츠’가 있다. 모두 음식 배달과 물류의 결합을 염두에 둔 행보다. 유통업계는 지역을 겨냥한 소규모 물류 허브를 지어 대응하고 있다.

일상공간 관문 역할에 치열한 경쟁

DH와 배달의민족의 합병도 비슷한 곳을 바라본다. DH는 합병 후 과제로 자체 배송 네트워크 강화, ‘다크 스토어’와 같은 추가적 온디맨드 서비스 확대, 공유주방 진출 등을 꼽았다. 다크 스토어란 온라인 주문이 들어온 상품을 직원이 골라 배송하는 목적으로만 만든, 손님 없는 매장이다. 배달의민족은 이미 감자 한 알, 아이스크림 한 통 등 소량 식품과 생필품을 오토바이로 배달하는 ‘B마트’를 새 중점 사업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구 단위로 창고도 짓고 있다.

세계 어디든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인구가 밀집된 곳이라면 비슷한 모습으로 거대한 시장이 열릴 것이다. 그래서 주요 지역마다 인수합병이 일어나고 해외 진출이 활발하다. DH도 본진인 독일 사업을 테이크어웨이닷컴에 팔고 아시아 시장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 이번 인수합병의 핵심이다. 우버 이츠는 동남아 사업을 그랩에 넘겼고, 인도 시장을 현지 업체 조마토에 넘긴다.

인터넷 시대에 검색이, 모바일 시대에 스마트폰 OS와 메신저가 사람과 비즈니스를 연결하는 포털 역할을 했다. 이제 온·오프라인이 통합될 가까운 미래에는 차량 공유와 음식 배달, 마이크로 모빌리티 등이 관문 역할을 놓고 경쟁할 것이다.

- 한세희 IT칼럼니스트

1518호 (2020.01.20)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