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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건의 투자 마인드 리셋] 재패나이제이션과 부동산 그리고 내로남불 

 

부동산 시장은 거대한 복잡계 구조,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 있어

▎서울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일대 전경 / 사진:연합뉴스
얼마 전 참여정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교수의 부동산에 관한 글이 화제가 됐다. 필자는 내용의 옳고 그름이나 가치 판단 여부에는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판단할 능력도 안 된다. 자신이 처한 입장마다 조 교수의 글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간극만큼이나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필자의 눈길을 끌어당긴 것은 다음의 문장이었다.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이 폭락할 테니 집을 사지 말고 기다리라.”

2000년대 들어 부동산 시장에 어둠의 예언가들이 몇몇 나타났고 그들의 예언서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경험상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의 대세 상승이나 대폭락을 예언하는 책들 대부분이 거짓 예언서로 드러난 경우가 많았기에 필자는 관심조차 없었다. 나중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들어보니 그들의 주장에 따라 주택구입을 보류하거나 심지어 집을 판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자산시장의 예언가들

당시 어둠의 예언가들이 부동산 폭락의 근거로 자주 제시했던 것이 일본의 역사적 경험이었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저성장·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 부동산 시장이 긴 어둠의 터널에 빠져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쉽고 논리적이다. 저성장이 되면 소득이 줄어들게 되므로 주택 구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고령자의 증가는 신규 주택 구매층의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저성장과 고령화는 부동산 시장에 부정적인 것은 분명하다(사실 필자도 이런 주장에 상당 부분 공감한다).

이런 주장이 더 힘을 얻은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가 저성장 기조에 빠져들면서다. 이 때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표현이 ‘재패나이제이션(Japanization)’란 신조어였다. 이는 선진국 경제가 1990년대부터 장기 침체에 들어갔던 일본의 전철을 따라가는 현상을 뜻한다. 금융위기는 부채의 위기였고, 일본처럼 대차대조표상에서 부채를 줄여야하기 때문에 오랜 동안 경제는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예측이 헛됨을 여지없이 증명하듯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곧 강세장으로 돌아섰다. 오히려 금융위기 이전의 고점을 뚫고 신고가를 기록했다. 이는 주요 국가에도 나타난 현상이었다. 결국 2000년대 들어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주택 가격 하락을 예측한 이들은 안타깝게도 치솟는 주택 가격을 지켜봐야만 했다.

필자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시장을 이해하고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때 우리가 빠지기 쉬운 생각의 함정들이다. 명료하고 완벽한 해법을 찾기보다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긴장감이 투자에서는 유리한 경우가 더 많다. 일종의 ‘소거법(消去法)’이다.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답이 아닌 것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자는 것이다.

먼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일반화의 직관적으로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인간은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기 쉽다고 한다. 인간의 편향이 대부분 그렇듯이 일상생활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을 돕는다. 문제는 확률적 판단이나 돈이 걸리는 게임에서는 이런 편향들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국가 간 발전단계를 분석해 투자할 때도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최근 이런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재패나이제이션과 부동산 시장이다. 글로벌 투자에서 경제 발전 단계를 참고하는 것은 오래된 투자 아이디어 중 하나다. 일본이 구미 선진국을 벤치마킹 했고, 우리나라도 일본도 따랐다. 중국도 초기에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 모델을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산업에서도 이런 경우를 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이동통신 보급률은 120%가 넘는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보급률이 이동통신서비스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당연히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 생길 것이다. 실제 이런 식으로 접근해 중국이나 베트남 등에 투자해 좋은 성적을 거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통신주와 같은 것은 단선적으로 비교하기 쉽지만 하나의 시스템 혹은 그것도 거대한 복잡계 구조인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부동산 시장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도 많다. 금리는 정말(!) 중요하다. 소득도, 정부의 주택 공급 정책도 중요하다. 투자 심리는 말할 것도 없다. 인구 구조, 특히 그 중에서도 가구(家口)의 변화는 주택 수요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이다. 신용 정책도 중요하다. 신용은 주택시장의 자금 공급원이기 때문이다. 고도 성장기처럼 금리가 높고 소득이 높아지는 시대에는 대부분 돈을 모아서 집을 산다. 소득도 늘고 대출 금리도 높아 돈을 빌려 집을 사는 것보다 저축해서 주택 구입하는 게 더욱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리가 낮은 시대에는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게 일반적이다. 은행이 대출을 줄이거나 주택담보대출이 아닌 다른 대출을 늘리게 되면, 주택 구입자들을 자금을 동원할 수 없다.

내로남불과 자산시장

이런 여러 변수가 어우러지면서 가격이 형성된다. 따라서 한두 가지 변수로 전체를 해석하는 것은 시장이라는 생물(生物)의 한 부분만 보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단순하면 직관적으로 명징하지만, 그 논거가 틀린 것으로 판명나면 모든 판돈을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히틀러와 같은 악인일수록 명징하고 확정적이며 단순하고 분명한 언어를 썼다.

우리가 ‘내로남불’이라는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평가할 때는 ‘결과를 유발한 상황에 따른 판단’을 하고, 반대로 타인을 평가할 때는 ‘내재한 기질적 원인에 의한 판단’을 한다. 다른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 그의 운전실력, 성별(性別), 성격 등을 비난한다. 반대로 내가 급정거를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 신호체계나 앞차의 운전미숙 등 상황을 탓할 것이다. 잘못되면 상황 탓이고, 잘 되면 내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편향은 인간이라면 보편적인 것이다. 이러 편향이 시장에 투영될 때는 누군가를 비난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그런데 재미난 점은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에서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격이 오를 때 그 원인을 투기꾼으로 돌리지만 주식시장은 가격이 하락할 때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주로 비난하는 것이 공매도 세력이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투기꾼과 공매도 세력은 생각보다 그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보이는 현상일 뿐,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 필자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상무로,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 겸 투자 콘텐트 전문가다. 서민들의 행복한 노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은퇴 콘텐트를 개발하고 강연·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돈 버는 사람 분명 따로 있다] 등의 저서가 있다.

1542호 (202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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