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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커머스에 옷가게 언니가 떴다] ‘그립’ 대박날까 

 

1인 미디어와 라이브 커머스의 결합… 현장성 살려 차별화

▎지난 3월 8일 패션브랜드 ‘라이아’ 운영자들이 서울 면목동 사무실에서 그립 라이브 방송을 켜고 물건을 판매 중이다. / 사진:김경빈 선임기자
“자, 언니들 들어오세요~ 닉네임 ‘의젓한 지혜언니’ 1등~! 30초 만에 동시접속 50명~!”

스마트폰 거치대가 커다란 전신거울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설치됐다. 거울 뒤로는 오늘 판매할 수십 장의 옷이 걸려 있고, 거울 앞엔 판매자 두 명이 서 있다. 이들은 오늘 방송을 알리는 썸네일 사진 촬영한 후,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시작했다. 판매자는 카메라를 통해 이야기하고, 소비자는 채팅창으로 질문을 던진다.

방송이 시작되고 채팅창에 “77 사이즈가 입기엔 작지 않아요?”라는 글이 올라오자, 판매자는 두 팔을 양쪽으로 뻗으며, “보세요~ 제가 사이즈 66인데 이렇게 품이 넉넉해요. 77 사이즈 언니들도 충분히 입을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방송 중에 ‘원피스 무료 이벤트’도 펼쳐졌다. 방송 화면 하단에 ‘무료 이벤트 참여하기’ 버튼을 누른 사람들은 이벤트에 참여하게 된다. 잠시 후면 화면에 이벤트 당첨자가 공개된다. 1시간30분 동안 진행한 실시간 방송은 726명이 시청했고, 1만8313개의 ‘좋아요(하트)’가 기록됐다.

국내 첫 라이브 커머스 애플리케이션 ‘그립’의 촬영 현장이다. 유튜브·아프리카TV의 ‘1인 미디어’ 특성에 판매와 결제라는 ‘커머스’ 기능을 더한 것으로, 모든 영상은 실시간으로 방영한다. 지금은 네이버·카카오 등 대기업에서 활발히 운영하는 플랫폼이지만, 그립은 이들보다 1년 앞서 라이브 커머스를 시작한 말 그대로 ‘라이브 커머스 원조 앱’이다.

네이버, 카카오보다 1년 앞서 시작


그립은 네이버 출신 김한나 대표가 시드 투자를 유치해 2019년 2월에 오픈했다. 2020년 연간 거래액 243억원을 기록하더니 2021년 들어 1월 한 달 만에 50억원 어치가 거래됐다. 지난해 1월 거래액 2억6000만원의 20배 성장으로, 올해 연간 거래액이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되는 배경이다. 2021년 3월 기준 그립 애플리케이션 다운로드는 160만이 넘었고, 그립 내 판매자 수는 1만명을 넘겼다. 지난 2월엔 쇼핑 앱 카테고리 중 인기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눈에 띄는 것은 그립의 주요 영상들은 ‘꾸밈없는 자연스러운 영상’이라는 점.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영상을 제공하는 카카오와 달리 그립은 판매자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한다. 판매자가 운영하는 옷가게 한쪽에서 방송을 하거나, 집에서 아이와 보드게임 등을 즐기며 이를 판매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그립의 영상들은 쇼핑 방송이 아닌, 판매자와 소비자의 영상통화와 같은 느낌을 준다.

판매자가 라이브 방송을 원하는 시간마다 켤 수 있다는 것도 차별화다. 네이버·카카오는 판매자가 미리 방송시간을 예약하고, 승인이 난 시간에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립 판매자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라이브를 하듯이 본인이 원할 때 방송을 진행한다. 하루에도 여러 번 판매 방송을 할 수 있고, 단골을 만들기 위해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라이브 영상을 켤 수도 있다.

‘선착순 판매’ ‘라이브 쿠폰 증정’ ‘무료 증정 이벤트 추첨’ 등 시청자가 참여할 수 있는 온라인 시스템도 갖추었다. 시청자는 실시간으로 ‘참여하기’ ‘선착순 저요’ 등의 버튼을 누르고 당첨자 발표를 기다리는 등 게임 하듯 방송을 즐긴다. 그립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표윤환씨는 라이브 방송을 할 때마다 무료 증정 이벤트를 연다. 표씨는 “10분에 한 번씩 규칙적으로 무료 이벤트를 하는데 이는 시청자의 이탈을 막는 효과가 있다. 여러 제품을 순차적으로 소개하고 판매하는데 중간에 영상 시청을 나가버리는 사람이 많으면 끝까지 판매율을 높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판매할 상품을 보유한 사업자 셀러뿐 아니라, 물건을 받아 대신 판매 방송을 진행하고 수익을 받는 ‘그리퍼’ 제도도 그립의 차별점이다.

실시간 방송에 경쟁과열 부작용도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V커머스는 계속해서 대중화되고 있다. 방송국이 주도하는 대형 쇼핑마켓이 아닌, 개인 판매자 중심의 1인 마켓 시대인 것이다. 이 때문에 체계적이고 복잡한 시스템의 플랫폼보다 혼자서 누구나 쉽게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이 라이브 커머스에서 인기다. MZ세대는 정보를 습득할 때 활자보다 동영상에 익숙하다. 이들은 쇼핑 정보도 동영상으로 자극받아야 소비 욕구가 발현된다.” 그립이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시스템적인 체계가 부족한데, 이 부족한 체계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라이브 커머스 영상을 만드는 셈이다.

하지만 한계도 지적된다. 네이버·카카오는 미리 계획하고 방송하기 때문에 방송하며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와 각 상품 가격이 정리돼 나타나지만, 그립의 판매 영상에서는 각 상품 소개 없이 라이브 방송가 100원, 1000원, 1만원 등의 가격만 소개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을 보고 원하는 제품을 클릭해 해당 제품을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네이버·카카오와 달리, 그립 소비자는 실시간으로 각 제품의 가격을 인지하면서 2만원 제품이면, 1만원 버튼을 두 번 선택해 결제하고 따로 판매자에게 제품의 구매 의사를 밝혀야 한다. 뒤늦게 방송을 들으면 앞서 소개된 제품 이름과 가격을 알 수 없어서 추가로 구매하기 어렵다.

판매자가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방송을 할 수 있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동시에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경쟁이 과열되기 때문이다. 또 방송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영상의 노출 순위가 뒤로 밀려나, 방송이 끝나갈 때쯤엔 영상 화면이 뒤로 밀려 보이지 않는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박성희 책임연구원은 “라이브 커머스에서도 판매자의 방송 기획력에 따라 인기 판매자, 존재감 없는 판매자로 양극화될 것이다. 상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앞으로는 셀러의 영상 구성 능력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1577호 (2021.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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