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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회사 곧 문닫는 거 아냐?” 

경영에 어떤 영향 미치나
CEO와 病 

글 남승률 기자·사진 연합뉴스
CEO의 건강은 수치로 나타내기 힘든 기업의 중요한 자산이다. 어느 날 기업의 간판이던 CEO가 중병에 걸려 물러나야 한다면? 생각만 해도 해당 기업에는 끔찍한 일이다. ‘CEO 주가’란 말이 나오는 게 빈말이 아니다.

2000년 7월(위 왼쪽)부터 지난해 9월(아래 오른쪽)까지 스티브 잡스의 변한 모습.

미국 애플의 주가는 실적뿐 아니라 CEO인 스티브 잡스(53)의 건강 소식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곤 한다. 스티브 잡스가 지난 11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컴퓨터기기 전시회 ‘맥월드 콘퍼런스’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처음 전해진 2008년 12월 17일 애플의 주가는 6%나 떨어졌다.

그러다 2004년 8월에 췌장암 수술 후 건강 이상설이 불거질 때마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스티브 잡스가 1월 5일 애플에 편지를 보내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며 금방 나을 수 있다”고 밝히자 주가는 바로 4.22% 올랐다.

물론 그것도 잠시, 1월 14일 그가 건강 문제로 6월까지 병가를 떠난다는 보도가 나오자 애플의 주가는 다시 2.71% 급락했다. 스티브 잡스라는 한 인물이 거대 다국적 기업 애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경영 능력과 별개로 CEO는 시장을 움직이는 핵심 변수가 된 것이다. 어디 애플뿐이랴. CEO의 건강은 기업의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다. 기업에서 쉬쉬 하는 경우가 많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지만 ‘건강 이상설’만 나돌아도 해당 기업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한다.

특히 요즘 같은 격변기에는 CEO의 판단이 기업 경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등에서는 CEO의 건강이 재무제표 못지않게 중요한 투자 정보가 되고 있다. ‘CEO 주가’가 주식시장의 말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흔히 ‘CEO=기업’으로 보는 벤처 업계에선 CEO의 건강 문제가 기업의 존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인터넷 식품유통 업계 1위인 피포드의 CEO 빌 말로이가 2000년 3월 16일 건강을 이유로 사의를 발표하자 주가가 하루 만에 54.5%나 폭락했고,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던 벤처캐피털도 계획을 철회했다. 한국에서도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이 간염으로 앓아 누웠을 때 걱정스런 눈으로 회사를 보는 사람이 많았다.

이정조 리스크컨설팅코리아 대표는 “기업을 평가할 때 중요한 판단 잣대는 경영자와 핵심 인재”라며 “특히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기술이나 시장의 변화가 빠를수록 CEO의 중요성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헤드헌팅 회사인 유앤파트너즈의 유순신 대표는 “면접까지 통과했는데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서 떨어진 CEO가 꽤 있었다”며 “특히 간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많았다”고 밝혔다.

능력이 뛰어나도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기업을 끌어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CEO의 건강이 이렇게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지만 CEO를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다는 CEO들은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거의 일에 매달려 있게 마련이다. 조찬 모임을 시작으로 하루 종일 회의와 결재에 시달리기 일쑤인 데다 저녁 술자리도 잦아 만성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디지털 혁명이 진행되면서 경쟁의 강도가 예전보다 훨씬 세졌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뒤처질 것이란 중압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레인콤의 창업자인 양덕준 민트패스 사장은 2005년에 식도 수술을 받았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애플의 ‘아이팟 나노’가 한국에 상륙할 무렵이었다. 당시 레인콤의 주가도 계속 떨어지던 시기였다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기업을 경영하는 능력에 버금가는 요소로 평가되면서 건강 관리에 적극 나서는 CEO가 많다. 허태학 전 삼성석유화학 사장은 아침마다 1시간 30분씩 체력을 다졌다. 그는 “CEO의 열정과 에너지가 충만해야 조직에 활기가 넘치는데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태권도 공인 4단의 ROTC 장교 출신인 김창근 SK케미컬 부회장은 20년 넘게 기체조로 건강을 다지고 있다. 임직원들과 매일 아침 수련장에서 땀을 흘리며 기를 모은다.

다부진 체구에 떡 벌어진 어깨, 근육으로 균형 잡힌 몸매는 50대 후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다. 체력도 20대 젊은이 못지않다. 김진수 CJ제일제당 사장은 20여 년째 텃밭을 가꾸며 건강을 챙긴다.

주말이면 충주시 앙성면에 마련한 전원주택의 텃밭으로 향한다. 상추, 고추, 토란, 가지 등 이곳에서 기르는 작물 종류가 20여 가지에 이른다. 김 사장은 “땅에서 에너지를 빨아들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일의 집중도가 높아진다”고 말했다.

정유신 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는 아무리 바빠도 아침과 저녁에 냉겳쩔揚막?건강을 관리한다. 벌써 30년째다. 학창 시절 척추경직증을 심하게 앓은 후 시작한 건강 관리법이다.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는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건강이 중요하다”며 “특히 체력은 예부터 지도자의 근본 덕목이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육체와 정신의 조화는 지력, 심력, 체력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정신 건강은 지력과 심력, 육체 건강은 심력과 체력에 좌우된다”고 덧붙였다. CEO가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경영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만일의 사고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정조 대표는 “후계 구도가 잘 짜여 있으면 현직 CEO의 영향을 덜 받는다”며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공동 의사 결정 체계도 만들어 CEO 변동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업 6년째인 89년에 알콜성 췌장염으로 입원해 40일가량 병원 신세를 졌던 풀무원의 남승우 사장도 “창업 초기나 도약 단계에서는 CEO가 중요하지만 그 이후에는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지 CEO 패널 100명을 보니…
담배 적게 피고 술은 많이 마시는 편
골프(68%)와 걷기(57%). 본지가 CEO 패널 10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연재했던 ‘한국의 CEO를 말한다’ 시리즈에서 건강 관리법을 물은 결과다(복수 응답). CEO 패널 100명은 대기업 29명, 중견기업 43명, 중소기업 28명이었다. 골프는 나이가 많을수록 많이 했고, 걷기는 50대 CEO가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헬스(40%)와 등산(28%)도 CEO들이 선호하는 건강 관리법이었다. 조깅(11%), 수영(9%), 마라톤(4%), 맨손체조(3%), 스포츠 댄스겚묽?각각 1%) 등을 꼽는 CEO도 적지 않았다. CEO들은 대부분 술은 마시지만 담배는 많이 피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자의 비율은 79%였다.

반면 흡연자는 전체 응답자의 20%였다. 20세 이상 성인 인구의 흡연율(27.3%, 2006년 사회통계조사보고서)보다 낮다. 전체 50대(25.4%) 인구보다는 5% 남짓 낮은 셈이다. 음주자의 비율은 일반 국민(73.2%)보다 높다. 전체 50대(66.7%)보다는 10% 이상 높다. 음주자의 주량은 소주 기준으로 평균 1.1병으로 측정됐다. 술자리에 참석하는 횟수는 평균 일주일에 2.2회였다.


200902호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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