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아내를 위해 노란 장미를 사다 

사르코지-브루니처럼 ‘애인 부부’로 살기 

글 김미경 아트스피치연구원장, 사진 중앙포토·AP·SK텔레콤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와 부인 브루니처럼 서로 멋진 애인으로 살 수는 없을까? CEO들이여, 아내의 무덤덤함을 탓하기 전에 노란 장미 한 송이를 선물해 보라.

얼마 전 골프 모임에 갔을 때 일이다. CEO들과 라운딩을 끝나고 식당에 모여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다. “봤어? 최 대표님 몸매, 정말 대단하지 않아? 배도 하나도 없고 왕(王)자가 새겨져 있더라고, 완전 역삼각형이야.”

“김 사장, 얼굴에 주름 핀 거야? 이거 나도 해야지 안 되겠네.”

“주름 방지는 자외선 차단이 기본인 거 몰라? 나 봐, 매일 선크림 바르잖아.”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미용에 관한 중년 남자들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했다. 다이어트, 주름, 뱃살 등에 대해 나름의 고민과 해법을 내놓는 그들의 진지함은 결코 또래 아줌마들에게 밀리지 않았다.

음식을 주문하려는 순간 “운동 그렇게 하고 밥 많이 먹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없어, 우리 간단하게 냉면이나 한 그릇씩 먹고 갑시다!”라고 누군가 말했다. 나는 안다. 미용에 관한 이들의 뜨거운 관심은 시들어가는 젊음을 붙잡고 싶은 ‘허허로움’의 다른 표현임을. 중년 남성들은 감성적으로도 허기져 있다.

이는 40대 이후 남성들이 겪는 급격한 호르몬 변화도 한몫하는 것 같다. 갑자기 너무나 외롭고 인생이 허무해지면서 “내가 뭐하고 사나” 싶을 때면 ‘울컥’하는 마음에 음악을 틀어놓고 자유로 끝까지 달리고 싶을 때가 있다.

휴전선 근처까지 가서야 화들짝 놀라 차를 멈추거나 차 안에서 혼자 처량하게 울 때, 그게 바로 ‘제2의 사춘기’가 왔다는 증거다. 이런 날 술이라도 한 잔 ‘세게’ 하면 좋을 텐데, 부하직원들은 옛날 같지 않다. “상무님, 저 약속 있는데요”라며 자리를 뜬다. “내가 저 나이 땐 사장님이 밤 11시에 ‘김 부장 어딨냐’ 하면 잠옷 입은 채 차렷 자세로 전화 받았는데…. 근처에서 술 한 잔 하고 있는데 바로 가겠습니다”하고는 미친 듯이 달려갔다.

요즘엔 그런 부하가 없다. 집에 모처럼 일찍 들어가 가족들과 대화라도 해볼까 하지만 이마저도 어색하다. 아이들은 일찍 들어온 아버지를 “오늘 무슨 일 있으시냐”는 듯 쳐다보고 아내는 밥상 한 번 더 차려야 될까 봐 걱정스러운 눈빛이다.“에라, 평소대로 살자. 대화는 무슨 대화냐.” 결국 제일 친한 친구인 TV 앞에 앉는다.

일찍 들어간 날은 8시?시?1시?시 나이트라인 뉴스까지 본다. 똑같은 뉴스만 네 번 봐서 아예 외우다 잠든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늙어버린 몸뚱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한숨만 나온다. 이런 나를 과연 누가 좋아해 줄까. 자식? 아내? 부하직원? 심지어 술집에 가도 여자들이 슬슬 피하는 것 같다.

돈 벌기 위해 하는 기계적인 일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을까. 가능한 예술이라고는 접대 자리에서 넥타이를 이마에 매고 춤추거나, 병뚜껑 눈에 끼고 노래 부르는 게 전부다. 남들은 이들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아쉬울 게 뭐가 있느냐고 한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다. 늙었지, 매력도 없지, 품위 있는 문화생활도 할 줄 모르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빈털터리가 된 50대의 마음을 누가 알아주랴.

마음이 가난한 50대 남성들

이들이 평생 거들떠도 안 보던 선크림을 만지작거리거나 갑자기 그림 그리기에 등록하면 마음이 허해졌다는 증거다. 이때 그림 선생이 여자면 ‘사고’날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이미 이들의 마음은 누군가 조금만 칭찬해도 홀라당 넘어가는 제2의 사춘기 상태다. 몸은 50대이지만 정신은 10대 소년인 것이다. 술집 여자들은 이들의 심리를 너무 잘 안다.

“어머, 너무 젊어 보이세요. 세상에 어쩜 그렇게 몸매 관리를 잘 하셨어요. 야, 이 나이에 색소폰을 다 부시다니 너무 대단하시네요.”

50대 남성들 열에 아홉은 이런 ‘뻔한 매뉴얼’에 넘어간다. 사실 50대 남자들은 ‘대화’를 필요로 한다. 젊었을 때 그렇게 무뚝뚝했던 남자들도 45세가 넘으면 누군가에게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평생을 함께 산 아내하고는 그게 잘 안 된다. 여자는 40이 넘으면 몸에서 남성 호르몬이 나온다.

목소리도 남편 굵기와 똑같아진다. 힘도 엄청나게 세져서 집에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어느 날 냉장고와 침대 위치가 바뀌어 있다. 혼자 여행이라도 떠나볼까 망설이다 평소에 친분 있던 정 마담에게 물어보면 당연히 이렇게 말한다.

“아, 상무님 정말 떠나셔야 돼요. 꼭 혼자 여행 가세요. 남자도 살면서 그런 게 필요해요.”

반응 좋길래 집에 가서 얘기하면 바로 ‘폭탄’ 떨어진다. “당신 미쳤어? 당신이 여행 갈 돈이 어딨어. 애들 어학연수 보낼 돈도 없는데, 떠나긴 어딜 간다는 거야. 여행은 만날 집에만 있는 내가 가야지. 애들처럼 철없는 소리 좀 하지마!”

상황이 이쯤 되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해야 한다. 세상은 평균 수명 90을 향해 가는데 나이 50에 벌써 ‘마음의 빈털터리’가 돼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은 이래도 옛날 아내와 연애 시절에는 가슴 떨리는 일들이 많았다. 늘 보고 싶고, 만나면 가슴 두근거리고 서툰 솜씨로 연애편지도 써봤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점점 퇴색돼서 없어지는 것 같다.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도파민과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은 2년이면 생산 끝이다. 그러니 사실 부부간에는 권태도 정상이다. 다만 가슴 벌렁거리는 게 끝났다고 사랑이 식은 건 아니라는 것이다. 단계가 달라졌을 뿐이다. 물론 매번 상대를 바꾸면 나이 70에도 호르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그런 식으로 살다 보면 마치 뿌리 약한 들풀처럼 자신의 터전을 잃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같은 사람과 50년 이상 사는 일이다. 지난해 프랑스의 대통령인 사르코지가 모델 출신 13년 연하인 부르니와 세 번째 결혼을 감행했다. 많은 한국 남자들 부러워 죽었다. 우리나라에선 사회적인 생매장의 지름길인 그 길을 버젓이 걷고 있는 사르코지를 보면서 타인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윤리적인 잣대로 ‘마녀 사냥’에 나서는 한국적 현실을 원망했다.

남성들은 또한 브루니의 미모에 감탄했지만 여자인 나는 사르코지의 매력에 감탄했다. 젊은 여성들도 빠져들고 말 정도의 매력을 소유한 사람이 그다. 일단 모델에 가까운 그의 몸매는 자기 관리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브루니를 향한 애정의 몸짓과 대화는 20대의 풋풋함마저 배어 나온다. 사르코지가 아무리 부럽다 해도 그의 행보를 벤치마킹 하기엔 한국이란 문화적 상황이 결코 녹록지 않다.

사랑의 대상을 교체함으로써 얻는 젊음은 단기적 선택이며, 최악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랜 연인인 내 아내와 애인처럼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평생 함께 사는 여자와 애인처럼 사는 것은 과연 꿈일까. 물론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꿈을 이루려는 시도를 통해 관계를 변화시킬 수는 있다.

그러려면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편으로서, 남자로서의 매력을 다시 찾기 위해 이것만은 꼭 해보자. 첫째, 말의 양을 늘려라. 여자들은 말을 즐겁게 하는 남자에게 안 넘어가곤 못 배긴다. 그러나 대개 남자들은 나이 들면서 집에서 말을 안 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사외이사’, ‘감사’라고 착각하는지 딱 네 가지만 점검하고는 끝이다.

‘왔어’, ‘애들은?’, ‘별일 없고?’, 마지막으로 ‘나 잔다’. 그러면 아내도 똑같이 네 마디만 하기 시작한다. ‘왔어?’, ‘몇 시에 나가?’, ‘밥은?’ 마지막으로 ‘잘 자’ 이러고 끝이다. 당연히 집에서 재미있을 턱이 없다. 여자들은 애정을 말로 표현해줘야 안다. 요즘 일본에서는 황혼이혼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법정에 선 일본 할머니들은 가슴에서 피를 토하듯 절규한다.

“이 남자, 나랑 평생 대화 한번 제대로 안 해본 사람이에요.”

그럼 할아버지들은 발끈한다.

“뭐야? 어제도 같이 얘기했잖아!”

여자들은 말 잘하는 남자, 말로 감동시키는 남자에게는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세기의 카사노바들은 돈이 아닌 말로 여자를 유혹했다. 아내를 감동시키고 싶다면 자신의 대화 능력부터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능력은 얼마나 멋진 단어를 말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 어린 말을 많이 하느냐다. 일단 말의 하드웨어 ‘말의 양’부터 늘려야 한다. 둘째, 휴대전화를 ‘거리간격 조절기’로 활용해보자. 여자들은 ‘관계지능’이라는 것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이 남자가 나를 좋아하나 싫어하나를 실시간으로 느끼는 것이다. 심지어 이 남자의 마음이 내게서 100m 떨어져 있는지 30㎝만큼 가까이 있는지 거리 측정까지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갑자기 멀쩡히 있다가 “요즘 당신 나한테 왜 이래?”라고 따진다.

이 말 뜻을 이해하는 남자는 드물다. 대부분 황당해하며 “내가 뭘?”하고 반문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안다. 남편이 변했다는 것을. 연애할 때 남자들은 애인과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 무지하게 애쓴다. 사랑하는 여자가 생기면 그녀가 자신을 30㎝ 안으로 느끼도록 쉬지 않고 관리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잘 잤어?” 점심 되면 “점심 맛있는 거 먹어” 저녁이 되면 “하루 종일 힘들었겠다” 밤 11시가 되면 “잘 자. 사랑해. 내 꿈 꿔” 같은 앙증맞은 대사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이 거리간격 조절을 어느 순간 멈춰버리면 뭔가 표현하고 챙겨주던 살가운 모습들이 당연히 없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다시금 아내와 마음의 거리를 좁혀보자. 그동안 갈고 닦은 문자 실력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노력 대비 최고의 효과를 내는 데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만큼 좋은 게 없다.

히스토리가 있는 여인과의 사랑

마지막으로 여자를 사로잡는 최고의 아이템은 바로 선물이다. 이는 수천 년 동안 검증된 최고의 방법이다. 여자는 남자의 선물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이 사람이 나를 아껴주고 있구나’ 혹은 ‘사랑하고 있구나’, ‘용서해야지’ 등. 선물도 요령이 있다. 생일날 10만 원어치 꽃을 사 들고 가면 “그 생돈을 왜 거기 썼냐”고 혼나기 십상이다. 제일 좋은 선물은 아무 날도 아닌 날, 느닷없이 들고 가는 한 송이 꽃이다. 아내에게 꽃을 주면서 이렇게 해보자.

“미안하다. 그동안 너무 신경 못쓰고 너무 바빠서. 당신 좋아하는 노란 장미 사느라고 한 시간이나 헤맸어.”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나 생계로 얼룩진 뱃살, 웃을 일 별로 없어서 무덤덤해진 표정을 한순간에 바꿀 수는 없다. 이 모든 것은 사실 그동안 내가 만들어온 히스토리다. 가끔 살다보면 내 히스토리와 근거를 전혀 모르는 생뚱맞은 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서로의 히스토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은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우리는 그동안 묵직한 히스토리로 얽힌 사랑을 소홀히 대했다. 낡아 보이고 자극도 없고 너무 덤덤해서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인생의 히스토리를 다 이해하고 함께 해온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꾸며가는 데 몰입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먼저 대화도 하고 문자 메시지도 주고받고 느닷없는 선물도 주면서 오래 묵혔던 사랑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

그러면 아내가 먼저 색소폰도 불라고 사줄 것이다. 아마 여행도 가라고 할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이미 궁핍한 아내의 마음에서 풍요로운 애인의 마음으로 돌아섰으므로.

200903호 (200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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