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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nd - Made ‘out’ Swiss 

 

정수정 포브스코리아 기자
고급 시계는 ‘스위스’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독일·일본·미국 등이 틈새시장을 파고들며 고가의 시계시장을 공략한다.

▎독일 브랜드 융한스의 시계 제작 과정.



국민대 김개천 교수(건축학)는 선(禪)건축으로 유명하다. 강원도 설악산 만해마을, 전남 담양 정토사 등을 지었다. 그가 차고 다니는 시계는 독일 브랜드 융한스. 스위스 건축가 막스 빌이 디자인했다. “해외에 나갔다가 처음 융한스 시계를 봤어요. ‘JUNGHANS’라고 써 있어서 처음에는 한국 브랜드인 줄 알았죠. 그러다 시계를 잘 아는 지인 추천으로 2년 전 샀습니다.”

김 교수가 가지고 있는 시계는 총 5개. 그중 융한스 시계만 3개다. 그는 “융한스 시계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가진 걸 말하지 않는 시계”라고 했다. “지적이고 멋있고 섹시합니다.”

파텍필립, 오데마피게,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 까르띠에 등 고급 브랜드 시계가 스위스에서 많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다른 국가에서도 시계산업은 활발하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Federation of the Swiss Watch Industry FH)에 따르면 지난해 시계 수출금액 기준 1위는 스위스다. 2위는 홍콩, 3위는 중국이다. 시계 완제품 수출 개수로 보면 중국이 6억6250만 개로 가장 많다. 그 다음이 3억5440만 개를 수출한 홍콩이다. 이에 대해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의 온현성 소장은 “홍콩과 중국은 저가 시계를 많이 수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은 1950년대 시계조립산업으로 시작해 저가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센터로 자리를 굳혔다. 홍콩의 조립업체 대다수는 중국에 공장을 두고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전 세계 저가 시장을 점령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임금이 오르면서 OEM기지로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생겼다. 게다가 새로운 OEM 센터로 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 등이 나타나면서 홍콩을 위협하고 있다.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홍콩은 무브먼트 등 핵심 부품은 여전히 다른 나라에 의존하고 브랜드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왼쪽부터)독일 융한스의 막스빌, 미국 파슬의 조지아, 일본 세이코의 GPS 솔라 SAST003.
고급화·저가 전략 중 선택의 기로에

중국은 합자 브랜드를 만들어 심양에서 주로 시계를 생산한다. 비아달·천패·해패·천왕 등이다. 상해나 천진 등지에서는 자국산 시계를 만든다. 주로 중국 내 수입이 적은 봉급 생활자나 농촌주민 등이 구입한다. 월곡 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중국은 무브먼트만 연간 약 5000만 개 생산한다.

일본은 1968년 전통적 시계 강국 스위스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일본 세이코가 배터리로 움직이는 쿼츠 시계를 본격 출시한 것이다. 이후 일본 시계는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쿼츠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이끌었다. 세이코나 시티즌·카시오로 대표되는 일본 시계는 무브먼트를 자체 생산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 세 브랜드는 고성능·저가격 전략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한다. 하지만 중국 저가 시계에 비해 가격이 비싸 해외 시장에서는 고가품으로 평가받는다. 일본 시계 브랜드는 중국·인도 등 신흥 시장을 노린다.

회사원 이윤혁(37) 씨는 세이코 시계 7개와 롤렉스·오메가 한 개씩을 가지고 있다. “세이코는 실용적이고 편하다. 스위스 고급시계는 주로 기계식 시계로 충격에 약하고 자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 하지만 세이코는 주로 쿼츠 시계라 배터리가 오래가고 내구성이 좋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다는 말이다. 시티즌이나 세이코는 햇빛을 동력으로 하는 ‘솔라워치’도 만든다. 이 씨는 “화분에 물을 주듯 가끔 시계를 창가에 둬서 햇빛을 쬐게 할 때가 있다”며 “친환경적이고 일본적인 멋이 있다”고 말했다.

독일은 16세기부터 전통적인 시계 강국이다. 그러나 독일이 패한 제2차 세계대전 후 동독 지역에 있던 시계 기술자들은 대거 스위스로 넘어갔다. 시계 회사가 몰려 있던 작센 주 글라슈테 지방이 동독에 편입됐다. 1948년 동독 정부는 글라슈테 지방의 모든 시계회사를 합쳐 GUB를 만들었다. 이 회사는 싸구려 보급형 시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1990년 독일이 통일되자 독일 시계브랜드는 거대 브랜드그룹에 합병되거나 재기를 노렸다. 리치몬트 그룹에 합류한 랑에운트죄네가 대표적이다. 다양한 브랜드의 시계를 판매하는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의 갤러리 어클락 임숙희 매니저는 “30~40대 초반 남성 고객이 독일 브랜드에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융한스·재플린 등 독일 시계는 시간을 보기가 편하고 돔형 글라스 등 디자인이 색달라 소비자의 눈길을 끈다.”

미국에서 만드는 시계는 많지 않다. 월곡 주얼리산업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에서 팔리는 시계 중 미국에서 생산하는 것은 3% 정도다. 나머지는 일본이나 스위스에서 수입한다. 저가품은 중국·필리핀·홍콩·말레이시아 등에서 들여온다. 미국 시계의 대표 브랜드 파슬은 1984년 ‘패션 아이템’으로 시계에 접근했다. 시간을 보는 기계가 아닌 1950~1960년대의 고전적이고 세월이 느껴지는 멋과 간결한 디자인을 내세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스위스가 아닌 다른 나라 브랜드 시계도 결국 스위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의 패션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시계도 ‘Swiss Quartz’ 등을 표기해 스위스산 부품 사용을 강조한다. 버버리·샤넬 등도 스위스산 무브먼트를 사용하거나 스위스에서 만든다. 몽블랑·랑에운트죄네처럼 스위스계 시계 그룹에 합병되기도 한다. 온 소장은 “이런 브랜드는 ‘한국계 미국인’처럼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브랜드는 각 나라에 뿌리가 있지만 시계 기술은 스위스의 장인을 인정해 줘야 한다.”

시계 컬럼리스트 구교철 씨는 “스위스를 제외하면 시계를 잘 만드는 곳은 독일과 일본 정도”라고 했다. 온 소장은 “저가 시장을 맡은 중국과 홍콩, 고가 시장을 맡은 스위스를 제외한 나머지 나라의 시계 회사들은 고급 시계로 가느냐, 저가 시계로 가느냐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2008년 미국의 코볼드는 10년 간의 개발과정을 거쳐 미국산 부품 비율이 87%인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를 선보였다. RGM시계는 스위스 시계가 주류인 고급 시계시장에 진출한 미국 회사다. 대표제품 ‘펜실베니아 투어빌런’은 개발에 2년, 완성에 수개월이 걸렸다. 본체가 스테인레스 스틸인 이 시계 가격은 9만5000달러다. 국내 브랜드 로만손도 피겨여왕 김연아를 모델로 내세우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201309호 (2013.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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