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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KONG | KOREAN ENTREPRENEUR - “순혈주의를 버려라” 

 

사진 전민규 기자
홍콩에서 활동하는 최권욱 안다투자전문 대표는 우리나라가 금융선진국이 되려면 새로운 비지니스를 개발하고 외국인 직원을 채용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최권욱 안다투자자문 대표는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의 차남 리차드 리를 비롯한 홍콩의 거물과 두루 교분을 맺고 있다.



홍콩은 서울의 1.8배 면적에 인구 750만에 불과한 작은 도시국가다. 하지만 지난달 미국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과 월스트리트저널이 공동 발표한 2013년 경제자유지수(Index of Economic Freedom) 순위에서 싱가포르를 제치고 조사대상 186개국 중 1위를 차지할 만큼 국제금융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지난해 발표한 2013 세계투자보고서의 외국인직접투자액 비교 분석 결과에서도 홍콩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최권욱(53) 안다투자자문(이하 안다) 대표는 “글로벌 100대 기업의 60% 이상이 홍콩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며 “중국도 2003년 홍콩과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CEPA) 체결을 통해 홍콩 경제의 활로를 터주는 등 홍콩의 위상 강화에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1999년 코스모투자자문을 설립해 6년 만에 국내 투자자문사 1위 자리에 올려놓았다. 해외 사업기회를 모색하던 그는 2010년 일본의 투자기업 스팍스그룹에 지분을 팔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후 2011년 안다(몽골어로 ‘의형제’란 뜻이다)를 설립했다. 이후 한국과 홍콩을 오가며 7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끌어 모으며 안다를 단숨에 업계 10위권으로 키웠다. 운용자산의 97%가 해외 자금이다.

지난해에는 VIP투자자문과 손잡고(6:4 지분출자) 홍콩 현지 투자자문회사 페더스트리트를 인수했다. 자문업계 최초 합작이며 해외 진출이다. 35% 지분 인수지만 5년 이내에 일정 한도의 운용자산을 초과할 경우 추가 15% 지분을 인수하고 이후에도 추가 10%를 인수하는 옵션이 붙어 있어 사실상의 경영권 인수로 볼 수 있다.

최 대표는 지금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투자의 고수로 인정받고 있지만 처음부터 모든 게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대학(서강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하고 여러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떨어졌다. 결국 대학원 진학으로 방향을 틀어 외국어대 경영정보대학원 1년 수학 후 서울대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졸업을 앞둔 1989년 마침 국내 주식시장이 금리인하와 유가하락, 달러 약세의 3저 현상을 등에 업고 상승국면에 접어들었어요. 금융기관은 대학졸업 예정자가 선호하는 최고의 직장으로 떠올랐죠. 얼떨결에 국민투자신탁(현 한화자산운용) 국제부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해서 운용부에서 일하며 투자 세계에 눈뜨게 됐습니다.”

최 대표는 5년 전부터 가족과 함께 홍콩 란타우 섬 북동쪽에 위치한 디스커버리베이에서 살고 있다. 홍콩 사무소가 위치한 센트럴 업무지구까지는 배로 출퇴근한다. 운용자산 70억 달러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자산운용사인 밸류파트너스그룹의 창업자 브이니 예를 비롯한 홍콩 재계 거물과 교분을 맺고 있다.


▎홍콩의 센트럴 업무지구에 위치한 홍콩 증권거래소. 홍콩은 국제금융지로 자리 잡았지만 상하이·심천 등 중국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영어 서툰 본토인 급증도 부담요인

아시아 최고갑부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의 차남 리차드 리도 그중 한 명으로 홍콩 통신회사 PCCW의 회장이다. 최 대표는 “리카싱이 워낙 뛰어난 인물이라 두 아들이 아직 크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홍콩의 중국 반환 당시 리카싱 회장의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중국 정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본토에서도 존경 받는 인물이 됐습니다.”

현재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3만 명 정도다. 금융외에도 오랫동안 중국 관련 비즈니스에 종사해온 사람이 많다. 그는 회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에 대한 규정이 없고 세율이 낮은데다(법인 16.5%, 기타 15%) 회사설립 과정을 관리해주는 시스템이 잘 발달해 있어 홍콩은 외국인이 사업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인건비가 비싸고 시장이 작아 중국 진출을 염두에 둬야지 홍콩만 생각하고 사업을 벌인다면 금융업이 아니면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서울 강남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비싸 한동안 수익 없이도 버틸 자금이 필요하다. “홍콩의 대표 부촌 중 하나인 리펄스베이에 가면 ‘급매’ 딱지에 붙은 가격이 100억원이 넘는 집이 즐비합니다. 1000억원짜리 집이 있을 정도니 서울과는 비교가 안되죠.”

또한 영어가 서툰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는 것도 현지 사업에 종사하는 한국인에게는 부담일 수 있다. 영어도 모자라 경우에 따라서는 광동어에 만다린까지 요구받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로 오랫동안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홍콩이지만 최근에는 싱가포르는 물론 상하이와 심천 등 본토 도시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슬람 자본 유치에 적극 나서 재미를 보고 있다. 최 대표는 “장기적으로는 홍콩과 경쟁하기 보다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했다. “상해와 심천이 없었으면 홍콩이 더 많은 반사이익을 누렸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두 도시가 홍콩의 몫을 빼앗아가는 모양으로 가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본토의 성장을 홍콩과 함께 나누게 되겠죠.”

2003년 우리 정부는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이라는 장기비전을 발표하면서 서울을 2012년까지 자산운용 부문이 특화된 금융 중심지로 키우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초 세계 50대 자산운용사의 지역본부를 유치하겠다고 했지만 단 한 곳도 데려오지 못했다. 금융허브 전략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여의도 IFC서울은 완공된 지 1년이 넘었지만 공실률이 50%를 웃돈다.

25년째 금융 외길을 걸은 최 대표는 “지난 25년간 대한민국 금융업계가 서비스와 상품 등에서 질적인 성장을 이룬 부분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우리나라가 금융위기를 비교적 잘 넘길 수 있던 건 역설적이게도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파생상품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이유도 있어요. 그런데 금융중심지가 되는 야심을 갖기에는 금융 선진국과 격차가 너무 큽니다. 지금은 금융산업의 위상을 높여 선진 수준으로 따라가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그는 금융선진국의 필수 조건인 국제화 수준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했다. “국내 금융사의 홍콩 지사에 나와 있는 사람들도 홍콩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보는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새로 비즈니스 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국제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순혈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직원도 최소한 절반 이상은 외국인으로 채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준비가 안된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업계에 소문난 ‘투자의 고수’인 최 대표에게 ‘성공하는 투자원칙’을 물었다. 그는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태도를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투자는 다른 사람의 실수에 의해 성공하기도 합니다. 큰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늘 조심합니다. 또한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주장하기보다는 스스로가 합리적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합리적 사유의 힘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믿음은 80년대 말 햇병아리 증권맨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85년말 163.37이었던 코스피지수는 1989년 3월에 1000을 돌파하며 600%가 넘는 수익으로 온 나라를 주식열풍에 몰아넣었다. 하지만 이후 많은 거품을 만들어 1000을 기점으로 폭락하기 시작했고 이후 오랜 조정 기간을 거쳤다.

“대중의 탐욕이 얼마나 큰 거품을 만들 수 있고 그 거품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습니다. 자연스럽게 군중심리에 대한 이해와 가치투자의 중요성, 위험관리 등 투자의 기본을 충실히 익힐 수 있었습니다.”

최 대표는 “성장이 최고 목표였던 적은 없다”고 했다. “고객의 수익률과 장기적인 고객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어느 한 해도 화려하게 1등 수익률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최상위권에서 살아남았어요. 그렇게 오랫동안 신뢰를 쌓은 덕에 지금도 많은 외국인투자자가 날 믿고 밀어줘 해외 사업에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201402호 (20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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