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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성 인텔코리아 대표 - “옆길로 빠져라, 그래야 성공한다” 

 

최영진 포브스 차장 사진 전민규 기자
글로벌기업의 한국지사장 중 가장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희성 인텔코리아 대표. 자신의 삶 속에서 체득한 성공학을 들고 나와 ‘젊은이들의 멘토’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기업 한국 지사장 중 최장 기간 대표를 맡고 있는 이희성 대표. 2015년에는 사물인터넷에 적극 대응할 계획이다.
‘One more thing’(한가지 더),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말이다. 그의 키노트는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뭔가가 있다. 그는 키노트를 통해 신제품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소비자에게 각인시킨다. 키노트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스티브 잡스의 입에서 ‘One more thing’이 나온다. 서류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내는 식이다. 서류봉투에 들어가는 노트북이라는 퍼포먼스 하나로 맥북에어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노트북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이처럼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는 제품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퍼포먼스다.

한국에서도 스티브 잡스의 키노트 만큼 기대감이 높은 CEO의 제품 발표회가 있다. 어떤 기행(?)을 보여줄지 모르기 때문이다.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발표회장에 나오기도 하고, 회사 홍보 동영상에서는 춤과 노래까지 마다하지 않는다. 무대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신제품을 설명하는 모습은 마치 배우가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연극배우로 살아갈까 고민도 했다”며 웃는 이희성(54) 인텔코리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2006년 인텔에서 처음으로 듀얼코어 프로세서를 출시했을 때, 그는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신제품 발표 회장에 나왔다. 할리데이비슨은 듀얼 엔진을 가진 오토바이다. 듀얼코어 프로세서와 듀얼 엔진의 공통점을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2013년 신제품 발표회장에서는 간단한 마술을 직접 선보였다. 한강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발표회장에 도착하는 기행을 선보인 적도 있다. 지난 1월 13일 ‘5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 공개 행사 때에는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 샘킴 쉐프, 박초롱 필라테스 강사 등 5명과 함께 2015년 트렌드를 전망하는 토크쇼를 선보였다. 그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퍼포먼스로 대중들에게 제품을 강하게 인식시키는 보기 드문 재주가 있다. 그는 이에 대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색다른 시도를 많이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프리젠테이션을 잘 하고 못하고 하는 그런 부담은 없다. 오히려 즐긴다. 인텔코리아 대표로서 제품의 특성을 알리기 위한 신제품 발표회는 중요한 기회다. CEO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어려운 기술을 쉽게, 중요한 내용은 빠트리지 않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다.”

신제품 설명회를 따분한 자리가 아닌 유쾌한 퍼포먼스의 자리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희성 대표. 그에게는 꼭 따라붙는 설명이 있다. ‘글로벌 기업 한국지사장 자리를 10년 넘게 지키고 있다’는 것. 이 대표만큼 오랫동안 장수를 하는 이는 찾아보기 힘들다.

할리데이비슨 타고 제품 발표회장에 나타나


▎인텔코리아 사무실에는 이희성 대표의 공간이 따로 없다. 누구나 출근하는 순서에 따라 일하고 싶은 자리를 정하게 된다. 직원들의 창의력을 높이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어떻게 10년 넘게 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장을 맡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 후배들 볼 면목이 없다”면서 웃었다.

이 대표는 요즘 ‘젊은이들의 멘토’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다양한 강연과 책, 그리고 한국장학재단에서 운영하는 ‘지도자급 멘토링’을 통해 수많은 젊은이들과 만나고 있다. 그가 요즘 가장 신경쓰는 것은 지도자급 멘토링. 이를 통해 13명의 대학생과 매월 1회 만나고 있다. 만날 때마다 젊은이들에게 숙제를 내준다. ‘리더십에 대한 책을 읽고 5분씩 발표하기’ 등과 같은 숙제다.

이 대표는 대학생에게 뭔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도록 주문한다. 대학생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성공할 수 있나’라는 것. 구직난에 시달리고 스펙을 쌓느라 고생하는 대학생들의 고민이 담겨있다.

이 대표는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옆길로 빠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옆길이라는 표현은 나만의 경쟁력을 뜻한다. “대학생들을 만나보니까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미래에 대한 막막함이더라. 이들에게 남들의 성공담을 들려줘봐야 아무 소용없다. 그 성공담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의 키워드는 옆길로 빠지는 것이다. 남들과 달라야 성공한다고 강조한다.”

이 대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성공의 탄탄대로를 달려왔다. 1988년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금성전기 연구개발실 엔지니어로 취업을 했다가, 1991년 “인텔의 기업 문화가 마음에 들어서” 인텔코리아에 입사를 했다. 이후 세일즈 분야에서 탄탄대로를 걸었다. 대표적으로 1990년대 말 화상회의·랜카드 세일즈 1위로 미국의 인텔 본사에서도 그의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시스코와 모토로라 코리아 등 경쟁업체에서 그를 스카우트 하겠다고 할 때다. 그때마다 인텔 본사에서는 그를 붙잡았고, 나중에는 인텔코리아 대표를 제안했던 것. “대표 제안을 받았을 때도 나는 현장에서 계속 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만큼 현장 세일즈가 어렵기는 하지만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1991년 인텔코리아 법인이 한국에 설립된 이후 이 대표처럼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없었다. 젊은이들에게 그의 성공 스토리는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 이야기를 젊은이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어떤 역할을 해야 옳은지 실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멘토들의 모임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자신의 성공이나 가치관이 마치 성공의 교과서인 것처럼 여기는 멘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잘한 것, 성공한 것을 젊은이들에게 심어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사람마다 가치관과 전략이 모두 다르다. 멘토도 젊은이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양하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글로벌 기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이 대표의 리더십을 알고 싶어한다. 그는 얼마 전 펴낸 『리더스 로드(Leaderʼs Road)』라는 책에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실크로드 여행은 그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인텔코리아의 CEO를 넘어서 글로벌 인텔의 시니어 역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찾기 위해서다. 2011년 봄 홀연히 실크로드 여행을 떠났고, 실크로드에서 ‘리더의 길’을 만났다. 인텔코리아 입사부터 대표가 된 이후, 리더의 역할을 정리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는 2005년 인텔코리아 수장이 됐을 때, “5년 안에 회사 규모를 2배로 키우겠다”는 취임 일성을 남겼다. 세일즈 현장에서 누구보다 월등한 성과를 낸 주인공이지만, 대표로서 그가 성공할 것인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다. 세일즈맨과 리더의 역할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약속은 8년 만에 지켜졌다. 인텔코리아의 매출과 규모가 8년 만에 2배로 성장했다. 이 대표는 인텔코리아의 매출액을 밝히지 않았지만, 수천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규모도 급성장했다. 2015년 현재 인텔코리아 직원은 450명 정도다. 이중 엔지니어링 직원이 200명 이상, 본사 R&D 기술을 개발하는 인원이 60명 정도다. 이 대표는 “운이 좋았다”며 웃는다.

그가 이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함께 이득을 얻고 함께 성장한다’는 비즈니스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인텔의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사 삼성과 LG가 경쟁사인 HP나 레노버보다 잘 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고객사가 발전해야만 인텔코리아도 성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텔은 업계를 리딩하는 기업이다. 경쟁보다는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경쟁만을 생각하면 더 큰 시장을 놓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생각의 틀을 바꿔야 했다.”

이런 철학 때문일까. 이 대표가 인텔코리아 대표로 일하는 시간은 삼성과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던 시기와 겹친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은 글로벌 PC(노트북 포함) 시장에서 한때 상위권에 오르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삼성이나 LG가 글로벌하게 커나가면서 인텔코리아도 함께 급성장을 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2012년을 정점으로 삼성과 LG의 PC 분야의 성장이 이어지지 못했다. 인텔코리아의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삼성 스마트폰이 애플과 중국에 낀 상황이다. 삼성이 노트북 사업에 더 집중하면 예전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이 대표가 추구하는 리더십은 뭘까. ‘플렉서블(flexible) 리더십’, 즉 유연한 리더십을 추구한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인텔코리아 사무실에는 이 대표의 방이나 자리가 없다. 출근하는 순서대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아 일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대표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언제든지 대표와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직원들은 대표를 찾아오면 된다. 사무실 내에서 직책 대신 이름을 부르면 된다. 사무실 내에서는 직급에 따른 상하관계가 아닌 평등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직원들이 무한 상상력을 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글로벌 인텔의 기업 문화를 한국에 도입한 이유를 설명했다.

‘휴가 은행ʼ 이용해 실크로드 여행 다녀와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도 운영 중이다. 2011년 봄 이 대표가 홀연히 실크로드 여행을 떠날 수 있던 것은 ‘휴가 은행(Vacation Bank)’ 제도 덕분이다. 1년에 최대 6일씩 7년 동안 휴가를 모은 후에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제도다. 42일과 주말, 그리고 연차휴가를 포함하면 7년에 한번 2~3개월 정도 되는 휴가를 이용할 수 있는 셈이다. ‘로테이션 프로그램’도 인텔코리아의 자랑이다. 동료 중 산후휴가나 장기간 휴가를 가는 경우 업무에 공백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때 그 업무를 전 직원에게 오픈하고, 그 자리에 누구든지 지원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2~3개월 동안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셈이다. 업무가 자신에게 잘 맞는지 판단할 수 있고, 관련 부서 사람들과 인맥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리더는 비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경영과 산업에 대한 확실한 정보와 시각도 필요하다. 그리고 산업에 대한 통찰력(insight)을 직원들과 함께 공유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기업을 함께 키워보자는 동기를 심어줄 수 있어야 좋은 리더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요즘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이 하나 있다. 서강연극회(이 대표는 서강대 전자공학과 81학번이다) 동문과 함께 5월에 무대에 올리는 연극 ‘햄릿’ 연습이다. 대학 시절 내내 연극에 빠져 살았던 이 대표는 이번 연극에서 햄릿의 아버지 유령 역을 맡았다. 선배인 배우 정한용도 이번 무대에 같이 오르게 된다. “문성근 선배도 어떻게든 참여를 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연기력? 대학교 때 내 연기를 보고 여고생들이 사인을 받았다. 그때 당시에는 내가 청춘의 심볼이었다”라며 으쓱했다. 2000년에도 무대에 한번 올랐을 정도로, 그의 연극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연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손과 표정이 다양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심지어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내 시간의 30%는 연극에 쓸 것”이라는 말을 할 정도다.

2015년 인텔코리아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사물 인터넷에 대한 대응과 인텔코리아의 새로운 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가 말했다. “인텔코리아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기는 해가 될 것이다. 직원들이 회사의 변화에 잘 적응 했으면 좋겠다.”

- 글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 사진 전민규 기자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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