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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수, 전경련을 다시 짊어지다 

 

허창수 회장이 다시 전국경제인연합의 선장을 맡았다. 2011년부터 3연임이다. 하지만 돛은 헐겁고 닻은 무겁다. 축하보다 격려의 말이 더 많은 이유다.



2월초만 해도 허창수(67) GS 회장의 코멘트는 아리송했다. 허 회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직 수락 여부에 대한 질문에 침묵하거나 말을 아꼈다. 2월 2일 류진 풍산그룹 회장의 모친상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당신이 시켜주면 하겠다”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고, 앞서 1월 30일 전경련 이사회를 마친 뒤엔 “(연임)할 생각이 없는데 자꾸 물어보니까…”라며 말끝을 흐렸다. 1월말 스위스 다보스포럼에 참석하고 돌아왔을 때도 “연임 여부는 가봐야 안다. 어떻게 될 지는 나도 모른다”고 했다. “전경련 회장 물망에 오른 분들이 사용하는 오래된 수사(修辭)”라는 재계 인사의 분석도 있지만 ‘더는 전경련 회장을 맡지 않겠다’는 신호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3연임을 선택했다. ‘결국’이라는 표현은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한때 ‘재계 대통령’으로 불렸던 전경련 회장직은 현재는 부담스러운 자리로 전락했다. 주요 그룹 총수의 전경련 회의 불참은 다반사가 됐다. 재계 관계자는 “주요 그룹 오너들이 나서지 않자 전경련을 책임지고 있는 허 회장이 다시 십자가를 짊어진 셈이 됐다”고 말했다. 허 회장은 지난 2011년 2월 조석래 효성 회장의 뒤를 이어 전경련 회장에 올랐고, 2013년 2월 재추대됐다. 재추대 당시에도 수차례 고사했으나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전경련 원로들의 부탁에 못 이겨 연임을 수락한 바 있다.

전경련은 2월 10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허창수 GS 회장을 제 35대 회장으로 선임했다.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앞으로 2년 임기 동안 미래 성장동력의 발굴과 육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자 한다”며 “하루빨리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기풍을 되살려 구조적 장기불황의 우려를 털어 내고 힘차게 전진하자”고 말했다. 또 “기업의 투자 확대를 가로막는 각종 애로사항을 풀어 수출과 내수가 함께 성장하는 균형 잡힌 경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부 정책에도 적극 협조해 일자리 창출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경련 회장 선출은 회장단과 강신호, 조석래, 손길승 등 전경련 회장 출신 재계 원로들이 토론을 거쳐 추대하는 방식이다. 당초 부회장단 가운데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을 후보에 올렸다고 한다. 하지만 조 회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데다, 예기치 않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회항사건 탓에 한사코 고사했다고 한다. 김승연 회장 역시 그룹 경영에 복귀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최근 삼성과의 빅딜 등 주요 현안이 있어 당분간 그룹 업무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본산’ 자존심 다시 세울까


결국 전경련은 허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재추대하기로 결정했다. 허 회장이 그동안 재계 현안을 두루 챙기고 전경련을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평가에는 만장일치였다고 한다. 재계 한 인사는 “이견이 없었다는 것은 모두가 허 회장에 대한 평가에 동의한 것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뾰족한 대안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 안팎에 ‘어려운 경제 환경 속에서 책임 있는 선택’이라는 호평과 ‘대안이 없었다’는 두갈래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전경련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1961년 출범한 전경련은 출범 이후 경제 5단체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 현재도 585개 기업이 회원으로 등록해 있다. 최전성기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1977∼1987년)이었다. 정 창업자는 임기 중 전경련회관을 건립했고, 서울 올림픽 유치를 성사시켰다. 전경련이 ‘재계의 본산’, 전경련 회장이 ‘재계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온것도 이때였다. 발언권도 강해 재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도했다. 1990년대 과열 양상으로 치달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로 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전경련이 교통정리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경제개발 시기 ‘파이를 키우자’는 일치된 목소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경제 규모가 커지고 업종이나 규모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경우가 늘면서 개별 기업의 의견을 모으는 것이 힘들어졌다. 여기에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전경련이 나서지 않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묘한 분위기까지 생겼다. 재계 관계자의 말이다. “골목상권 침해 논의 하나에도 뚜레주르를 운영하는 CJ와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의 입장이 다르다. 대형마트 24시간 운영 규제에 대해서도 이마트를 운영하는 신세계와 롯데마트를 운영하는 롯데의 목소리가 같지 않다. 동일한 한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만 이를전경련이 조율하지 못하면서 재계 장악력이 떨어졌다.”

최근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회장단의 공석조차 채우지 못하고 있다. 전경련은 총회에서 이장한 종근당 회장을 부회장에 새로 선임했다. 하지만 강덕수 전 STX 회장, 현재현 전 동양 회장의 사임으로 생긴 공석을 다 채우지 못해 회장단이 21명에서 20명으로 줄었다. 전경련은 이수영 OCI 회장, 이중근 부영 회장, 장형진 영풍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윤세영 태영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등에게 몇 년 전부터 부회장직을 제안했었으나 한결같이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단 회의도 참석률이 극도로 떨어진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와병 중이고 최태원 SK 회장은 수감 중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구본무 LG 회장은 전경련과 거리를 둔 지 오래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집행유예 상태이고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라서 회의 참석이 어렵다. 회장단의 절반가량이 사실상 유고상태다. 요즘에는 회의 자체가 아예 비공개로 바뀌어 개회 여부조차 잘 모를 지경이 됐다.

첩첩산중이지만 넘어야 할 산


그럼에도 허 회장의 지난 4년 연임 기간에 대한 평가는 ‘무난한 리더십’으로 요약된다. 재계의 높은 신망을 바탕으로 정부의 경제민주화 및 규제압박에 맞서 재계를 무난하게 이끌었다는 것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특히 전경련 회원사를 대기업 위주에서 중견·벤처기업으로, 생산·금융업 위주에서 서비스업과 엔터테인먼트업으로 확장하며 문턱을 크게 낮춘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라며 “박근혜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지역창조혁신센터도 전경련이 기업과 지자체 사이에서 조율한 결과”라고 말했다. .

3연임을 수락한 허 회장의 첫 일성은 ‘법인세 인상 반대’였다. 그는 정기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법인세와 관련한 최종 결정은 정부가 하겠지만 법인세를 낮추는 게 세계적인 추세”라며 “각국 사례를 토대로 우려의 목소리를 정부와 정치권에 전달하겠다”고 했다. 정치권 일부에서 법인세율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재계 단체 수장이 반대 입장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지난 1월 5일 서울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린 ‘2015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기업인을 사면하는 것이 더 좋다”라고 말한 이후 정치권과의 각을 세워가고 있는 모양새다. 재계에서는 “드디어 허 회장이 총대를 메기 시작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무엇보다 허 회장에겐 전경련의 내부 동력을 모으는 일이 시급하다. 회장단을 강화하고 전경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그것이다. 지난해 3월 신축회관이 완공된 후 첫 회장단 회의에 나타난 회장단은 21명 가운데 단 7명이었다. 상징적인 날이었지만 회장단의 참여는 미미했다. 이 때문에 회장의 다짐을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지원하는 회장단 운영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젊은 오너들로 회장단을 보강하고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듯 허 회장은 총회 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원래 3연임할 생각이 없어서 부회장 신규 선임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제부터 부회장단 인사들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1가문 1인 관행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전경련 회장단은 친인척간 그룹들의 경우 ‘맏형’ 그룹 1개사만 회장단에 들어갈 수 있는 게 불문율이다. 삼성가라면 삼성만 회장단에 들어가 있을 뿐 CJ, 신세계, 한솔은 빠져있다. 현대가 역시 현대자동차가 회장단에 있어 현대중공업, 현대그룹, 현대백화점, KCC, 현대산업개발그룹 등은 제외됐다. LG가의 방계기업인 LS, LIG도 사실상 회장단 진입 불가다. 재계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무엇보다 전경련 활동에 대한 열의가 회장단 선정기준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며 “대기업 중심에서 폭을 넓혀 업종별, 지역별로 다양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요구를 의식한 탓일까. 전경련도 최근 조직 개편에 나섰다. 회원사와의 소통 강화, 수익사업을 위해 회원사업실과 회관관리실을 신설했다. 회원사업실은 500여개 회원사에서 회비를 받는 업무 외에 개별 그룹·회사의 투자·경영 애로와 전경련에 대한 건의를 듣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일종의 ‘찾아가는 서비스’다. 전경련 관계자는 “그동안 회원사들의 개별 의견보다는 재계 차원의 의견 수렴이 많았는데, 앞으로 현장 목소리를 더 가까이에서 듣겠다는 취지”라며 “회원사마다 이해와 요구가 다르기 때문에 맞춤형 서비스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의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회원사의 이익을 추구하는데만 머물러있지 말고 국민의 이해와 눈높이에 맞추어 정부 정책을 조율해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간 전경련은 정부 논리에 맞춰 규제개혁, 기업 활력 등에는 목소리를 키웠지만 양극화 해소 등의 문제에는 소극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부 대기업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익단체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국가 및 산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공익적 역할을 강화할지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전경련이 추진하는 사업의 95%는 국가경제사업과 일치한다”며 “나머지 5% 정도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법인세 인상 반대, 그룹 총수 사면 등”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경련은 세수 증대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방법론에서 현 정치권 논리와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허창수 회장은 전경련의 수장으로서 기업들을 이끄는 한편 GS그룹 회장으로서 100년 장수기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GS그룹은 지난 2005년 LG에서 분가한 후 외형면에서는 3배 이상 성장했다. 자산규모로는 재계 순위 7위의 기업집단으로 지주회사인 GS를 비롯해 GS에너지, GS칼텍스, GS리테일, GS샵, GS EPS, GS글로벌, GSE&R, GS스포츠, GS건설 등의 주요 자회사 및 계열사를 포함해 국내 80개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창립 10년 맞은 GS 살림도 챙겨야


▎허창수 GS 회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강원도 동해시에 건설 중인 GS동해전력 석탄화력발전소 건설현장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허 회장은 지난 1월 GS신년모임에서 “올해는 GS가 새로운 CI와 경영이념을 선포하고 첫발을 내디딘 지 1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해”라며 “GS의 사업구조와 포트폴리오를 고도화, 다변화 하는 등 질적인 측면의 성장이 절실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이로운 일을 더 하는 것은 해로운 일을 제거하는 것만 못하다’는 옛말을 인용하며 “불필요한 일은 과감히 줄이자. 과거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혁신해 역동적으로 진화하자”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의 연장선에서 한 말로 풀이된다.

비장감 서린 그의 말처럼 최근 GS그룹의 살림살이는 좋지 않다. 핵심 계열사인 GS칼텍스가 국제유가 하락의 여파로 어닝 쇼크 수준의 저조한 실적을 낼 가능성이 예상되면서 그룹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더욱이 삼성그룹은 첫 유가 증권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삼성SDS가, SK그룹은 SK하이닉스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그룹의 체면을 살린 것과 달리 GS는 주력 계열사의 부진을 대체할 구원투수가 없어 올 한해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은 경영 환경에 처해있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4분기 국제유가 내림세 등을 고려했을 때 GS칼텍스가 최대 5000억원 규모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GS칼텍스는 최근 실적 악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구조조정에 나섰다.

더 큰 문제는 핵심 계열사의 부진을 덜어낼 줄 만한 대안이 뚜렷하지 않다는 데 있다. GS칼텍스와 더불어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하는 GS건설이 지난해 4분기 34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파르나스호텔 매각 등 유동성 해결을 위한 과제들이 아직 산재해 있어 지속적인 실적 반등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GS그룹은 외부적 요인의 영향을 민감하게 받는 정유부문(GS칼텍스), 건설부문(GS건설)이 양축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올해 경영환경이 불투명한 상황”이라며 “GS그룹 사정이 좋지 않아 허 회장이 3연임을 고사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말했다.

허 회장도 마음이 급해졌던 모양이다. 지난 2월 6일 제주도 엘리시안 제주리조트에서 열린 GS 신임임원들과의 만찬 자리에서 그는 최근 아시안컵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결승전 진출을 이끈 슈틸리케 감독을 거론하며 임원들을 채근했다. “화려한 경기를 하는 것보다는 한 골을 넣더라도 승리할 수 있는 실용주의 리더십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한 그는 “리더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악착같은 실행(實行) 의지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 회장으로서, 재계 7위 그룹의 수장으로서 자신에게 던진 숙제와도 같은 말에 다름 아니었다.

-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03호 (2015.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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